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7화 -“그 한국인 탐정, 이름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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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거야 선생님 뜻대로 하세요. 하지만 우린 분명히 경고 드렸습니다. 체포되더라도 대사관 도움 받을 생각 눈곱만큼도 하지 마세요.”

 

승주는 쫓아가려 했으나 독 소장의 손에 붙들려 멈춰 섰다. 승주가 울상으로 돌아보았다. 독 소장은 미안스런 시선으로 보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가랑눈이 흩날리더니 시나브로 사라졌다. 쌀쌀한 어둠이 빼곡히 밀려와 생각에 잠긴 구경꾼을 아득히 응시했다. 침대 위에 우두커니 앉은 승주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환영을 발견했다. 어둠에 갇힌 채 출구를 찾아 헤매는 무기력한 사내가 두려움과 무능함에 좌절하다가 결국 제 자리에 붙박여 흐느끼고 있었다.

 

탐정이 된다는 설렘이 얼마나 순진한 판타지였던가, 자괴감이 마음속 구석구석에 서릿발로 내려앉았다.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담벼락 앞에서 어설픈 탐정은 반골스런 말대꾸 몇 마디 질러보고는 한계를 인정해야 했다. 여기서 뭘 더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빈곤한 상상력만 맴돌 뿐, 경험치는 바닥인데다가 패기마저 시들어버렸다.

 

아, 첫 마음은 얼마나 원대했던가. 악행의 근원에 대해 탐구하다 보면 인간 본성의 보다 내밀한 메커니즘을 완성해 볼 수 있으리라, 심장을 달구었던 초심이 바로 엊그제 일이다. 하지만 첫 사건에서부터 그 초심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객기였는지 일찌감치 들통나고 있는 중이다.

 

주제 파악도 못 한 채 인간사의 날 것 철학이 어쩌고저쩌고 떠벌리며 그저 먹물 허세에 최면돼 있었음이 이로써 증명되고 말았다. 결국 탐정 놀음은 세상에 대한 통찰이 아니라 자신의 객기에 대한 통찰이었음을, 아, 인정해야만 하는가.

 

승주의 자괴감이 우울로 일그러지면서 궁상이 고개를 쳐들자 허망한 옛 기억이 미주알고주알 새어나왔다. 타인의 집, 낯선 방에 있는 낯선 소품들까지도 추억을 환기시키는 매개체로 돌변해 비아냥거렸다. 여기 이 침대가 그 시절 자기 방 침대를, 저기 저 책 몇 권 없는 책꽂이가 그 시절 자기 방 책장을, 저만치 구석 벽에 붙은 그룹 퀸의 고색창연한 공연포스터가 그 시절 자기 방 벽을 장식했던 「터미네이터2」 영화 포스터를 아른거리게 만들었다.

 

양쪽 사이에 아무 공통점이 없음에도 동병상련인 척 격렬하게 연상되는 건 마음의 문이 뜯겼기 때문이다. 자괴감에 지쳐 조절감각이 뜯겨 나간 마음은 건드리면 터질 듯 사소한 유사점만으로도 치명적인 기억을 들키고 만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슈퍼스타 브로마이드로 도배되던 승주의 방 벽에 예기치 않은 다크호스가 등장했다. 승주는 아직도 그게 강박증이었는지 자기반성이었는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지만, 생전 처음 겪은 지독한 죄책감이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실종자, 임지영. 실종전단지 속에 인쇄된 그녀의 조악한 사진 한 장이 평화롭던 벽에 흉물스레 똬리를 틀었다.

 

그녀는 못생겼다는 표현은 억울하지만 예쁘다는 표현은 더욱 어색한 얼굴이었다. 삶에 지쳐 웃음을 잃었음을 고백하려는 듯 청승맞게 풀린 눈매와 널브러진 입술은 차마 예쁘다 못생겼다의 이분법으로 가늠해선 안 될 것 같은 불우한 피사체였다.

 

아, 그날, 후미진 야산 길모퉁이에서 마주친 그녀가, 얼마나 다급했으면 애송이 중학생 녀석을 향해 살려달라는 곁눈질로 간절히 흘끔거렸겠는가. 모자를 눌러 쓴 말라깽이 사내와 색안경을 삐딱하게 쓴 거구의 사내한테 둘러싸인 채 놈들의 몸뚱이 틈새로 승주의 당황한 눈빛과 희끗희끗 마주치던 여자의 마지막 희망어린 눈빛. 승주는 그 눈빛에 꼼짝없이 사로잡혀 멀거니 서 있어야 했다.

