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파이의 광부들 – 1

  • 장르: 판타지 | 태그: #이영도 #이영도단편 #더스번칼파랑 #사란디테 #늑대인간 #난쟁이 #바실리스크 #터널 #협상
  • 평점×154 | 분량: 100매 | 성향:
  • 소개: “난쟁이들이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가장 긴 터널을 추구하는 것이 왜 잘못이냐?” 세상에서 가장 긴 터널을 뚫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지닌 샹파이의 난쟁이들과 모험... 더보기

샹파이의 광부들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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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일부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다. 샹파이 난쟁이들이 조피크 산을 뚫은 것이다.

문균법 때문에 초기엔 은밀히 후원하다가 공사 후반기엔 아예 대놓고 법률을 위반해가며 샹파이 난쟁이들을 후원했던 모험 상인들은 잔을 무더기로 깨트려가며 건배를 나누었다. 몇몇 상인들이 왕의 법정에 서게 되었다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악명 높은 조피크 산의 허리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어떤 평가에 따르면 그것은 국경에 아무런 변화 없이 왕국이 두 배로 늘어난 것과 같은 위업이었다. 단축된 시간도 영토가 될 수 있으므로 그것은 썩 통찰력 있는 지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가끔은 통찰력보다 더 우수할 때도 있는 능력인 동화력을 갖춘 이들은 그 역사적인 위업에 우려를 느꼈다. 그들은 샹파이 난쟁이들이 애초에 그 난쟁이 잡는 공사에 나선 이유를 잊지 않았다. 샹파이 난쟁이들은 가장 긴 터널을 가지고 싶어 했다. 터널은 난쟁이의 자존심이다. 자레올 난쟁이의 카로당 터널을 언제나 부러워했던 샹파이 난쟁이들은 터널 공사비를 지원하겠다는 은밀한 제안을 받자 후원자들의 정체도 묻지 않고 조피크 터널 회사 설립에 동의했다.

그리고 조피크 산을 관통한 터널은 카로당 터널보다 짧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순진한 난쟁이들이 영악한 상인들에게 이용당한 사건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동화력을 가진 이들은 근심에 빠진 눈으로 샹파이 난쟁이들을 주시했다. 욕심 많은 난쟁이들이 현명한 신들이나 영리한 영웅들에게 이용당할 수는 있다. 옛날이야기엔 언제나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천성적 토목 건설자인 난쟁이들이 거리 계산을 잘못하는 경우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그들은 찜찜함을 견딜 수 없다는 어조로 말했다. “분명히 무슨 사달이 일어나고 말 거야.” 그리하여, 샹파이 난쟁이들이 모든 사람들을 경악시킨 선언을 했을 때, 그들은 슬퍼하긴 했지만 크게 놀라진 않았다.

완공을 축하하기 위해, 그리고 애석하게도 가장 긴 터널을 가지지 못하게 된 것을 위로하기 위해 상인들의 대리인이 찾아왔을 때 샹파이 난쟁이들은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연히 어리둥절해진 대리인은 조피크 산이 이미 뚫렸는데 어디를 팔 작정이냐고 물었다. 샹파이 난쟁이들은 무슨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냐는 듯이 대답했다. 땅 위.

“예? 뭐라고요? 어디?”

“땅 위에 터널을 파겠다고.”

근사한 농담을 떠올리려 애쓰던 대리인은 결국 두 손 들고 말았다.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소리이니 받아치기도 어려웠다. 대리인은 겸허하게 질문했다. 허공에 구멍을 뚫겠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헛소리냐고. 돌아온 대답에 대리인은 기절할 뻔했다. 지금껏 구멍을 팠던 샹파이 난쟁이들은 조피크 산을 통과한 시점에서 공법을 바꾸었다. 벽과 천장 만들기로. 물론 그것은 빈 공간을 터널로 만드는 유일한, 그리고 당연한 방법이다.

하지만 바깥에서 볼 때 그것은 왕국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장벽이 생겨난다는 의미였다.

