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의 몫

저주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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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자친구가 스토킹에 시달린다’는 소식이라면 솔직히 그러거나 말거나지만, ‘전 남자친구가 저주를 받았다’라고 하면 얘기는 다르다. 게다가 다름 아닌 김종범 일이라니. 건성으로 응, 응 하고 있던 나는 비로소 펜을 놓고 세라를 바라보았다.

 

반면 세라는 커피잔을 들어 올리느라 내게서 시선을 뗀 참이었다. “하던 거 마저 해도 돼.”라고 부언하더니 미처 식지 않은 플랫화이트를 단숨에 들이켰다. 나는 책을 덮고 천천히 골라 가며 대답했다.

 

“미안하다, 아무래도 치유적 목적에서 하는 거다 보니까, 그, 정해진 시간에 알람 맞춰서 기록하라고 해서.”

 

며칠 전부터 나름대로 정확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었지만 역시 억양은 엉망으로 들쭉날쭉했다.

 

“아니 진짜로 괜찮으니까. 말하기 어려우면 듣고만 있어도 돼.”

 

모르는 새 내 시선은 검푸른 보트넥 원피스를 입은 세라의 가냘픈 데코르테에서 빛나는 짙푸른 보석 목걸이에 박혀 있었다. 세라네 할머니가 물려주셨다는 사파이어였다. 원래 어머니가 걸고 다니셨다는 것을 당신이 아프기 시작하고부터 자기에게 주었다고 말했었다. 아까 세라네 어머니가 위독한 상태라고 들었다. 희귀한 병이라 보험도 되지 않는다며, 세라는 수술비를 감당할 금전적 여유가 없다고 고백했다. 마음의 정리가 이미 끝났는지 지극히 담담한 태도였다. 나는 세라에게 내 ‘병’에 관해서 세부 사항을 숨기고 있었다.

 

“아냐. 나도 말하는, 음, 연습을 좀 해야 해. 집에서만 있다 보니, 그, 그걸 할 상대도 없고.”

 

“남편분이랑 하면 되지 않냐.”

 

말해놓고 세라도 남 들으면 민망한 오해를 살 흐름이 된 줄 즉시 눈치챘는지, “대화를.” 하고 내가 미처 떠올리지 못한 명사를 끼워 넣었다. 나는 애매하게 웃었다. 지난 월말 이래 남편과는 변변한 대화를 한 적이 없다. 말을 버벅거리게 된 나를 남편이 배려해서 그런 건 아니고 크게 싸운 탓이다. 아니 내가 일방적으로 잘못해서 일방적으로 혼났다.

 

“어, 어쨌거나 종범이 얘기는, 뭐야? 웬 저주?”

 

“아 그게. 어디까지나 걔 스스로 한 소리를 옮기자면. ‘이상한 여자한테 저주받은 거 같다. 도와줘’라고.”

 

“뭔 소, 리야.”

 

“나야 모르지……” 세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걔가 원래부터 은근히 엉뚱한 구석 있었잖아. 우리 3학년 여름에 문집 만들 때 기억나? 귀신 들린 집 얘기 쓴다고 진짜로 산골짜기 흉가 찾아가고, 혼자서.”

 

“아하하. 그런 점이……”

 

김종범을 생각하면 ‘스프레차투라’라는 말이 함께 떠올랐다. 얼굴 윤곽이 르네상스 이탈리아 화가들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이유도 있었다. 스프레차투라는 무시하거나 경멸한다는 뜻의 이탈리아어인데 르네상스기부터 아주 어려운 일을 식은 죽 먹기인 듯이 해내는 태도를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그 말은 그의 애티튜드에도, 드물게 웃기라도 하면 언제나 상대를 비웃는 듯이 보였던 비뚜름한 미소에도 걸맞았다.

 

“……귀여웠지.”

 

가장 깊이 빠져 있을 때도 나는 김종범의 우아하게 멸시하는 듯한 미소를 증오했다.

 

“진짜 걔 귀엽다는 앤 세상 너밖에 없을 거다.” 세라는 살짝 혀를 찼다. “어쨌거나 나도 걔가 한 말 이외엔 몰라. 걔가 한 말은 아까 전한 거 그거뿐이고. 애가 쉽게 사이비 같은 데 빠질 인물은 아니겠지만…….”

 

하지만 사이비에 진지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머릿속에 누구보다도 확고한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그 세계가 흔들리지 않는 한 기괴한 오컬트든 세속적인 상식이든 김종범에게는 그저 이야기에 불과했다.

 

불필요한 걱정을 하는지, 얼마간 커피가 식는 시간을 흘려보내고 세라가 불쑥 말했다.

 

“아 맞다. 김종범이 걔 작가 된 건 알아?”

 

“어, 뭐, 뭐라고.”

 

나는 더듬거렸다. 놀란 척하기 위해서였는데, 효과적으로 먹힌 듯했다.

 

“몰랐어? 아니 얼마나 연락들을 안 하고 산 거야…… 뭐 나도 안 건 이번이지만. 걔 부업으로 판타지 웹소설 써서 대박 났다는데.”

 

“뭐?”

 

이번에야말로 나는 놀랐다. 하필이면 웹소설?

 

“난 웹소설 잘 모르는데 유명한가 봐? 그, 성좌? 가 어쩌고라던걸.”

 

잠시 후 나는 물었다.

 

“호, 혹시 ‘나태 성좌님의 절대취향’?”

 

설마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맞네. 그거다. 역시 아는구나?”

 

결코 이런 ‘역시’를 예상한 게 아니었다. 어안이 벙벙한 내게 세라는 김종범과의 카톡을 보여줬다. 작품 제목. 링크. 틀림없었다. 거짓말……을 할 리는 없지. 흡사 뒤통수를 납덩어리로 얻어맞는 충격에 눈앞이 잠깐 새하얘졌다.

