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 병원에 소속된 모든 사물에는 마치 명찰처럼 이 냄새가 붙어 다녔다. 종합병원의 페인트, 병원 이름이 세로로 새겨진 환자복, 짙은 녹색의 수술 가운, 벽을 타고 올라오는 곰팡이 들은 이미 태초의 체취를 잊은 지 오래였다.
좁은 복도나 좁은 수술실, 작은 창문……. 소독약 냄새는 빠져나올 구멍을 찾다가 결국 출구를 찾지 못하고 그렇게, 틈바구니에 달라붙어 미라가 되어 버린 걸까?
어쨌든 나는 도무지 이 냄새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코를 킁킁거리며 수술 가운을 벗어 세탁물 통에 던져 넣었다. 맨살을 스치는 싸늘한 공기, 소름 돋는 한기에 나는 빨리 셔츠를 걸쳐 입어 몸을 가렸다.
오랜 수술에 지친 의사들이 수술 대기실의 찢어진 소파 위에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한땐 나도 그들의 시체 놀이에 합류했지만, 요즘엔 그럴 여유가 없다. 최근 생긴 새 취미 때문이다.
가운을 입으며 슬쩍 눈을 돌리니 캐비닛 안쪽 구석에 넣어 둔 ‘캠코더’가 보였다. 작고 아담한 사이즈의 디지털 캠코더는 최근에 주인을 ‘나’로 바꿨다. 새 주인인 나는 마치 분신처럼 이 캠코더를 몸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하지만 병원의 심장부인 수술실만큼은 내 새로운 취미를 용납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내가 수술실에 있는 동안 캠코더는 이 캐비닛 안에서 잠시 기다려야 했다. 수술하는 동안에도 불안감 때문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머리 피부를 벗겨내는 동안에도 뒤를 흘끔거렸다. 교수는 손을 멈추고, 나를 따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고는 미친놈 보듯이 나를 쳐다봤다. 마스크로 가려진 입에선 분명히 ‘미친놈’이란 단어가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상관없다. 나의 불안과 초조함은 교수의 분노를 훨씬 넘어서니까.
가운을 입자마자 캠코더의 전원을 올렸다. 3초 정도 지나 작은 액정 모니터에 수술 대기실의 모습이 나타났다. 나는 이리저리 돌려가며 주위를 살폈다. 화면은 수술 대기실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숨을 크게 내뱉으며 불안 때문에 조금 높아졌던 혈압을 진정시켰다. 캠코더의 전원 버튼을 누르자, 조그만 디지털 기계는 생명을 잃었다. 금속성 표면을 어루만지며 나는 해성의 웃음소리를 떠올렸다.
“형……. 나 조금 아파.”
투명할 정도로 파리한 느낌의 아이는 고통과 근심을 참으려는 모습 때문에 더 안쓰러웠다.
*
1개월 전.
나는 해성이라는 이름의 아이를 만났다. 해성은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해야 할 나이였다. 입학 철이 다가오고 있었고, 또래 아이들은 처음 만나는 학교라는 공동체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로 가슴이 설렐 무렵이었다. 하지만 해성은 그러지 못했다.
두정엽에서 시작된 해성의 암은 이미 전이가 시작된 상태였다. 해성의 아버지는 해성이 단지 정신병에 걸렸다고 생각해 아이를 정신과에 입원시켰고, 정신과 의사들도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정신과 의사들은 ‘원래 정신 질환이 있었고, 암은 후에 발생한 것’이라고 해성의 아버지에게 설명했다. 해성이 발작으로 쓰러지고 머릿속 사진을 처음 찍던 날, 나는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처음 일을 시작했다.
방사선실로 침대를 옮기던 도중, 해성이 정신을 차렸다.
“형, 나……. 조금 아파.”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일이 스트레스를 만들어 냈고, 스트레스가 피로를 만들어 어깨를 누르던 때였다. 지금 끌고 가는 환자의 병에 대한 카테고리를 머릿속에서 만들어 보느라 정신없던 때이기도 했다.
