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의눈 뽑아 마시다 자판기에 잡아 먹힌 소년 아직도 학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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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란 엄청나게 밝은 광원과도 같아서 세상 곳곳에 빛을 비추어 주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한다.’

내가 한 말은 아니고.. 누군가에게서 들은 말이다.

‘사람들은 항상 머리 위에서 환하게 빛나는 광원만을 올려다보는 습성이 있어서 발목을 움켜쥐고 호시탐탐 잡아먹을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그림자를 내려다볼 생각은 도무지 하지를 않는다’고도 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 친구 석영이가 교무실 옆 복도에 덩그렇게 놓인 자판기에 게걸스러운 식성의 거인에게 오른손가락 끝부터 차례대로 씹어 먹히는 모양새로 빨려 들어가 사라지는 모습을 직접 옆에서 바라보았음에도 그 말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문제는 석영이놈의 음료수 취향 때문에 시작 되었다. 도대체 세상 어떤 고등학교 1학년생이 솔의눈 따위를 좋아하는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또 사람의 취향이라는 게 다 그렇고 그런 법 아닌가?

“김진! 이거 봐라. 좃나 대박! 자판기에 솔의 눈이 다 있다!”

“뭐? 그딴 좃같은걸 누가 먹는다고?”

“니 좃은 솔의 눈 맛이 나냐? 언제 한번 빨아 봤냐?”

“미친 새끼.. 솔의눈 좋아한다 할 때부터 제정신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입으로는 쉴새없이 시답잖은 농담을 내뱉으면서도 석영이놈의 눈은 반짝이고 있다.

그러니깐 이 새끼는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솔의눈이 마시고 싶은 모양이다.

“야! 그러지 말고 천 원만 줘봐. 나 잔돈 하나도 없다.”

“씨발.. 나한테 돈 맡겨놨냐?”

“아~ 언능.. 내가 이따 승급전 버스 태워 줄게. 너 아직 실버도 못 달았다며?”

길게 생각해 볼 것도 없다. 석영이 놈의 제안은 천원의 투자로 내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득임이 분명 하다.

지갑에서 빳빳한 천 원짜리를 뽑아 드니 석영이 놈이 처음부터 제 것이었던 양 잽싸게 채어간다.

“승급전 버스 잊지 마라. 이따 야자 째고 7시부터 기다리고 있을 거니깐..”

“알았어.. 알았으니깐..”

건성건성 내뱉는 석영이놈의 말은 마무리를 짓지 못 한 체 사그라졌다.

자판기가 정당한 자기 몫을 챙기든 천 원짜리를 빨아들인다.

음료 선택 버튼이 기묘한 빛을 내며 번뜩인다.

석영이의 검지가 ‘솔의눈’ 버튼 위에서 망설이듯 배회한다.

마음 한구석에서 ‘제발 솔의눈은 누르지 마! 차라리 비타 500을 눌러!’라는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너무나도 섬뜩하고 생경한 목소리다.

스스로 목에 밧줄을 걸고 디디고선 의자를 걷어차는 사람처럼 석영이가 단호하게 ‘솔의 눈’ 버튼을 누른다.

나와 석영이 둘밖에 없는 교무실 옆 복도에 기묘한 정적이 감돈다.

정적을 깨고 자판기가 망할 놈의 ‘솔의눈’을 음료수 방출구로 내뱉는다.

정상적인 기호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도 좋아할 수 없는 기괴한 맛의 액체를 담긴 묵직한 금속 캔이 자판기의 플라스틱 내장을 훑고 내려가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진다.

괜스레 온몸의 잔털이 쭈뼛 일어서는 느낌이 든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 또다시 생경한 목소리가 경고를 보낸다.

석영이가 몸을 웅크려 음료수 방출구로 오른손을 집어넣는다.

바보 같은 놈이 의지를 가지고 행한 마지막 행동이다.

“야.. 김진.. 이거 좀 이상하다.”

“돈 빌려서 솔의눈 처마시는 새끼보다 이상한 게 또 뭐가 있다고..”

석영이 놈은 음료수 방출구에 오른손을 집어 넣은 체 꼼짝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니. 야.. 진아. 좀 와봐. 이거 손이..”

“아.. 씨발. 장난좀 치지 말고!”

구시렁대며 녀석과 자판기 쪽으로 걸어가는데 기묘한 쪽쪽 소리가 들려온다.

어린아이가 엄만 손가락을 힘껏 빨아대는 듯한 소리다.

“..야.. 나좀 당겨봐. 이게 ..”

앞으로 닥칠 일을 이미 예감한 듯 절망감이 감돌던 석영이의 목소리가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비명으로 돌변한다.

“으아아악!! 씨발!! 이게 나 씹고 있다고!!”

“뭐?? 너 장난이면 뒤진다!!”

석영이 녀석의 처절한 비명에 나도 덩달아 고함을 지르게 된다.

힘을 주어 석영이의 몸을 잡아당겨 보았지만, 녀석의 몸은 자판기 쪽으로 점점 빨려들 듯 끌려들어 간다.

“씨발!! 이게 나 씹는.. 씹.. 씨발! 나 먹고 있다고!!”

집어삼킨 석영이의 신체 부위를 소화 시키려는 듯 자판기의 몸통 안쪽에서 모터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강철 몸통 속 금속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둔중하게 복도에 울려 퍼진다.

석영이의 손가락뼈가 단단한 플라스틱에 살과 함께 짓 씹히며 까드득 거리는 소리를 낸다.

