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감각 – 1

  • 장르: SF | 태그: #SF #단편선 #한국SF단편선 #다섯번째감각 #김보영 #사이비종교집단 #음악 #초능력자
  • 평점×30 | 분량: 170매
  • 소개: 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찾아온 경찰은 교통사고보다도 언니가 활동하던 모종의 종교 조직에 대한 조사에 더 열을 올린다. 의문을 품고 언니의 과거 행적을 뒤쫓으며 새로운 세계를... 더보기

다섯 번째 감각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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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한 손에 고양이 사료 상자를 든 채로 한참동안 하숙집 문 앞에 서 있었다. 우편함 뚜껑을 한 번 닫았다가, 방 번호를 확인하고 다시 열었다. 우편함에는 술집 광고 스티커 몇 개와 함께, 언니의 이름이 적혀 있는 카드 봉투가 한 장 들어 있었다.

언니에게 편지가 온 것은 처음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 우편함에 광고 스티커 외에 뭔가 다른 것이 들어 있었던 적도 처음이었다. 내게도 언니에게도 편지를 보낼 만한 친구가 없었다. 언니는 마을 문화원에서 잡역부로 일했는데, 매일 밤늦게 집에 들어왔다가 새벽같이 일터로 나갔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빚쟁이를 피해 무작정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아다니며 살아온 처지라, 연락이 되는 친척도 없는 처지였다.

봉투에는 발신인 주소도 보낸 사람도 적혀 있지 않았다. 봉투를 열어보니 마찬가지로 글씨도 그림도 없는 카드가 나왔다. 카드라고 표현하기에도 미안한―, 그러니까, 그저 마분지를 잘라 반으로 접은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나는 점점 놀림을 받는 기분이 되었다.

마분지 구석에는 글씨가 작게 쓰여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세연 씨에게.
당신은 이미 받아볼 수 없겠지만, 약속한 바가 있으니 이것을 전해 드립니다.
당신의 친구들로부터.

나는 종이를 몇 번 뒤집어 본 뒤에 봉투를 거꾸로 들고 흔들어 보았지만, 빵가루 하나 떨어지지 않았다. 선물을 어디에 감춰 놓았으니 어느 곳의 몇 번째 서랍을 열어보라는 말도 없었다. 나는 눈썹을 가지런히 모으며 이 괴상한 편지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별 놈의 경우를 다 보겠네 싶어 다시 봉투에 집어넣었다.

그때, (나는 나중에야 그 순간을 돌이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문득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무엇인가가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듯한 기분이 들어서였기 때문이다. 조그만 아이들이 웃으며 지나간 것도 같았고, 부드러운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내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집이 빽빽하게 들어선 마을이 저녁 어스름에 어두침침하게 내려앉아 있을 뿐이었다.

하숙집 복도를 지나 방문을 열었을 때, 패치가 얼굴로 튀어 오르는 바람에 들고 있던 사료상자를 떨어트릴 뻔했다. 나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패치는 내 무릎 위로 우아한 동작으로 올라오더니, 교만스럽게 입을 벌리며 지껄였다.

(왜 이제 왔어? 하루 종일 어디 처박혀 있다가 이제야 오는 거야, 이 쓸모도 없는 주인 같으니라고!)

이건 정말이다. 고양이가 사람의 말을 알아먹기 전에 사람이 먼저 고양이의 말을 이해한다.

(오늘 저녁 메뉴는 뭐야? 저번에 사 온 회사 제품은 너무 달았어! 또 같은 사료를 사 왔으면 차라리 굶어죽고 말겠어! 뭘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거야? 빨리 못 들어와?)

패치는 여기까지 지껄이고(!) 고개를 빳빳이 들더니 방안으로 우아하게 걸어 들어갔다. 나는 엉덩방아를 찧은 내 꼴을 창피해하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혹시 옆방 사람들이 보았을까 싶어 돌아보았지만, 열려 있는 문은 없었다.

패치는 언니가 올 때에는 항상 문 앞으로 뛰어가서, 언니가 문을 여는 순간 튀어나갔다. 하지만 언니는 패치가 어디로 튀어 오를지 늘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언니는 놀란 표정 한 번 짓지 않고 늘 솜씨 좋게 패치를 잡아내었다.

