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으로 인해 수많은 직업이 사라지는 와중에도 소설가만큼은 살아남았다. AI가 생성한 문장으로는 독자의 감정을 미묘하게 조율해 공명시키며 심지어 작가조차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영역으로 그 감정의 파도를 끌어올리는 마법까지는 부릴 수 없었다. 활자와 잉크와 종이만으로 글이 완성될 수 없듯이 AI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글을 쓸 수 없다. 그리고 활자와 잉크와 종이 없이는 책을 만들 수 없었듯이 이제 AI 없이는 소설을 쓸 수 없다.
엄밀히 말하면 쓸 수는 있다. 하지만 AI의 도움 없이 글을 쓴다는 건 책을 만들기 위해 활자를 직접 새기는 것만큼이나 소모적이고 의미 없는 일이다. AI는 비싼 만큼 그 값을 한다. 그리고 비싸야 더 많은 값을 한다.
‘뮤즈’의 프리미엄 버전 체험 기간이 종료되었다. 김미선은 인공지능의 무차별 폭격에 맞서 살아남은 작가 중 하나다. 살아남았다기보다는 아직 목숨이 붙어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만 누가 뭐래도 미선은 그 귀하다는 전업 작가다. AI 툴을 끝까지 쓰지 않고 버티던 작가이기도 하다.
그런 미선조차 글쓰기 AI 프로그램인 뮤즈를 써 보고는 자신의 고집이 아집이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뮤즈는 작가의 의도를 최대한 존중하며 자신은 어디까지나 도움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인공지능이었다. 작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툴인 데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프리미엄 버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체험 기간 종료 후 미선이 플롯 자동 생성기를 돌리자 맨 위의 세 개를 제외한 나머지 리스트는 흐리게 블러 처리되고 ‘프리미엄’이라는 붉은색 태그가 붙었다.
[27-1] 서현과의 대화를 통해 민준이 자신의 아이인 것을 알게 된 동철은 충격을 받고 눈물로 호소하는 서현을 보며 마음이 흔들린다
[27-2] 서현은 자신에게 총을 겨눈 동철에게 눈물로 호소하려 하지만 동철은 아랑곳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긴다
[27-3] 동철이 서현에게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갑자기 닌자가 나타나 동철을 찌른 뒤 어리둥절해하는 서현마저 베고 홀연히 사라진다 [광고]
“뭐야? 이 3번은! 아무리 기본 버전이라지만 이딴 플롯을 추천해 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