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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자살했다.
두 달 전의 일이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외박을 한 날이었고, 아내가 출산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맨정신이었다면 집 안에 인기척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르나, 밤을 새워 술을 마신 탓에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화장실로 향했던 것을 기억한다. 변기 뚜껑을 올리고 다리를 벌리는데 발이 미끄러졌다.
타일 바닥이 젖어 있는 것은 흔한 일이라 개의치 않고 오줌을 누었다. 물을 내리고 손을 씻으러 갈 때 다시 한 번 미끄러졌다. 아슬아슬하게 세면대를 붙잡아서 넘어지는 것은 면했지만 욕실 벽에 발가락을 찧었다. 아이 씨바…… 욕을 하며 내려다본 바닥엔 핏물이 고여 있었다.
취한 머리로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핏물은 욕조에서 흘러나온 것 같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욕조를 보니 그 곳에 아내가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아내의 머리가 욕조 밖으로 나와 있었다. 목 아래로는 보이지 않아서 아내의 머리가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숨이 멎었다.
나는 삐걱거리는 걸음으로 욕조 앞에 섰다. 아내가 몸을 담그고 있는 물은 빨간색 물감이라도 풀어놓은 듯 붉었다. 어렵지 않게, 아내의 손목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연기를 상상할 수 있었다. 입이 말랐다. 초조하게 침을 삼키고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미래야.”
아무리 불러도 아내의 귀에는 들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아내를 부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아내의 얼굴을 찰싹찰싹 때려도 보고 어깨도 흔들어 보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침묵.
죽음이 아내의 입술을 먹어치운 뒤였다. 기가 막혔다. 내가 밖에서 술을 마시는 동안 아내는 집에서 죽음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욕조에서 아내를 안아 올렸다. 아내의 몸이 욕조에 누운 자세 그대로 굳어 있어서 오히려 쉬웠다. 두 다리 밑으로 팔을 끼우고 목덜미 뒤로 팔을 둘렀다. 아내는 덜어낸 삶의 부피만큼 무거웠다.
아내의 늘어진 팔에서 반쯤 잘린 손목이 덜렁거리며 간헐적으로 피를 흘렸다. 똑. 똑. 똑. 점점이 떨어지는 핏방울 소리가 째깍째깍 시계 소리와 함께 뇌리를 뚫었다. 차갑고 딱딱한 아내를 침대에 눕히고 수건으로 알몸의 물기를 닦았다. 아내의 홀쭉한 배에 붉게 도드라진 흉터도 닦았다. 아내는 길게 누운 지렁이 같은 흉터를 자랑스러워했다.
“우리 나래를 지켜냈다는 증거잖아. 영광의 상처라고.”
“나래인지 희망인지 어떻게 알아?”
딸이면 나래, 아들이면 희망이라 이름 짓기로 했었다. 그러나 아이의 성별은 양막 뒤에 가려져 있었다. 초음파 검사로도 알아낼 수 없었다. 의사는 심각한 얼굴이었다. ‘아기의 생식기가 보이지 않네요.’ 임신 3개월째에도, 5개월째에도, 8개월째에도 같은 대답만 돌아왔다. ‘아기의 생식기가 보이지 않네요.’ 다섯 군데의 병원에서도 알아내지 못한 성별을 아내는 확신하고 있었다.
“알아. 엄마니까.”
아내가 깊은 눈으로 나를 보며 대답했다.
범죄 신고는 112 재난 신고는 119라는데 어디에 신고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119를 눌렀다. ‘경찰이 먼저 사건 조사를 해야 됩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나는 임부복 사이에 걸려 있던 파자마를 꺼내 아내의 벗은 몸에 입혔다.
핏기없이 하얀 얼굴에 달라붙어 있는 젖은 머리카락을 올올이 떼어주고 차가운 이마에 입 맞췄다. 내 침대 위에 죽어 있는 여자가 지독하게 그리웠다. 세 개비의 담배를 태웠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계십니까.’ ‘예.’ ‘신고하셨죠?’ ‘예.’ 아내의 사후경직 정도와 함께 술집에서 밤을 지새운 친구들의 증언으로 나의 알리바이가 증명되자, 경찰은 형식적인 조사를 마치고 아내의 시체를 구급대원에게 인계했다.