하긴, 언니는 워낙에 감이 좋은 사람이었다. 감이 좋다기보다는, 지나칠 정도로 예민한 편이었다. 언니는 밤에도 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언니는 옆방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귀신같이 알아내고 일어나 밖을 내다보았다.

패치를 발견한 것도 언니였다. 비가 쏟아지던 날, 도랑 물 속에 잠겨 반쯤 죽어 가는 것을, 언니는 대체 어떻게 알아내었는지 그 어두컴컴한 구멍 속에서 젖은 솜뭉치가 되어 있는 이 녀석을 찾아내어 데려왔었다.

*

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오래 전부터 패치의 개인 놀이터로 변해 있었다. 나는 광고 스티커를 패치의 장난감 상자(쓰레기통)에 집어넣고, 카드는 패치의 화장실(신문 상자)에 넣고, 가방은 패치의 침대(옷장 속)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사료상자는 식탁(사과궤짝) 위에 놓기 위해 걸어갔다. 패치는 졸랑졸랑 내 뒤를 따라 왔다.

<자. 패치님. 앉으세요. 얌전히 앉아야 식사를 대령합니다.>

내가 공손하게 말했지만, 패치는 신경 쓰지도 않고 연신 내가 들고 있는 그릇을 향해 팔짝팔짝 뛰며 발버둥을 쳐 대었다. 패치는 한 번도 내가 불렀을 때 달려온 일이 없었다. 언니가 부를 때에는 그러지 않았다. 마치 뒤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언니가 손짓 한 번만 하면 밖에 나가 있다가도, 창문턱에서 잠을 자다가도 순식간에 달려오곤 했다.

당신은 이미 받아볼 수 없겠지만,

마지막까지도. 언니가 죽은 것도, 그 ‘감’ 때문이었다.

그때, 언니와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발을 멈추고 가게에 전시된 비싼 옷을 구경하고 있었다. 한 번이라도 저런 것을 입어 보았으면 하며 속으로는 내심 언니의 무능함을 탓하고 앉아 있었다.

그 순간, 내 옆을 지나가던 사람이 걸음을 멈추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한 방향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차도 쪽을 보았을 때, 언니는 막 차에서 튕겨 나가 인형처럼 바닥에서 구르고 있었다.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차는 사람을 친 것에 놀랐는지 당황했는지, 머뭇머뭇하다가 총알 같은 속도로 도망쳐 버렸다.

나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바닥이 노랗게 흔들렸다. 사람들이 흐느적거리며 언니의 주위로 모이고 있었다. 언니의 몸 아래로 피가 바다처럼 넘쳐흘러, 내 발을 적시고, 내 굳어버린 손가락과 꽉 막혀버린 목구멍과 폐와 눈으로 흘러 들어왔다.

한참만에야 나는 멀리 주저앉아 울고 있는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언니는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막 차에 치이려는 아이를 밀어내고 대신 치어 버린 것이다.

언니는 내 쪽을 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언니는 손 하나 까닥하지 못하고 누워 있었지만…… 언니는……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어 했다. 숨이 끊어져 가고 있는 와중에도, 무엇인가를…….

*

문에 붙어 있는 인식기(사람이 문 앞에 서 있으면 붉은 색으로 깜박이는 기계)가 붉게 반짝였다. 문을 열어 보니 밖에 다섯 명의 남자들이 서 있었다. 쌍둥이 마냥 나이 대와 인상이 비슷비슷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만 조금 특이한 편이었는데, 부스스한 머리를 어깨까지 드리우고 텁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입고 있는 정장 와이셔츠 단추를 풀면 안에서 한복 저고리가 한 겹 더 입혀 있을 법했다. 어디 산 속에 틀어박혀 수행이라도 하고 왔다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늦은 시간에 미안합니다. 아…….>

맨 앞에 서 있던 체격이 좋은 남자가 지갑을 꺼내 들었다.

