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서 감각이 몰캉 느껴질 때가 있다. 때로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냄새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색감이 눈앞에 그려지는 그런 경험. 묵직한 고택을 배경으로 창백한 소년과 핏물이 후두둑 고인 선뜩한 굿판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순간, 자못 예감이 들었다. 또 한 번 환상적인 세계가 모습을 드러내겠구나, 하는 그런 진득한 예감. 유려한 문체와 저자의 깊은 지식과는 별개로, 다소 불친절한 『꽃, 다시 꽃』은 시작부터 괴담에 몰두하는 듯하다.
주인공 삼총사에 대한 묘사가 검은 그림자 같은 어둑서니, 한밤중의 도깨비불과 허옇고 밋밋한 얼굴을 한 달걀귀신이니 말 다했다. 게다가 미쳐 버린 세자가 벌이는 피로 물든 굿판, 빗속을 뚫고 한밤중에 소집된 어사들 사이에 오고가는 귀신 이야기, 관계나 배경이 불분명한 이들과 목적 또한 알 수가 없는 애매한 상황 속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맥락을 파악하기 쉽지가 않고 모호하게 흘러간다. 한데 그 흐름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환상과도 같아 쉬이 눈을 뗄 수가 없다. 『꽃, 다시 꽃』을 흔한 역사 로맨스극으로 생각했다가는 바로 뒤통수를 맞게 되는 부분이다.
굳이 말하자면 문턱이 높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음에도, 이곳에는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대쪽 같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어서 굶어죽어도 밥을 구걸하지 않는 갑갑한 양반의 표본 같은 박승원이 나의 취향과는 극명한 대조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관된 원칙주의자가 핏발선 눈으로 주변을 고속 스캐너처럼 훑으며 정보를 받아들이고 분석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아까까지의 답답함이 가시고 응원하는 마음이 불쑥 치민다. 소설 속 모든 것이 매 그런 식이다.
요새 흔히 보이는 조선 배경의 역사 로맨스 소설이 능력 있고 잘생긴(심지어 시대상과 맞지 않게 수염도 기르지 않는) 세자(혹은 임금)와 여주인공이 벌이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을 이상주의의 관점(만능 군주가 개혁에 성공)에서 보여 준다고 하면, 『꽃, 다시 꽃』은 ‘판타지/추리/로맨스’라는 장르 설정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현실, 민초들의 바닥 같은 삶을 가감없이 그려내고 있다. 이는 영상의 아들이라는 귀하신 신분의 한량 이현과 비록 밉보여 한직을 돌고 있으나 어사의 책무를 맡은 양반 신분의 승원과는 달리, 승원의 무사인 성도의 시각이 묘사될 때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두 나으리가 더 큰 그림을 보고 뛰어다니는 동안 성도가 보고 느끼며 생각하는 이야기는 고통 받는 백성들의 절절한 민낯 그 자체이기에.
저자가 9장으로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힌 이야기는 아직 2장까지밖에 진행되지 않았으나, 초반 몇 회의 어려움을 돌파하고 나면 금방 커다란 나무의 뿌리 하나가 슬쩍 모습을 드러낸다. 한데 그 꼭대기 끝에서 보이는 모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니 이제 남은 길은 그 나무에 오르는 것뿐이다. 그저 작가가 내어주는 길목을 따라 한 발 한 발 내딛을 뿐. 이 치열하고 아름다우며 섬뜩하고 기괴한 환상의 조선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