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적인 아버지 밑을 가출하다시피 벗어나서 발버둥 치며 살고 있지만, 하반기 공채를 노리는 자소서는 쓰다 보니 유서가 되는 것 같고 앞으로의 길이 막막한 삶. 모든 것이 건조하고 우울한 ‘나’의 앞에, “당신은 정신적인 발기부전입니다.” 하고 선언한 자칭 요정이 나타난다. 이대로라면 살날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수줍게 말하는 하얀 속옷의 아저씨 요정에게 “발기부전이라니, 나는 여자라고!” 아무리 반박해 봤자 요정에게는 설득 불가, 그저 나만의 일방통행일 뿐. 어쩔 수 없이 나는 생존을 위해서 심장이 바운스바운스 하는 옛사랑의 자취를 찾아 예전에 헤어진 남친에게 연락을 취하는데……. 과연 그는 나를 아직도 사랑할까? 아니, 그전에 내가 그를 사랑하긴 사랑했을까? 설레고, 흥분되고, 어떻게든 뭔가 하고 싶어서 내장이 움찔거리는 그 느낌, 도대체 언제 느껴 본 적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만드는 유쾌한 판타지 로맨스(?). 이 작품이 추천작에 걸려 있을 당시에 그린레보 작가가 부끄러워서 브릿G를 오고가지 못했다는 바로 그 작품, 「죽음에 이르는 병, 발기부전! 그대로 놔두시겠습니까?」를 만나 보자.
죽음에 이르는 병, 발기부전! 그대로 놔두시겠습니까?
다시 보는 베스트 추천작
설레고, 흥분되고, 내장이 움찔거리는 그 느낌! 언제 느껴 보셨나요?
2018년 12월 1차 편집부 추천작
발기부전인 그녀의 인생, 다시 설 날이 올 것인가?
“흡연은 발기부전증 개선에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자취방에서 자소서를 수정하는 내 앞에 하얀 러닝셔츠에 하얀 면팬티 차림의 남자가 나타난다. 기겁해 의자에서 굴러 떨어진 나를 내려다보며, 그는 자신을 ‘발기부전의 요정’이라고 소개한다. 몸에 안 좋으니 담배를 끊으라고 공익광고처럼 권한 자칭 요정은, 정작 내가 기절한 사이 내 담배를 한 대 빌려간다. 알바를 하고 있는 편의점에서 이 해괴한 경험담을 늘어놓자, 선배 알바생 언니가 이 동네에 도는 기묘한 소문에 대해 말해준다. 동네에 사람이 죽어나가는 집에 대한 괴담이 있는데, 이 이야기의 특징은 세입자들이 죽기 전에 팬티 차림의 귀신을 봤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다음 날, 내 자소서가 유서로 변질되고 있을 즈음, 요정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발기부전인 사람에게 붙는다는 요정의 소개 인사를 반복해서 확인한 나는 억울함에 울부짖는다. “아니, 나는 여자라고!” 하지만 요정은 수줍게 대꾸할 뿐이다. “제가 틀릴 리가 없는걸요, 아가씨는 발기부전이에요.”
여자인 내가 어떻게 발기부전에 걸릴 수 있냐는 반박 앞에 팬티 차림의 아저씨 요정이 누구에게나 가슴에 하나쯤 상징적인 ‘그것’이 있다는 대답을 늘어놓을 때쯤, 작품의 유머는 절정에 이른다. 하지만 발기부전이라는 것이 단순히 신체적인 증상이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라며, 진지하게 “설레고, 흥분되고, 어떻게든 뭔가 하고 싶어서 내장이 움찔거리는 느낌을 느껴본 것이 언제였냐”고 주인공에게 반문하는 요정의 대사는 메마른 현실에 지쳐가는 우리 모두에게 씁쓸한 공감과 함께 생각의 여지를 던져 준다.
생존을 위해, 다시 한 번 가슴 떨림을 느껴보기 위해서 일주일이라는 짧은 제한 시간 동안 나는 흐지부지 헤어진 전남친과의 재회를 계획한다. 과연, 발기부전에 걸린 그녀의 인생은 다시 심쿵하는 로맨스로 되살아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로맨스’ 태그가 대체 왜 걸린 걸까 궁금하겠지만, 죽음의 직전 도착한 문자의 정체가 밝혀지는 마지막 순간, 아 이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하는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