<경찰입니다.>

나는 지갑에 붙어 있는 경찰마크를 유심히 보려고 했지만, 그는 1초 정도 눈앞에 들이대었다가 도로 닫았다. 나는 요즘 내 주민등록증이 들어 있는 분홍색 지갑을 아무한테나 들이대고 ‘경찰입니다.’하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무슨 일이죠?>

나는 지금까지 뺑소니 사범이라는 것이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걸쳐 처리되는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관공경찰서, 보험회사 직원, 군청 직원, 또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인권복지재단, 최소한 여섯 개가 넘는 기관에서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하나같이 내가 생각하기에는 교통사고와 아무 관계가 없는 질문만 산더미처럼 늘어놓고는 사라졌다.

<채세연 씨 동생 채연주 씨 맞습니까?>

‘알고 찾아온 것 아닌가요?’

나는 머릿속으로 한 번 생각한 뒤 얌전히 대답했다.

<그런데요.>

<몇 가지 세연 씨 일로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상관없긴 하지만, 안에 다 못 들어올 것 같은데요.>

경찰은 방 안을 들여다보더니, 한 명만 들어와도 방이 꽉 찰 것 같은 덩치 큰 부하들을 곤란한 듯 쳐다보다가 말했다.

<두 명은 밖에서 기다리게.>

*

<교통사고가 난 것이 한 달 전이지요?>

<두 분이 이 방에서 같이 살고 계셨던 모양이군요.>

<조사해 보니 언니가 다니시던 문화원에 대신 다니고 계시다고요.>

<세연 씨 교우관계는 어땠습니까?>

<교우관계요?>

나는 ‘남자친구는 있습니까?’ ‘허리 사이즈는?’ ‘잠버릇이 고약하진 않았나요?’ 하는 다음 질문을 예상하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예. 친구들 말입니다. 친구들이 많았나요?>

<모르겠어요. 그야 언니 사정이잖아요?>

나는 예의바르게 대답해 주며 참을성 있게 앉아 있었다. 경찰은 계속 쓸데없는 질문을 반복했다. 나는 하품이 나오는 것을 참았다. 그러다가…… 고개를 돌리던 중, 문득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아까 그 산에서 수행하고 온 듯한 인상의 사람이었는데, 쳐다보는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그는 먹이를 노리는 짐승처럼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뭔가를 먹고 있는 것처럼 입술과 혀를 교묘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경찰들이 정신병자 한 명을 연행해 가는 중에 우리 집에 들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이 내 앞으로 손을 흔드는 바람에 나는 그에게서 눈을 떼고 면접관을 쳐다보았다.

<왜 그 쪽을 보고 있습니까?>

<그저……, 입을 이상하게 움직이시기에.>

그때, 나는 그의 얼굴에서 보이는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렸다. 그는 옆에 있는 경찰과 눈짓을 교환하면서, 뭔가를 손가락으로 속삭이고 있었다. 점점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 안전운전 위원회인가 뭔가 하는 곳에서 왔을 때, 뺑소니 차량을 언제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는데, ‘포기하시는 편이 좋아요.’하는 대답을 받았다. ‘외부에서 온 차량이면 이런 시골 동네에서는 조사할 방법이 없어요.’

애초에 해결할 생각도 없다면, 왜 사람을 계속 찾아와 귀찮게 하는지 모를 일이다.

<이야기할 때는 이쪽을 봐 주시지요.>

<예.> (분부대로 하지요.)

<여기 자료사진이 있는데…….>

경찰은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한 장 한 장 내 앞에 늘어놓았다. 나는 그가 바닥에 늘어놓는 것을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사고 현장 사진이라도 보여주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뜬금없는 사진이었다.

무슨 추상조각가의 작품처럼 보이는 사진들이었다. 하나는 나무를 납작한 원통형으로 잘라 속을 파낸 것 같은 물건이었는데, 손잡이가 달려 있었고, 위에는 줄 같은 것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또 하나는 가죽을 나무통에 밧줄로 묶어 양쪽을 막아 놓은 것 같은 물건이었고, 또 다른 것은 대나무처럼 보였는데, 구멍 같은 것이 여기저기 나 있었다. 하나같이 기괴하기 짝이 없는 물건들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본 적이 있는 물건이 있습니까?>

<예?>

<본 적이 있는 물건이 있으시냐고요.>

나는 고개를 저었지만, 그는 내 대답 같은 것은 별로 기대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단지 사진을 보았을 때의 내 반응만 유심히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 번도요.>

그가 나 대신 말했다.

