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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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며칠전 제게 메일이 하나 왔습니다.

 

사실 이 글을 공개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메일을 읽은 뒤 근래 들어 점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 원인이 뭘까 하다가, 혹시 이 메일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싶어 고심끝에 메일을 공개해봅니다.

 

오컬트나 저주등을 잘 아시는 분들께서 댓글로 의견을 주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분명 제게 뭔가를 부탁, 아니 하소연 하는 내용이지만,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 그저 글쟁이일 뿐이니 딱히 도움 드릴만한 부분이 없었죠.

 

서두가 너무 길어졌으니, 일단 메일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발신자 및 기타 개인정보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니, 참작해서 봐주시기 바랍니다.

 

 

 

 

 

사연을 제보합니다.

 

2020-12-25 (금) 22:45

 

안녕하세요.

 

후안님의 글을 즐겨보는 독자 중 한 명입니다.

 

후안님은 여러 가지 공포 소설도 많이 쓰셨고, 글을 쓴 지도 오래되었으니 혹 제 사연을 보면 그 현상의 원인을 알고 계실까 싶어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메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이 이야기는 제가 겪었던 실화입니다.

 

저는 현재 서울에 사는 평범한 남성이며, 이 이야기에 대한 모든 정보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겠습니다.

 

이유는 제가 생활했던 군시절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인데, 군의 정보는 보안이 철저해야 하기에 부득이하게 숨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아재 소리를 들을만한 나이입니다. 현재는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귀신이나 약간 뜬구름 잡는 일화들은 좀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현실은 사람이 무섭다 부류일까요? 지금 이야기도 제가 헛것을 보았거나 환청을 들은 거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오히려 더 편할 수도 있으니까요.

 

20년 전, 저는 ‘시설 보급’의 특기를 받고 자대에 배치되었습니다. 평소 대부분 생각하는 그런 보급병의 이미지와는 좀 달리, 부대 전체의 보급을 책임지는 커다란 유통창고라 보시면 됩니다. 일종의 대형 마트를 생각하면 되는데,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마트처럼 지방 각지의 사단급 부대에서 찾아와 일종의 전표(?)를 주고 보급품을 받아 가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보급품들을 사단 각지 중대에 나눠주는 것이 바로 편성보급병들입니다. 즉, 이들이 흔히 모두가 생각하는 보급병의 이미지겠죠. 부대 내 편성보급과 부대 외 시설 보급은 차이가 큽니다.)

 

군대에서는 모든 보급품을 1종부터 10종까지 나눕니다. 이중 눈여겨볼 건 바로 10종. 10종은 폐품을 뜻하는데, 2014년 바뀌기 전까지 영현도 10종에 포함되었었습니다. 영현이란 바로 시신을 뜻합니다. 즉, 사고나 기타 등등의 문제로 죽은 군인들의 화장한 뼛가루들을 보관하는 영현 보관소가 존재했던 것이죠. 제가 근무했던 부대 역시 영현 보관소가 있었습니다.

 

군 생활을 하면 경계근무라는 것을 합니다. 중요 거점에 일정 시간 동안 침입자나 혹은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총기를 들고 경계를 서는 일인데, 우리 중대에서는 유류 창고 경계를 했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대부분 분은 아시다시피, 자다가 도중에 깨어 근무를 나가는 건 진짜 짜증이 나는 일이죠. 그것도 한참 잠들어있다가 새벽 2시나 3시경에 근무를 나가면 당최 잠이 달아나지를 않습니다. 비몽사몽인 거죠. 보통 근무는 계급이 높은 사수와 계급이 낮은 부사수 이 인조로 근무를 서게 됩니다.

