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네 가족은 어느덧 미국 이민 3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언제나 강제출국에 대한 불안감과 생활고와 인종차별까지 이중 삼중고에 시달리며 고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단지 싸다는 이유만으로 60년이 넘은 낡은 아파트로 이사 온 이후에는 노후한 시설로 집 안 곳곳에 성한 곳이 없었는데, 이윽고 두 아이들의 피부와 호흡기에까지 문제가 생기고 만다. 의료보험을 받지 못하는 처지라 고민만 커져가는 가운데, 아파트 관리팀에서 보낸 백인 수리 기사가 벽 곰팡이 문제가 심각하니 조치를 취하는 게 좋겠다는 진단과 조언을 건넨다. 한편, 수미는 설상가상으로 둘째 아이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교장 손자로부터 끔찍한 협박을 받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데…….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두 번째 작품집에 수록된 본 작품의 황희 작가는 이후에도 「얼음 폭풍」 등을 발표하며 동양인 이주민의 두려움과 불안을 공포 장르를 통해 날카롭게 표현해 왔다. 집 꼴은 엉망인 데다 밖에서는 아이들이 혐오로 점철된 폭력에 노출되어 있어 안팎으로 극심한 상황에 내몰리게 된 주인공 가족의 처지는 개탄스러울 정도로 현실적이라 안타까움을 자아내는데, 이 과정에서 언뜻 사소해 보였던 곰팡이에서 시작된 불행이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는 서사 구조가 인상적으로 활용된다. 특히 세심한 복선으로 등장인물들의 다중적 면모를 영민하게 드러내는 이야기는 후반부로 이를수록 더욱 극대화 된 공포를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