<당시 정황을 기억하십니까?>

그 질문을 몇 번째 받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잘 기억 안 나요.>

<저희에게 당시 쓰셨던 진술서가 있으니 반복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예.> (그거 다행이군요.)

<하지만 진술서에 기록되지 않은 것이 있어서 확인하려 왔습니다.>

나는 눈을 깜박였다. 그 사람들 사이에는 이상할 정도로 음침한 공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눈빛과 표정에서 칙칙한 냄새가 났다. 너무 많은 죽음을 접하고 살아온 바람에, 긴 낫을 든 사신이 아예 그들 주위에 자리를 펴고 앉아버린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런 걸까?

<예?>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채세연 씨가 달려오는 차에 치었을 때, 연주 씨는 길 건너에서 가게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고요. 그리고 사람들이 멈춰서는 바람에 돌아보셨을 때에, 이미 세연 씨는 차에 치어 쓰러져 있었다…….>

그는 마치 ‘언니가 죽어 가는 동안에 동생은 쇼핑이나 하고 있었으니 동생으로서 책임감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때 어떤 행동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나십니까?>

<네?>

<자신이 어떤 상태로 있었는지 기억나시나요?>

<기억날 리가 없잖아요?>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의 동작은 기계처럼 딱딱하고 건조했다. 나는 감정이 철저하게 배제된 그 얼굴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꼼짝도 못하고 앉아 있었어요.>

<그것만은 아닐 텐데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내가 미쳐서 흙이라도 파먹기라도 했나요? 아니면 그 혼란을 틈타 소매치기라도 했다는 건가요?>

그는 조용히 숨을 끌어당겼다.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연주 씨가 이런 행동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나는 그가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손을 올려 머리 양쪽에 대고, 입을 크게 벌렸다. 어린 아이들을 놀라게 하려고 코미디언들이 짓는 표정 같았다.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꼴을 하고 있으니 웃고 싶었지만, 워낙 방 안의 공기가 음침해서 웃고 싶지가 않았다.

<제가 그랬나요?>

<그랬습니다.>

그가 팔을 내리고 말했다.

<그 추한 모습을 누구 아는 사람이 보지 않았던 게 다행이군요.>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이것 봐요.>

나는 신경질이 나서 두 손을 허리에 얹었다.

<댁은 댁 엄마나 형이 바로 1분전까지, 자기와 같이 길을 가다가,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돌아보니 형이 시체가 되어 길바닥에 누워 있는데, 몇 초 몇 분에 당신이 쓰러졌다가 몇 초 몇 분에 일어나 탄식하고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달려갔는지 꼬박꼬박 기억할 건가요?>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경찰은 여전히 음침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사이비 종교집단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네?>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전국적인 규모의 비밀단체입니다. 가입자만도 수만 명에 이릅니다. 중독성이 워낙 강렬해서 한 번 빠지면 갱생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름도 없고, 리더가 누군지도 불분명하고, 조직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아직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방금 보여드린 사진은 그들의 제기죠.>

<제…… 뭐라고요?>

<제사 때에 쓰는 물건이라는 말입니다.>

<잠깐만요, 그러니까, 우리 언니가.>

나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사이비 종교집단에 빠져 있었다고요.>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뭘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여……>

<죽기 전에 언니가 주문이라도 외우더라는 말인가요?>

<입을 움직였습니다.>

<입을 움직여요?>

나는 그만 팔을 크게 움직이고 말았다. 나는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누구나 입은 움직이잖아요? 밥을 먹을 때도, 숨을 쉴 때도 입은 움직여요!>

<특이하고 규칙성 있게 움직입니다. 그놈들은 입을 사용해서 어떤 특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요.>

나는 입을 움직이던 사람을 돌아보았다. 내가 다시 가운데 앉아 있었던 사람을 돌아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해 본 겁니다. 연주 씨가 저런 행동에 반응하는지 알아 본 거지요.>

<시험 결과는요?>

그는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글쎄요. 분명치는 않군요.>

그야말로 분명치 않은 대답이었다.