 

“야…… 그거 대박, 난 정도가 아니다.”

 

소설 연재 3년 만에 누적 매출 백억원을, 해외 판권과 OSMU 사업 규모는 오백억원 대를 돌파했고 최근 1년간은 소설 연재 수익만 한 달 평균 이십억 정도가 나온다는 보도 기사를 세라는 찾아보지 않은 모양이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빠른 속도로 문예 창작 쪽과 마음이 멀어진 듯한 세라에게 하물며 웹소설은 완전히 논외 영역이었겠지.

 

나는 소설과는 먼 어른이 된 친구에게 숫자를 들어 나태성좌의 엄청남을 알려줬다. 그 결과 우리는 또 각자 혀를 내두르고 얼떨떨해하며 말없이 커피가 식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이윽고 세라가 내둘렀던 혀를 츳 차곤 다리를 꼬았다.

 

“하여간 재수가 없는 새끼다. 아니 세상에 서로 바쁘다고들 하지만 우리가 그간 연락을 아예 안 하고 산 것도 아니고? 누가 치킨이라도 사달래냐? 아니 사줘야지. 그 정도로 벌면 애들한테 치킨 쿠폰을 백개씩 뿌려야지. 하다못해 소식이라도 좀 공유하고 그러는 게 사람 사는 정 아냐? 독한 놈이 진짜……”

 

거친 말투에 채 숨기지 못한 우정과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김종범과 그 연락이란 걸 아예 안 하고 산 나는 그저 싱숭생숭해서 바닥난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는 척했다. 그리고 커피를 주문한 내 어리석음을 그제야 후회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뺨에 열이 오르는 감각이 불쾌했다. 각성을 넘어 흥분 상태. 그렇다. 다 커피 탓이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일찍 들어가봐야겠다는 인사를 세라는 역시나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었다. 몇 개월 만에 이루어진 옛 절친과의 만남이 점심 식사 후 커피 한 잔으로 끝나버렸다. 김종범의 바뀐 전화번호는 우리가 카톡으로 만날 약속을 잡을 때 전해 받았으니 이제 내가 직접 근황을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세라가 카톡으로 끝날 수도 있는 용건을 귀중한 휴일에 굳이 만나서 이야기한 것과 비슷한 이유로. 이 친구가 과연 살아는 있는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그런 실감이 흐려질 정도로 우리는 멀어진 것이다.

 

“이번 수요일 밤에 직접 봐서 얘기하쟨다. 우리 넷이서.”

 

그것이 세라를 통해 전한 김종범의 용건이었다.

 

“넷이면…… 신승현도?”

 

“응. 이렇게 넷이 만나는 거 몇 년 만인지 모르겠네.”

 

“나는…….”

 

신승현은 솔직히 약간 꺼려지는 상대였다. 최근에 연락했을 때 집요하게 투자를 요구당했기 때문이다. 하던 사업이 영 좋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김종범 역시 보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

 

나는 못 간다고 말하려다가 꿀꺽 삼켰다. 3년 전 마지막으로 본 김종범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가 현재 처한 상황을 상상했다. 어쩌면 김종범은 엄청나게 쇠약해지고 내몰려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애들도 있고, 괜찮겠지…….

 

“가, 가겠다고 전해줘.”

 

“스스로 하라고.”라며 쓴웃음을 지었지만 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니들 진짜 호되게 싸웠나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더이상 말을 잇기가 힘든 척했다. 세라는 아차 하는 눈치였다. 그 얼굴에 오랜만에 만난, 정신이 좀 병들어버린 친구를 보는 데 합당한 연민이 드러나는 순간 나는 아찔해졌다.

 

 

 

오늘의 질문이 난적이었다. ‘당신이 열렬히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 단 하나의 시답잖은 문장에 나는 세라 앞에서 책을 펴놓고 전전긍긍 펜대만 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힐링 퀘스천 북이라는 책인지 노트인지 모를 양장본은 삼 분의 일 정도 진행한 참인데, 매일 알람이 울릴 때 나는 황망한 기분으로 시답잖은 구절들을 맞닥뜨려야 했다. ‘아이로 돌아간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말을 적어보세요.’ ‘아무에게도 밝힐 수 없는 비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자기 자신이 가장 싫었을 때는 언제인가요?’

 

불쾌한 요구요 질문들이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를 제법 그럴듯한 한입 크기로 분해해 놨지만 나로선 도무지 삼킬 수가 없었다. 숨이 막혔다. 오늘 문장이야말로 가장 숨 막히는 덩어리였다. ‘당신이 열렬히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포스 목걸이. 그렇게 한 줄 적어넣고 팽개쳤다.

 

그러고 보면 이 보석에 관해 알게 된 건 김종범 때문이다.

 

“너한테는 포스포필라이트가 더 어울리겠지만……”

 

생일 선물로 탄생석인 아쿠아마린 귀걸이를 선물해주면서 말했었다. 포스, 뭐요? 포스코?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인데 그 자리에서 캐묻기도 뭐해서 나중에 알아봤다. 연한 청록색의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광물이었다. 희소성도 환상적인 데다 모스경도 3.5라는 연약함 탓에 가공마저 환상적으로 어려운. 당연히 가격은 환상의 극치를 달린다.

 

김종범에겐 내가 그런 존재였던 걸까.

 

그 보석이 내게 삼천만원이라는 구체적인 숫자로 다가온 건 몇 년 전 TASAKI라는 주얼리 업체가 만화 콜라보 목걸이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만화의 인기도 있고 그 정도면 합리적인 가격이라 눈 깜짝할 새 품절됐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달 옥션에서 나는 오천만 원에 그걸 살 뻔했다. 거의 산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남편이 보내온 카톡 메시지만 아니었더라면.

