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도둑 (제1회 신체강탈자 문학 공모전 우수작)

  • 장르: SF, 호러 | 태그: #신체강탈자공모전 #김보람 #종말 #바디스내처
  • 평점×101 | 분량: 130매 | 성향:
  • 소개: 어느날부터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긴 외계인을 낳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외계인들은 커가며 점차 부모를 닮은 도플갱어로 자라나게 되는데… 더보기

도플갱어에 대한 가장 충격적인 설정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리뷰어: 알렉산더, 17년 4월, 조회 287

사람의 공포를 유발하는 것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 즉 도플갱어에 대한 공포는 수많은 작품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그 공포가 한껏 극대화됩니다. 바로 부모가 낳은 자식이, 부모 중 한 쪽과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로 자라난다는 설정 때문이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여야 할 자식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도플갱어로 자라나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이 작품은 두 개의 가정을 보여줍니다. 한 가정은 화자가 남편이고, 다른 가정의 화자는 아내입니다. 작품은 외계인을 낳은 아내를 외도를 의심하며 비난한 남편이, 아내의 자살을 발견하면서 시작합니다. 도입부부터가 파격적이어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자식과 남편의 유전자가 99.9%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는 외계인이었던 거죠. 그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잠입해 들어가, 신생아실에서 자신의 아이를 구합니다. 그리고 외계인 고치가 벗겨지며 인간의 형상을 한 자식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화자가 여성으로 바뀝니다. 이 가정에서는 주인공이 인간으로 태어난 첫째와 외계인으로 태어난 둘째를 키우고 있습니다. 둘째 은혜는 생후 6개월이 되었는데도 스무 살 처녀의 모습으로 자라납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상황입니다. 자식을 키우며 미래를 소망할 수 없는 암담한 환경 때문에 읽기만 해도 목이 죄어 오는 느낌입니다. 작품의 생생한 묘사 때문에 독자는 강하게 빨려들어가게 됩니다. 방관자적인 태도로 이야기를 읽어 내려갈 여지를 남겨주지 않는다고 할까요. 예를 들어, 자식을 구하러 가는 주인공이 간호조무사를 공격하는 장면에서 아래와 같은 묘사가 나옵니다.

똑.똑.똑. 사내의 페니스 끝에서 점점이 떨어지는 오줌 방울 소리가 핏방울처럼 섬뜩하게 고막을 물들였다.

성인 남성을 기절시켜 본 적이 없어서 실제로 저런 소리가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디테일한 묘사 덕분에 몰입감이 훨씬 증대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외계인의 형상을 한 수많은 신생아들 사이에서, 눈빛만으로 자식을 찾아내는 장면은 조금 현실성이 떨어지지 않나 싶습니다. 출생 번호나 부모님 이름이 적힌 라벨 등 명확한 정보를 보고 자식을 찾아냈다면 좀 더 개연성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아직 부모가 되어 본 적이 없어서, 이 기적같은 일을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아무튼 정신 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숨막히는 암담함에 흠뻑 빠져보고 싶으시다면, 이 작품을 강력 추천합니다. 자신의 기억까지 모두 갖고 있는 완벽한 도플갱어를 보면서 한 사람의 인격을 이루는 본질은 무엇일까 고민할 수 있는 기회는 덤입니다. 도플갱어로 태어난 자식은 분명 부모의 기억을 모두 갖고 있지만, 하는 행동이나 가치관은 부모와 전혀 다릅니다. 그들은 인류의 미래를 빼앗아가는 ‘미래도둑’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말합니다.

“인격을 형성하는 것은 기억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생각해 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