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피가 흐른다’는 뜻풀이처럼 냉혹한 성품을 지닌 사혈공(死血公). 강호를 넘나들며 인정사정을 봐주지 않고 무자비한 처단을 일삼으며 악명을 떨친 인물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혈공을 전적으로 변화시킨 이가 있으니, 뜻도 없이 품었다가 죽음으로 가슴에 묻게 된 아들 ‘휴’의 존재다.
「야운하시곡」은 일곱 살에 불과한 자식을 떠나 보낼 수밖에 없었던 사혈공의 이야기를 되짚어나간다. 잔혹함이 시퍼렇게 팽창했던 젊은 시절, 그가 저지른 악행들이 빠르게 교차되고 비극으로서 맞물린다. 자신의 손으로 무수한 죽음을 집도했던 사혈공이 자식을 얻음으로써 비로소 생명의 무게를 절감하게 되는 아이러니라니. 게다가 그 생명을 지켜낼 수 없는 업보라니.
이처럼 피 튀기는 생존 경쟁을 반복하는 강호에서 오로지 살기 위해 냉혹함으로 단련해 왔던 사혈공에게 갑작스레 찾아든 부성의 모양새는, 인생의 어느 성숙한 시기에 이르게 된 한 인간의 모습을 담담히 관조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얼음나무 숲』의 하지은 작가가 처음으로 선보인 무협 소설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기대할 만하지 않은가. 작가 특유의 감성적이고 세밀한 문장은 사혈공이 처한 서글픈 모순에 몰입하는 데 부족함이 없으며, 절절한 부정의 끝에 맴도는 깊은 여운을 선사한다. 「야운하시곡」 (하) 편으로 이어지는 결말을 꼭 함께 만나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