<기독교 계열인가요?>

<아니, 완전히 신종단체예요. 신도들은 자신이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죠. 그 믿음이 워낙 강렬해서 갱생단체에서도 애를 먹습니다.>

<특별히 다르다면?>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경찰은 여전히 음침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초능력자죠.>

2

그가 그렇게 근엄한 인상만 하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고 어딘가에 숨어 있을 몰래카메라를 찾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바늘도 안 찔릴 정도로 진지했고, 나도 목구멍까지 나온 웃음을 집어 삼켜야 했다.

<그 신도들은 자신들이 초능력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이없는 일이군요.>

<어이없는 일이죠.>

경찰은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에게서 뭔가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이상한 점이요?>

<집에 유난히 늦게 들어온다든가, 이상한 친구들과 어울린다든가, 뭔가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하지는 않던가요?>

<언니는 야근 때문에 매일 늦게 들어왔어요.>

경찰은 주머니에서 수첩을 하나 꺼내어 힐끗 보더니 다시 집어넣었다.

<문화원 수위실에 물어보니 세연 씨는 늘 정시에 퇴근하셨다고 하더군요.>

나는 동작을 멈추었다.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는지 짐작 가는 곳은 없습니까?>

언니는 늘 내가 자고 있을 때에 들어왔다. 방을 더듬으며 내가 이불을 제대로 덮고 있는지 확인할 때쯤 나는 얼핏 잠을 깨곤 했다. 언니는 보통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그대로 내 옆에 누워 잠이 들었다. 내가 가끔 눈을 뜨고 언니를 보면, 행복한 듯이 미소 짓고 있는 언니의 얼굴이 달빛에 희미하게 보였다.

<가끔 늦게 올 때도 있었다는 말이에요.>

<매일 늦게 왔다고 하셨지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경찰은 더 얻어낼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더 추궁하지 않았다.

<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그렇게 말하면, 딱히…….>

내가 고개를 가로젓는 사이, 짧은 영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언니는 입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다. 뭔가를 먹지도 않는데도, 늘 밥상 앞에 앉아 입을 움직였다. 그럴 때면 늘 창문이나 문 밖을 내다보면서, 행복한 기분에 잠기는 듯 했다.

나는 잠시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다른 종류의 ‘이상한’ 것을 찾았다. 생각해 보니, 언니에게서 이상한 점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비가 몹시도 쏟아지던 날, 언니는 밤에 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가더니, 물이 개울처럼 흐르고 있는 길 가에 서서 배수로를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내가 우산을 쓰고 하품을 하며 뒤를 쫓아 나가자, 언니가 진흙탕에 시커멓게 빠져 있던 고양이를 들어 올리고는 환하게 웃으며 내 쪽을 보고 있었다.

<감이 좋은 사람이기는 했지요.>

<감이 좋았다.>

경찰은 그 말을 음미했다. 나는 말을 꺼내자마자 후회했다.

<감이 좋은 사람은 세상에 널렸어요.>

<하지만 그 놈들이 그런 점을 노려서 접근했을 가능성은 있지요. 네가 갖고 있는 것은 평범한 능력이 아니다. 너는 특별한 존재다. 다른 사람과 다른 능력을 갖고 있다.>

경찰은 집 안을 잠시 둘러보며 말했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그런 말에 잘 넘어가지요.>

나는 그 말을 잠깐 곱씹어 보다가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모욕감 때문이었다.

<증거도 없으면서 범죄자 취급을 하는군요.>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해 보는 것뿐이지요.>

경찰은 근엄하게 말했다.

<그들은 감정이 격해질수록 그 능력이 커진다고 믿고 있지요. 이를테면…… 연주 씨 같은 경우에요.>

나는 힐끗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람을 돌아보았다. 그는 내가 돌아보자, 갑자기 움직이고 있던 입을 다물었다.