아내의 장례식은 지체되었다. 어느 상조를 가나 예약이 밀려 있었다. ‘요즘 자살하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요.’ 상조 직원의 변명이었다. ‘살해당하는 사람도 많고…….’ 직원이 말꼬리를 흐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분위기 아시잖아요. 종말이다 뭐다…….’ ‘예예.’ 다른 사람에게서 같은 변명이 되풀이될 때마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실제로, 분위기가 그랬다. 신문이건 뉴스건 전 세계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이변에 대해 떠들어댔다. 그 이변은 임산부들의 이상(異常) 출산이었다. 언제부터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언제부턴가 임산부들이 외계인을 낳기 시작한 것이다. 외계인(外界人). 공상 과학 소설에서 지구 이외의 천체에 존재한다고 생각되고 있는 인간형의 지적 생명체.
지구인의 배를 빌어 지구에서 태어난 그 아기들은 그러나 지구인이라고 불리기엔 심히 무리가 있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크고 둥근 머리와 색소 없이 하얀 몸, 얼굴의 반은 아니더라도 삼분의 일 정도는 차지하고 있는 아몬드형의 눈, 코뼈 없이 콧구멍만 있는 코와 입술 없이 가늘고 길게 찢어지는 입. 신문이나 뉴스에 실린 사진으로 본 것보다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내가 낳은 아이가 그랬으니까.
“안녕? 나래야. 엄마야…….”
아내는 흰자위 없이 까만 눈을 들여다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아름다우면서도 혐오스러운 장면이었다.
‘저희 병원에서는 여덟 번째입니다.’ 의사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왜 아이를 보여주지 않느냐며 따지러 간 내게 다짜고짜 던진 한 마디였다. ‘뭐요?’ ‘보시면 알 겁니다.’ 의사의 말이 맞았다. 보자마자 알았다. 아기는 정상이 아닌 수준을 넘어 상상할 수도 없는 비정상의 끝에 있었다.
‘이게 내 애라고?’ 나는 이성을 잃고 애꿎은 간호사의 싸대기를 올렸다. 아기를 안고 있던 간호사가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의사의 멱살을 잡았다. ‘이 미친 새끼야! 저게 뭐야, 어?’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대기하고 있던 경비원 둘이 나를 떼어냈다. ‘믿을 수 없으시겠죠. 이해합니다. 증거 자료가 있습니다. 여기.’
비슷한 일을 여러 번 당한 것처럼, 의사는 침착한 태도로 아내의 출산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녹화한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사생활 침해니 초상권이니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입을 헤 벌리고 비디오를 세 번 돌려보았다. 아기가 커서 제왕절개 분만을 해야 한다더니, 과연. 큰 것은 아기의 머리였다.
메스로 가르긴 했지만, 갈라진 배에서 머리를 내미는 외계인의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영화 에일리언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숨이 막혔다. 양수로 덮인 외계인의 작은 몸과 아내를 연결하고 있는 하얀 탯줄이 기도와 함께 말문도 막았다.
조작이라고 의심하실 경우를 대비하여 아기와 산모의 친자확인 감정서도 준비해 두었습니다. 여기. 나는 멍하니 비디오테이프와 감정서를 받아들었다.
“까꿍. 나래야, 아빠야.”
병실로 돌아가자 아내가 외계인의 손을 잡고 나를 향해 흔들었다. 기가 막혔다.
“내가, 아빠야?”
아내의 표정이 굳었다. 아내는 양손으로 외계인의 두 귓구멍을 막고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뜻이야?”
“어떻게 내가 아빠냐고! 네가 안고 있는 걸 좀 봐! 그게 사람이냐? 네가 사람이야?”
나는 폭발했다. 거의 미쳐 있었다. 살다 살다 외계인이랑 붙어먹은 년은 처음 본다, 더러운 년, 비위도 좋다,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냐, 그렇게 10분가량을 몰아붙였던 것 같다.
“어떻게 그런 의심을 할 수가 있어. 내가 자기 옆에만 붙어 있었던 거 알잖아! 나한테 바람피울 틈이 언제 있었다고 그래!”
아내는 울었다.
“씨발, UFO라도 타고 왔다 갔나보지!”
“야! 그걸 말이라고 하니?!”
“그럼 그건 뭔데?”
“네 자식이잖아, 개새끼야!”
“지랄한다.”
나는 코웃음 치며 중얼거렸다.
“아주, 지랄을 해.”
“야!”
“네 자식이랑 꺼져. 알겠어? 꺼지라고. 같은 공기 마시는 것도 불쾌하니까, 지구 밖으로!”
아내는 그렇게 했다. 아내가 유서 대신 남긴 친자확인 감정서는 나와 외계인의 유전자가 99.9% 일치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내와 같은 공기를 마시지 않는 것이 더 불쾌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 잘못이 아니야.”
아버지가 내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자네 잘못이야!”
