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 장르: 호러, 일반 | 태그: #혼령 #유령 #호러 #공포
  • 평점×39 | 분량: 100매
  • 소개: 영혼이 산 자만의 전유물인지, 죽은 자들에게도 잔존하는 것인지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원’은 죽은 자들에게도 영혼이 잔존하며, 더불어... 더보기
작가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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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욱한 먹구름에 시간의 경계가 일그러진다. 오늘은 빛이 없는 날이다. 당장이 오후임을 확인할 수 있는 건, 꼭 무던한 이의 표정과도 같아 보이는 시곗바늘의 객관성 덕분이었다. 현관문을 열어젖히고 날씨를 확인한 나는, 자전거로 종일을 달리려던 계획을 변경하지 않기로 한다. 적어도 비가 내리지는 않으니까. 밀도 높은 습기가 심신에 전하는 이 찌뿌둥함은 몇 번 페달을 밟아주는 즉시 저 멀리 날아가리라.

폭넓은 도로 위에서 맹견 같은 차들을 피해 천천히 자전거를 몰기 시작했다.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에 우려를 표하는 아빠가 생각났지만, 애초에 자전거는 도로 주행이 원칙이며 위험성 따위는 나 같은 부류에게 장애물로 작용하는 요소가 아니다. 그 옛날, 빗길에 앞바퀴가 미끄러져 생긴 무릎 위의 흉터가 여전히 선명하다 할지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집 근처 시민 공원의 정문으로 진입한 후, 있는 힘껏 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공원의 입구에서부터 펼쳐지는, 매끈한 보도블록으로 가득 메워진 평지는 드넓은 광장처럼 탁 트여있기에 전속력을 내도 좋은 곳이다. 그렇게 정문으로부터 5분만 달리면 등장하는 기묘한 오르막 하나. 그다지 가파르진 않지만 매우 긴 그 오르막을 나는 단 한 번도 완등해보지 못했다. 그 오르막은 ‘도깨비 고개’라는 별칭을 지닌 우리 동네의 소박한 명물이다. 정말로 그 정상에서 도깨비가 나오는 줄 알았던 어린 날의 나와 다르게, 지금의 나는 그 별칭이 어느 착시현상 때문에 지어졌음을 잘 알고 있다.

올려다보면 야트막하기 그지없지만, 내려다볼 땐 매우 가팔라 보인다는 착시.

한 번 미끄러지면 영원히 구를 것만 같다는 아찔한 가파름.

그런 곳을 자기도 몰래 성큼성큼 올라왔다는 사실이 주는 묘한 오싹함.

그것이 도깨비 고개가 도깨비 고개인 까닭이었다. 자세한 원리는 모르겠으며 궁금하지도 않지만, 중요한 것은 거기에 진짜 도깨비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그곳은 나에게 하나의 자전거 스팟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고.

나는 자전거를 탄 채 맞바람을 맞으며 하강하는 순간을 사랑한다. 기본적으로는 앞바퀴가 닿는 대로 자유롭게 나다니다가도, 무언가 올라갈 수 있는 곳이 보이면 주저 없이 그곳으로 향하고야 마는 것이다.

‘무릇 오르막이란, 내리막의 전제.’

그리 가파르지 않은 듯한 언덕이라도 생각보다 자전거로 오르기는 힘에 부칠 때가 많다.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자전거 손잡이를 두 손에 꼭 쥔 채 걸어서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도달한 정상에서 다시금 그 길을 내려가는 과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오르막을 등반할 때 느껴지는 고됨과 후터분함, 그로 인해 흘러내리는 굵은 땀방울. 그 모든 것들이 하강을 시작하기만 하면 한없이 가벼운 싸락눈처럼 허공으로 흩어지는 것이다. 몇 초 전까지 무더웠던 전신이 한순간에 시원해지고, 페달을 밟지 않고도 만끽할 수 있는 속도감은 그간의 스트레스를 산산조각낸다. 자전거로 ‘도깨비 고개’를 처음 방문했던 순간에도 같은 바를 기대하며 들어섰던 기억이 난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옛말처럼, 나는 걸어서도 20분 남짓 거리의 시민 공원을 자전거로 와본 적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그 공원 내부에 있는 도깨비 고개를 처음 등반한 날도 불과 재작년이다. 자전거를 취미로 삼은 지가 10년이 넘은 것을 감안하면 매우 최근이라 할 수 있다. 공원에는 언덕보다 평지가 많을 것이라는 안일했던 판단이 도깨비 고개의 존재를 오랫동안 간과해온 이유였다.