 

배너로 잠시 떠 있던 메시지는 이달 지출이 어째서 이렇게 어마어마한지, 혹시 피싱이라도 걸린 건 아닌지 의아해하고 있었다. 카톡창을 연 나는 그제야 그전 달에 산 다이아몬드 반지를 떠올렸고 입찰 취소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다이아몬드로 시작된 일이 아니다. 충동구매 대상이 보석으로 바뀐 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그전엔 인형. 책. 만년필. 향수. 화장품. 의류. 내가 내 통장뿐 아니라 남편 명의의 생활비 통장까지 뽑아 쓰는 걸 알고도 남편은 뭘 사는지 파악만 해둬라, 자기가 뭘 사는지도 모르고 통제불능으로 질러대는 게 가장 나쁘다고만 타일렀다. 그러니까, 감당이 가능했을 동안은.

 

지난달에 드디어 신용카드 명세서가 감당 가능함의 임계를 넘었음을 고지한 것이다. 2년 함께하는 동안 부담은 쌓이고 쌓여 있었고, 남편은 전형적인 ‘그때까지 쌓아둔 걸 한꺼번에 터트리는’ 타입이었다. 남편은 다이아몬드를 비롯하여 그때껏 내가 모아온 잡동사니를 차분히 세며 내가 헛되이 써버린 돈을 셈했다. 다이아몬드가 유독 비쌌지만 다 따져보니 적어도 삼천만 원은 넘었다. 남편이 내일 처분할 방법을 알아보자고 한 순간 끼이잉 이명이 울리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정신 차리니 나는 울고불고하고 있었다. 그걸 자각했을 때 갑자기 말이 목에서 꽉 막혔다. 꺽 꺽 짐승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허둥거리고 걱정하던 남편의 눈빛이 점점 차가워졌다.

 

도대체 그런 잡동사니들은 왜 산 거야?

 

왜 갖고 싶었던 거야?

 

왜? 왜 갖고 갖고 또 가져도 충족이 안 돼?

 

도대체 뭘 원하기에?

 

도대체 뭘 찾는 건데?

 

나는 우짖었다. 병신 머저리 짐승으로 우짖었다.

 

그날부터 우리는 변변한 대화를 하지 않았다. 남편은 내 물건들에 손대지 않았다. 그는 나를 방관하고 있었다. 살얼음판 같은 조용함으로.

 

말이 막히기 시작한 건 그날부터다. 이미 오랫동안 정신과의원에 통원치료를 하고 있었다. 언어장애를 기점으로 나는 오히려 발을 끊었다. 상담료며 약값을 낼 염치가 없는 줄은, 그 정도는 알았으니까.

 

서른다섯 살, 결혼 2년차, 만성 우울증, 충동조절장애, 언어장애(경미한 정도), 프리랜서, 아이 없음(애 생각만 해도 끔찍함), 차 없음, 다행히 집은 있음, 아마도 결혼생활 최대 위기. 아니다. 이런 것들조차 아니다. 한편 김종범은 작가가 됐다. 국내 최고라 불러도 손색없을 웹소설 작가이며 그 자신이 기업체나 다름없는 레벨의 크리에이터. 어엿한 어른, 우아한 인간. 스프레차투라.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검지를 꽉 깨물었다. 아프지가 않다. ……싶다, ……싶다. 내용 없는 충동이 내 정신을 빼앗아갔다.

 

 

 

김종범이 정말로 대박 기념 치킨쿠폰 백개를 뿌렸다면 세라는 정작 고스란히 반납하거나 누구 갖다줬을 것이다. 이 친구는 요즘 채식을 하고 있었다. 김종범이 예약한 곳도 비건 메뉴로 유명한 연희동의 프라이빗 다이닝 한 룸이었다. 이날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경비는 김종범이 대기로 했다.

 

중간지점에서 세라 차를 얻어 타고 20분 늦게 도착했다. 드라마 속 80년대 베벌리힐스를 연상케 하는 2층집 외부계단을 올라 오크 문을 열자 그 한 층이 고스란히 테이블 하나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남자 둘은 흰 클로스를 늘어뜨린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 있다가 우리를 향해 고개 돌렸다.

 

“어, 왔냐.”

 

“늦어서 미안.”

 

신승현과 세라가 주고받았다. 한 박자 늦게 앉은 나는 신승현 옆자리가 됐다. 김종범과는 대각선 맞은편 위치였다. 김종범의 시선이 자기 옆에 앉은 세라에게 갔다가 슬쩍 내게 눈인사했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척했다. 3년 만에 만나는 김종범은 얼굴이 좀 야위어 있었다. 흐트러진 갈색 곱슬머리는 척 보기에도 숱이 줄고 새치가 늘었다. 검은 폴로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의자에 앉은 모습은 여전히 철심을 박은 듯 반듯했다.

 

“오랜만이네.”

 

김종범의 입술이 살짝 비틀렸다. 여전한 미소였다.

 

“응.”

 

“잘 지냈어?”

 

“뭐 그렇지.”

 

오랜만에 아이라이너며 섀도를 치덕인 눈이 뻑뻑했다.

 

“그래.” 김종범은 고개를 까딱했다.

 

“주문은 어떡해? 여기 오마카세였나?” 세라가 카디건을 접어 의자 등판에 걸며 부산스럽게 끼어들었다. 신승현이 대꾸했다. “오마카세는 뭔…… 코스라니까. 너네 늦어서 좀 딜레이하고 있었으니까 기다려봐.” 신승현을 보는 것도 김종범이랑 비슷한 세월 만의 일일 텐데 이쪽은 반들반들한 뺨이 좀 불었다. 대학 시절보다 더 동안이 되어 있었다.