샹파이 난쟁이들은 카로당 터널보다 몇백 미터쯤 더 긴 터널에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모방자는 언제나 착안자보다 수월한 법이다. 두 번째 지상 터널에 추월당하는 일을 결코 참아낼 수 없었던 샹파이 난쟁이들은 조피크 산에서 뻗어 나갈 수 있는 데까지 장벽을 이어나갈 결심이었다. 샹파이 난쟁이들은 마구잡이로 어음을 교부하여 가장 높은 값으로 토지를 사들였다. 당연히 토지 소유자들은 거침없이 공사 예정지를 팔아치웠고 샹파이 난쟁이들은 그 땅 위에 계속 튼튼한 벽과 육중한 천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모험 상인들은 그것을 저지할 수 없었다. 문균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경영권과 결재권을 모두 난쟁이들에게 넘겼던 탓이다. 그들은 충혈된 눈으로 돌아오는 어음을 보다가 밧줄이나 독약병을 쳐다보곤 했다.

거상들이 어이없게 몰락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였지만 왕국이 장벽으로 절단된다는 것은 안보 차원의 문제였다. 결국 왕이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책임자의 지위가 올라갔다는 의미이지 책임을 지는 것이 손쉬워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섣불리 조피크 터널 회사를 파헤쳤다간 먼지를 좀 뒤집어쓰는 것이 아니라 왕국 경제 구조 전체가 오물을 뒤집어쓰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상인들의 탐욕에 격분하고 그들을 몽땅 체포할 수 없다는 사실에도 격분한 다음 왕은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초법적인 수단을 동원했다. 모든 것에 우선하는 왕의 칙령이 반포되었다.

* * *

짐은 조피크 터널 회사의 사원들에게 그들 자신의 명예욕 외엔 아무것도 만족시킬 수 없고 오히려 많은 이들에게 불편과 고통만을 안겨 주는 그 언어도단적인 굴착 공사를 당장 중단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한다.

많은 이들이 애석해하는 사실이지만, 좋은 의도가 더 강력한 전달력을 지닌다는 것은 낭만적인 오해일 뿐이다. 현자나 지자들의 충고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진실은 분명히 거짓보다 강하다. 진실을 소리 높이 외치는 일은 언제나 현명한 일이며 또한 옳은 일이다. 하지만 진실과 좋은 의도는 다르다. 많은 이들의 행복을 고려하여 좋은 의도에서 반포된 왕의 칙령은 실로 곤혹스러운 결과를 가져왔다. ‘다른’ 난쟁이들이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난쟁이들이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가장 긴 터널을 추구하는 것이 왜 잘못이냐? 장래에 우리가 더 긴 터널을 뚫으려 할 때도 방해할거냐?

첫 번째 문장도 상당히 강력했지만, 난쟁이들이 아무런 가식 없이 솔직하게 강세를 둔 두 번째 문장은 실로 파괴적이었다. 현재 공사 중인 샹파이 난쟁이들을 제외하면 그 어떤 난쟁이 씨족도 굴착 공사를 하고 있지도, 계획하고 있지도 않다는 점은 반론 근거가 되지 않았다. 터널은 난쟁이의 자존심이므로. 결국 자레올 난쟁이와 다른 난쟁이들을 혐오하는 아쿠다 난쟁이를 제외한 모든 난쟁이 씨족들이 샹파이 난쟁이들을 거들고 나섰다. 34년 전 목걸이 전쟁 이후 처음으로 난쟁이 대회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제출되자 왕의 정부는 뒤집어지고 말았다. 난쟁이 대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들 중에는 전투 추장의 선발도 있다. 난쟁이 전투 추장은 가문이나 씨족에 관계없이 모든 난쟁이 전사들을 동원하여 지휘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세계 최강의 부대를 소환할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존재다.

심도 있는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자명했다. 샹파이 난쟁이들도 최악의 부담만은 피하고 싶었기에 대화에 동의했다. 왕의 신료들은 샹파이 난쟁이들에게 줄 선물을 급히 꾸렸다. 하지만 샹파이 난쟁이들이 지명한 협상 대리인이 공개되자 신료들은 그 선물을 벽에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샹파이 난쟁이들의 협상 대리인은 왕으로 불리는 자였다. 따라서 그 위격이 떨어진다는 말은 절대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대리인은 지상과 터널이 어울리지 않는 것만큼이나 협상과 어울리지 않는 자였다. 사람들은 그 왕이 자기 외의 다른 존재와 말을 해 봤는지, 아니, 말을 할 수나 있는지 의심했다.

샹파이 난쟁이들의 협상 대리인은 뱀의 왕, 바실리스크였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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