장모님이 울면서 외쳤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
십년지기 친구 놈이 담배를 피워 물면서 말했다.
“모두의 잘못이지요.”
보험회사 직원이 아내의 사망보험금을 내밀면서 말했다.
나는 아내의 영정 앞에서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액자 속의 아내는 살아 있는데, 액자 밖의 아내는 죽어 있는 게 너무 이상했다. 아내가 외계인을 낳은 것보다 더 이상했다. 생각이 외계인에게 미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기. 우리 아기.
우리 나래.
“까꿍. 나래야, 아빠야.”
아내가 외계인의 손을 잡고 나를 향해 흔들었다. 외계인은 까맣고 큰 눈으로 나를 보며 웃었다. 가늘고 긴 입이 쭈욱 찢어져 귓구멍까지 올라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병실 밖에 서 있던 의사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돌연변이들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병원으로 보내집니다.’ 돌연변이. 의사는 아내가 낳은 외계인을 그렇게 표현했다. ‘그런데요. 선택의 여지는 없지만 절차상 보호자의 동의서가 필요합니다.’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의사가 내미는 동의서에 서명했다. 아내는 한사코 거부했다고 한다. 아기를 빼앗긴 아내는 퇴원 수속을 밟고 집으로 돌아와 손목을 그었다. 슬프기 전에 아팠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죽은 아내가 남긴 것이라곤
고통뿐이었다.
아내의 시신은 화장되었다. 키 158센티미터의 아내가 20센티미터의 유골함에 들어가다니 눈물 나게 어이없는 노릇이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화장실 청소였다. 변색된 욕조를 닦고, 타일 바닥을 닦고, 눈물을 닦았다. 그러나 아내의 잔상은 닦이지 않았다. 허공에 떠 있는 아내의 머리가 핏자국처럼 선명하게 떠올랐고, 청소를 끝내기도 전에 토사물을 닦아야 했다.
역겨웠다. 죽어버린 아내가 역겨웠고 살아있는 내가 역겨웠다. 그러나 삶마저 토해낼 수는 없었다. 결국 나란 인간은 아내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을지언정 자신은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없는 인간이다. 아내를 죽이고 오직 외로움만 살아남았다. 광활한 고독. 아내의 빈자리는 그대로 우주가 되었다. 나는 숨 막히는 어둠 속에서 먼지처럼 부유했다.
“네 자식이잖아, 개새끼야!”
어둠 속에서 아내가 울부짖었다. 아내의 말이 맞았다. 외계인은 내 자식이었고, 나는 개새끼였다.
“아이를 데리고 와야겠어요.”
나는 짖었다. 개소리였다. 동시에 계시였다.
명확한 목적이 어둠을 밝혔다. 나는 목적만큼 명확한 발음으로 다시 말했다.
“아이를 데리고 와야겠어요.”
아버지는 반대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라.”
아버지는 늘 이성적이었다. 아버지의 이성은 시와 때를 가리지 못했다.
“네 엄마 말로는 종말이 왔단다. 전 세계적으로 돌연변이만 태어나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 사회적으로도 이번 사태는 지구 침략이라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정부에서 돌연변이들을 격리하는 이유가 있는 거야. 유전자가 일치한다고 그걸 네 자식이라고 할 수는 없어. 신중해야 한다, 수호야.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돼.”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돼. 라고 들렸다. 달갑지 않았다.
“9시 뉴스 봤냐?”
“아뇨.”
“뉴스 좀 보고 살아라. 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니냐. 오늘 오전에, 임산부들을 보호 조치해야 한다는 발안이 만장일치로 통과했단다. 미래가 운이 없었지……. 산달이 조금만 더뎠더라도.”
“아버지.”
“어.”
“끊습니다.”
그리고 끊었다.
나는 아내의 옷장에서 검정색 숄더백을 꺼냈다. 가방 안에 목욕 타월을 깔고, 검은색 야구모자와 검은색 점퍼, 비닐장갑 두 장, 일회용 기저귀 세 개, 분유를 담은 젖병과 배냇저고리를 넣고 나니 가방이 빵빵해졌다. 부엌 찬장에서 찾아낸 커다란 쇼핑백 안에 다시 숄더백을 넣는 것으로 준비는 끝났다.
정부에서 운영한다는 병원이 어딘지 몰라 아내가 입원했던 산부인과로 돌아갔다. 고작 일주일 만에, 병원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랬고, 근무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그랬다. 초조. 불안. 분노. 슬픔. 공포. 짓눌린 공기 속에서 밑도 끝도 없는 감정들이 바닥을 기어 다녔다.
