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집

  • 장르: 호러 | 태그: #호러 #흉가 #외딴집
  • 평점×25 | 분량: 145매
  • 소개: 가문의 저주가 깃든 외딴 집, 죽으려고 결심한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면 어떨까? 과거에도 저주 받은 채로 존재했고 현재에는 없으되 있는 그 집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더보기

외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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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어제 죽었다. 아니, 죽었어야 했다. 빛 한 줌 들지 않는 방 안에서 눈을 뜨기 전까지 죽었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평온했다. 목을 더듬자 노끈과 끈으로 조였던 자국이 만져진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낡은 외양과 달리 깔끔한 내부에 여전히 남아 있는 대들보에 노끈을 단단히 매달았다. 어설프게나마 목 들어갈 구멍도 남겨두고 세 번쯤 노끈을 목에 감고 미리 준비해 온 미니 사다리를 발로 걷어찬 순간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숨이 쉬어지질 않아 노끈을 움켜쥐고 버둥거렸다. 온 몸으로 절규하다가 의식을 잃었을 때 툭 끊어진 게 정신줄이 아니라 노끈이었나. 먼지 더께가 한 뼘은 될 만큼 지저분한 바닥에서 눈을 떴다. 싯누런 장판은 귀퉁이부터 삭아서 거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고,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에는 두툼한 먼지 덩어리와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머리카락 뭉치만이 가득했다.

– 분명 깔끔했는데.

툭 내뱉어진 혼잣말에 흠칫 놀랐다. 거의 남지 않은 창호지 사이로 훤히 안이 들여 보이는 이곳 문을 열었을 때 바닥은 분명 물걸레 청소라도 한 듯 말끔했다. 혹시나 해서 핸드폰 뒷면 후레쉬로 비춰보기까지 했으니 분명했다. 애당초 오후 3시여서 볕이 뜨끈하게 들 시간이기도 했다.

– 이게 원래 있었나.

하나 이상한 건 벽면에 전면 거울이 하나 붙어 있다는 거다. 사면이 회백색 회벽이어서 무서우면서도 아늑했던 거 같은데 기억이 틀렸나. 순간이었지만 머리로 피가 안 통한 탓인지 관자놀이가 지끈거려서 검지로 꾹꾹 눌렀다. 다시 죽기엔 맥이 빠졌다. 툭 끊어져 동강난 노끈이 제 기능을 할리도 없어서 방문을 열고 저 멀리 휘영청 떠 있는 보름달을 바라봤다.

– 참, 둥글기도 하다.

뉴스에서 슈퍼문이 떴다고 떠들어댈 때마다 바빠서 밖을 보지도 못했는데 슈퍼문이라도 되는 걸까 크고 둥글고, 무엇보다 예뻤다. 오른쪽 귀퉁이가 붉게 물든 것 같기도 하고… 달을 바라보며 목을 쥐고 잔기침을 거듭했다.

습관처럼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찾다가 멈칫했다. 전화나 문자가 온다면 반길 만한 일은 아닐 테고, 시간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계약직이었을망정 1년씩 계약을 갱신하며 4년 일한 직장에서 단칼에 잘린 지도 29일째였다. 엑셀로 이벤트 참가인원이나 참가 내용을 취합하여 마케터에게 전달하거나, 마케팅 부서와 영업 부서에서 쓴 법인 카드 지출 내역을 받아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따위의 사무보조 일이 전부였다. 야근을 할 때면 뭐 그런 일로 야근하냐는 눈총을 받기 일쑤였지만, 인원은 많고 할 사람은 하나뿐이라 어쩔 수 없었다.

5평 남짓 좁은 방이었지만 서울에, 그것도 지상에 방 한 칸 마련했다는 게 좋아서 월급을 탈 때마다 소소하게 꾸몄던 원룸에서도 다음 달이면 쫓겨날 위기였다. 집주인 딸이 서울로 취직한 탓에 딸 방으로 내줘야 한다는 이야기였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35만원, 전기세와 가스비는 별도긴 하지만 수도세를 포함한 관리비 7만원이 4년째 동결이었는데 집주인이 올리려고 전화할 때마다 우는 소리를 해댔으니 쫓아낼 방법은 그 수밖에 없었을 테다. 듣기로 빌라 건물만 3채를 갖고 있다는 집주인이 언덕을 헉헉거리며 걸어 올라와야만 겨우 있는 봉천동 빌라 1층 집 자그마한 월세 방을 딸에게 내어줄리 없지 않나. 직장 잘리고 한 달 가까이 구직활동 하느라 지원서만 40곳은 넣어봤는데 서류 통과되는 곳 하나 없었다.

– 죽으라는 거겠지.

한숨 쉬며 습관처럼 오른쪽 주머니를 뒤지다가 참았다. 죽을 작정 하느라고 추파춥스도 사질 않았다. 동생이 안 먹겠다고 짜증낸 덕에 겨우 손에 쥐어진 딸기우유맛 추파춥스는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습관처럼 찾게 되는 간식거리였다. 돈 아끼느라 담배도, 술도 배우지 못한 내게 딸기우유맛 추파춥스는 그 단맛이 혀에 전해질 때만은 생을 잊게 하는 보물 같은 거였다.

오래도록 버려진 집 특유의 냉기가 엉덩이로 전해지자 추워서 온 몸을 옹송그렸다. 전면 거울로 웅크린 몰골이 그대로 비춰보였다. 머리숱이 작아서 생기 없이 축 늘어진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어주던 머리 끈도 난리통에 끊어진 모양이었다. 귀신마냥 어깨까지 산발로 늘어진 머리카락을 애써 정돈하여 귀 뒤로 넘겼다. 립스틱을 바르지 않으면 아파보일 만큼 회색으로 질려 있는 입술과 개구리처럼 툭 튀어나온 큰 눈, 앞 광대가 툭 튀어나와 더 비쩍 말라 보이는 얼굴을 낯선 사람 보듯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만약 누군가에게 발견된다면 좀 더 깔끔하게 보이고 싶어서 가진 것 중에 가장 비싼 청바지와 아이보리색 목폴라 티셔츠를 입고 온 터였다.

– 신발은 어디로 갔을까.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