 

세라는 신승현에게 한눈에 반해 한때 푹 빠져 있었는데 워낙 빈번히 싸우는 바람에 연애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신승현만한 남자가 없다고 푸념했다. 얼굴이 미소년 스타일이고 밤일을 잘한다는 점에서. 후자는 전혀 알고 싶지 않은 정보였다.

 

곧 종업원이 에피타이저를 내왔다. 주방이 1층에 있는지 쟁반을 들고 계단을 올라왔다. 세라가 “어쩜, 가짓수가 많으면 힘드시겠다.”고 감탄하자 김종범이 대답했다. “대신 플로어에 우리만 있을 수 있잖아.” 내겐 ‘누가 엿들을 우려가 없잖아’처럼 들렸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는 화제가 단숨에 김종범의 지나친 보안 의식으로 넘어갔다.

 

“아니 너 근데 어떻게 우리한테까지 숨길 수가 있냐?” 신승현이 테이프를 끊었다. 김종범은 옅은 웃음을 띤 채로 친구들의 격렬한 서운함과 비난과 축하를 받아들였다. 아니, 흘려넘겼다고 하는 쪽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카프레제를 깨작이거나 냉수로 입술을 축이거나 하며 응응 맞장구만 치고 있었다.

 

“야, 넌 왜 말이 없어.” 갑자기 신승현이 나를 지목했다. 세라가 얼른 나섰다. “수연이는 그게……”

 

“괜찮아.” 나는 세라를 막았다. 다시 냉수 한 모금을 마시고, “나태성좌는 나도 잘 보고 있었는데 너였다니 놀랍다. 뒤늦게 축하해.” 단숨에 말했다. 한 번도 막히지 않았다.

 

“고마워.” 대답과는 달리 김종범의 미소가 일순 일그러졌다. “근데 뭐, 인제는 내가 그거 땜에 큰일 났어.”

 

“하긴 그만큼 인기작이면 마음고생도 따르겠지. 최근에도 그……” 신승현도 나태성좌에 관해 아는 모양이었다. 하려다 만 말은 SNS에서 있었던 논란에 관해서였을 것이다.

 

“응, 뭐. 담당 편집자님이 정말 고생하셨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세라를 보고 김종범은 트위터의 작가 계정을 본인이 아니라 담당 편집자가 전부 관리했기에 사이버 불링이 있었을 때 편집자가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확인이 필요할 때만 컨펌하고 김종범은 아예 신경을 끄고 산다고 했다. 평판이나 평가는 거의 듣지 않는다. 댓글 확인이나 공지 등 독자와의 최소한 커뮤니케이션조차 담당에게 일임하는 정도다. 김종범은 사적인 SNS도 전혀 하지 않았다.

 

“너도 진짜 욕봤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신승현은 좀 신나 보였다. 김종범은 시종일관 차분한 분위기였다. 입가에 걸린 미소만이 때때로 뉘앙스를 달리했다. 그런데 이때 김종범의 미소가 어두운 그늘을 띠었다.

 

“응, 뭐.”

 

이 정도로, 하고 웃으며 김종범은 고개를 푹 숙였다. 내민 정수리가 휑해서 우리는 깜짝 놀랐다. 머리숱이 좀 적다 싶었는데…… 스트레스성 탈모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너 어떻게 된 거야?” 세라의 목소리에 우려가 가득했다. “이상한 말 했잖아. 무슨 오컬트 같은 소리…… 너 막 귀신들리고 이런 거 아니지?”

 

“귀신……” 다시 고개를 든 김종범은 단어를 음미하는 눈치였다. “그럴지도 모르겠네. 일종의.”

 

“대박. 너 또 흉가 갔냐?” 신승현은 여전히 신난 템포였다. 김종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스토커야. 내 팬이라는…… 그 여자가 나를 저주했어.”

 

 

 

 

 

 

플랫폼 측에서 기획한 작가와의 만남 이벤트를 김종범이 수락한 건 대표와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그쪽이 먼저 계약 조건 상향을 말한 후 ‘부탁’해왔기 때문이다. 상당히 쏠쏠한 메리트를 받아놓고 그 정도 부탁을 거절하기가 뭐했다. 그렇게 만드는 화술인 줄 알면서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저희 플랫폼 통해서 응모한 독자님 수십 분을 추첨해서 북콘서트 형식의 행사를 갖고, 질의응답과 사인회도 진행하고…… 아, 물론 미큐 작가님이 노출을 저어하시므로 사진 촬영은 엄금으로 가고요, 입장 시 작품 관련한 거 말고 작가님의 성별이나, 신상에 관해서 참석 후기 같은 데 언급을 삼가달라는 안내장을 배부할 겁니다.”

 

미큐는 김종범의 필명이다. 어쨌든 그러라 한 후 후식 멘보샤를 씹으며 차근차근 생각한 김종범은 이제껏 담당자에게 내팽개쳐놓고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던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에 대한 일말의 흥미를 발견했다. 도대체 내 생산물에 열렬한 관심을 갖는 독자라는 존재의 실체는 무엇일까? 김종범이라고 자기 소설에 애착이 없는 건 아니었고 항상 나름대로 성의와 공을 들여 집필하고 있었지만, 그는 매달 통장에 찍히는 수억원 대의 수익이 매번 얼떨떨했다. 자신의 노력이 그 정도의 결과로 이어진다는 인과가 기괴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나태성 피규어가 출시되지 않습니까? 이게 일본에 발주해서 상당히 하이엔드 사양에 고가품으로 진행이 됐는데…… 그래서 이쪽을 구매자분께도 뭔가 특전을 더 붙이는 게 어떨까 해서 저희가 브레인스토밍을 해봤는데요.”