분명 눈을 깜박인 기억은 없는데, 해성의 한마디에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스포이트로 안약을 한 방울 넣은 것처럼. 어쩌면 표정이 미세하게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민감한 감수성으로만 볼 수 있을 만큼.
그때 나는 처음으로 신에게 빌었다. 내가 맡게 된 첫 환자가 제발 살아날 수 있기를.
방사선실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면서 해성과 대화를 나눴다. 어린아이와 대화를 오래 나눈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아이의 미래를 생각했다. 몸뚱이는 점점 커질 것이고, 굵은 수염이 부끄럽게 자라날 것이다. 성장을 알리는 여드름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여자를 만나 사랑이란 것을 경험하고.
방사선 기사가 침대를 커다란 기계 쪽으로 끌고 가자, 해성은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브이 자를 만들었다.
사진을 촬영하는 도중에, 정신과 간호사 한 명이 캠코더를 들고 나타났다.
“해성이는 캠코더를 안 갖고 있으면 불안해해요. 이것 전해 주세요.”
나는 캠코더를 받아 들어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
코끝을 톡 쏘는 불쾌감, 여전히 병원이었다. 현실의 냄새가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제 해성이는 세상에 없다.’
수술 병동에선 특히 소독약 냄새가 진했다. 후각이 마비되어 더 이상 냄새를 못 맡게 될 것 같았지만, 냄새는 후각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다. 온몸의 피부 신경들이 냄새를 받아들였다. 작은 땀구멍 하나하나가 냄새 분자를 걸러내, 가장 불쾌한 부분만 당겨 삼키는 듯싶었다.
그래도 환자들은 이 병원을 찾아 들어왔다. 강원도에 몇 곳 안되는 종합병원 가운데 하나였기에 환자들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환자들에게는 공개 안 되는 사항, 수술 중 사망 통계라든가 입원 중 사망 통계에선 꽤 높은 수치를 보이는 곳이었다.
하지만 병원은 계속 환자들을 꾸역꾸역 삼켰다. 주름지고 검게 탄 얼굴의 사람들은 태양을 보며 일하다 병원의 형광등 아래서 삶을 마감했다.
나는 신경외과 병동으로 가는 중에 환자 전용 엘리베이터를 탔다. 사람 두세 명과 환자용 침대 하나 들어갈 정도 크기의 엘리베이터는 꽤 밀폐된 느낌을 주었다. 낮은 천장 때문인 것 같기도 했고, 천정의 튀어나온 금속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주머니의 볼록 나온 부분을 어루만지다 손을 넣어 캠코더를 꺼냈다. 우선 엘리베이터 구석구석을 훔쳐보듯이 마음을 놓은 후 캠코더를 꺼냈다. 스위치를 올리고 액정을 통해 다시 엘리베이터를 살폈다.
이상한 부분은 없었다. 느릿느릿 이동하는 엘리베이터는 어느새 7층, 신경외과 병동에 닿았다. 문이 열리기 전에 캠코더 전원을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
*
“이미 많이 전이되어 있습니다.”
내 목소리는 병원 복도에 허무하게 흩어졌다. 해성의 아버지에게 해성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보이지 않는 작은 핀셋이 신경 하나하나를 잡아 뜯는 느낌이었다. 해성 아버지의 비참한 표정이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평생 궂은일만 했을 것 같은 이 남자는 작고 굽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남자를 데리고 당직실로 들어갔다. 남자는 의자에 벌 받는 아이처럼 다리를 모으고 앉았다. 나는 벽에 기대어 있던 접의자를 펴고 남자 앞에 앉았다.
“수술은 힘들 것 같습니다. 먼저 눈이 안 보이게 될 수도 있어요.”
해성의 예후는 나쁜 것밖엔 없었다. 과연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지도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남자를 진정시켜야겠다는 생각에 화제를 돌려 보았다.
“해성이 어머니는 안 오셨습니까?”
남자는 눈을 끔벅끔벅하다가 눈 주위를 누런 소매로 닦았다. 잔주름이 거미줄처럼 눈가를 뒤덮고 있었지만, 아들과 마찬가지로 눈이 크고 맑아 보였다. 한숨을 뱉은 다음에야 남자는 입을 열었다.
