※ 리뷰 제목을 수정했습니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가족. 한국 사회를 수백 년째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의 핵심 장치로서 명맥을 이어 온 작고 무수한 닫힌 사회. 시체가 담긴 독으로 시작해 그 독에 담긴 진실의 부분적인 폭로로 끝나는 <독>은 비밀을 감추고 있는 닫힌 사회로서의 한국 가족 하나를 생생하게 묘사해 깊은 인상을 남긴다.
<독>은 온 가족이 모인 할아버지 집에서 시체 담긴 독이 발견되고 화자인 ‘나’가 다른 가족들과 함께 경찰의 출동을 기다리며 ‘나의 친부모는 이 중 누구인가’라는 의문의 답을 탐색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추리물의 재미를 기대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의 묘미는 한 자리에 모여도 서로 어색하거나 크고 작은 반목만 거듭되는 흔한 한국 가족 풍경에 유기된 시체가 더해져 조성되는 불편한 긴장감, ‘나’와 가족들 앞에 시체에 얽힌 비밀이 드러나는 과정의 급작스러움, 그리고 그 비밀의 일부인 ‘나’에게 끝내 진상의 일부분밖에 털어놓지 못하는 가족의 폐쇄성에서 우러난다.
이 이야기의 주 소재인 시체 담긴 독은 ‘나’의 가족과 매우 닮았다. 그저 흔한 한국의 가족 같지만 드러내기 두려운 죄의 비밀을 안으로 은폐하고 쉬쉬하는 ‘나’의 가족은 겉보기에는 평범한 독이지만 실은 가족 중 누군가에게 살해되었을 친척의 시신을 1년이나 감추고 있던 독을 연상케 한다. 과거의 비밀과 시체의 연관성을 놓고 말다툼하던 어른들의 손에 깨어져 시신의 정체를 온 가족에게 고스란히 드러내는 독은 마치 그 순간 ‘나’의 가족이 처한 상황을 형상화한 듯하다. 시신이 되어 독에 갇힌 자와 ‘나’의 가족들과의 관계, 그가 과거에 자행한 범죄의 내용, 그리고 자신들의 가족이자 피해자인 이에게 가족 모두가 강요해 온 침묵 또한 가부장제라는 이데올로기의 요새인 가족 공동체를 해체하지 않기 위하여 비슷한 상황에 구성원들이 사회의 질서와 정의 대신 택하는 폐쇄적인 조치 그대로이며, 그럼에도 결국 폭로되고 마는 비밀을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선 채로 감추고 싶어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깨어진 채 비를 맞으며 경찰을 기다리는 독과 시체와도 같다.
결국 경찰차 사이렌이 가까워져 오는 마지막 대목에 이르기까지 살인 사건의 진실은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는다. ‘누가 죽였고 누가 관여했나’가 궁금해지기는 하지만, <독>은 고모의 ‘우리 모두가 공범’이라는 어찌 보면 두루뭉술하고 구태의연할 수도 있는 고백이 결코 구태의연하지 않은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그만큼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죄의 은폐를 택한 가족이라는 닫힌 사회의 폐쇄성이 이야기 전반에서 살아 숨쉬며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이자 독에 담긴 비밀의 일부인 ‘나’는 시종일관 냉정하고 침착하다. 어릴 적에 못된 사촌들의 입을 통해 자신이 입양아임을 알고도 그 사실을 어른들에게 묻는 일 없이 계속 홀로 곱씹어 보는 ‘나’는 작중 내내 그들을 포함한 일가 친척들을 냉정한 시선으로 묵묵히 관찰하며, 깨진 독 안에 있던 시체를 보고도, 그 시체와 자신의 충격적인 연관성을 듣고도, 그저 당장 필요한 행동을 취하거나 담담히 정곡을 찌른다. 이런 반응이나 태도가 ‘나’의 성격이나 기질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가족의 구성원이되 외부인이나 마찬가지라는 ‘나’의 입장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분명히 ‘나’는 이 글에 등장하는 모두와 혈연으로 엮인 친인척이자 가족이다. 그러나 그 출생의 비밀을 차치하고 보더라도, 무언가 집안 어른들이 드러내기를 꺼리는 이유로 인해 친부모가 아닌 혈연에게 길러졌다는 사실에서부터 ‘나’는 한국의 ‘정상 가족’ 바깥에 놓인 인물, 다른 가족들과는 이질적인 구성원으로 규정된다. 이처럼 굳게 닫힌 울타리 안 이방인으로서 ‘나’가 취하는 냉정함과 침착성이, 가족이라는 끈으로 묶였지만 공유할 것이라고는 단지 무겁기 그지없는 비밀뿐인 가족의 군상과 그 비밀을 마지못해 드러낸 그들의 결말을 지켜보는 시각의 방향을 독자들에게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