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와 처음 만났을 때 유진은 울고 있었다. 맥주는 다섯 병이나 마셔버렸고, 뺨은 달아올라 있었으며, 눈시울을 적시며 흘러넘친 눈물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서우가 함께 있었다면 유진의 이마에 손등을 얹어 평소보다 몇 도 높은 체온을 확인한 다음, 이렇게 진단 내렸을지 몰랐다.
너, 감기에 걸렸구나.
사랑이란 어쩌면 열감기와 같은 게 아닐까, 유진은 생각했다. 발그스름한 낯으로 거리를 걷고 마지못해 헤어진 후에는 길고 두서없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도록 충동질하는 것. 부딪쳐오는 시선을 마주하며 어색하게 미소 짓게 만드는 것. 예방접종을 맞는다 해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는 것. 여러 번 거듭, 고통스러운 것. 앓는 사람을 예민하게, 또 가끔은 멍청할 만큼 둔감하게 만드는가 하면, 언제 아팠냐는 듯 무심하게 넘겨버릴 때도 있지만, 어느 불운한 날에는 지독한 통증을 퍼뜨려 침대 위에서 끙끙거리며 신음하게 하는 무엇.
맞닿은 손과, 섞이는 숨결과, 얽혀든 눈길로 전달되는 것.
뜨겁고 구역질나며 몽롱한 그것. 사랑, 일상적이면서 치명적인 질병.
남자가 말했다.
“이걸 가져가세요.”
눈물을 훔치며 유진이 그 자리에 멈추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순간 유진이 발길을 돌려세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남자의 말투에 깃든 염려였을까. 아니면 호기심이었을까.
“그래요. 이놈을 데리고 가는 게 좋겠어요.”
남자가 가판대에서 흙빛의 작은 물건을 집어 들었다. 그때까지도 유진은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혹여 목소리를 들켜버리고 나면 뭔지 모를 성가신 사건에 말려들고 말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서였을까.
가판대를 차려놓고 상품의 구매를 권하기에 적당한 장소는 아니었다. 호프집을 뛰쳐나와 유진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누르지 못해 이 길 저 길 정처 없이 헤매고 다녔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한 자리에 머물러 있기에는 유진의 심장이 지나치게 빨리 뛰고 있었을 뿐이었다.
가로등은 군데군데 꺼져 있었고, 어둠은 담벼락이며 골목 구석을 함부로 더듬어대고 있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 유진은 의문했다. 설마하니 취객을 노리려는 수작일까. 술에 취한 상태에서 지갑을 열게 만들려고?
“그게 뭔데요?”
자기가 물어놓고 유진은 후회하며 입술을 핥았다. 소리를 내고 말았잖아. 어쩐지 함정에 빠진 느낌이었다.
“토우예요.”
남자가 달래듯 교묘하게 말했다. 그의 음성은 썩 듣기 좋았다. 경계심이 풀어진 유진이 콧물을 쿨쩍이며 가판대 앞에 붙어 섰다. 남자가 앞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흙으로 빚은 거죠. 이건 개 모양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