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다쳐 의식을 잃은 채 병실에 누워 있는 ‘너’의 턱에 파릇하니 자라난 턱수염을 면도해 주며 ‘나’는 너와 나의 관계를 떠올린다. 매일 보았지만 사실은 서로를 깊이 알지는 못했던, 너를 알긴 알지만 진정 안다고는 말할 수 없었던 직장 동료라는 사이. 하지만 사고가 나기 전날, 네가 남긴 강렬한 고백은 차마 너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 작품은 혈연관계에 더 이상 무게를 두지 않는 시대, 법적인 가족이 없는 독립된 개인으로만 존재하는 ‘인디’라는 계층이 존재하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너는 바로 그 ‘인디’이고, 인디에게 적용되는 복지 정책에 따라 1년 이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할 경우, 너의 신체는 폐기되고 의식만이 클라우드에 업로드된다. 나는 그 1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매주 너의 병실을 찾는다.
특정 기억을 지우는 시술이 존재하는 미래를 배경으로 했던 작가의 다른 작품 「시금치 소테」처럼 이 작품 역시 ‘상실’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상실 이후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려낸 「시금치 소테」와는 다르게 「면도」의 상실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이야기의 끝에서 아직 꺾이지 않는 희망이 느껴진다는 점은 동일하다. 뺨에 남은 작은 상처에서 상대가 느꼈을 아픔이 자신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다정한 사람인 주인공에게 부디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본작은 다음 분기 출판 지원작 검토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추천일로부터 4개월 이내에 타사 계약 등의 제안이 있을 경우, 브릿G의 1:1 문의를 통해 미리 알려주십시오. 별도의 작품 검토 등을 거쳐 회신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