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8화 – “맡겠습니다. 어디서 만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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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나 보지, 뭐. 뾰족한 수도 없는데. 그 한국인 탐정, 이름이 뭐야?”

 

“권민.”
 

 

4

 

동네 공원 풍경은 늘 뻔하다. 유동 인구에 비해 지나치게 넓은 공간에다 볼거리 없이 잔디 바닥만 펼쳐져 있는, 중년아저씨가 자다가 일어난 모습처럼 소박하게 풀어헤쳐진 모양새다. 주택가 중심에 자리 잡은 공동묘지 길목을 대하듯 사람들은 공원을 심드렁하게 지나치거나 어쩌다 바라본들 그저 일상적인 땅 한 덩어리쯤으로 여긴다.

 

축구 놀이를 깨작대는 아이들한테 간간이 소비될 뿐, 궂은 날씨에는 아예 텅 빈 채 버려져 음산한 침묵만 안개비를 타고 추적추적 서성거린다. 권민은 그 시투렁한 풍경이 좋았다. 날씨가 끄무레하면 장우산을 들고 동네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곤 했다. 도시 한복판에서 인간의 흔적이 잊히는 공간과 만난다는 건 보물찾기와도 같았다.

 

잔디 바닥 위에 썰렁하게 돋아난 벤치에 앉아 인기척 없는 자연의 여백을 명상하다보면 살인마가 튀어나올 것 같은 적막은 어느새 오케스트라 선율로 승화돼 「넬라판타지아」를 허밍한다.

 

그러나 이 동네는 여느 공원 분위기와는 달랐다. 칼라프 베일리 아카데미 뒷자락에 붙은 공원인데, 파크로드 바로 뒤편에 중등학교가 있다 보니 학업을 마치고 나온 아이들이 공원을 아지트 삼아 웅성대는 일이 잦았다. 권민은 공원 전경을 둘러볼 수 있는 나무 그늘 아래 벤치로 걸어가 앉았다.

 

다양한 인종의 피부색들이 곳곳에서 왁자지껄 잡담을 지피거나 공놀이를 주고받았다. 십대 아이들의 패기는 쌀쌀한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방지축 날뛰었다.

 

제이든 파텔도 한때 아니 석 달 전까지만 해도 저들 틈에서 물색없이 까불었을 것이다. 철없는 꼬맹이의 삶이 돌연 비극으로 추락해 탐정의 사건 파일에 기록되리라는 걸, 언제나 그렇듯, 자신도 그 누구도 아무도 몰랐다. 이미 단순교통사고로 종결 난 사건이었고 유가족도 사인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이든의 아버지인 아미따브 파텔은 꽃다운 자식이 눈에 밟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진짜 살인자는 따로 있다며 밤낮으로 앙심을 불태웠다. 경찰 당국에도 호소했지만 신통찮은 답변뿐이었다. 결국 유능한 사립탐정을 고용하기로 마음먹었고 수소문하던 중에 거래처 사장이 추천해 준 한국계 탐정을 찾아갔다. 미제 사건도 여럿 해결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간절한 희망을 걸었다.

 

다운타운 교차로에서 무단 횡단하다가 달려오던 버스에 역과돼 사망한 제이든 파텔은 마약 초보자였다. 부검에서 코카인 성분이 검출됐지만 중독 단계는 아니었고,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으로 분석됐다. 부모에겐 마약 검출이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만큼이나 충격이었다.

 

무단횡단사고도 마약의 환각 작용 때문이었음이 유력해졌다. 맞은편 인도에 있던 동급생 아이가 목격한 바에 따르면, 제이든은 이름을 외쳐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고 환희에 달뜬 표정으로 신기루를 쫓듯이 차도로 질주했다고 한다.

 

장례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새로운 울분이 유가족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마약만 아니었어도 차도로 뛰어드는 실수를 하지 않았을 거라는 안타까움이 마약공급책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순진한 아들을 마약으로 꼬드긴 악마가 누군지 찾아달라는 게 그들의 요구였다.

 

하지만 의뢰내용은 찾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놈이 마약을 파는 현장을 포착해 쇠고랑을 차게 해달라는 게 핵심이었다.

 

의뢰인의 요구를 만족시키려면 무엇보다 마약공급책을 색출할 단서가 있는지 여부가 중요했다. 마약공급책과 수요자는 정기적으로 연락을 취하게 마련이다. 제이든의 이메일과 메신저 등에는 별다른 실마리가 없었다. 결정적인 건 휴대폰에서 나왔다. 교통사고로 인해 손상된 상태였지만 내부에 있는 칩을 복원해 수신 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을 열어볼 수 있었다.

 

또래 아이들과 나눈 시시콜콜한 문자들 틈새로 똑같은 내용의 메시지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칼라프 파크에서 보자. 티메이트(T-mate)로부터’라는 단순하지만 음흉한 문장이 주기적으로 여러 차례 도착해 있었다. 발신인의 휴대폰 번호는 당연히 찍혀 있지 않았다.

 

제이든과 친하게 지냈다는 아이들에게 탐문했지만 티메이트가 누군지 아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제이든의 친구들은 순진해 빠진 공부벌레 타입이거나 마약은 엄두도 못 내고 흡연만 몰래 하는 정도의 고만고만한 아이들이었다. 신체적 상태를 살펴봐도 마약쟁이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유일한 단서는 접선 장소로 추정되는 ‘칼라프 파크’뿐이었다.