“죽었어요.”
남자의 목소리는 모아 앉은 다리만큼이나 겸손했다.
“같이 일을 했는데, 차에 치었어요. 뺑소니 사고로……. 해성이가 갓난아기 때였어요. 그래도 해성이 때문에 살 만했지요. 선생님도 알잖아요. 해성이 하는 짓이 얼마나 예쁜지. 그러다 머리에 이상이 생겼어요. 사람들이 정신과에 가 보라고 그랬거든요. 일 하느라 잘 돌봐 주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병은 고쳐 주어야겠다 싶어서요. 병원비가 꽤 비싸기는 하지만요.”
힘없이 내뱉는 남자의 숨 속에 절망이 묻어났다.
나는 말했다.
“어쩌죠……?”
해성의 상태에 대해 길게 말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건 짧은 물음으로 끝났다. 혼자 남게 될 남자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고문에 가까운 일이었다.
트럭을 몰고 다니며 과일 장사를 한다는 이 남자는, 이제 집에 들어오면 긴 정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텔레비전 소리가 아무리 시끄럽더라도 상자 속 사람들은 그들만의 대화에 분주할 뿐, 남자의 존재에는 관심조차 없다. 나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마음을 가다듬고 준비한 얘기를 꺼냈다.
“해성이는……. 수술로 살릴 수 없습니다. 확실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한 달이 채 안 남은 것 같습니다.”
남자는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젠 병원에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퇴원시키고 집에서 임종을 맞게 하는 편이…….”
남자의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러나왔고, 남자는 훌쩍거리며 그걸 소매로 닦아 냈다. 남자는 얼이 빠진 듯 아무것도 없는 하얀 벽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해성이한테 해 준 것이 없어요. 그런데 썰렁한 방에서 혼자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어요……. 여긴 사람들도 있고……. 아프면 진통 주사 같은 것도 놓을 수 있잖아요…….”
남자는 내 가운 소매를 잡았다.
“해성이를 병원에서 내보내지 마세요. 선생님…….”
*
“선생님, 선생님?”
해성 아버지의 목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신경외과 간호사실 앞. 인조인간이라는 별명이 붙은 윤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얼음장처럼 굳은 얼굴로.
나는 캠코더를 떠올렸다. 가운 주머니가 묵직하게 차 있는 느낌. 캠코더가 여전히 있어야 할 곳에 있음을 확인하자 마음이 놓였다. 나는 태연한 척하느라 귓불을 손으로 만지다 머리를 한번 쓸었다.
“오후에 수술한 환자 있죠? 704호 최명자 씨. 상태는 어때요?”
윤 간호사는 대답 없이 수북이 싸여 있는 차트 더미에서 하나를 꺼내 열었다. 차트를 넘기고 아래위로 눈을 움직이며 살피는 것이 영락없이 모터로 돌아가는 로봇 같았다. 그녀가 손을 멈추고 다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회복실에서 돌아온 후 깨어나신 지 얼마 안 되었고요. 조금 전에 진통 주사 하나 놓았고요.”
손을 내밀자, 윤 간호사는 차트를 접어 내 손에 넘겼다. 알겠습니다라고 짧은 말을 던진 후 복도를 걸었다. 뒤를 힐끔 보자 여전히 윤 간호사의 눈빛이 내 등에 꽂혀 있었다.
나는 그것이 경계의 의미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취하는 눈빛이다. 704호에 들어가기 전에 캠코더를 켜고 주위를 살폈다.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한 후, 주머니에 넣었다. 내 행동을 아무도 못 본 것 같았다.
“선상님, 오셨어요?”
56세인 최명자 씨는 반가움과 피로가 섞인 목소리를 냈다. 주름과 얼룩덜룩한 피부가 오랜 기간 흙과 함께 호흡하며 일궈 온 그녀의 인생을 말없이 대변한다.
차트를 침대 구석에 놓고 보호자용 의자를 당겨 앉았다.
“좀 괜찮으세요?”
“아이고, 죽다 살아났어요. 아파 죽는 줄 알았네. 지금도 머리가 띵해요. 이거 언제쯤 낫죠?”