 

우리 부대는 근무를 명 받고 탄약을 받기 위해 이동하는 거리 중간에, 영현 보관소가 존재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겪다 보니 익숙해지더군요. 하지만 그래도 죽은 이들로 가득한 보관소를 지나치는 것은 꺼림직했습니다.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떠들거나,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시선을 돌리며 보관소 주변을 재빨리 지나쳤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그때 근무를 서기 위해 나선 시각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략 새벽 3시 경인 듯싶네요. 당시 혹한기 훈련을 앞서고 있던 터라,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였습니다. 군대에서는 가장 힘든 훈련이 일 년에 두 번 있는데, 여름에 유격과 겨울에 혹한기에요. 그래서인지 신경을 많이 쓴지라 잠도 설치고, 더군다나 근무까지 나가니 기분이 되게 안 좋고 불쾌했습니다. 괜히 같이 가는 부사수에게 투덜대며 영현 보관소를 지나치는데, 문득 돌아본 보관소 건물의 창문에 뭔가 보이는 겁니다.

 

검은 얼룩 같았습니다.

 

불이 켜진 것도 없었고, 길을 비추는 가로등 몇 개가 전부라 건물 그 자체가 온통 깜깜했는데, 그 와중에도 창문 하나의 구석이 더 검었어요. 저는 부사수를 향해 넌지시 물었습니다. 저기 이상하지 않냐고. 부사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이 덜 깨서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어 무심히 넘겼어요.

 

탄약을 받고 근무지에 도착하여 경계근무를 서기 시작했습니다.

 

유류 창고는 흔히 말하는 드럼통이 가득한 널찍한 공간입니다. 화기나 폭발에 굉장히 민감한 지역이라 태반이 모래밭이라 보면 되는데, 보통 사단 정도의 부대에서 유류를 보급받으려면 드럼통 수십 개는 가져가야 하기에, 가장 큰 군용트럭(보통 11t 대형트럭 정도)이 들어올 수 있을 만한 넓은 입구를 지닙니다. 그 양 끝으로 나눠 서서 근무를 섭니다. 입구 정면으로는 죽 길이 나 있고, 그 길가에 관상용으로 수풀? 아무튼 1m 정도의 우거진 수풀이 길게 늘어섰었습니다. 제가 위치했던 곳은 그 수풀들도 보이고, 저만치 건너 건물도 보이는 장소였는데, 입구는 쇠기둥 둘을 이어 커다란 쇠사슬이 늘어져 있었고 저는 그 쇠기둥에 기대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시선이 건물로 향했고, 새벽 어두운 밤은 달빛 하나 없었습니다.

 

건물 창문 구석에 검은 그림자가 보였습니다.

 

글쎄요. 전부 검었던 건 아니었어요. 대충 3분의 1 정도? 당시 기억이 오래되어 가물거리지만 분명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저는 눈을 몇 번 깜박이고 다시 집중해 쳐다봤어요. 분명, 창문 구석 부분이(정확히는 우측 모서리부터 중간까지) 이상하게 검었습니다. 얼룩이 진 것 같았어요. 아까 영현 보관소에서 본 그 광경과 매우 흡사했습니다. 후임병에게 말할까 했지만, 후임병은 멀리 떨어져 있어 건물이 보이지 않는 위치였습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그 검은 얼룩이 살짝 움직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꾸덕거리는 뭐랄까, 아메바? 아메바 같은 움직임이었다고 할까요?

 

그 검은 얼룩이 천천히 구석에서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을 그저 멍하니 보고만 있었습니다. 물론 내가 잠이 덜 깨서 헛것을 다 보는구나 하는 심정으로요.

 

그 검은 얼룩을 계속 쳐다보고 있는데, 뭔가 기분 나쁜 시선이 느껴져 눈을 돌렸습니다.

 

앞에 수풀이 살짝씩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제 바로 앞은 아니나, 대략 3m 정도 부근 거리의 수풀들이 살짝살짝 흔들렸는데, 바람 하나 없는 새벽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쳐다만 봤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소총을 들고 후임병에게 소리친 뒤 사격 자세 후 암구호를 외치는 게 일반적인데(암구호는 침입자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일종의 암호 문답입니다.), 계속 생각나는 것은 잠이 덜 깼구나 이 생각뿐이었어요.

 

그리고 흔들리던 수풀에서 불쑥 뭔가 튀어나왔습니다.

