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9화 – “탐정이 그런 걸 두려워하면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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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는 여전히 실종 중이라고 했다. 전화 속 사내는 꼭 좀 맡아달라며 여러 차례 당부했다.

 

“맡겠습니다. 어디서 만날까요.”
 

 

5

 

독 소장과 승주는 해리슨 박을 피해 몰래 밖으로 나왔다. 해리슨 박은 약속 장소로 뉴몰든에 있는 자기 집 주소를 불러줬지만, 독 소장이 권민에게 따로 전화를 넣었다. 본인들이 사건 의뢰 당사자들이라는 점과 이수진의 법정 대리인이라는 것도 밝혔다. 제3자가 알면 곤란한 내막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자, 권민은 약속 장소를 바꿔주었다.

 

권민이 일러준 장소는 집 근처에 있는 버스정류장이었다. 독 소장과 승주는 정류장 의자에 앉아 무료한 겨울풍경을 흘끔거리며 기다렸다.

 

“날도 추운데 왜 하필 버스정류장이래요. 사무실로 오라고 하지. 우리가 지리가 어두워서 못 찾을까봐 그런가.”

 

“사무실이 아예 없다더군.”

 

“에? 사무실이 없어요? 잘 나가는 탐정이라면서요.”

 

“전업이 아니라서 그런가 보지.”

 

“그나저나 박 사장님 실망이 크시겠네요. 잔뜩 기대하는 눈치던데.”

 

“별수 없지. 그 친구가 너무 자세히 알면 교민들 사이에 소문 다 퍼질 거야. 그러면 골 아파져. 나중에 술이나 거하게 사줘야지.”

 

승주의 카키색 점퍼 색깔이 겨울바람에 질려 빛바래 보였다. 승주는 점퍼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썼다.

 

“권민이란 탐정, 어떤 사람인 것 같아요?”

 

“글쎄, 일단 목소리가 참 묘하더군. 차분한 듯하면서도 뭔가 으스스하다고나 할까. 전화음질이 안 좋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사람 말 잘 들어주는 타입이야. 내가 얘기하는 동안 한 마디도 안 끼어들고 묵묵히 듣기만 하더라고. 듣고 나서도 별 반응이 없어. 박 사장 집 말고 다른 데서 만나자니까, 그냥 곧바로 약속 장소를 바꿔주더구만. 장황하게 설명한 게 뻘쭘할 정도로 그 친구는 별 반응 없이 제꺼덕. 허허.”

 

“한국어가 서툴러서 그런 거 아닐까요? 달변가인 소장님도 영어해야 될 때는 과묵해지잖아요.”

 

“너는 나 놀려먹는 재미로 살지?”

 

“잘 아시면서. 흐.”

 

승주가 씽긋 미소 짓고는 장갑손으로 독 소장의 뒤집힌 옷깃을 보정해 주었다.

 

“그 친구 한국말 무지 잘하던데. 교포스런 말투도 아니고 그냥 한국인 발음이야. 좀 국어책 읽는 듯이 딱딱한 어투긴 한데, 그건 말투 자체가 그런 거 같고.”

 

“참, 비용도 물어보셨어요?”

 

“응. 박 사장 말 대로 상담료는 없고 조사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비용 처리가 된다더만.”

 

“상담료 안 받는 건 고마운데, 혹시 상담료 안 받는 대신 비용처리로 바가지 씌우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시간당으로 받을 텐데, 날짜가 길어지면 비용이 장난 아닐 거라고요. 수진 씨 아버님이야 전 재산이 거덜나도 상관없다고 하셨지만 솔직히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거잖아요.”

 

“나도 걱정돼서 물어봤는데 시간당이 아니더라고. 일단은 자동차 연료비를 3일 단위로 선불로 내야 된대. 사건이 다 끝났을 때 주행거리와 연료비용 산정해서 선불 금액을 돌려주거나 더 받게 된다더군. 만약에 비행기를 타야 하는 상황이나 고가의 특수 장비가 필요한 경우에는 의뢰인에게 미리 알려주고 허락을 받는대. 그리고 최종 조사비용은 사건 끝난 후에 후불로 내면 된다더라.”

 

“후불로요? 특이하네. 너무 비싸서 그런 건가?”

 

“비싸기는커녕 가격 파괴던데. 아주 합리적인 사람이더라고.”

 

“어떻길래요?”

 

“일당으로 계산하는데, 하루에 100파운드야. 그 비용 안에 증거제출이나 차량추적 비용까지 다 포함되는 거고. 탐정회사들은 따로따로 청구하던데. 아무튼 비용계산은 그렇고. 15일 단위로 사건 조사를 한다는데, 그러니까 15일이 지나면 사건을 계속 맡길지 관둘지를 의뢰인에게 물어본대.

