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네가 누운 병실에 들러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면도다. 네 이름이 띄워진 병실의 미닫이문을 힘주어 밀고 들어가면 적막 속에 삑삑, 높고 짧은 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울린다.
병실 속의 유일한 소리. 그리고 네가 살아있다는 신호.
가슴에 귀를 대보지 않아도, 손목을 감싸 집중하지 않아도 네가 아직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이곳에 생을 움켜쥐고 있다고 기계는 오늘도 큰 소리로 알려준다.
일주일 만에 네 턱에 파릇한 그림자가 생겼다. 하루만 면도를 게을리해도 턱이며 인중이며 보기 싫게 거칠어지는 나와는 달리, 네 수염이 자라는 속도는 느긋하고 턱선에 퍼진 그림자는 균일하다. 수염마저도 사람의 성정을 닮는구나 생각했다. 사실 너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런 사람일 거라고 뒤늦게 짐작해 본다.
아무튼 기기의 도움을 빌려 드나드는 네 호흡도 그렇고, 네 몸에서 무언가 천천히 자라나고 있음을 아는 것은 나에겐 일종의 안도다. 너는 결코 멈춰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안도.
날 면도기로 조심스레 베어내는 면도는 처음엔 나에게도 익숙한 일은 아니었다. 내 얼굴이 아닌 타인의 얼굴을 다루는 일도 처음이었다. 아주 오래전에는 머리카락을 다듬는 곳에서 면도도 함께 해주곤 했다지만 요즘 면도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니까, 당연했다. 세상이 아무리 달에 하루 만에 닿을 수 있을 정도로 빨라지고, 뇌의 기억을 데이터화해 클라우드에 업로드하는 첨단 기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도, 사람 손으로 해내야 하는 사소하고도 귀찮은 일은 늘 있게 마련이다.
원래는 이곳도 다른 병원과 마찬가지로 이 일을 해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그들은 주 1회 정기적으로 중환자 병동에 들러서 의식이 없는 환자들의 수염을 깔끔히 정리해주곤 했는데 모두들 단체에서 보급받은 전기면도기를 사용했다.
어느 날 네 뺨에 생긴 작은 상처를 보고 말았다. 물론 정해진 시간 내 많은 환자를 돌봐야 하는 입장에게 무결한 완전함을 기대하기란 무리인 줄 알지만, 어쩐지 마음이 상했다. 잠든 네가 못 느꼈을 따끔함이 대신 내게 온 것 같았다.
나는 내가 틈나는 대로 들러서 면도할 테니, 함시운 씨는 자원봉사자들의 명단에서 제외해달라고 간호사 스테이션에 부탁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당장 커다란 마트에 들러 면도에 필요한 이것저것을 샀다. 진열되어 있던 제품 중에 가장 평이 좋다는 고가의 날 면도기, 그리고 셰이빙폼. 새 수건도 몇 장 구매해 미리 세탁해 두었다.
조금 우습지만 다음 번 면회 전날 밤은 거의 잠을 설쳤다. 그까짓 면도, 스무 해 가까이 매일 해오는 일이지만 내 얼굴이 아닌 타인의 얼굴이란 부담이 내게도 적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정작 아침엔 늦잠을 잘 뻔해서 내 얼굴 다듬기는 포기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간호사 스테이션을 지날 때 항상 ‘오셨어요?’라고 알은체를 해주던 간호사가 그날은 눈만 동그랗게 뜬 채로 말이 없었다. 수염이 긴 나는 평소보다 몇 배는 피로해 보이는 인간이 되기 때문에, 아마 바로 못 알아봤을지도 모르겠다.
삑삑, 소리를 메트로놈처럼 들으며 세면실에서 온수에 듬뿍 적신 수건으로 먼저 네 얼굴을 편안히 이완시킨 후 면도를 시작했다. 갓 시작한 시점엔 손이 덜덜 떨렸지만 그리 늦지 않게 평정이 찾아왔다. 네가 세상 무엇보다 가만히 침묵을 지켜주고 있는 덕분이다. 나를 혼란스럽고 슬프게 만드는 그 사실이, 면도를 하는 데는 상당한 자신감을 주었다.
첫 작업은 상처를 내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에 그리 깔끔한 완성도를 내진 못했지만, 나의 손끝은 섬세함이라는 의미를 하루하루 점점 깊이 터득해갔다. 그날 이후로 다섯 달에 걸쳐서 나의 면도 실력은 꽤 수준급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다섯 달이다.
네가 의식을 잃었다고 소식을 들은 날은 그 다섯 달 하고, 며칠 전이었다.
이른 아침 형사 둘이 찾아왔다.
이제 막 일곱 시가 지난 때였다. 휴일이라서 그런 시각에 눈을 뜰 생각은 애초에 없었기에, 덜 깬 잠에 구겨진 인상으로 문을 열었다. 모르는 남자 하나, 여자 하나가 내 앞에 있었다. 말끔하고 어두운색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 민현기 님 맞으시죠?
그들은 나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경찰이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잠결이었지만 찰나에 여러 생각이 스쳐 갔다. 최근에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 아니면 기억 못 하는 예전이라도?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지루한 내 인생은 범죄와는 거리가 멀었다. 도덕이나 윤리를 거스르는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하다못해 무단횡단도, 불법 다운로드도. 나는 세상이 마련해준 규칙대로 살아가는 게 가장 편한 삶이라는 지론이 있다.
그런데 자기검열을 막 마친 나에게 그들이 다음으로 말한 이름은 너였다.
– 함시운 씨, 만 이십칠 세, 남성, 알고 계시죠?
아직 긴장이 덜 빠진 뒤통수에 순간 묵직한 무게가 달렸다.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휴일 아침 경찰이 찾아와 누군가 아는 사람의 이름을 묻는다면 이유를 알기도 전에 모두 조금은 아찔한 기분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게 어떤 종류의 소식이든 간에.
눈을 깜빡이는 내게 형사 하나가 침착하게 말했다.
지금 너는 D 섹터 병원에 의식불명인 채로 입원해 있으며, 네 휴대전화의 가장 최근 통화기록이 나의 번호이고 통화내역 감정 결과 의식이 있을 때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도 나라서 이곳에 찾아왔다고 했다. 나에게는 너의 신원을 확인해 줄 의무가 있다고 했다.
어리둥절한 채로 대충 옷을 꿰어 입고 그들이 가져온 차에 올랐다. 자동주행으로 병원까지 닿는 데는 십오 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내겐 끝없는 영원 같았다. 그 병원은 회사에 제출해야 할 건강검진기록이 필요할 때나, 감기나 충치 정도의 치료가 필요할 때 들락거리던 곳이었는데 그날만큼은 그리 낯설 수 없었다.
머리에 상처를 입고 중환자 병실에 몸을 누인 사람은 네가 맞았다.
– DNA 정보 값으로 신원 일치는 1차 확인했습니다만, 인권위원회 규정 및 절차상 증인의 날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