나는 환자 쪽으로 몸을 숙여 머리를 감은 붕대를 살폈다. 피가 배어나고 있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금방 나아요.” 하고 말하며 최명자 씨의 가는 팔목에 손을 올렸다. 얇은 피부에선 탄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으면 최명자 씨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대학교 2학년일 때 돌아가셨다. 말수가 적으셨던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도 조용히 돌아가셨다. 도서관에서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당황과 절망이 섞인 아버지의 목소리에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이미 숨이 멎어 있었다. 선천적으로 약한 뇌혈관이 말썽을 일으킨 것이었다. 나는 신경외과 의사가 보여 주는 어머니의 뇌 사진을 보면서, 신경외과 의사가 될 것을 결심했다. 최명자 씨는 붕대 감은 부위를 한 손으로 톡톡 건드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혈압 약 잘 드셨어야죠.”
“그게 말처럼 되나? 늙어서 그런지 아침 챙겨 먹는 것도 귀찮네. 영감만 없었어도 아침 안 먹었지.”
“영감님 없었으면 큰일 나셨을 거예요. 빨리 발견해서 수술한 덕에 이 정도로 막은 거죠. 나중에 퇴원하시면 영감님 맛있는 것 좀 사 드리세요.”
“영감은 고구마만 있으면 끝이야.”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병실에 퍼졌다. 나는 같이 웃다가 최명자 씨의 어깨를 잡으며 웃음을 진정시켰다. 수술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웃음은 혈압을 올라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최명자 씨의 팔을 살짝 꼬집으며 감각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다. 차트에 하나하나 기록을 하는 도중에도 환자는 농담 섞인 말을 하며 낄낄거렸다.
*
해성의 상태를 살피는 도중에도 해성의 아버지는 내게 농담을 던졌다. 나는 그에게서 어떤 낙천성을 발견했다. 삶은 절망적이고 어두운 터널은 끝날 줄을 몰랐지만, 그는 언젠가 행복한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선생님……. 신경외과 쪽은 분위기가 좀 그러네요.”
남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다.
“정신병동은 그래도 사람들이 힘차게 걸어 다니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남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웃긴 표정을 만들어 냈다.
“아무래도 신경에 손상이 오면 정상적으로 행동하기 힘들어지거든요. 그래서 누워 계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래요.”
밤이 늦어서 그런지, 해성은 우리의 대화 소리에도 깨어나지 않았다. 남자는 해성의 이마에 손을 올려 머리카락을 쓸어 주었다.
“이 애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나 봐요.”
나는 차트를 덮고 남자의 말을 경청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 추위를 피하기엔, 남자의 싸구려 점퍼는 너무 얇아 보였다.
“해성이 이모가 서울에서 간호사로 일하거든요. 어느 날 병원에 놀러 갔더니 이모가 캠코더를 준 거예요. 어려서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잘 모를 텐데, 하루 종일 기계를 붙잡고 있었더랬죠. 이 사람도 찍고 저 사람도 찍고. 제 엄마한테 못 받은 정을 그렇게 메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열심히…….”
“해성이가 찍은 걸 보셨나요?”
남자는 팔을 휘휘 저었다.
“아뇨. 가끔 해성이가 보여 주긴 했는데, 화면이 너무 작아서 눈도 아프고……. 게다가 기계는 너무 어려워서요.”
짧은 대화였지만, 안타까움에 가슴이 저렸다. 702호를 나오면서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간호사실에서 다음 날 수술 스케줄을 조정하고 있는 도중에, 병실에서 소란이 일었다. 해성이의 병실에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퍼지고 있었다.
“야, 이 미친놈아!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우리 엄마를 저 지경으로 만들었어? 어? 말을 해 봐!”
여자의 손이 해성의 뺨을 치고 지나갔다. 해성은 울음을 터트렸지만, 손에서 캠코더를 놓지 않았다.
남자는 해성과 여자 사이로 끼어 들어가 넙죽 엎드렸다.
“죄송합니다. 그쪽 어머니가 그렇게 된 건 해성이 때문이 아니에요. 그냥……. 얘가 사람 찍는 것을 좋아해서……. 제발 때리지 말아 주세요…….”
