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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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序

왜구가 삼포三浦를 노략하기 10년 전, 동북지방 기리氣異현에 최계영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최계영은 회당 장 씨 집안의 데릴사위로, 안사람 장현죽은 핏기 없는 희멀건 피부가 소문나 있었다. 또한 사방에서 흰자가 보이는 눈동자가 귀신같은 인상을 주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계영은 간혹 터무니없는 흉몽凶夢에 시달렸다.

흉몽의 내용은 이러하다. 계영은 자시子時가 조금 지난 새벽에 눈을 뜬다. 장지문은 활짝 열려 스산한 바람이 들이치는데, 지난밤에 합방한 안사람이 이부자리에 없다. 마당으로 나와 현죽을 찾는데, 그러면 여지없이 여인이 슬피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홀린 듯 목소리를 따라가니 머리가 천장에 닿을 만큼 목이 긴 여인이 부엌 아궁이에 불을 떼고 있는 게 아닌가. 여인은 흐느끼다 말고 섬뜩한 낮은 웃음소리를 내었고, 가마솥에는 역한 냄새가 풍기는 구정물이 끓었다. 이윽고 여인은 솥에 손을 넣어 머슴처럼 검은 물을 허겁지겁 집어삼킨다. 계영은 여인의 게걸스러움에 질려 뒷걸음치다 삽자루를 밟는다. 그 순간 여인은 구렁이 같은 목을 들어 계영과 얼굴을 마주하기에 이른다.

이때쯤 계영은 화들짝 놀라 꿈에서 깨었다. 이 괴이한 꿈을 꾸는 날이면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장지문이 닫힌 것을 확인하고 현죽이 이부자리에 곤히 잠든 것을 두 눈으로 본 뒤에야 겨우 숙면에 빠져들었다.

주主

설영雪靈촌 지주 장목춘은 관직을 겸하던 시절 계영의 아비 최재천과 막역지간이었다. 장목춘은 지극히 검약하고 색욕을 멀리하여 서얼庶孼을 두지 않았고, 외동딸을 시집보내는 대신 데릴사위를 받아들여 지주를 임명하고자 했다. 마침 조정을 뒤집어놓은 사화를 접한 최재천은 자식이 벼슬길을 멀리하길 바랐다.

계영은 설영촌을 둘러싼 기이한 이야기를 익히 들은 바 있었다. 설영촌은 길이 험한 바위산맥에 둘러싸여 줄곧 산적의 소굴로 이용되었다. 예로부터 기리현의 골칫거리였던 산적의 행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섬짓했다. 그들은 길 잃은 나그네의 제물을 빼앗아 죽인 뒤 신묘한 자세로 시체를 뒤틀어 누구나 손쉽게 발견할 수 있는 오솔길에 매달았다. 심지어 뱃가죽에는 임금의 권위에 반하는 기괴한 표식을 낙인처럼 새겨 놓았다. 그러던 와중 회당 장백현이라는 자가 관군을 이끌어 산적들을 토벌하였고, 그 자손들이 설영촌 지주가 되어 사실상 현령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엔 산적들이 죄다 여인이었다는 믿기 어려운 후일담이 들려왔으나, 이를 사실로 기록한 사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