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선물

  • 장르: SF, 일반 | 태그: #그늘진자리 #SF #루나시티
  • 평점×69 | 분량: 98매
  • 소개: 모처럼 휴가를 얻은 지호는 화성의 선물 피해자 모임에 나갈 마음을 먹는다. 더보기
작가

그의 성장을 응원하며 감상 브릿G추천

리뷰어: 소금달, 7월 23일, 조회 36

소일장을 읽는 것은 재밌다. (비록 요즘은 게을러서 올라오는 것의 절반도 읽지 못하고 있지만;;) 똑같은 문장에서 시작했는데 어쩜 저렇게 다채롭고 다양한 이야기가 생겨날까 신기하기도 하고, 이런게 인간의 창의력일까 하는 다소 거창한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만큼 같은 시작을 지니고도, 소일장은 각기 다른 개성을 뽐낸다.

그 중 이번달 ‘화성의 선물’은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다. 추천의 글에도 나와있듯, 화성의 선물은 재난을 맞이한 사회의 면면을 보여준다. 그 모습들이 작금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마 ‘화성의 선물’을 ‘코로나19’ 나 ‘세월호’ 혹은 ‘이태원 참사’로 바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 이야기에 푹 빠지게 된 건 인물 때문이었다. 주인공 지호는 (멋대로 추측컨데) 전형적인 ‘회피형’ 인간같다. 도입에서부터 그의 그러한 특성이 잘 드러나는데, 직장내 인간관계를 최소한의 것으로 건조하게 유지하는 그는 [고립된] 인간으로 보인다.

그런 그의 성향은 사람뿐 아니라 문제를 맞닥뜨렸을때도 나타나서, 그는 회사내 어떤 부당한 일처리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기 변호를 하거나 항변하지 않는다. 주어진 상황을 수용하고 순응하기만 하는 그의 모습은 제가 뿌리박힌 데서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을 연상케 했다.

그러한 그가 예상치 못한 휴가를 받았을 때 마땅히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그런고로 그는 그의 유일한 애정의 대상이였던 파트너와 관계 된 곳을 간다. ‘화성의 선물 피해자 모임’.

그리고 거기서 오랜만에 한 인물과 재회한다. 그녀는 초기 화선 피해자 모임에서 피하려고만 하는 지호의 태도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늘어놓았던 (그리고 지호는 그 훈계에 반발심을 품었던) 인물이다.

몇년만에 다시 본 인물(희영)에 대해 지호는 여전히 반발심을 품고 있고, 늘 그렇듯 상황을 회피하려한다. 그러다 불현듯 그들의 행동에 분노를 느껴 다시 희영에게 돌아가 하고픈 말을 따져 묻는다. 그리고 희영의 답변을 들은 그는, 변한다. 작지만 의미있는 행동들을 [실천]하기 시작한다. 그건 늘 [회피]하고 [순응]하려고만 했던 그가 처음으로 내는 [목소리]이자 [반응]이다. 그는 [그늘]에서 조금씩 양지로 나서기 시작한다.

이 글은 특히 인물의 변화가 지나치게 극적이거나 드라마틱 하지 않아서 좋았다. 회피형 인간이 하루 아침에 잔다르크가 된다면 읽던 나는 모종의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인물은 아주 소심하게, 그러나 살짝 변화를 꾀한다.

그의 그런 반응이 참 좋았다. 작은 한 발자국이지만, 그가 점점 보폭을 크게 내딛어 더 나아갈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나도 모르게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성장하는 주인공’을 다루는 글이 대부분 그렇듯, 여기서도 주인공을 일깨우고 가르치는 스승 역할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 인물 설정 또한 좋았는데, 해리포터의 덤블도어처럼 초월적 위대한 스승의 포지션이 아니라 현실에 고군분투하며 낡고 닳아가는 인물이란 점에서어딘지 모르게 역시 응원하고픈 기분이 드는 인물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의 변화에 더 수긍이 갔다.

다만 아쉬운 것은, 재난을 대하는 인간들의 방식이 지극히 현실적이다보니 SF라는 장르적 특성이 도드라지지 못하는 듯 하다. 주인공이 인공 강우로 위험에 처하는 장면을 제하고는, 이 글의 배경이 굳이 ‘루나시티’여야 하는가 의문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화성의 선물’은 미지의 어떤 바이러스로 바꾸어도 이질적이지 않고, 주인공이 위험에 처하는 장면은 드라마의 가장 흔한 클리셰- 넋나간 주인공이 도로를 무단횡단하다 차에 치일 뻔 하는-로 바꾸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또 주인공에 대해선 여러 장치들로 인물을 이해할 수 있게끔 안내해 준 반면, 희영에 대해선 인물 묘사가 상대적으로 깊지 못해 아쉬움을 느꼈다. 이 인물은 (비록 현실의 고난과 간신히 맞서는 약자 포지션이지만) 자신의 신념 혹은 소신에 대해서는 강철같은 의지를 지닌 것으로 보이는데, 인물이 왜 그렇게까지 확신을 갖고 행동하는지는 잘 알 수 없어 (주인공에 비해서는) 납작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런 글을 읽는 것은 참 재밌다. 루나시티가 아니라도 우리 동네 어딘가에 살고 있을것만 같은 회피형 지호씨가 조금 더 그늘 밖으로 나설 용기를 내주기를, 그의 성장이 마치 나의 발전인 양 느껴져 같이 으쌰으쌰하게 되는 그 느낌들이, 참 좋고 재밌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계속 글을 읽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