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조련사들

  • 장르: 판타지 | 태그: #환상문학 #단편 #이디스네스빗
  • 평점×152 | 분량: 72매 | 성향:
  • 소개: 영국 최고의 판타지 동화 작가인 E. 네스빗의 「용 조련사들」은 지하 감옥에 나타난 용을 상대로 대장장이 부자가 재치 있는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거듭 넘기는 유쾌한 작품이다. 더보기

용 조련사들

미리보기

아주 낡은 성이 있었다. 너무 낡아서 벽이며 탑, 사닥다리, 성문과 홍예문까지 죄다 무너졌고, 옛날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곤 두 개의 작은 방만 남은 성이었다. 대장장이 존이 대장간을 차린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는 어지간한 집에서 살기엔 너무 가난했고, 성의 원래 주인들은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폐허가 된 성을 빌리는 데 세를 달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존은 불을 지피고 망치를 담금질하며 일을 했다.

대부분의 손님은 시의 시장에게로 갔기 때문에, 주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시장은 꽤 크게 사업을 벌이고 있는 대장장이였고, 그의 커다란 대장간은 광장이 보이는 목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딱따구리 떼처럼 망치질을 해대는 도제들이 열둘이나 됐기 때문에, 한 번에 열두 명이 찾아온대도 각각 주문을 받을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특허를 받은 자동으로 움직이는 망치에 전기로 불을 지피는 기계에……. 모든 것이 존에게는 부러운 것투성이였다. 당연히 마을 사람들은 말의 말굽을 갈거나 수리할 쇠붙이가 있을 때는 시장에게로 갔다.

그래서 대장장이 존은 시장의 대장간이 더 좋다는 것을 모르는 여행자나 낯선 이들이 의뢰하는 몇 가지 일이나마 최선을 다하려고 애썼다.

그가 쓰고 있던 방은 따뜻했고 비바람도 잘 견뎠지만, 그리 크지 않아서 대장장이는 낡은 쇠붙이와 잡동사니, 장작더미와 값싼 석탄들을 성 아래에 있는 커다란 지하 감옥에 쟁여놓아야 했다.

지붕이 둥글고 아름다우며 벽에는 꺾쇠에 커다란 쇠종들이 달린, 굉장히 훌륭한 지하 감옥이었다. 죄수들을 감금시키기에도 튼튼하고 편리했으며, 한끝에는 아무도 모를 어디론가로 이어지는 망가진 계단이 있었다. 좋았던 시절의 성 주인들조차 그 계단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따금 가벼운 마음으로 기대에 부풀어 계단으로 죄수를 밀어넣곤 했고, 그 죄수들은 어김없이 돌아오지 않았다. 대장장이는 한 번도 일곱 번째 계단 너머까지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도 그 이상은 가보지 못했으니, 그 계단 밑바닥에 뭐가 있는지 모르기는 대장장이나 나나 매한가지이다.

대장장이 존에게는 아내와 갓난아이가 있었다. 아내는 집안일을 하지 않을 때면 아기를 보살피거나,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행복했던 날들을 떠올리며 눈물짓곤 했다.

아버지와 시골에서 열일곱 마리나 되는 젖소들을 기르며 평온하게 살았던, 그리고 저녁이면 존이 양복 깃의 단춧구멍에 꽃을 꽂고 찾아와 구애하던 때를 말이다. 지금 존의 머리는 회색으로 변했고 집에는 먹을 것이 충분할 때가 거의 없었다.

아기는 평소에도 진이 빠지게 울어대곤 했지만, 특히 밤에 엄마가 재우려고 눕히기만 하면 울기 시작해서 그녀는 거의 쉴 수가 없었다. 이것이 그녀를 몹시 지치게 했다.

아기야 밤새 쌓인 피곤을 제가 원하는 만큼 낮 동안 풀 수 있었지만 불쌍한 엄마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할 일이 없을 때마다 일과 걱정에 지칠 대로 지쳐서 울기만 했다.