갑작스러운 소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사람들 틈을 헤집고 들어갔다. 해성 아버지의 어깨를 잡아 일으켜 세우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대답은 여자의 입에서 나왔다.
“이 아이가 캠코더를 들이대면 사람이 아파요. 귀신이 붙은 아이란 말이에요! 오늘 밤에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수술받고 나서는 멀쩡했는데…….”
나는 여자의 어깨를 살짝 잡아당기며 나가서 얘기하자고 달랬다. 여자는 순순히 복도로 나왔고, 모여든 사람들도 하나 둘 제자리를 찾아갔다. 복도 한쪽 구석에서 여자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 아이가 촬영을 하면……. 사람이 죽어요.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어요. 여기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단 말이에요!”
화장기 짙은 여자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미 한참 울고 온 사람 같았다. 조금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었다.
나는 창밖을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여자의 머릿속엔 이상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설득이 잘 먹혀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책임을 지우는 건 좀 그런 것 같습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저 아이는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죽기 전까지는 편히 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여자는 손등으로 말없이 눈물을 훔쳤다. 여자가 돌아간 후, 나는 해성의 병실로 향했다. 불행한 사람들끼리 다투는 것은 불행을 더욱 키울 뿐이다. 하지만 병원의 짙고 무거운 공기는 그런 불행을 조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병실에 불이 꺼져 있었다. 사람들은 침대 위에서 뒤척이며 잠에 빠져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발소리가 안 나게 걸어가 해성의 침대 옆에 섰다. 해성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편안한 얼굴로 잠을 자고 있었다.
옆에 있는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쪼그린 자세로 해성 아버지가 누워 있다. 하루 종일 그를 공격했던 피로와 추위가 그를 무의식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그들의 숨소리를 듣다가 병실을 나왔다.
*
최명자 씨와 얘기를 하는 동안에도 벌게진 얼굴의 해성이 떠올라 대화를 방해했다. 최명자 씨는 내가 많이 피곤해 보인다고 말하면서 과일 음료수 한 병을 건넸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704호를 나와 화장실로 갔다.
빛바랜 타일과 천장의 얼룩이 병원의 나이를 말해 준다. 이 화장실에서 두 명이 자살 시도를 했고, 그중 한 명이 죽었다. 핏자국이 DNA처럼 바닥 한구석에 새겨져 있다. 캠코더를 꺼내 전원을 켠 다음 화면으로 화장실을 살폈다. 지나가는 환자 한 명이 눈을 찌푸리며 쳐다보았다.
나는 전원을 내리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누렇게 오줌 때가 묻은 소변기. 아랫배 쪽의 긴장이 풀리면서 방광을 채우고 있던 액체가 빠져나갔다. 암모니아 냄새가 피어 올라왔지만, 후각은 금방 마비되어 견딜 만했다.
지퍼를 올리고 세면대 앞으로 가서 거울을 보았다. 병원에 들어온 후 피부가 많이 상했다. 살도 많이 빠져서 거의 10킬로그램 가까이 줄었다. 아버지는 내게 미라 같다고 말했다.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을 두 손으로 받아 얼굴을 문질렀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고, 잠은 언제나 부족했다.
내일 수술할 환자의 혈압이 떨어지는 바람에 마취과에선 수술 승인을 내지 않았다. 밤이 새기 전에 내과의 협진이 꼭 필요했다.
인기척이 일어 뒤를 바라보았다. 화장실 한쪽으로 올라오는 금속 파이프들이 소리를 내고 있을 뿐 사람은 없었다.
*
해성이 여자에게 맞은 다음 날,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 내게 해성이 다가왔다.
“형, 형, 시원해?”
해성은 캠코더로 내 모습을 찍고 있었다. 난 헐크 흉내를 냈고, 해성은 이가 다 보이도록 활짝 웃었다. 정신과에서 넘겨받은 자료에선 해성을 소아기 발병 정신분열증으로 진단하고 있었다.