<그때 했던 행동에 대해 여전히 기억나는 점이 없으십니까?>

나는 답답한 마음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기억을 짜 보려고 애써 보았지만, 죽어가던 언니의 모습, 움직여 보려고 했지만 다리가 굳어 움직일 수 없었던 것,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려고 애를 쓰던 언니의 마지막 순간만 떠오를 뿐이었다.

<나도 의심받고 있는 건가요?>

<형식상 질문하는 겁니다.>

<내가 그 난리 와중에, 무슨, 사교의 비밀주문이라도 외우고 있었냐고 묻는 건가요?>

<그렇게 믿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리 일이지요.>

나는 한참 동안 그를 마주보았다.

<만약에, 내가 초능력자라면…….>

내 손끝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정말로 그런 능력이 있다면…….>

나는 숨을 길게 내뱉었다.

<언니가 죽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예요.>

나는 두 손을 주먹을 쥐고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경찰은 처음으로 당황한 빛을 띠었다. 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들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갑자기 불편해진 자리를 부담스러워하며,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괜히 머리를 만지거나 손을 긁거나 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마침내 계속 내게 말하던 사람이 굳어진 몸을 뒤척이며 말했다.

<오늘은 이만 가 보지요.>

<야근을 한 게 아니었다니 충격이야.>

나는 쓰레기더미와 함께 바닥에 널브러진 채 중얼거렸다.

<남자가 있었으면 나한테 말을 했어야지. 어쩐지 일한 것 치고는 기분 좋은 얼굴로 돌아온다 했어.>

패치는 입을 벌리며 대꾸했다.

(밥 더 줘! 배고파!)

기분전환이라도 해 보려고 지껄인 말이었지만, 오히려 나를 더 우울하게 했을 뿐이었다. 언니가 괴상한 사이비 종교에 심취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보다, 언니가 내게 뭔가 감추고 있었다는 것, 그 사실이 언니가 죽은 뒤에야 엉뚱한 사람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못내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밥 내놔!)

패치는 내 뺨에 솜털 투성이의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지껄였다.

<가만히 좀 있어 봐. 지금 그럴 상황이 아냐.>

나는 교통사고 이후로 나를 찾아왔던 온갖 단체들을 떠올렸다. 그 중에 반은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물어보지 않았다. 오늘처럼.

친구들.

나는 발가락으로 바닥을 기며 배를 축으로 한 바퀴 돌았다. 손끝에 신문 상자가 만져졌다. 나는 손을 뻗어 신문 상자 속에 넣어 두었던 발신인 불명의 편지를 꺼내었다. 하필 이 괴상한 편지는 이런 싱숭생숭한 날 왔는지 모를 일이다.

세연 씨에게.
당신은 이미 받아볼 수 없겠지만, 약속한 바가 있으니 이것을 전해드립니다.
당신의 친구들로부터.

‘당신의 친구들로부터’
‘약속한 바가 있으니’
‘이미 받아볼 수 없겠지만’
‘세연 씨에게.’

나는 모든 문장마다 의문을 가지며 메시지에 숨겨져 있는 내용을 해독하기 위해 잘 안 돌아가는 머리를 굴리며 카드를 내려다보았다. 자세히 보니, 마분지가 접혀진 안쪽 가운데에 작은 금속조각이 하나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뜯어보려고 했지만, 워낙 단단하게 붙어 있어 잘 떼어지지 않았다. 나는 금속조각을 옆에서 보고 불빛에 비추어보면서 조사했지만, 무엇인지 알아 낼 수가 없었다. 무늬도 없는 그저 평범한 금속일 뿐이었다(내가 보기에는 그랬다는 말이다.).

*

다음날, 집에 돌아온 나는 무의식적으로 우편함에 손을 넣었다. 우편함 안에는 피자집 스티커와 분식집 스티커가 하나씩 더 들어 있었다. 스티커를 아무렇게나 주머니 속에 넣던 내 머릿속에, 섬광처럼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집으로 올라간 나는 (오늘은 일찍 왔네?)하고 있는 패치를 내버려두고 쓰레기통을 뒤집어엎었다. 집에 들어앉아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쓰레기통 안에 있는 것은 구겨진 전단지와 스티커뿐이었다.

