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의 탄생

  • 장르: 로맨스, 일반 | 태그: #퀴어 #군대 #대학교 #가족
  • 평점×50 | 분량: 109매 | 성향:
  • 소개: 어느날 의문의 편지를 받고 동생 리아가 잠적했다. 하지만 언니 혜진은 동생을 찾기는 커녕, 사랑에 빠져 정신을 못차리는데… 더보기

자매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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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가려고?”

낮은 목소리가 막 집을 나서려는 혜진의 발목을 붙잡았다.

동생을 깨우지 않으려고 까치걸음까지 했던 혜진의 노력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학교?”

“응. 좀 늦었어.”

혜진이 운동화 뒤축을 꺾어 신으며 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대문을 밀어 나가려는데, 동생이 이번에는 단호하게 “스톱”하고 뒷덜미를 잡더니 “아가씨, 나 좀 봐봐”하며 기어이 사람을 불러 세웠다. 돌아본 거실에는 리아가 반쯤 감긴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소파에 몸이 구겨 박힌 채로 부은 입만 겨우 움직이는 게 혜진이 거실을 지나치며 본 그대로였다. 여름 홑이불이 허벅지를 훑으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가 말했잖아. 언니는 무채색이 안어울린다고.”

“알았다니까.”

“거울 좀 보고 나가. 오늘 자기 아주 엉망이야.”

더이상은 참지 못하고 혜진이 한숨을 내뱉었다.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오늘은 씻고 있던지 좀 해라.”

리아는 반격하는 대신 리모콘을 들었다. 막 켜진 화면에서 비쩍 마른 아이들이 환한 미소로 살랑이며 다가왔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무심히 그들을 감상하던 리아가 말했다.

“중학생도 아니고. 누가 널 여자로 보겠어. 그러니까 남친이 안 생기는 거야.”

“지금은 필요 없거든. 졸업해야 하는데 남친은 무슨 남친.”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혜진은 신발장 거울을 빠르게 곁눈질했다. 줄무늬 티셔츠와 통 넓은 여름 청바지, 어깨에는 크로스백까지 거울 속 혜진은 누가 봐도 성실한 여대생이었다.

“머리 좀 높게 묶고, 아이라인도 진하게 그리라고. 갖다준 건 버렸어? 왜 안 써?”

동생의 지적대로 혜진의 옷차림은 언제나 수수한 편이었다. 그나마 눈썹은 늘 깔끔했는데 그건 부숭부숭하게 관자놀이까지 난 털이 징그럽다며 리아가 정기적으로 왁싱을 해 준 덕분이었다.

졸업반이라 모든 사치를 취업 뒤로 미룬 것 뿐인데, 오히려 한심하다는 듯한 말을 듣자 혜진은 동생의 뒤통수에 신발이라도 던지고 싶어졌다.

“팔자 좋다.”

비꼼에도 리아는 아무런 타격이 없다는 듯 채널을 돌렸다. 그리고 돌고 도는 채널 탐색은 혜진이 현관문을 거칠게 닫고 나갈 때까지 이어졌다. 쾅하고 닫힌 문소리에 놀라 치와와가 뱅글뱅글 돌며 한참을 항의했다.

발소리가 멀어져도 치와와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자 리아가 구부정히 일어났다. 키 180 센티미터가 넘는 그녀는 거실에 서 있으면 천장이 낮게 보였다.

리아가 발발 떠는 치와와를 붕 안아올려서 뒤통수에 입을 맞추었다.

“촌스러운 년. 어떻게든 내가 갱생시켜 줘야하는데…. 그렇지 뽀삐?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리아가 혜진을 못마땅해하며 핀잔을 주는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리아에게 집 현관만큼 통과하기 어려운 관문도 없었기 때문이다. 턱을 닳도록 핥는 뽀삐를 겨우 내려놓고 리아도 나갈 준비를 했다.

리아는 샤워하기 전에 늘 속옷 보관함부터 들여다 봤다. 속옷 보관함은 주공아파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로코코 풍으로 물론 금속 조각이 아닌 분홍 플라스틱 조형물에 불과했지만 리아는 개의치 않아 했다. 겉모양만 그럴듯해도 그녀는 충분했다.

고민 끝에 리아는 친구가 신주쿠 출장에서 사온 언더웨어 세트를 꺼냈다.

리아가 거울 앞에서 태그도 안 뗀 브래지어를 가슴에 대보는데, 보관함 속 배열이 미세하게 흐트러져 있는 게 신경 쓰였다.

아니나 다를까 자세히보니 낯선 브래지어 한 장이 엉큼하게 숨어 있는 게 아닌가. 둔한 혜진의 짓이 분명했다.

마치 부패된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사람처럼 오만상을 찌푸리며 리아가 그것의 어깨끈을 집어 올렸다.

얼핏 봐도 유니클로에서 만 원 정도 하는 거였다. 기능성 에어 어쩌고 저쩌고로 여름에 땀이 잘 빠진다나? 매년 여름이면 대문짝만하게 광고하기에 리아도 오다가다 본 적이 있었다.

불행히도 유니클로 스몰 사이즈 브래지어는 더이상 밝은 베이지톤이 아니었다.

“구질이…. 짜증 나.”

그대로 혜진의 브래지어는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리아는 혜진이 왜 저런 싸구려를 두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불순물 하나를 꺼내느라 쏟아진 나머지 속옷을 그대로 바닥에 내버려두고 리아는 뾰족한 집게손가락으로 짝이 맞는 레이스 팬티만을 건져올려 욕실로 들어갔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