외부의 자극에 쉽게 반응하지 않고, 정신의 울타리 밖을 나오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신과 의사는 해성이 캠코더를 통해서만 외부와 소통하려 한다고 적어 놓았다.
하지만 내 눈엔 그냥 보통의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뇌에 생긴 질병 때문에 행동이 위축되었을 뿐, 여느 아이와 다른 점이 없는 것 같았다.
정신병동의 간호사에게 해성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간호사조차 해성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캠코더로 자신을 찍는 게 무섭다고, 그리고 다른 환자들도 무서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성은 고립되고 있었다.
다리를 굽히고 해성의 어깨를 끌어당겨 안았다. 팔 안에 들어온 체구는 보이는 것보다 더 작았다.
“형, 형.”
해성은 몸을 흔들었다. ‘급하게 얘기할 것이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팔을 풀어 주자 해성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자신의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주머니에서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것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병원에 입원한 어린아이들 주머니에는 응당 그런 것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해성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숫자를 적은 종이 쪼가리였다.
“이게 뭐니?”
해성은 대답하지 않고 기대감에 가득 찬 눈빛을 한 채 종이를 넘겨주었다. 종이에는 ‘604호’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다시 뭐냐고 물었다. 해성은 웃음만 입에 가득 물고 있었다.
‘거기에 가 봐. 초콜릿이 가득 차 있어.’
나는 해성이 준 쪽지의 의미를 그렇게 풀이했다.
*
그날 밤, 방송 소리에 6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604호, 어레스트(arrest)!”
정형외과 병동은 시끌시끌했다. 먼저 뛰어온 의사들이 응급처치를 시작하고 있었다. 한 의사는 호흡 마스크를 환자의 입에 대고 주물렀고, 다른 의사는 두 손을 겹쳐 가슴을 꾹꾹 눌렀다. 환자 보호자로 보이는 여자는 죽음 앞에 선 인디언처럼 비장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곧 심실 제세동기가 도착했고, 충전되는 소리 뒤에 퉁 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환자의 맥박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죽었어. 죽었어. 소용없어.”
옆쪽에 서 있던 할머니가 링거 병을 붙잡은 채, 염불 외듯 중얼거렸다.
*
해성을 다시 만난 곳은 1층 로비 앞 화단이었다. 나는 교수님들과 점심 식사 약속을 한 대학교 지하 식당으로 급히 걷는 중이었다. 동그란 화단 안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해성은 마치 화단의 일부분처럼 보였다.
“뭐 하니?”
내 말에 해성은 반응하지 않았다. 아이는 캠코더 화면에 눈을 붙이다시피 하고 무언가를 찍고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관리인이 있는지 확인했다. 화단 가장자리를 둘러싼 작은 나무를 넘어 화단 안의 흙을 밟았다. 축축한 흙이 구두에 눌려 천천히 침식했다.
“뭐 해?”
나는 해성의 옆에 쭈그려 앉았다. 해성은 수풀 안쪽에 핀 꽃 한 송이를 찍고 있었다.
“꽃 좋아해?”
그제야 해성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해성의 웃음 속에 죽음의 공포 따윈 없었다.
“형, 형. 이거 예뻐.”
나는 해성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아, 참. 해성아. 어제 나한테 준 방 번호 있잖아. 그거 뭐야?”
정확한 대답을 들을 순 없겠지만, 조그만 힌트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해성은 또랑또랑한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방에서 초콜릿 찾았어?’라고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양 집게손가락으로 조그만 네모를 그리며 “종이, 종이.” 하고 말했다.
해성은 “아!” 하더니 캠코더를 흙 위에 놓고 일어서 자신의 주머니를 뒤적였다. 이번에도 종이를 꺼내 건네주었고, 종이 위에는 ‘809호’라는 삐뚤삐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이 방에 뭐 있니?”
해성은 헤헤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나는 방송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809호 어레스트!”
신경외과 간호사실에 있던 나는 계단을 뛰어 위층으로 올라갔다. 809호에는 간호사 한 명이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나는 환자 곁으로 달려가 동공과 호흡과 맥박을 체크했다. 간호사는 조금 전 아기를 낳고 올라온 환자라고 말했다. 이미 동공이 벌어졌고, 입가로 침이 흘러내렸다.