 

나태성은 김종범의 소설 주인공 이름이다. 피규어 구매자에게도 응모권을 줘서 단 한 명을 추첨하여 작가와의 디너를 갖는 게 어떠겠느냐는 아이디어를, 김종범은 선뜻 긍정했다. 사실 불특정 다수와 만나는 북콘서트 방식보단 이쪽이 부담이 덜했다. 오히려 대표가 순간 ‘이게 통과가 돼?’라는 듯 눈빛이 흔들렸을 정도로 서슴없는 수락이었다. 그렇게 좋게좋게 기획한 이벤트가 설마 미큐에 대한 대규모 사이버불링의 계기가 될 줄은 그 자리의 둘 다 꿈에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쁜 일은 찾아오기 전에 종종 경사스러운 사자를 보내온다. 그게 소박하게나마 김종범이 습득한 세상 사는 이치 중 하나였다. 담당 편집자가 잔뜩 흥분하여 ‘ㅋㅋㅋㅋㅋㅋ’로 도배된 메시지와 함께 사진을 전송했을 때 김종범은 처음으로 어떤 예감을 느꼈다.

 

‘이것 좀 보세요ㅋㅋㅋㅋㅋㅋ 굉장하지 않나요? 무작위 추첨으로 하려 했는데 정성을 봐서라도 이분 모셔야 할 거 같아요.’

 

작가와의 디너 추첨은 아날로그하게 피규어에 동봉된 응모권을 엽서에 붙여 편집부로 보낸다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김종범에게 전송된 사진은 응모권 스무 개를 빼곡하게 붙인 편지지를 찍은 것이었다. 소설과 연관된 문양을 검붉은 색으로 디자인한 응모권 스무 개가 눈에 들어온 순간 김종범은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지금 돌이켜보면 분명 그건 ‘좋지 않은 예감’이었다.

 

‘피규어 분명 삼백 개 한정이었죠? 그중 스무 개를 저분이 사신 거네요? 그것도 경쟁이 치열해서 순식간에 완판됐다고 들었는데.’

 

‘네. 가격으로 치면……’ 백 단위 금액이었다. ‘정말 열렬한 팬이신가 봐요. 이렇게까지 애정을 가져주시다니 고맙죠.’

 

1인당 구매 개수 제한을 설정했어야 하지 않느냐거나, 혹시 되팔기 위해 대량 구매한 건 아니겠느냐는 이의가 혀끝을 맴돌았다. 그러나 열정과 성실함으로 반짝이는 담당 편집자의 눈빛이 떠올랐고 자기 일처럼 감탄하고 즐거워하는 그에게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다. 데뷔 때부터 자신이 했어야 할 미큐의 대외 활동까지 대행하며 고생하는 사람이었다. 결국 김종범은 비슷하게 나쁜 예감을 느꼈던 다른 순간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자신의 감각을 무시했다. 그렇게 디너 초청자가 결정되었다.

 

북콘서트 겸 사인회는 어떻게든 무난하게 끝났다. 그리고 며칠 후, 채식이 가능한 프라이빗 다이닝에서 ―김종범이 우리를 부른 바로 이 가게다― 담당 편집자 동석하에 피규어 스무 개의 독자와 저녁을 갖게 됐다. 그 독자가 막판에 채식을 한다는 뜻을 전해오는 바람에 편집자는 예약한 가게를 급하게 바꿔야 했다고 한다.

 

‘뒤틀렸다.’

 

그 여자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딱히 못난 생김은 아니었다. 삼십 대 초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외모에 새까만 스트레이트를 가슴께까지 내리뜨렸다. 크게 잘나지도 않았지만 평범했고 굳이 말하면 외모에 신경 쓴 티를 적당히 냄으로써 사교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김종범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균형이 흉하게 깨져 있다는 감상을 받았다. 그 ‘뒤틀림’이 어쩌면 그녀의 ‘실망’ 내지 ‘배신감’에서 비롯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아주 나중에 찾아왔다.

 

다이닝에 찾아온 여자는 처음에 담당 편집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편집자가 김종범을 미큐라고 소개하자 놀라는 눈치였다.

 

“어머! 작가님 여자분이실 줄 알았어요.” 이게 첫마디였다.

 

“하하, 그렇게 생각하시는 독자분들이 많죠.”

 

김종범은 쓴웃음을 지었다. 독자들과의 만남에 대비해서 담당 편집자(여성이다)와 함께 여러모로 예습을 했고, 그중엔 남성향 판타지 소설을 쓰는데도 불구하고 팬 사이에선 몇 가지 근거를 들어 미큐가 여자일 거란 추측이 떠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전 북콘서트 때도 나온 얘기였다. 그녀는 북콘서트 때는 추첨을 통과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북콘서트 참석자들에게 미큐의 성별 등에 대한 신상정보를 퍼트리지 말아달라고 했으니.

 

여하튼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대단한 연예인이라도 만난 듯 호들갑스러운 반가움을 표해주고, 손수 구웠다는 쿠키 세트와 오더메이드로 제작한 작중 몬스터 피규어까지 선물해줬다. 김종범은 편집자가 미리 골라 준비해준 향초를 답례로 내밀었다. 편집자는 오늘 만날 사람이 여자고, 여자 독자는 절대 빈손으로 오지 않는다고 예측했던 것이다. 대화를 나눌 때도 편집자가 중재하고 리드해줘서 사교적 말재간에 자신 없는 김종범으로서는 정말 살았다 싶었다.

 

“그나저나 가격도 있는 피규어를 스무 개나 사주시다니 너무 놀랍고 감사한데요. 정은경 님은 제 소설의 어떤 부분을 좋아해 주시는지 궁금하군요.”

