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황금가지에서 음식을 테마로 한 개최한 장르문학 공모전의 1회 주제는 ‘고기’였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그리고 출판사의 이미지에 맞게(?) 피가 튀고 고어한 묘사가 담긴 작품이 주류를 이루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없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투고작 수가 많지 않아 아쉬움을 자아냈지만 장르의 특성을 개성적인 방식으로 잘 살리면서 소재를 흥미롭게 녹여 낸 작품들이 있었고, 「비님이여, 오시어」는 그중에서도 돋보였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기우제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한 이 설화풍 이야기는 안정적인 구조와 유려하고 진중한 문체로 눈길을 끌었다. 오랜 가뭄으로 풀 한 포기 자라지 않고 사냥감 역시 씨가 말라 굶어 죽은 시체가 넘치는 혹독한 시절, 숙수 서이담은 제주 산방산 해안의 동굴에 사는 용의 고기를 구하여 요리를 하라는 명을 받고, 동물과 교감하며 고기를 먹지 않는 소년 모량과 함께 여정을 떠나게 된다. 크나큰 굴곡이 있거나 긴장감 넘치는 전개를 보여 주지는 않지만, 잔잔한 서사 속에 다른 생명의 육신을 먹는다는 것의 무게라는 주제를 잘 녹여 내어, 깔끔한 결말에 가서는 깊은 여운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