 

권민은 엉덩이가 경직되자 방향을 바꿔 앉은 후 다시 공원을 구석구석 훑었다. ‘런던 칼라프 파크’라고 적힌 낡은 팻말이 바람에 삐걱거렸다. 마약공급책으로 보이는 수상한 어른 혹은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권민이 앉아 있는 벤치는 나무 그늘이 우거져내려 한기가 흠씬 감겨들었다. 아이들은 햇살이 비치는 쪽으로 몰려 있어 그녀가 자리한 곳은 한가했다.

 

십대를 갓 벗어난 꼬맹이 네 명이 머뭇머뭇 흘끔거리며 권민 쪽으로 접근했다. 앳된 얼굴 위로 에메랄드 눈동자가 탁하게 번득이는 사내 녀석이 몇 걸음 앞서 다가갔다. 야구 모자를 눌러쓴 채 목석처럼 앉아있는 동양인에게 얼굴을 들이밀고는 혀 꼬인 목소리로 침 뱉듯이 말을 걸었다.

 

“담배 있어? 저기서 피는 거 봤는데. 담배 많더라. 낄낄.”

 

물론 봤을 리가 없다. 권민은 비흡연자라 저기서건 여기서건 피우지 않았으니까. ‘나는 네가 담배 핀 걸 알고 있다’는 말은 길거리에서 담배 구걸 다니는 꼬마들의 흔해빠진 레퍼토리였다. 낄낄거리는 꼬마들은 안색이 런던 날씨처럼 우중충하게 일그러져 보였다.

 

어린애답지 않은 까칠하고 창백한 피부에다 충혈된 눈은 졸린 듯 게슴츠레하고 사시가 아님에도 시선이 제멋대로 허공을 비벼댔다. 그 중 한 녀석은 떨리는 왼쪽 손을 점퍼 주머니에서 뺐다 넣었다, 강박적인 행동을 반복했다. 담배 니코틴만으로 저 지경이 되지는 않는다. 급성중독인지 만성중독인지는 모르겠으나 육체반응만 봐도 마약의 징후가 또렷했다.

 

꼬맹이들의 담배 구걸에 늘 묵묵부답으로 지나치던 권민이지만 이번에는 슬쩍 미소를 지어보였다. 미리 준비해 간 담뱃갑을 꺼내자 녀석들이 좀비처럼 모여들었다. 담배는 제이든 파텔의 찌그러진 가방 속에 있던 중국 밀수담배와 똑같은 종류였다.

 

“메이드인차이나? 낄낄.”

 

“그래. 티메이트한테서 산 거지.”

 

그중 한 녀석이 찔끔 뒤로 물러섰다. 음산한 미소가 깃들어 있는 권민의 묘한 눈빛이나 서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권민은 감정이 허술하게 드러나는 녀석의 표정을 읽었다. 티메이트를 아는 게 분명했다. 권민이 담배 한 개비를 더 건네자 녀석은 금세 히죽대며 얼른 받아들었다. 다른 꼬맹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중독으로 이미 뇌 기능이 흐릿해진 터라 경계심 따위는 없었다.

 

“티메이트 만나기가 쉽지 않군.”

 

권민의 눙치는 한 마디에 계집아이가 담배 연기를 뿜어대며 낄낄 쪼갰다.

 

“어제 왔다갔는데. 일주일에 한 번 오는데. 오는 날이 맨날 바뀌지만.”

 

“왜 티메이트라고 부르지?”

 

탁한 구릿빛 아이가 눈썹을 찡긋 치켜세웠다.

 

“여태 그것도 몰랐어? 트릭키 메이트잖아.”

 

녀석들은 몽롱해진 몰골로 티메이트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뇌까렸다. 이름은 트릭키 메이트(tricky mate)의 줄임말로, 다루기 힘든 녀석이란 뜻이었다. 정확히는 ‘경찰’이 다루기 힘든 녀석이란 의미였다.

 

런던 주택가 뒷골목에서 밀수 담배나 코캔디(nose candy, 코카인의 속어)를 팔러 다닐 때도 구매자로 위장한 사복경찰을 귀신같이 골라내 체포 위기마다 교활하게 피해 다니는 놈이었다. 경찰 감별 능력을 부러워하던 동종업계 떨거지들은 녀석에게 티메이트(T-mate)라는 경칭을 지어주었다.

 

권민은 공원을 떠나면서 아이들에게 담뱃갑을 통째로 건넸다. 티메이트가 더 자주 출몰하는 장소를 알려준 데 대한 답례였다. 길거리 배회하는 게 일상인 녀석들이다 보니 티메이트가 단골로 드나드는 점포까지 알고 있었다. 게다가 ‘티메이트가 머리를 보라색으로 물들였더라.’고 고급정보를 무심코 지껄여주기까지 했다.

 

곧장 타운센터 커머셜 로드에 있는 벤슨 상가로 갔다. 상가 옆에 곁달린 모터사이클 점포가 티메이트가 출몰한다는 곳이었다. 권민은 점포 맞은편 패스트푸드 가게에 앉아서 관찰했다. 햄버거 속 치즈가 양상추와 뒤엉켜 쉰내가 날 무렵, 보라색 염색머리가 점포에 나타났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백인 사내였다. 앵글로색슨의 장대한 골격과 보라색 샤기컷은 별로 어울려 보이지 않았지만, 어차피 녀석의 미적 취향은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티메이트가 점포에서 나와 길거리로 나서자, 권민도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