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겨진 눈 아래에

  • 장르: SF, 호러 | 태그: #페미니즘 #SF #디스토피아
  • 평점×1349 | 분량: 16회, 379매
  • 가격: 11 5화 무료
  • 소개: “외국에 오래 있었던 분들은 종종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은데, 원래 여자의 몸은 아이를 낳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죽지 않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어째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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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지만 직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

누군가 눈 감으라 시키더라도 억지로 바라보아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마음이 어지러워지더라도 읽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

‘혐오’와 ‘증오’가 지나치게 흔한 단어가 되어 버린 이 사회에서, 침묵하는 다수에 불과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불편한 울림을 주는 글 『감겨진 눈 아래에』는 『시녀 이야기』를 연상케 하는 오싹한 디스토피아를 다루고 있다. 감상은 오로지 독자의 몫으로 맡기고, 그저 아직 안 읽은 분이 계시다면 꼭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2017년 4월 첫째 주 편집부 추천작

감은 눈 아래로 처참히 짓밟힌 인권에 관한 오싹한 기록

사실 편집부에서 선정하는 추천작에 대한 글을 쓸 때면, 브릿G를 이용하시는 분께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작품을 소개하고자 하는 직원으로서의 사명감이 가장 우선이지만 여기에는 늘 다양한 여러 감정이 섞이기 마련이다. 혼자만 보기에 아까운 마음, 훌륭한 작품에 감탄하는 심정, 내가 좋아하는 글을 다른 이들도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기대, 내가 리뷰를 쓴 작품에 조회수가 올라갔으면 하는 욕망(특히 이 욕망 때문에 추천글이 올라간 다음 추천작의 순위를 몰래몰래 자주 확인해 보고 있다는 것은 안 비밀) 등등. 한데 이번처럼 부담스러운 경우가 없었다. 브릿G에 지나치게 훌륭한 리뷰어가 상상 이상으로 많은 까닭에 이미 오늘 추천하고자 하는 『감겨진 눈 아래에』 에는 편집자의 역량을 뛰어넘는 리뷰가 몇 개나 달렸다. 하여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심정으로 (못내 비참하지만) 이 리뷰를 시작하고자 한다.

국민이 철저히 통제당하는 사회를 다룬 SF라는 점에서, 그리고 인구의 유지와 출산이 엄청난 무게를 가진다는 점에서 작품을 읽는 내내 『시녀 이야기』가 떠올랐다. 『시녀 이야기』 역시 등골이 오싹한 디스토피아를 다루고 있지만, 『감겨진 눈 아래에』 역시 못지않은 오싹함을 자랑한다. 흔히 SF에서 기계의 발전이 부정적인 시각에서 그려지는 반면, 이 작품에서는 일명 ‘특이점’을 지난 이후 기계가 이뤄낸 발전 덕택에 인류가 자아실현을 목표로 한 우아한 삶을 추구하게 된 세상을 그려낸다. 누구나 하고 싶어서 공부를 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아서 일을 한다. 이렇게 유토피아적인 곳으로 전 세계가 발전해 나가는 와중에, 현재도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높고 노동시간 높고 삶의 만족도 낮고 여성의 사회적 참여도 낮은 대한민국은 세계에 장벽을 만들고 30년 가까이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의무가 된 여성의 복무, 높은 군내 의문사 비율. 인권 단체들은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내려고 몹시 애를 쓰지만 알아낼 방법이 없다. 여성들과는 거의 접촉도 할 수가 없고, 간신히 접촉한 여성들은 인권에 대한 기본적 개념에도 무지하다. 여성의 순결이 중요시되는 한편, 여성이 출산을 위한 도구로써 기능해야 하는 모순적인 현실 속에서,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군 복무를 피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하는 수밖에 없다.

한편 주인공인 세실은 한국이 법률을 강화하고 쇄국정책을 쓰기 바로 직전에 프랑스로 망명한 부모의 밑에서 태어났다. 그랑제꼴(프랑스의 고등 교육 기관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수능에서 상위 성적을 받은 일부만이 그랑제꼴의 준비반에 진학해서 다시 경쟁을 치러 그랑제꼴에 입학할 수 있다.) 준비반에 있는 그녀에게 한 한국인 유학생이 한국 여자들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기피하기 위해 못하는 일이 없다며 비난을 퍼붓는다. 나는 프랑스에서 자란 프랑스인 여성이라고 대답하는 세실을 향해 그는 넌 한국인이다, 한국에 애국심도 없느냐, 돌아와서 자진 입대를 해라 하며 윽박지른다.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그를 비웃는다.

그랑제꼴 준비반에서 미칠듯이 공부한 끝에 에콜 폴리테크닉에 붙었지만, 목표를 이루고 나자 허탈감에 빠진 세실은 인권 단체인 엠네스티의 인턴에 자원한다. 그리고 하나뿐인 딸을 위해 부모님이 등진 조국, 한국의 인권 실태에 관심을 갖게 된 그녀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국 관광을 결정한다. 그러나 세실은 입국장을 통과하자마자 짐과 여권을 빼앗기고 경찰들에게 붙들린다. 경찰들은 그녀의 손목에 삽입된 골전도 칩을 망가뜨린 후에 군인들에게 그녀를 넘긴다. 군인들은 그녀를 산부인과 진찰 의자에 앉힌 후에 설명도 없이 수치스러운 신체검사를 진행하고 국부까지 확인한 후에 “3급”이라는 등급을 매겨 군대에서 복무할 것을 강요한다.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차마 설명할 수 없는 지옥이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은 후세에 훌륭한 유전자를 남길 수 있는가, 그리고 성적으로 순결한가를 기준으로 등급이 나뉜 뒤, 남자들에게 분배되는 존재다. 여성을 통해 자손을 남기고 키워내는 시스템이 얼마나 더 끔찍해질 수 있는지는 상상에 맡긴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보다 더욱 끔찍한 것은, 고작 30년 남짓, 그 짧은 세월 동안에 무기력해지고 무지해진 사람들의 모습이다. 여성을 성적 도구로밖에 바라보는 남성의 비열한 대사나 태도가 소설 속에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사실상 그런 남성들 역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렇게 교육받았기에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종의 미필적 고의랄까. 게다가 여성을 도구화하는 환경 속에서, 여성들은 다시 여성들의 적이 된다. 이는 세실이 군대에서 만난 사상범 ‘재경’을 태하는 다른 여성들의 태도에서 두드러진다.

30년이면 자유주의 국가 시절에 충분히 배우고 교육받으며 자유롭게 자란 여성이 살아남아 아직 존재할 법한 시간대임에도,(가령 세실의 부모 같은 이들 말이다.) 게다가 여성을 업악하는 이런 사회 모델에 찬동하는 남성만이 존재하진 않았을 것이 분명함에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작가는 그런 의문을 재경을 통해서 설명한다. 대학 교수였던 재경의 부모와 똑똑한 두 딸. 분명 어떤 문명사회에서든 상류층이었을 그 가족의 해체와 몰락에 관한 역사는 통제 사회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횡포에 대한 오싹한 단면이다.

하고픈 이야기가 몹시 많은 글이지만,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접는 수밖에 없겠다. 『시녀 이야기』에 나오는 대사 하나가 기억난다. 인상적이라, 표지 앞에 인용 문구로 뽑았던 글이다. “아기를 갖게 해 줘요, 안 그러면 나는 죽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