 

김종범이 그렇게 소박한 질문을 던졌을 때 정은경이라 이름을 밝힌 여자는 어쩐지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즉각 호의적인 미소를 띠고 사근사근 말했다.

 

“나태성좌는 일단 재밌죠. 너무 재밌는데요, 자극만 쫓지 않고 무해하고자 하는 고민이 보인다는 거, 그게 전 제일 좋았어요.”

 

제가 생각해도 끝내준다 싶은 몇 장면을 떠올리고 있던 김종범은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일순 말문이 막혔다. 무해?

 

“제가 판타지를 정말 많이 읽는데요. 사실 처음엔 나태성좌도 약간…… 빻은? 부분이 없다고 할 순 없었지만 다른 판타지 소설들처럼 여캐를 모욕감 느낄 만큼 납작하게 취급하지 않아서 색달랐어요. 그래서 초반에 윤간미수 에피소드 나왔을 때도, 약간 실망할 뻔하긴 했지만 수정하실 거라고 믿었거든요.”

 

“아…… 네에. 그 부분은.”

 

김종범은 저도 모르게 또 편집자를 힐끗했다. 편집자는 완벽한 미소를 띠며 정은경을 바라보는 채였다. 초반 스물 몇 화에서 주인공 파티원 여성 캐릭터가 성적 위협을 당하는 장면이 그려졌는데, 업로드 몇 주 후 갑작스럽게 논란이 되어 수정한 일이 있었다. 그때 미큐의 트위터에 상당한 욕설과 공격이 들어와서 계정을 관리하던 편집자가 꽤 고생했었다.

 

“나름대로 간접적으로만 표현할 생각이었는데 제가 부주의한 바람에…… 독자분들께 심려를 끼쳤죠.”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그땐 여자 작가님일 거라고 생각했어서 음, 의외다 했었는데, 뭐 남자 작가님이셨으니…….”

 

사근사근한 채로 말을 흐리더니 그녀는 냉수를 홀짝거렸다. 김종범은 뭐라 대응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저를 여자 작가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네요. 참 신기해요. 그렇게 의식하고 쓴 적도 없고 어디까지나 남자 독자 위주의 사이트에서 연재한 판타지 소설인데요. 로맨스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디가 그렇게 보이는 걸까요?”

 

어쨌든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정은경은 눈을 마주치지 않고 투명한 유리 물컵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티슈로 문질러 닦고 있었다. 새끼손가락의 손톱 부위가 흰 붕대로 둘둘 말려 있는 것을 김종범은 보았다. 검붉은 자국이 점점이 배어 있었다.

 

“남자 작가님의 작품은 뭐랄까, 티가 나는 편이죠. 일단 이야기가 단순해요. 찌질하던 주인공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가 회귀든 전생이든 해서 짱 먹는 얘기. 갈등이랄 것도 없고 무슨 말만 하면 주변이 대단하다고 우러러봐 주고 여자들은 순종하죠. 판타지 수천 편을 봐도 똑같아요. 하지만 나태성좌는 달랐어요.”

 

꾸욱꾸욱, 붉은 자국이 있던 자리를 꼼꼼히 닦았다.

 

“나태성좌는 주인공이 찌질하지 않고, 실은 자기본위적인 주제에 고민하는 척하면 주변이 멋대로 그 욕망을 채워준다는 편한 전개에 의존하지 않았어요. 제대로 갈등하고 상처받고 깨지고 성장하는 주인공이죠. 다루는 상황도 복잡한 편이고 윤리적으로 고민해서 설계했다고 느꼈어요. 그러니까, 다른 남자가 쓴 소설들에 비하면.”

 

“네에…….”

 

김종범은 애매하게 맞장구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퍼뜩, 정은경이 눈을 홉떴다. 김종범은 움찔했다.

 

“작가님은 나태성좌를 어떻게 쓰시게 된 거예요?”

 

“……네. 퇴근하면 웹소설을 보는 게 취미였는데 그중 성좌물이라는 게 있어서…….”

 

“‘진짜로’ 어떻게 쓰시게 된 거예요?”

 

“…….”

 

김종범은 자신이 두르던 사회적 가면이 스륵 해제되어 민낯이 노출되는 감각을 느꼈다. 그를 응시하는 정은경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역시 흉하다고 그는 실감했다. 그러나 김종범은 어쩐지 짐을 내려놓은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글을 쓰고 싶은데 이왕이면 돈도 잘 벌면 좋겠다 싶어서, 유행하는 판타지들을 참고해서 쓰게 됐어요.”

 

옆에서 편집자가 움찔했지만 김종범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작품들을 관찰하다 보니 일정한 패턴 같은 게 있길래, 그걸 나름대로 연구해서 써봤죠. 그게 이렇게까지 히트를 할 줄은 저도 꿈에도 몰랐네요. 지금도 어디가 그렇게 팔릴 만한 요소였는지 아리까리합니다.”

 

“어머, 작가님 이거 좀 드셔보세요. 세상에 콩고기 같지가 않네. 완전 스테이크 맛 나요.”

 

편집자가 끼어들었다. 김종범은 문득 입가를 쓸었고, 자신이 미소 짓고 있음을 알았다. 노력해서 웃음을 만들었다는 의식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미소일 것이다. 정떨어지고 재수 없는 미소.

 

“다른 작품을……? 그건 다른 판타지들에서 먹히는 요소만 뽑아서 베꼈다는 말씀인가요?”

 

정은경이 처음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김종범은 편집자가 권한 대체육 스테이크를 한 점 씹어 삼키고 담담히 대답했다.