 

말라깽이가 먼저 눈치 채고, 이어 색안경 사내가 넌지시 고개를 돌려 승주를 향해 말없이 손가락을 뻗었다. 외침도 욕설도 없었다. ‘꺼져!’ 라는 외마디조차 없었다. 그저 묵직한 두 번째 손가락만 뻗었을 뿐인데 피할 수 없는 총구처럼 느껴졌다.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고 가던 길이나 가라, 그럼 개죽음은 면하리라, 손가락은 그렇게 위협적인 텔레파시를 보냈다.

 

험악한 인생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손가락의 카리스마에 중학생 애송이는 저절로 고개를 숙였다. 여자 친구에게 선물할 네 잎 클로버를 채집하러 나왔던 낭만적인 소년은 공포영화의 주인공이 될까 두려워 후들거리는 다리로 넘어질 듯 자빠질 듯 도망쳐 나왔다.

 

만약 이 정도에서 그쳤다면 트라우마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겁쟁이 소년은 색안경 사내가 자기 얼굴을 똑바로 봤다는 사실 때문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괴담 속에 등장하는 칼잡이 깡패들 이미지가 떠오르자 112에 달랑 전화 한 통 넣는 것조차 위험천만한 모험처럼 느껴졌다. 신고하는 순간 땅 끝까지 쫓아와 복수의 칼날을 아랫도리 거시기에 쑤셔 박을지도 모른다는 과대망상이 겁쟁이를 더 겁쟁이로 몰아붙였다.

 

그리고 몇 달이 흘렀다. 소년은 입시공부와 농구동아리 활동에 정신이 쏠려 낯선 여자의 절망적인 눈빛 따위는 잊어버렸다. 파출소 게시판에 붙은 전단지를 바라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승주는 학교에서 버스정류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친구들과 수다를 지피며 걸어갔다.

 

음반가게도 지나가고, 떡볶이집도 지나가고, 파출소도 지나가고, 늘 그렇듯 승주와 친구들은 파출소 게시판을 흘끔거렸다. 게시판에 붙은 수배자 명단을 보는 일이 녀석들에게는 귀갓길의 활력소였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가짜 범죄자가 아닌 진짜 흉악범을 구경하는 일은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긴장감을 일으켜 사춘기소년들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했다. 하지만 게시판에는 수배자만 있지 않았다.

 

‘이 여자 표정 완전 우거지네. 이런 사진밖에 없었나,’ 친구 녀석의 낄낄거림에 반사적으로 들여다 본 전단지 한 장. 실종자를 찾습니다! 승주는 순간 멈칫했다. 많이 본 얼굴인데. 아, 그때 그 여자? 설마, 그럴 리가. 승주는 당시에 여자의 정면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사내들 틈으로 언뜻 비치는 얼굴 일부분과 겁에 질린 눈빛, 그게 전부였다. 얼굴이 달걀형인지 사각형인지 따위의 상세정보는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승주의 뇌는 파편적으로 목격한 정보만으로도 머릿속에서 3차원 모델링 작업을 제멋대로 진행시키더니 승주의 의식영역으로 떡하니 펼쳐 보였다. 그때 그 여자 맞아! 저 불쌍한 눈빛 좀 봐, 생생하잖아. 그 여자가 틀림없어! 네가 외면한 그 여자! 어쩌면 네가 구했을 수도 있었던 바로 그 불쌍한 여자! 무의식은 승주를 조롱하고 있었다. 현기증이 몰려왔다. 전단지 속 여자의 얼굴이 승주의 의식을 향해 흡혈귀 이빨로 날아와 덮쳤다.

 

앉으나 서나 밤이고 낮이고 심지어 꿈속에서도 죄책감이 휘몰아쳤다. 당시에 신고만 했더라면, 설사 신고가 아무 효과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어쨌거나 신고만 했더라면 실종 전단지를 마주쳤대도 이리 괴롭지는 않았을 것을, 마음속에 이토록 죄스런 짐짝을 못 박아두지 않아도 됐을 것을, 홀로 냉가슴만 싸늘히 이지러뜨렸다. 뒤늦게 목격담을 경찰에게 알려주고 몽타주 작성에도 협조했지만 이미 뒷북이라는 자괴감이 마음속 어딘가에 숨어 다니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비웃었다.

 

승주는 자신의 북받치는 마음을 달래줄 뭔가가 절실했다. 선무당의 굿판이 됐든 사이비교주의 안수기도가 됐든 이 볶아치는 마음만 다잡아 줄 수 있다면 기꺼이,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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