“도깨비 고개. 도깨비 고개 위에 그 납골당. 거기도 인자 자리가 없다카더라.”

재작년 저녁의 조촐했던 밥상머리에서 아빠가 건네었던 말이다. 나는 그 고개의 존재를 겨우내 상기했다. 초등학교를 다닐 적, ‘우리 고장의 독특한 장소’를 조사하고 발표하는 간단한 과제가 주어졌던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으스스한 별칭을 지닌 도깨비 고개를 대충 적어 제출하였고, 담임교사는 한참을 웃으며 그 별칭은 진짜 도깨비 때문이 아니라 착시 때문에 붙여진 것임을 알려주었다. 부끄러움에 귀밑이 붉어졌던 그 날 이후로 처음, 아빠의 한 마디에 그 고개를 떠올린 것이다. 왜 그곳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 위에 납골당이 있든 묘지가 있든 간에 도깨비가 실제로 있을 리는 만무하고, 보기보다 가파르다는 그 언덕을 내려가는 길은 또 얼마나 짜릿하겠는가. 그리하여 다음 날 아침, 나는 ‘등잔 밑’에 있었던 도깨비 고개를 처음으로 올라갔던 것이다.

들었던 대로 도깨비 고개는 정말 완만해 보였다. ‘완만한 고개’보다도 ‘기울어진 평지’에 가까운 것 같았다. 그래서 올라가는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오기가 생겼던 것 같다. 걸어서 정상을 찍은 이들도 비슷한 마음이었으리라.

‘내가 이 정도 경사를 못 올라간다고?’

‘올라가서 보면 대체 얼마나 가파르길래?’

다 그런 식이었으리라. 자전거는 걸음보다 훨씬 빠른 이동 수단이지만, 오르막을 오를 때는 그만큼 힘들 수도 없을 것이다. 적어도, 10년째 자전거를 타면서도 희고 가냘픈 허벅지를 지닌 나는 이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몇 번이고 자전거에서 내려와 그것을 끌며 올라갔었다. 도깨비 고개가 시각적으로는 너무도 완만해 보여서, 그곳을 헥헥대며 올라가는 내가 마치 조소를 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힘들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혹은 자전거 손잡이를 쥐고 걸으며 정말 한참을 올라갔다. 하지만 정상은 아직 한참 남았음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고, 무엇보다 왠지 모를 불쾌감이 엄습해왔다. 마음 한편에서는 이 얕아 보이는 경사 때문에 완등에 대한 오기가 생기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올라가기 싫다는 충동이 생기는 것이었다.

‘무언가 불쾌하다, 올라가지 말자.’

‘여기까지 왔는데? 고작 이정도 경사에서 내려가봤자 시원함이 느껴지긴 할까.’

‘아니야. 보이는 거랑 다르니까 도깨비 고개라고 했었어.’

저런 유의 갈등 끝에 나는 도로 내려가길 택했다. 2년 전의 그 실패 이후, 도달하지 못한 정상에 대해 미련이 생길 때마다 꾸준히 그 고개를 찾았지만 완등에는 번번이 실패해왔다.

그런 내가 오늘은 그 언덕을 반드시 완등하고자 마음먹는다. 평소보다 조금은 늦은 시각, 심지어 먹구름이 자욱한 오늘. 어릴 적부터 ‘공주님이 아니라 장군감이었다’라는 평가를 받던 나에게 날씨나 시간대 따위는 장애물이 될 수 없다. 반드시 정상에 도달하여 그 길을 도로 내려가리라 마음먹는다. 공원 정문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있는 힘껏 페달을 밟은 것도 그것 때문이다. 여자로서 지닌 완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대한의 도움닫기를 활용할 심산으로. 완등을 처음 시도했던 재작년보다 튼튼해졌을 허벅지와 전력을 쏟아부은 도움닫기를 믿기로 한다. 처음부터 전력을 쏟으면 나중에 방전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털어버린다. 3분 만에 도깨비 고개의 입구에 도달한다. 최고 수준으로 올려둔 기어를 점진적으로 내려 0에 위치시킨다. 언덕을 오르기에 최적의 환경은 이로써 갖춰졌다. 도깨비 고개 완등을 시도할 때마다 조금씩의 성장은 있었지만, 더는 그 ‘조금’에 만족하고 싶지 않다. 선언에 가까운 생각을 새긴다.

나는 오늘, 이 고개를 반드시 완등해낸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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