 

“잘은 몰라도 장르소설이라는 게 독자들이 좋아하고 익숙해하는 요소들의 축적이고, 요즘 웹소설은 특히 실험을 허용 안 하지 않나요. 하지만 아무래도 쓰는 제, 뭐랄까 아집이랄지 고집이랄지, 그런 부분이 자연스럽게 녹아 나와서 말씀하신 다른 판타지와 차별화되는 성격이 만들어진 거겠죠.”

 

“그렇……군요. 결국 글이란 건 인격으로 쓰는 거니까요.”

 

“인격……? 글쎄요. 그랬다면 제 글은 훨씬 정떨어지고 재수 없는 얘기가 됐을걸요. 그보다는 기술이겠죠. 어떤 상징들을 규약에 맞게, 읽는 이에게 미칠 효과를 감안하여 적절하고 유창하게 구사하는 기술 같은 거.”

 

‘애초에 문학을 하려는 것도 아닌걸요’라고 그는 헛웃음과 함께 덧붙였다. ‘문학’ 비슷한 건 대학생 때 조금 갖고 놀다가 곧 질렸다.

 

“작가님 혹시 공대생이셨어요?”

 

좀 더 큰 헛웃음이 터졌다. 확실히 그는 공대 출신이었다.

 

“뭐 웹소설 쓰는 데 학과는 상관없지요.”

 

“흑태양성 에피소드에서요.” 정은경은 아무리 닦아도 완벽하게 투명해지지 못하는 유리컵을 내버려두고 테이블 위로 손깍지를 꼈다. “흑광왕을 공략하기 위해서 나태성이 연극을 공연하잖아요. 거기서 배우가 된 파티원들이 저마다 품은 콤플렉스나 갈등 같은 것도 드러나고요. 무엇보다 극의 클라이맥스에서 하이네가 아무 버프 없이 하프를 켜는 씬…… 묘사가 너무나도 아름다웠어요.”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그 부분은 나름대로 신경 썼어요.”

 

“극예술이나 음악에 대해 작가님이 가지신 애정이 느껴지고 예술이 주는 치유를 체감할 수 있었어요. 사이코패스로 그려지던 흑광왕이 난생처음으로 충격받고 구원받는 기분조차 느끼는 거, 공감 갔는데…….”

 

“감사합니다. 잘 읽어주셔서. 하지만 연극이나 음악 같은 거에 대해서 저 자신이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에요. 전개상 가장 잘 맞겠다 싶어서 넣었고, 자료는 인터넷 찾아봤습니다.”

 

“…….”

 

어색한 침묵이 몇 초 흐르고, 정신이 들었다는 듯이 다시 편집자가 끼어들어 분위기를 수습했다. 그녀는 때론 음식을 권하기도 하고 공개해도 될 법한 편집 에피소드를 풀어놓기도 하며 즐거운 자리를 꾸미느라 애썼다. 정은경은 기획회의에서 김종범이 내놓은 형편없는 아이디어를 편집자가 뜯어말리고 설정을 다듬어낸 과정을 흥미 깊게 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명장면도 몇 가지 있었다. 정은경이 수차례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지만 그것도 김종범이 입을 열기 전에 편집자가 무난하게 받아넘겼다.

 

김종범은 아예 주도권을 편집자에게 넘겨주고 맞장구나 좀 치는 위치가 됐다. 사실 그는 슬슬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어느새 눈앞의 ‘독자’에 대한 흥미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녀에게서 자신의 작가로서의 뭔가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전무했다. 이미 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게 나름의 성의였다. 잘 읽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 진심에는 어떠한 감격도 감개도 담겨 있지 않았다. 매월 통장에 찍히는 이상할 정도로 많은 금액 쪽이 눈앞의 ‘독자’보다 더 실감이 날 정도였다.

 

결국, 글쓰기라는 건 자신에게 그냥 노동이다. 회사의 톱니바퀴로 일할 때보다 스트레스가 적고 즐거운 노동. 분에 넘치는 보상도 들어오는. 그냥 내 할 일일 뿐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 결과물을 어떻게 접하고 뭘 느낄지는 ‘독자’ 몫이지,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닌 것이다.

 

그렇게 김종범은 일찌감치 감상을 갈무리했다. 다시금 사교적인 미소를 만들어 붙인 그는 편집자에게서 자연스럽게 주도권을 가져왔고 정은경도 어느새 무난한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결국 예정한 두 시간을 채우고 디너를 파했다. 정은경을 먼저 배웅한 후, 편집자로부터 그렇게 예의 없는 사람인 줄 몰랐다는 사죄와 그런데 왜 작가님은 말을 막 하시냐는 비난을 받아 괜찮다 미안하다를 건넨 걸로 그날 일과는 끝났다.

 

그리고 그날 한밤중에 김종범은 또 정은경을 보았다.

 

숨이 턱 막히는 느낌에 잠에서 깨어났다. 몸을 뒤척이려 했는데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어렴풋이 눈 뜬 김종범은 완벽하게 빛을 차단한 침실의 허공에서 무언가 주변 어둠보다도 더 검게 뭉친 것을 보았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가슴 위에 있었다. 서 있었다. 사람의 형상이라고 그는 직감했다.

 

그것은 김종범의 가슴을 밟고 서서, 그를 내려다보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흐느끼는 소리가 뒤늦게 귀에 들어왔다.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작가님…….”

 

정은경 씨? 하고 김종범은 우물거렸다. 발음하려 했는데 혀가 돌아가지 않았다.

 

“작가님……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 있어요…….”

 

얼굴은 새까매서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김종범은 그것이 일그러져 있음을 알았다. 저녁에 본 정은경의 얼굴이 떠올라 그림자의 얼굴 부위와 겹쳐지는 순간 온몸에서 순식간에 피가 싹 빠져나가는 듯한 오한이 엄습했다. 사지를 바르작거리려 해도 여전히 말을 듣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다.