마스크를 입에 대고 꾹꾹 누르는 동안 다른 의사들이 도착했다. 아무래도 뇌혈관의 중요 부분이 양수로 막힌 것 같았다. 산부인과 레지던트는 벌게진 얼굴로 침대를 끌고 방사선실로 내려갔다.
결국 환자는 호흡이 멎었다. 아기의 생일날이 엄마의 제삿날이 된 것이다.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죽은 산모의 남편이 해성의 병실로 찾아왔다. 혼자서 캠코더를 만지며 놀던 해성은 남자의 손찌검을 뺨으로 받아야 했다.
그에게 산모의 죽음은 삶에 닥친 커다란 불행이자 감당하기 힘든 사건이었다. 그가 아내의 죽음이 캠코더를 든 아이 때문이라고 믿고 있는 한 해성은 책임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이성을 잃은 사람에겐 상관없었다. 분노를 풀 곳이 필요할 뿐이었다.
나는 겨우겨우 산모의 남편을 달래서 돌려보냈고, 해성은 방금 일어난 일을 잊은 듯이 캠코더를 만지작거리는 일에 집중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을 찍고 다니니?’
목구멍까지 넘어온 물음을 삼켰다. 맞은 자리가 아플 텐데 해성은 내색하지 않았다. 나는 간호사를 불러 얼음 팩이라도 대어 주라고 말했다. 간호사들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표정엔 본능적인 두려움까지 드러나 있었다.
*
손에 묻은 물을 툭툭 털어 내며 화장실을 나왔다. 시간은 10시가 넘었다.
아직 레지던트가 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일 처리가 미숙한 것이 당연했지만, 나는 그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열심히 하려고 해도 실수는 반복되었다. 위 연차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익숙해진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스테이션 앞으로 간호사 한 명이 진료 카트를 끌고 있었다. 간호사 중에서 어린 편이었고, 신경외과에 처음 온 내게 가장 먼저 따뜻한 말을 건넨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 양.
목덜미가 아파 왔다. 육체의 피로도 얼마간 쌓였겠지만, 정신적 피로가 더 컸다. 버릇처럼 캠코더의 전원을 올렸다. “삐빅” 하고 액정이 켜지면서 소리가 났다.
언제부턴가 하루에 스무 번도 더 듣는 소리가 되었다. 렌즈로 복도를 살피고, 스테이션 주위도 살폈다. 눈으로 보이는 것들과 똑같은 장면이 액정 화면에 나타났다. 나는 마약 중독자처럼 캠코더의 전원을 끌 때야 안심이 된 듯 숨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커피를 마셔야 할 것 같았다. 양복바지 주머니를 뒤적여 500원짜리 하나를 찾아냈다. 보고 있던 차트 위에 스테이플러를 올려 넘어가지 않게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복도의 중간에서 직각으로 들어간 부분에 있는 휴게실은, 어두운 복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밝았다. 휴게실에 흐르는 정적은 창밖의 어둠과 커다란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동전을 자판기에 넣으려다 멈추고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캠코더를 옷 위로 만지작거렸다.
‘내가 너무 민감한 거야.’
동전이 넘어가고, 자판기는 따뜻한 캔 커피를 뱉어 냈다. 커피가 목구멍을 지나는 동안, 해성과 나눈 마지막 대화가 떠올랐다.
*
저녁 햇빛이 휴게실에 사선을 만들어낼 무렵이었다. 해성이 음료수를 뽑고 있는 내 곁으로 다가왔다. 물론 한 손엔 캠코더가 들려 있었다. 햇빛 때문에 눈부신지 얼굴 전체를 찡그렸다. 나는 몸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며 말했다.
“음료수 마실래?”
해성은 음료수를 참 맛있게 마셨다. 아동용 음료수 광고에 나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채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햇빛은 창에 걸린 먼지를 도드라지게 만들었지만, 그 뒤의 모습은 멋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프진 않아?”
해성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해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캔을 입에서 떼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니?”