“김진.. 씹쌔.. 씹쌔기야.. 이거.. 빨리좀..”

자판기 모터의 회전 방향이 몇 번이나 바뀌며 입맛을 다시는듯한 기묘한 소리를 낸다.

어느새 석영이의 몸은 어깨까지 자판기 안으로 빨려 들어가 있다.

“진아.. 제발.. ㅆ..”

몸을 틀어 나를 바라보는 석영이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진다.

석영이의 눈을 마주 바라보면 무슨 말이라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더 이상 석영이는 논리적인 문장을 입 밖으로 내뱉는 걸 포기했다.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러대면서도 눈으로는 집요하게 복도 맞은편을 노려 본다.

꼭 내게 무슨 신호를 보내는 것 같은데?

석영이의 몸을 자판기에서 빼내려는 걸 포기하고 몸을 돌린다.

석영이가 간절히 바라보던 물건이 내 눈에도 들어온다.

이제껏 한 번도 내본 적이 없는 속도로 달려가 맞은편 벽에 걸린 소방 도끼를 꺼내 들었다.

“석영! 씨발.. 내가.. 끊어서라도..”

다시 몸을 돌린 내 눈에 비친 광경은 구겨지듯 음료수 방출구로 빨려 들어가는 석영이의 몸과 압착된 몸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석영이의 눈동자였다.

석영이의 짧은 머리가 촘촘히 박힌 두피가 음료수 방출구 끝에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다.

손을 뻗어 좀 전까지 나와 상스러운 농담을 주고받던 친구 놈의 마지막 잔해를 끄집어내려 한다.

나를 조롱하기라도 하듯 자판기의 플라스틱 커버가 위아래로 덜컹거린다.

석영이의 두피가 자판기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피 한 방울, 살점 한 조각을 남기지 않고 석영이를 먹어 치운 자판기의 몸체가 부르르 떨린다.

뒤따라 온건 만족스러운 듯 ‘꺼어억~’ 길게 이어지는 트림 소리였다.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소방 도끼를 잡은 팔에 힘이 가득 들어간다.

“.. 개.. 씹..”

양손으로 짧게 소방 도끼를 움켜쥐고 자판기를 내리친다.

도끼날이 자판기의 몸통 앞에서 뒤틀리며 볼품없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도낏자루를 타고 둔중한 진동이 손으로 전해온다. 힘주어 잡은 오른손 호구가 찢어지며 피가 흘러내린다.

“야! 너 뭐야?! 미친 새끼가..”

젖꼭지가 튀어나올 정도로 꽉 끼는 폴로 셔츠를 입은 학주가 골프채를 내 쪽으로 내지르며 복도를 걸어온다.

“뭐 하는 거냐고? 똘아이 새끼가. 도끼 안 내려놔?!”

석영이가 존재했던 흔적은 복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타오르던 분노가 어이 없을 정도로 손쉽게 갈무리 된다.

조심스럽게 소방 도끼를 바닥에 내려놓자 좀 전보다 한결 더 흉악한 기세로 학주가 내게 다가온다.

“너 뭐 하고 있었어? 어?! 김진 이 꼴통 새꺄! 내가 사고 치지 말라 했지! 좆만 한 새끼가!”

질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학주의 오른손이 내 뺨을 후려갈긴다.

그에 맞춰 어금니로 볼을 깊게 씹어 물고 살점과 함께 피를 바닥으로 내뱉는다.

“그냥.. 짜증 나서 그랬어요. 자판기가 동전 먹어서..”

“뭐?”

바닥에 뱉은 내 피를 바라보는 학주의 눈에 당황한 빛이 어린다.

“짜증 났다고요. 돈도 넣고 솔의 눈 뽑아 마시려는데 나오지 않아서.”

“뭐라는 거야? 새끼야. 짜증 난다고 도끼 들고 설쳐?”

“선생님이 돈 넣고 솔의눈 눌러 보세요. 나오나 안나오나.”

무엇 때문인지 내 말을 들은 학주의 몸이 움찔 움츠러든다.

기대감에 몸부림치듯 자판기의 몸통 안에서 웅~ 하는 모터 소리가 들려온다.

나와 자판기 사이를 바쁘게 배회하던 학주의 시선이 애써 자판기를 외면한다.

순식간에 학주의 태도가 한결 누그러진다.

“너.. 내가 뺨 때린 건 미안한데.. 너도 도끼들고 .. 그냥 없었던 거로 하자. 어? 괜히 어디 찌르거나 올리고 하면 너나 나나..”

“전 쌤한테 맞은 기억 없는데요? 소방 도끼가 왜 복도에 떨어져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나를 바라보는 학주의 얼굴에 혐오의 표정이 강해진다.

“.. 얼른 가봐. 수업 끝난 지 한참 지났는데 괜히 학교에서 어슬렁거리지 말고..”

“.. 갈꺼에요.”

학주의 시선을 뒤로한 체 몸을 돌려 복도를 걸어 나간다.

갑작스럽게 더 이상 석영이를 볼 수 없다는 게 떠오른다.

병신같은 석영이놈은 이제 승급전에서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게, 나는 두 번 다시 실버를 달수 없다는 게 떠오른다.

왈칵 터져 나온 눈물에 눈앞이 흐려진다.

가슴 아래가 답답해진다.

갑작스럽게 타오른 불과 같은 분노가 내 머리를 뜨겁게 달군다.

“쌤!”

몸을 돌려 고함을 치니 학주가 대답 없이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거 솔의 눈 꼭 드셔 보세요. 친구가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