아내의 담당의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쩐 일로.” 의사가 경계 어린 눈초리로 물었다.
“아내가 자살했습니다.”
밑도 끝도 없는 첫 마디에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까.”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는 의사를 죽이고 싶었다. 내 기분을 알아차린 의사가 전혀 죄송하지 않은 얼굴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흔한 일이라…….”
“얼마나 흔하길래.”
꼬인 심사를 드러내며 비꼬듯이 물었다. 의사가 죄송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희 병원에서는 여덟 번째입니다.”
나는 침묵했다. 의사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아이를 보고 싶습니다.”
“생각이 바뀌셨나보군요.” 의외라는 투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만 아이는 이곳에 없습니다.”
아이. 의사는 더 이상 돌연변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문득 깨달았다. 처음부터 의사는 내 표현을 따르고 있었다. 아이를 돌연변이로 만든 것은 바로 나였다. ‘이 미친 새끼야 저게 뭐야.’ 의사의 멱살을 잡는 순간부터 아이는 저것이었다.
“이미 정부에서 운영하는 병원으로 보내졌습니다.”
“거기가 어딥니까.”
의사는 순순히 가르쳐 주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입니다.”
병원의 경비 태세는 삼엄했다. 입구를 지키고 선 군인들이 출입을 통제했고, 경비원들이 순찰을 돌았다. 그러나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취재진으로 인해 경계는 소홀했다. 여기저기에서 터지는 플래시로 인해 눈이 부셨다.
“이곳은 임산부 보호 시설로 지정된 신촌 세브란스병원입니다.” 리포터의 목소리를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입구 앞에서부터 길게 늘어선 줄로 다가갔다. 대개가 남편과 동행한 임산부들이었고, 간혹 혼자 서 있는 임산부들이 보였다. 나는 혼자 온 임산부가 설 때를 기다려 남편인 척 뒤에 섰다.
내 뒤로 줄이 이어졌다. 앞에 선 여자가 미심쩍은 눈초리로 힐끔거렸다. 줄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차례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입구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면회는 안 됩니다.”
“내 자식 내가 보겠다는데 왜 안 된다는 거예요?”
여자가 앙칼진 목소리로 따졌다.
“국가의 허가 없이는 그 누구도 면회를 할 수 없습니다.”
실랑이를 벌이던 여자는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며 돌아갔다.
“들으셨죠?”
앞에 서 있던 여자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줄에서 빠져나왔다. 화단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입이 쓰다. 미처 삼키지 못한 한숨이 담배 연기에 실려 나갔다.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시야를 가렸다. 미래도 가려진 느낌이었다.
“저기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한 대만 주세요.”
내 앞에는 긴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여자애가 서 있었다. 진한 화장으로도 앳된 얼굴이 가려지지 않았다.
“몇 살인데?”
“알아서 뭐하게요. 병원에 들여보내 줄 테니까, 한 대만 달라고요.”
“임신했냐?”
“네.”
나는 군말 없이 담뱃갑을 내밀었다. 한 개비를 꺼내 문 여자애가 턱을 내밀었다. 불을 붙여주고 지나치듯이 말했다.
“기형아가 태어나도 모른다.”
“어차피 외계인을 낳을 텐데요 뭐. 그 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날 수 있나?”
여자애가 내 옆에 앉으며 대꾸했다. 비아냥거리는 말투는 아니었다. 하긴. 나는 시선을 앞에 둔 채 맞장구쳤다.
담배 한 개비 덕분에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세상은 양심이 아니라 타협으로 돌아간다. 나를 보는 시선들이 따갑긴 했지만 그 시선들의 의미는 의심이 아닌 질책이었다. 종말의 때에도 도덕은 살아있었다.
신생아실은 5층에 있었다. 나는 화장실에 숨어서 끈기 있게 기다렸다. 간호조무사 한 명이 들어왔을 때,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얼굴을 볼 수 없게 등 뒤에서 덮쳤고, 팔뚝으로 목을 졸라 질식시켰다. 죽지만 마라. 그렇게 빌었다. 거친 맥박이 팔뚝 위를 내달렸다.
팔뚝에 심장을 이식받은 느낌이었다. 내가 한 팔로 사내의 목을 조르는 동안 사내는 두 손으로 내 팔뚝을 졸랐다. 컥, 컥컥…… 커억…… 컥. 몸부림치던 사내가 입을 벌린 채 늘어졌다.
똑. 똑. 똑. 사내의 페니스 끝에서 점점이 떨어지는 오줌 방울 소리가 핏방울처럼 섬뜩하게 고막을 물들였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의 옷을 벗겨 화장실에 밀어 넣고 문을 닫았다.