 

그건 전투모였어요. 전투모. 분명 전투모였습니다. 군대에서 쓰는 모자를 전투모라 하는데, 그 특유의 각으로 한 번에 구분했습니다. 지금은 베레모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당시 저는 바로 전투모라고 직감했습니다.

 

그 색은 당시 제가 근무하던 전투모와는 매우 달랐습니다. 우선 얼룩무늬가 없었고, 온통 민무늬였는데, 밤인지라 그 색을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짙은 회색일 거라 짐작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멍하니 보고 있었습니다. 우선 엄청 졸음이 쏟아졌거든요. 왜인지 모르게 갑자기 졸음이 엄청나게 쏟아졌어요.

 

그리고, 수풀들 수십 개가 전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수풀 뒤로, 그 뒤로, 그 뒤로, 그 뒤로, 그 뒤로 모두가요.

 

그리고 그 민무늬 전투모들이 여기저기 튀어나왔습니다.

 

저는 그제야 졸린 게 슬슬 깨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면서 악몽을 꾸는 거 같은 느낌 있죠? 이건 마치 악몽을 꾸다 깨서 아 꿈이야 하고 안도하다 다시 잠들었는데, 다시 그 악몽을 이어 꾸는 그런 감정과도 같았어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전투모를 쓰고 있는 머리들이 있었어요.

 

수십 명의 눈이 전투모 밑으로 저를 쳐다보며 슬금슬금 수풀 사이로 움직이고 있었단 말입니다.

 

저는 비명을 버럭 질렀고, 그 소리에 깜짝 놀란 후임병이 제게 뭐라고 외쳤지만, 제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단 한마디였습니다.

 

사람들이 수십 명이야. 수십 명이 여기로 오고 있어.

 

후임병은 보이지 않는지 계속 되물었지만, 저는 쉬지 않고 사람들이 오고 있다 사람들이 오고 있다만 반복해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반사적으로 소총을 들어 겨누며 암구호를 물었죠.

 

그러니,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그 창문, 검은 얼룩 같은 것이 붙어있던 건물의 창문을 쳐다봤습니다.

 

검은 얼룩은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후임병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합니다. 저는 다음날, 인트라넷이라고 부대 내에서만 사용 가능한 일종의 인터넷을 이용해 전투모랑 군복을 검색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봤던 그 전투모와 가장 비슷한 걸 발견했어요.

 

71년 전투모가 바뀌기 전, 안에 철사를 대어 빳빳한 형태의 짙은 국방색 모자.

 

미군 작업모를 그대로 본뜬, 사각으로 각이 선 형태.

 

바로 당시보다 한참 전 초창기 육군이 착용하던 70년대 이전 전투모였습니다.

 

왜 그들이 숨어서 앞으로 기어 오려 했는지 아직도 모릅니다. 유류 창고 터가 별로여서? 혹은 영현 보관소의 영향? 아무튼 저는 태어나서 귀신이라고 생각하는 영적 경험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유일하게 당시 기괴한 일을 겪었었습니다.

 

이후 비슷한 경험은 없었고, 무탈하게 전역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억은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었어요.

 

검은 얼룩을 본 이후, 그들이 나를 보고 저도 그들을 봤다는 것.

 

20년이 지난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낸 건, 이제부터 말할 제 최근의 경험을 들려드리기 위함입니다. 무려 2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저는 귀신의 귀 자도 잊은 채 삶에 찌들어 하루하루 힘겹게 살고 있었어요. 그동안 그때와 비슷한 검은 얼룩 같은 걸 본 적은 없었으나, 우연히도 그 경험 이후 관심이 커져서 예전과는 달리 귀신과 관련된 오컬트 작품들을 많이 찾아보고는 했습니다.

 

그렇게 후안님의 글도 알게 됐고요. 사실 10년 전부터 알고 찾아 읽었어요. 하하.

 

아무튼, 제가 현재 일하는 곳은 판매하는 매장이고, 3층 건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층과 2층이 판매 물품들을 진열했다면, 3층은 그대로 옥상이 나옵니다. 사무실과 휴게실이 같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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