 

사건 조사 기간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30일을 넘기지 않는다더군. 한 달이 돼서도 진전이 없으면 스스로 그만둔다는 얘기지. 이런 경우에는 자동차 연료비와 기본비용 300파운드만 받는대.”

 

“우와, 완전 멋진데요. 우리 탐정 비용 얼마 받을지 고민 중인데 참고 좀 해야겠어요.”

 

“글쎄다. 우리같이 느려터진 초짜가 그렇게 비용 처리 했다가는 손가락 빨고 살아야 돼.”

 

“혹시 실력이 별로라서 싼 거 아닐까요? 워낙 양심 있는 양반이라 무능한 걸 금전으로나마 벌충해 주는 거죠.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있고요. 아무 일도 안 하면서 일부러 시간만 죽이고 한 달 채운 후에 연료비랑 300파운드를 날로 먹으려는 꼼수?”

 

“의심은. 박 사장 얘기 못 들었어? 실력파라잖아.”

 

“아니면 다행이고요.”

 

“어쨌거나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고.”

 

“그래야죠.”

 

돌풍이 승주의 볼을 베고 지나갔다.

 

“으, 완전 춥네. 왜 이렇게 안 와.”

 

“사실 약속 시간은 아직 안 됐어.”

 

“엥? 미리 나온 거예요?”

 

“응. 박 사장 따돌리느라고.”

 

약속 시간에서 3, 4분 모자랄 무렵, 검정색 해치백 한 대가 정류장으로 꺾어져 들어와 두 사람 앞에 멈춰 섰다. 차창 문이 열리면서 운전자와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운전석에서 한국어 음성이 울려나왔다.

 

“독고잉걸 씹니까?”

 

독 소장이 얼굴을 얼른 들이밀며 물었다.

 

“권민 탐정이에요?”

 

“네. 타시죠.”

 

독 소장과 승주는 뒷문으로 나란히 들어갔다. 두 사람은 권민의 뒤통수에 대고 상냥한 음색으로 인사를 건넸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도요! 제 이름은 강승주라고 합니다.”

 

권민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건조하게 화답했다.

 

“권민입니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음에도 머쓱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주변공기를 휘몰아 삼켜버리는 권민의 음성 때문이었다. 독 소장은 으스스하던 목소리가 전화음질 때문이 아니었음을 알고는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독과 강은 저절로 과묵해져 권민이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마트 주차장 한편에 권민의 자동차가 멈춰 섰다. 주차료를 물지 않고도 두 시간은 머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권민은 룸미러 각도를 조절해 거울에 비친 독 소장을 마주보며 말했다.

 

“사건에 대해 얘기하시죠.”

 

“여기서요?”

 

“네.”

 

승주는 거울로 비치는 권민의 서늘한 눈매가 마음에 들었다. 이성적 끌림이 아니었다. 마음을 툭 터놓고 모든 걸 맡기고 싶은, 알아서 척척 해치워버릴 것 같은 결단력이 자로 잰 듯 예리하게 품어져 있는 눈매였다.

 

독 소장은 그동안 벌어진 일들을 빼지도 보태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만 설명했다. 권민은 한 마디 추임새도 없이 고스란히 듣기만 했다. 승주는 그녀의 반응 하나하나를 호기심으로 관찰했다. 등 돌린 채 룸미러만으로 상대방과 대화 중인 과묵한 탐정. 정말 듣기는 하는 건가? 상대방이 얘기하는 동안 몸체의 전원을 잠시 꺼두고 영혼은 딴 데 놀러가 버린 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움직임이 없었다.

 

용의자의 집에 침입했던 일을 고백하는 대목에서도 권민은 무덤덤했다. 간간이 눈구멍만 끔뻑 닫혔다 열릴 뿐이었다. 승주가 건네준 엽서 증거물을 확인하고 나서도 아무 논평 없이 돌려주었다. 독 소장은 더는 설명할 게 없어 또다시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설명 끝∼!’이라고 외쳐줘야 하나 고민이 됐다.

 

독 소장이 잠잠해지자, 룸미러에 비친 권민의 시선도 두 사람한테서 멀어졌다. 독 소장은 툭하면 머쓱해지는 분위기에 적응이 안 됐다. 그렇다고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인데 목을 비틀어 마주 앉힐 수도 없지 않은가. 입에 재갈이 물려진 것 같은 답답한 기분을 참으려니 온몸이 근질거렸다.

 

승주는 사건 생각이 잊힐 만큼 이 상황이 재밌어서 권민의 뒤통수만 뚫어져라 살폈다. 가타부타 대꾸 한 마디 없다니, 당최 뭔 꿍꿍이속인지 알 수가 없었다. 뒤통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