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옥은 직접 본 적은 없었어도 어떤 식물인지는 익히 알고 있는데 아마 어린 시절에 본 다큐에서 살아있는 곤충을 잡아먹는 식물이라고 끈끈이 주걱이랑 같이 대표격으로 나왔기 때문에 더 선명하게 기억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정적인 이미지인 식물이 직접 움직여 살아있는 곤충을 잡아먹는다는 특징은 공포 매니아들에게 묘한 영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여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정감이라곤 가지 않는 인간들이 다인데, 보통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원하지 않는 고난에 빠지게 되면 대개 사람들은 주인공 시점으로 사건을 보고 그 감정에 이입하기 마련이니 주인공을 안타깝게 여기거나 그가 고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응원을 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은 전형적인 열폭+갑질형 인간이기 때문에 연민이나 감정이입보다는 혐오와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특이 케이스에요.
보통 주인공이 이렇게 하자 많은 성격이라면 주인공의 반대편에 있는 인물들, 대개 빌런이라 부를 수 있는 인간들이 상대적으로 나아보이는 평가를 받는 케이스도 왕왕 있는데 재미있게도 이 소설 속의 살인마 역시 딱 봐도 제정신은 아닌 놈이라 감정이입이고 공감이고 다 차단해 먹는 놈이라는 게 재밌습니다.
초반 주인공의 갑질 때문에 먼저 잡혀들어간 피해자 역시 갑질하는 인간이려나 싶지만은 소설 상에서 자세한 묘사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가 주인공같은 인간이라고 확실한 근거도 없어요. 그리고 애초에 갑질을 한다고 해서 사람을 죽일 이유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갑질하는 인간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뿐이지…
소설 속에서 자기를 얕잡아보는 인간들을 골라 죽인다는 살인마의 말도 확실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이 살인범들 또한 힘으로 다른 사람 짓밟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이라고 판단할 수 밖에 없어요.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갑질을 하고 화풀이를 하는 주인공이 사람을 고문하는 살인마한테 죽듯이, 아마 저 살인마 역시 더 악랄한 인간을 만나 비슷한 일을 당할지도 모르는 법이고요. 그런 구도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 이 소설의 제목인 <파리지옥>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위험한 순간은 긴장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초반부터 제시된 주인공의 짜증나는 성격 때문인지 주인공이 탈출에 실패한다고 해서 막 안타깝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만약 주인공이 평소 착했는데 어쩌다 한번 짜증낸 걸로 오해받아 붙잡혀 들어왔다면 많이 안타깝다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갑질하는 인간들이 혐오스러운 거야 똑같지만 아무래도 소설은 허구니까 대리만족 비슷하게 보게 되는 걸지도…? 그런데 이게 살인범한테 공감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적어도 소설 속에 나오는 놈들은 그 밥에 그 나물이라 멀찍히 떨어져서 싸우는 꼴 구경하는 심리에 가까운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