그 다음부터는 순조로웠다. 나는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신생아실로 들어갔다. 신생아실 안으로 한 걸음 딛는 순간, 팔뚝에 닭살이 돋았다.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있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 없는 머리와 색깔 없는 피부, 흰자위 없는 눈, 코뼈 없는 코와 입술 없는 입을 가진 외계인 아기들이 사열 종대로 나열한 모습은 끔찍하게 이질적인 동시에 지독하게 인상적이었다. 그야말로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면이었다. 지구인이라고는 나 하나뿐인 곳에서, 나는 울었다.
미래가 죽었고, 인류도 죽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신생아들의 침대에는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번호. 오직 번호뿐이었다. 이름표 대신 붙어 있는 번호표는 안 그래도 인간적이지 않은 아기들을 더 비인간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번호 위에 바코드만 있다면 외계인 모양 인형으로 보일 터였다.
나는 초조하게 하얀 얼굴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기들의 이목구비가 모두 달랐다. 어떤 아기는 눈매가 더 처졌고, 어떤 아기는 콧구멍이 더 컸으며, 어떤 아기는 입이 좀 작았다. 그러나 나는 내 아이의 얼굴을 몰랐다. 다시 눈물이 나왔다.
그러다 한 아기와 눈이 마주쳤다. 아기는 까맣고 큰 눈으로 나를 보며 웃었다. 가늘고 긴 입이 쭈욱 찢어져 귓구멍까지 올라갔다. 아기가 고사리 같은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보시면 알 겁니다.’ 의사의 말이 맞았다. 보자마자 알았다.
내 아이였다.
“안녕? 나래야. 아빠야…….”
목이 잠겼다. 나는 유리창 너머 복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비닐장갑을 끼고 나래를 안아 올렸다. 쇼핑백에서 숄더백을 꺼내 목욕 타월로 나래를 감싸고 숄더백 안에 뉘었다. “쉬…… 쉬……” 입으로 바람 소리를 내가면서, 나래가 질식하지 않게 약간의 틈만 남겨놓고 지퍼를 잠갔다.
나래는 소리 내지 않았다. 나래뿐 아니라 모든 아기가 조용했다. 나는 나래의 자리에 옆자리의 아기를, 옆자리에 윗자리의 아기를, 윗자리에 다시 옆자리의 아기를, 그런 식으로 아기들의 모든 자리를 바꿔놓았다. 부모라면 알아볼 수 있겠지. 그렇게 자위하면서, 나와 내 아이의 안전을 위해 철저히 했다.
다행히 낯선 손길에 소스라쳐 울음을 터트리는 아기는 없었다. 아기들은 지구인보다 세 배는 큰 눈으로 내가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문득 아기들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럴 수도 있겠다, 고 생각했다. 고맙고 무서운 일이었다. 나는 숄더백을 쇼핑백에 넣고 신생아실에서 도망쳐 나왔다.
4층으로 내려가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간호조무사 옷은 버리는 대신 챙겼다. 집에 가서 태울 심산이었다. 나래에게 배냇저고리를 입히고 기저귀를 채운 뒤, 다시 숄더백 안에 뉘었다.
나래는 모든 것을 이해하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고맙고 무서운 일이었다. 화장실을 나서자 대여섯의 경비가 옆을 지나쳐 5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긴장한 나머지 손이 저렸다. 심장이 목구멍으로 뛰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쿵. 쿵. 쿵. 쿵. 거친 맥박이 고막 위를 내달렸다.
나는 검은색 점퍼를 입고, 검은색 야구 모자를 쓴 채 남편들 사이에 섞여 무사히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숄더백을 열었을 때, 나래는 없었다. 아내의 숄더백 안에는 새하얀 외계인 아기 대신 발그스름한 지구인 아기가 누워 있었다. 나는 홀린 듯이 아기를 안아 올렸다. 아기는 비 온 뒤의 창처럼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아기의 젖은 피부는 부드럽고 따뜻했으며, 동시에 물풀처럼 끈적거렸다.
나는 아기의 등에서 물기 없이 바삭거리는 하얀 껍질을 떼어냈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마른 껍질이 낙엽 같은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그것은 고치였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뱀의 허물처럼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외계인 고치를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마른 오징어 껍질처럼 얇고, 계란의 피막처럼 불투명했다. 다시 품에 있는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아기는 구슬 같은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며 옹알거렸다.
“아이아.”
“그래, 나래야. 아빠야.”
나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