 

김종범은 눈을 활짝 뜬 채로 그림자의 얼굴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봐선 안 된다, 인식해선 안 된다고 가슴이 경종을 울리는데도.

 

“기대했는데…… 나태성좌는 제 인생작인데…… 그런 작품을 쓰시는 작가님은 얼마나 멋지신 분일지 얼마나 열정 있는 분일지…… 기대돼서 잠도 못 이루고…… 그런데 그렇게나 무성의하게…….”

 

“실망시켜드려서 죄송합니다.”

 

매끄럽게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입을 움직인다는 자각은 전혀 없었다. 이건 꿈이구나, 가위에 눌리는 거구나. 김종범은 저항을 관두고 상황에 몸을 맡겼다.

 

“하지만 결코 성의 없이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작품을 대충 쓰지도 않습니다. 저 나름대로 정은경 씨께, 독자님께 진심을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로 인해 상처받으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어릴 적부터 줄곧 판타지 소설만 수천 가지를 읽어왔어요…… 나태성좌는 그중에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사비로 외국어로 번역해서 해외 사이트에 소개할 만큼…….”

 

“네……? 소개요? 사비로 번역……? 저기, 지금 제 소설을 불법 번역해서 해외에 뿌렸다는 말씀이신 건……?”

 

“훌륭한 작품이잖아요! 세상 사람 모두가 읽어야 할 만큼!” 검은 것의 어조가 격해졌다. 무지근하게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에 김종범은 절로 컥 소리를 냈다. “전부를 번역한 것도 아니에요, 홍보가 될 만큼만! 나태성좌 해외 판권들이 수출된 것도 다, 제 노력이 조금은 반영된 거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일단은 그렇다고 말하려 했다. 그림자를 진정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목소리가 자신을 배신하고 본심을 고했다.

 

“아니요. 그건 엄연한 불법 행위고 저작권 침해죠.”

 

김종범의 위에서 그것은 길게 내려뜨린 머리카락을 후들후들 떨었다.

 

“고마워하길 바란 게 아니야! 내가 좋아서 한 거니까. 어디까지나 내가, 내가 나태성좌를 사랑해서…… 그런데 그 대가가 이거야?”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것은 흐느꼈다. 흐느낌에 맞춰 그림자가 떨렸고 김종범의 가슴이 흔들렸다. 진동은 점점 거세졌다.

 

“……인 줄 알았으면…… 돈 안 썼을…….”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중얼거리는 소리는 빨라지고 뭉개져갔다. 안 좋다. 김종범은 뒤늦게 찬 돌덩이 같은 공포심이 배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움직여야 한다. 움직여. 꿈에서 깨야 해. 가위를 풀어! 그는 손끝부터 신경을 집중했다.

 

뚝. 갑자기 조용해졌다.

 

“작가님.” 맑고 사근사근한 목소리였다. “저 물어봐도 되나요.”

 

“하세요.” 김종범의 목소리도 아무렇지 않게 들렸다. 왼손 검지 끝이 아주 조금 움찔한 기분이 들었다.

 

“작가님은 왜 여자가 아니세요?”

 

“예?”

 

“왜 여자 작가님이 아니세요? 여자분이실 줄 알고, 응원하려고 결제도 꼬박꼬박하고 굿즈도 다 모았는데.”

 

“그게 무슨…….”

 

“작품이 그렇게 좋잖아요? 쓰레기 양판소 아니잖아요? 생각이란 걸 하고 쓴 티가 나잖아요? 좋은 거니까, 작가님도 좋은 사람이셔야죠. 근데 왜…….”

 

바들바들바들. 진동이 재개되었다. 김종범의 몸이 끈 떨어진 인형처럼 출렁였다. 부릅뜬 눈이 시큰거렸다. 필사적으로 왼손 검지에 집중했다.

 

“억울해…… 용서 못 해…….”

 

그때였다. 그림자의 얼굴이 훅 내려왔다. 물어뜯긴다고 패닉에 빠진 것과 왼손 검지의 관절이 툭 굽어진 건 동시였다. 순식간에 가위눌림이 풀렸다. 김종범은 비명을 지르며 팔을 휘저었다. 팔은 어둠만을 갈랐다.

 

벌떡 일어났을 때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의 거친 숨소리만이 밤의 고요를 깨트리고 있었다. 김종범은 눈을 끔뻑이고 귀를 벅벅 문질렀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 그것이 귓가에 대고 한 소리가 끈적하게 달라붙어 지워지지 않았다.

 

“저주할 거야…….”

 

 

 

 

 

 

“대박.”

 

신승현이 고개를 저으며 손뼉을 쳤다. 세라는 눈살을 찌푸리고 팔에 돋은 닭살을 쓸어내리는 시늉을 했다.

 

“그냥 악몽 꾼 거 아냐?” 내가 말하자 김종범이 끄덕였다.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정은경 씨에 대한 앙금 같은 게 해소가 안 돼서 꿈에 나왔다고. 그런데.”

 

“그런데 뭐.” 내 말투가 불필요하게 날카로워지고 있는 걸 느꼈다. 눈치챘는지 아닌지 김종범은 느긋하게 계속했다.

 

“들어봐. 그게 시작이었으니까. 그다음 날부터…….”

 

 

 

 

 

 

내내 잠을 설친 후 아침이 밝자마자 김종범은 서재 책상 위에 놔둔 정은경의 선물부터 찾았다. 간밤의 일은 가위눌림에서 괜한 악몽을 꾼 걸로 치부했지만 정은경을 연상케 하는 물건이 눈에 띄는 게 거북했다. 다시 상자에 넣어 서랍 안에 치워두자고 묵직한 오더메이드 몬스터 피규어를 낚아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