나는 스티커를 바닥에 늘어놓았다. 피자집과 치킨 집과 슈퍼가 가게별로 하나 둘씩 있었고, 근처에 있는 분식집이 네 개쯤 있었다. 나는 아까 카드와 함께 들어 있던 그 술집 스티커들을 내려다보았다. 모두 열두 개였다.

‘호프 자주잠자리, 칵테일 전문점.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신비한 공간으로 안내합니다. 167번지.’

나는 스티커를 들고 앞뒤로 살폈다. 섹시한 여자사진도 없었고, 야식을 판다는 광고도 없었다.

나는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 다른 방 우편함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분식집과 밥집 스티커가 집마다 한 더미 떨어질 정도로 들어 있었지만, 칵테일 집 스티커가 들어 있는 우편함은 없었다.

스티커 뒷면에는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3

나는 빼곡히 들어서 있는 집 사이의 좁은 골목을 지나갔다. 땅값이 점점 오르는 바람에, 이 마을의 집의 모양은 평수는 좁고 위로는 3, 4층씩 높이 올라간 장난감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집들은 모두 벽과 벽을 붙인 채 한 줄로 이어져 있었다.

오랜 옛날, 큰 전쟁이 일어난 뒤에, 바다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큰 해일이 일어나 해안마을을 온통 삼켜 버렸다고 했다. 온 도시를 거미줄처럼 가로지르는 운하가 생겨난 것도 그때쯤이라고 한다.

나는 두 개의 다리를 건너고 집과 집 사이를 빠져나가,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계단을 올라갔다.

호프 자주잠자리의 문은 건물과 건물 사이의 안으로 조금 들어간 곳에 위치해 있었다. 간판은 작게 문 위에 붙어 있었는데, 너무 작아서 바로 코앞에서도 간판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

조금쯤은 각오를 하고 들어갔지만, 별다른 이상한 점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하긴, 뭘 기대했는지 모를 일이다. 칵테일 바에 간 것은 처음이었지만, 내 눈에는 그저 보통 술집처럼 보였다. 스무 명이 앉으면 좌석이 모두 찰 정도로 작은 가게였고, 탁자와 의자도 수수한 편이었다.

기둥과 서까래도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벽은 수수한 크림색으로 칠해져 있었는데, 묘하게 아늑한 분위기를 풍겼다. 구석에 앉을 작정이었지만 딱히 빈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바에 자리를 잡았다.

<어서 오세요.>

꽃무늬의 티셔츠를 입고 칵테일을 돌리고 있던 바텐더가 인사를 했다.

<처음 오신 분이군요.>

이상한 점. 이 주인은 손님의 얼굴을 다 외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메뉴판을 열어본 나는 조금 기가 죽었다. 메뉴판에 쓰여 있는 칵테일 이름들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아무 거나 골라서 읽자, 그는 그 긴 이름을 다시 되풀이해서 말해 준 뒤 물러갔다.

나는 내가 엉뚱한 것을 시킨 것이 아닌지 조마조마해 했지만, 다행히 빨간색의 평범해 보이는 칵테일이 배달되어 왔다. 나는 한 모금 입에 대고는 그만두었다.

나는 술집 안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런 눈으로 봐서 그런지, 그곳은 뭔가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뭔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듯, 자기만의 세계에 심취한 듯, 턱을 괴거나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어쩐지 서로 알고 있는 사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단골손님이 꽤 많은 집인 것 같았다.

술집 안을 둘러보던 내 눈이 어떤 사람에게 가 멈추었다. 특별히 시선을 끌만한 사람도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한참 동안 그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20세에서 22, 3세 정도쯤 보이는 남자였고, 짧은 머리에 넥타이를 매지 않은 회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혼자인 것 같았는데,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지도 않으면서 꽤 즐거워 보였다. 그 사람은 가끔 고개를 까닥거리거나, 발바닥으로 바닥을 치면서 혼자 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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