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품을 감상하다 강하게 몰입한 뒤에, 감정의 진폭에서 쉽게 벗어나 보지 못한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이 작품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상황을 담담하게 펼쳐내는 천선란 작가의 묘사를 따라가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 같은데도 숨 막히는 일상이 내 일처럼 눈앞에 펼쳐지고, 순식간에 이어지는 섬뜩한 사고는 단숨에 현실감을 가진다. 범인의 정체를 익히 짐작하게 되는 순간, 그리고 차마 오해할 수도 없는 범인의 의도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오면, 작품이 주는 무게감이 가슴에 묵직하게 얹히고 만다.
왜 하필 아이를 보던 중에 말린 고추를 가지러 갔느냐며 내 아이 도로 살려내라고 정씨의 가슴을 두드리며 미우가 울부짖는 장면 같은 것은 이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다. 한 아이의 죽음이라는 아주 깊은 비극을 다루고 있음에도, 작가의 시선은 시종일관 차분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이 속속들이 잘 전달되는 점이 놀랍다. 작품이 하나로서 온전한 완결성을 갖더라도 유난히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작품들이 있는데, 「다정한 휴가」가 꼭 그렇다. 갑자기 비극과 맞닥뜨린 미우의 가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두 층 위에 살다가 봐 주던 아이의 죽음을 막지 못한 정씨 아주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경찰 희재와 최 형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세나는, 미우는, 언젠가 깨달았을까, ‘다정한 휴가’의 의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