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선보이고 있는 이나경 작가의 「다수파」가 올 2월에 추천된 작품들 중 최종 베스트 한 편으로 재선정되었다. 그사이 「다수파」의 집필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브릿G 매거진을 통해 좀 더 자세히 만나볼 기회도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사람이 항상 다수 의견만 고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떠올랐고 이 한 줄기 의문으로 소설을 쓸 방법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했다는 과정이 꽤나 흥미로웠는데,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마침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남자의 ‘비범한 능력’을 작가조차도 집필 과정에서 뒤늦게 인지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런 과정상의 영향 때문인 걸까. 「다수파」는 다시 읽어도 늘 정확히 같은 지점에서 타격을 받는다. 읽는 내내 평범한 남자의 일상에 주목하다가 참사의 현주소를 마주하게 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꼼짝없이 머물러 있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이 기이한 변곡점이 드러날 때 혹자는 다소 당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참사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된 사내가 자신의 신념을 뒤바꾸는 결심을 했을 때, 작은 설정을 이용해 소수의견과 다수의견의 구도를 완전히 전복시키는 구성은 여전히 놀라울 따름이다. 바로 그 지점이 현실의 일면을 비춘다는 점에서 참사를 대하는 여론의 모양을 고심케 하는데, 마음에 남겨진 복잡다단한 여운은 각자가 해소할 몫으로 주어진다.
다수파
다시 보는 베스트 추천작
늘 같은 지점을 타격하는 진중함과 복잡다단함의 사이에서
2017년 2월 넷째 주 편집부 추천작
한국 사회를 냉철하게 사유하는 가슴 저린 이야기
남자는 남다를 것 없이 작은 불운과 행운을 반복하는 평범한 인생을 살아왔다. 실직을 했다가도 이내 안정적인 직장을 얻었고, 봉급은 적어도 실컷 책을 읽으며 그럭저럭 소소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학창시절이나 군대 등 인생의 그 어느 마디에서도 특별할 것 하나 없이 살아왔던 남자가 갑자기 특별한 재능을 지닌 사람으로서 ‘발견’된 것은, 여느 대기업에서 총력을 기울이던 대국민 설문이 유행하던 때였다. 그야말로 부먹/찍먹 식의 양자택일을 유도하는 시시한 문제들의 연속이었던 설문을 자신의 취향대로 마무리하고 대수롭잖게 잊어갈 무렵, 낯선 사내가 그를 찾아온다. 기업의 미래가 바로 남자에게 달려있다는 말과 함께.
이 시시껄렁했던 설문의 목적은 남자와 같이 지극히 다수의 의견과 일치하는 표본을 찾기 위한 대기업의 비밀(?) 전략이었고, 궁극의 대중적 기호를 지닌 것으로 판명된 남자는 더없이 이상적인 의견 집단이 된다. 그러니까 남자가 선택한 제품은 가장 대중적인 취향을 지닌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게 된다는, 아주 지극히 간단한 ‘다수파’의 원리에 의한 선발이었던 것이다.
더없이 평범하게 살아온 남자는 자신이 가장 대중적인 기호를 가졌다는 재능을 알게 되지만, 실은 그것보다 더 비범한 능력이 있었다. 택시를 타면 늘 원하는 행선지로 갔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도지사 등등 남자가 표를 준 사람은 어김없이 당선되었다. 자신이 선택한 대로 결정이 이루어지는 ‘다수파’의 기본이 되는 남자, 내가 뽑은 사람이 국가를 다스리니 다수파의 세상에서 스스로를 늘 주인이라고 믿었던 남자, 그래서 딸아이의 이름마저 ‘나라’라고 지은 남자.
자신의 선택이 늘 다수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만들었던 것이 이 평범한 남자의 비범한 재능이었지만, 다수가 고른 것이 언제나 정답이 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남자는 그 척도를 참사로서 마주하게 된다. 남자가 믿었던 재능과 신념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참사로서.
만화를 그리고 싶어 했던 딸이 수학여행을 떠난 뒤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을 때,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을 믿고 기다렸던 다수가 차가운 물에 가라앉게 되었을 때, 남자가 선택해 당선된 이들이 모두 책임을 외면할 때, ‘다수파’의 세상에서 가장 착실하게 살아온 남자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모두가 지겹다고 그만하라고 외칠 때, 남자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다수파」를 읽는 내내 한 평범한 남자의 비범함에 대한 이야기에만 몰입하던 우리는 후반부에 가서야 비로소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본질과 마주하게 된다. 참사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다수 여론이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가감없이 제시하며, 처음부터 착실하게 쌓아 올린 ‘다수’라는 설정 하나로 결국 읽는 이의 가슴을 저민다.
해결되지 않은 참사를 껴안고 살아가는 모두에게 사무치는 작품일 테지만, 그래도 감히 권하고 싶다. 모두가 이 작품을 읽었으면 좋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