어느 날 저녁, 대장장이는 대장간 일로 분주했다. 그는 아주 부유한 숙녀를 위해 염소 편자를 만들고 있었다. 그 숙녀는 염소 발에 편자를 박아놓으면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고 한 벌을 주문하기 전에 가격이 5펜스인지 7펜스인지 알고 싶어 했다.

이것이 그 주에 존이 받았던 유일한 주문이었다. 그가 일하는 동안 아내는 앉아서 그날따라 이상하게 울음을 터트리지 않는 아기를 어르고 있었다.

불을 지피는 소리와 철이 쩔그렁거리는 소리 위로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대장장이와 아내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난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그가 말했다.

“저도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그 소음은 점점 더 커졌다. 그들은 소리를 듣지 않으려 몹시 애썼다. 그래서 그는 어느 때보다도 세게 염소 편자에 망치질을 해댔고, 그녀는 아가에게 노래를 불러주기 시작했다. 몇 주 동안이나 그러고픈 마음이 한 번도 들지 않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풀무질과 망치질, 노랫소리 사이로 소음은 점점 더 크게 들려왔고, 듣지 않으려 애쓸수록 소리는 더욱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것은 거대한 생물체가 그르렁거리는 소리 같았다.

그들이 그 소리를 듣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던 이유는 그 소리가 낡은 쇠붙이와 장작과 값싼 석탄더미가 쌓여 있으며 어디서 끝나는지 아무도 모르는 부러진 계단이 있는 저 밑의 커다란 지하 감옥에서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지하 감옥에 뭐가 있을 리가 없는데.” 얼굴을 문지르며, 대장장이가 말했다. “음, 조금 있다가 석탄을 더 가지러 밑에 내려가야 해.”

“당연히 저 밑에 뭐가 있을 리 없죠.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아내도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거기에 아무것도 없다고 믿으려 얼마나 애를 썼는지, 이윽고 그들은 거의 그렇다고 믿게 되었다.

그런 후 대장장이는 한 손에 삽을, 다른 손에는 대갈못용 망치를 들고 새끼손가락에 낡은 초롱을 걸고서 석탄을 가지러 내려갔다.

“망치는 가져가지 않으려 했어. 저 아래엔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커다란 석탄 덩어리를 깨는 데에는 이게 편리하지.”

“무슨 말인지 잘 알아요.” 그날 오후 석탄을 앞치마에 담아 날랐기 때문에 저 아래에 있는 건 모두 가루 석탄이라는 걸 아는 아내가 말했다.

그는 지하 감옥까지 구불구불한 계단을 내려간 다음, 계단의 밑바닥에 선 채 머리 위로 초롱을 들어 올려 지하 감옥이 평소처럼 비어 있는지 살펴보았다.

낡은 쇠붙이며 잡동사니, 그리고 장작과 석탄 말곤 절반은 평소대로 비어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은 비어 있지 않았다. 그곳을 채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용이었다.

“이건 하느님만이 어딘지 아실 저 아래쪽에서 계단을 타고 올라온 것이 틀림없어.” 대장장이가 벌벌 떨며 혼잣말을 했다. 그리곤 구불구불한 계단으로 살며시 기어 올라가려 했다.

하지만 용은 매우 재빨랐다. 용은 커다란 갈고리 발톱을 뻗어 그의 다리를 잡아챘다. 용이 움직일 때마다 한 무더기의 커다란 열쇠 꾸러미나 판토마임 극에서 우레 소리를 만들 때 쓰이는 철판처럼 쩔그럭쩔그럭 소리를 났다.

“안 돼, 못 가.” 용이 푸푸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살려줘요, 살려줘.” 불쌍한 존이 용의 발톱에 걸린 채 떨면서 말했다. “남부끄럽지 않게 살아온 대장장이에게 참도 멋진 최후가 오는구나!”

용은 그 말에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그 말 다시 한번 해줄 수 있겠어?” 그가 꽤 정중하게 말했다.

그래서 존은 다시 분명하게 말해 주었다. “남-부끄럽지-않게-살아온-대장장이에게-참도-멋진-최후가-오는구나.”

“난 몰랐어. 좋았어! 자네는 내가 찾던 바로 그 사람이야.”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