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대륙 어디에서나 볼 수 있던 평범한 시골 마을에 마법사의 탑이 우뚝 선다. 탑의 주인인 마법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을에 모습을 드러내던 날, 그는 한 소년을 데리고 들어가 거대한 철문의 빗장을 내린다. 마법사는 소년에게 마을에서 수집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정리하도록 시켰고, 소년은 탑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채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하루하루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 날, 이름도 모를 또래 소녀의 이야기를 읽게 된 소년은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혀, 탑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바깥에 나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데…….
고전적인 소재를 비틀어 독특한 설정으로 발화시킨 「탑 무너뜨리는 마법사」는 ‘이야기’에 깃든 불온함과 마력에 집중하는 작품이다. 이야기 수집만을 목적으로 기능하는 탑의 존재는, 오래도록 탐구되어 온 ‘이야기’ 자체의 본질적 성질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역할을 한다. 나아가 서사가 제거된 존재에 대해 고찰함으로써 아련한 애수를 자아내는 힘이 있다. 책과 이야기에 탐닉하는 사람들의 일화를 다룬 「잠자는 여왕의 종이 궁전 아래에서」를 읽은 적이 있다면, 이 작품도 거듭 만나 보시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