떨리는 내 목소리에 나 자신도 놀랐다. ‘나는 너를 의심하고 있어.’라는 말을 돌려서 얘기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사건은 어쩔 수 없이 해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원인과 결과를 잇는 연결 고리는 없었지만, 경험은 서서히 믿음을 자라나게 만드는 법이다.
“형. 형. 이거 맛있어.”
“해성아. 그 방 번호 어떻게 알았니?”
나는 해성의 눈이나 표정의 변화를 찾아내려고 했다. 죄책감이나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찾을 수 있길 바라면서. 그것으로 해성이 사람들을 다치게 만들었다는 간접적인 증거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해성의 얼굴에 변화는 없었다.
“나한테 뭐 줄 거 없니?”
해성은 캔을 내려놓고 약간 미소를 띤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해성은 결백하다.’
아니면 이런 천진난만한 얼굴을 할 수 없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해성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죽지 마…….”
내 입에서 눈물 같은 말이 떨어졌다. 해성은 내 허리를 꽉 잡아당겨 안았다.
“형. 형. 나, 형 좋아.”
어느새 해가 산허리로 숨어 버렸고, 창문을 뚫고 들어오던 햇빛은 자취를 감추었다. 호출기가 울자 해성은 손을 풀었다. 내가 호출 번호를 살피는 사이, 해성은 주머니를 뒤지고 있었다.
“해성아, 형 가볼게. 잘 놀고 있어. 멋있는 거 많이 찍고.”
일어서려는 내 소매를 해성이 잡았다. 구겨진 일회용 종이컵의 옆에 방 호수가 적혀 있었다. ‘702호’라는 글씨가 각막을 긁어 대는 것 같았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전에 수술했던 환자의 상태를 살피면서도 정신은 702호로 향해 있었다.
‘또 사람이 죽을까?’
“의사 양반, 어찌 정신이 빠진 것 같소.”
환자 보호자는 주름진 입을 오물거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수술했으면 상태 좀 잘 봐 줘야 할 것 아니오.”
백발에 삐쩍 마른 노인은 날카로운 성격이 눈매에 드러나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며 잠을 못 자서 그런다고 핑계를 댔다. 노인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스테이션에 돌아와 차트를 적는데, 간호사 한 명이 다가왔다.
“선생님, 정신과에서 온 아이 있잖아요. 그 아이랑 친하죠?”
“나름대로 친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왜요?”
“그 아이, 평판 많이 안 좋은 거 알죠? 같이 다니면 선생님까지 이미지 나빠져요. 선생님은 무섭지 않아요? 그 애가 캠코더 들고 들어간 병실은……. 어휴, 무서워라. 어떤 환자는 캠코더를 뺏어서 깨 버리겠다고.”
간호사의 눈에 ‘제발 누군가 빨리 캠코더를 부숴 줬으면’ 하는 바람이 드러났다.
“엊그제 산부인과 병동에서도 난리 났죠? 거기도 걔가 들어갔더래요.”
“그 환자는 양수색전증으로 죽었는데요.”
“몰라요. 어쨌든 걔가 그런 것 같아요. 만약에 내가 방에서 자고 있는데 아이가 캠코더 들고 들어오면 얼마나 무서울까요.”
간호사는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지 내 굳은 표정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얼마 못 살 아이라지만, 그렇게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것을 보면 정말…….”
내가 한 소리 하려는 찰나에 호출기가 소리를 질렀다. 올라오는 말을 꿀꺽 삼키고 전화기를 들어 신경외과 중환자실 번호를 눌렀다.
“네, 신경외과 김준혼데요.”
“신경외과 중환자실이에요. 선생님, 5번 침대 차재혁 환자요, 멘탈이 안 좋아요.”
나는 몇 마디 질문을 던진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호사는 자리를 뜨고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 다음 곧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당직 교수님과 선임 레지던트를 호출하고 수술 준비를 했다. 환자 뇌압을 낮추는 수술은 조용한 긴장감 속에서 진행되었다. 환자의 혈압을 정상으로 돌려놓았을 때, 시간은 저녁 10시를 지나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7층으로 돌아왔을 때, 윤 간호사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선생님, 해성이가 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