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는 외로우니까

  • 장르: SF
  • 분량: 123매 | 성향:
  • 소개: 우리는 이란성 쌍둥이였다. 김률과 김렬. 예지능력자와 염동력자. 우리는 말하자면 초능력자 남매였다. 언제나처럼 렬과 내 오늘의 운세가 같고, 행운의 색이 같으며, 행운의 아이템이 ... 더보기

혼자는 외로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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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의 운세를 믿지 않았다.

 

렬이 읽어준 별자리 운세에 따르면, 그날 내 행운의 색은 초록이라고 했다. 나는 초록색을 싫어했다. 반면, 자고 일어난 직후가 아니더라도 부스스하게 헝클어져 있기 일쑤인 렬의 머리카락은 청록이 섞인 잿빛이었다. 뿐만 아니라 렬은 흐린 녹색류의 옷을 즐겨 입었다. 물론, 렬에게 자기 옷장에 걸린 의상의 색상을 구분할 안목이 결여돼 있다는 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같은 날 거의 비슷한 시각에 태어났다는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같은 사람에게서.

 

우리는 이란성 쌍둥이였다. 김률과 김렬. 우리는 취향이 달랐고, 생각하는 방식은 더더욱 그랬다. 하나, 녀석과 나 사이에는 한 번도 깨진 적 없는 유구한 전통이 있었는데, 그건 우리가 같은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렬은 내 단짝친구들을 줄곧 마음에 두었고, 내가 짝사랑한 상대들은 대개 렬과 함께 몰려다니는 무리에 속해 있었다. 그건 우리 둘 모두에게 몹시 불행한 일이었다. 렬이 눈치라곤 없는 아둔한 녀석임을 감안한다면, 분하게도 내 쪽에 훨씬 불리한 현실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날 언제나처럼 렬과 내 오늘의 운세가 같고, 행운의 색이 같으며, 행운의 아이템이 같았던 금요일. 여름방학이 막 시작한 무렵이라 나는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렬은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는 대신,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부터 카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다정카센터는 우리 세 가족이 기거하는 주택의 일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박다정 씨는 우리 둘을 세상에 내어놓은 장본인이었고, 그 이름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다정카센터의 사장이기도 했다.

 

나는 으라차차, 소리를 지르며 기지개를 폈다. 그런 다음, 어깨 길이의 머리를 올려 묶고는 스니커즈를 구겨 신고 주택의 일이 층을 잇는 내부 계단을 휘적휘적 걸어 내려갔다. 사무실로 내려갔을 때 렬은 유리문 너머에서 공구함을 챙기고 있었다.

 

냉장고에서 캔커피를 꺼내 들고 소파에 주저앉았다. 내가 눈물을 글썽이며 하품하자, 허리를 펴고 일어난 렬이 쯧쯧, 혀를 차면서 나를 흘겨보았다. 웃기시네. 네놈 턱에 난 뾰루지나 어떻게 해보지 그래. 나는 입엣말을 하며 보란 듯이 인상을 구겼다.

 

그때 작업복 차림의 박다정 씨가 사무실 안으로 쓱 얼굴을 들이밀었다.

 

“시간 맞춰 내려왔네. 률아, 렬이랑 같이 나가서 점심 먹고 들어와.”

 

“엄마는?”

 

나는 캔커피를 홀짝거리며 물었다.

 

“아침을 늦게 먹었더니 배가 안 고프네. 나간 김에 커피도 한 잔 사 마시고. 렬이 아침부터 고생 좀 했어.”

 

렬이 기름 묻은 장갑을 벗으며 내 옆자리에 엉덩이를 던졌다. 일이 적지 않은지, 엄마는 벌써부터 가버리고 없었다. 내가 소파에서 일어설 태세를 취하자, 렬이 기다려보라는 듯 손을 들었다.

 

“잠깐만. 오늘의 운세만 확인하고.”

 

“그러시든가.”

 

나는 다리를 꼰 채로 심드렁하게 고갯짓했다.

 

“오, 완전 좋은데?”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렬이 턱을 매만졌다. 그 말인즉슨 내 오늘의 운세 역시 좋다는 의미였다. 우리는 사주는 물론이고 별자리 운세와 띠 운세까지 같은 사이였으니까.

 

하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나는 운세 같은 건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행운의 색은 초록이래.”

 

“나는 초록색 별론데.”

 

내가 중얼거리자, 렬이 이기죽거렸다.

 

“네 까다로운 취향을 만족시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이 자식이, 입에서 나오면 다 말인 줄 아나, 맞받아치려다 말고 눈을 크게 떴다. 어떤 광경인가가 시야를 가로막으며 틈입하고 있었다. 사진 몇 장이 눈앞에서 연이어 빠르게 넘어가는 것 같았다.

 

영감(靈感), 그것은 내가 오늘의 운세를 믿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냐, 아무것도.”

 

이마를 짚으며 도리질했다. 예시(豫示)의 여운이 전에 없이 강해 나는 잠시간 이명과 함께 맹렬한 현기증에 시달려야 했다.

 

“뭐야, 얼굴이 왜 그렇게 창백해?”

 

“배고파서 그래, 배고파서. 얼른 가자. 뭐라도 먹어야겠다.”

 

애석하게도 나는 거짓말에 재주가 없었다. 게다가 렬은 대개 심각한 수준으로 둔감한 반면, 결정적인 순간 오싹할 만큼 예리해 여간해서는 속여먹기 힘든 상대이기도 했다.

 

“철분 부족 같은 건가? 열은 없어?”

 

렬이 내 옆으로 다가와 섰다. 선반에서 차 키를 낚아채 들며 나는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아니, 괜찮아. 점심은 뭐 먹을래? 너는 배 안 고파?”

 

그랬다, 내게는 미래의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래 봤자 그날 저녁 반찬이 무엇인지도 알아맞히기 힘든 수준이었지만. 내게 예지능력이 있다는 걸 렬은 알지 못했다.

 

그때 오므린 손 안에서 자동차 키가 짤그락거렸다. 내가 주먹을 쥐며 시선을 던지자, 렬이 멋쩍은 듯 뒷목을 긁적였다.

 

“나도 모르게 종종 그럴 때가 있더라고. 네 앞에서는 긴장을 덜 해서 그런가.”

 

한편, 렬은 염동력자였다. 렬이 발휘할 수 있는 염력이 모래성을 간신히 흩어놓을 정도라는 것이 안타까운 지점이기는 했어도. 나는 렬에게 염력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예지능력자와 염동력자. 우리는 말하자면 초능력자 남매였다. 능력이 처음 발현된 시점은 사춘기 무렵.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지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뿌듯한 재주일지 모르겠으나, 작고 시시한 초능력 따위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 과거에 비하면 환시를 해석하는 데 제법 능숙해진 지금 역시도 그랬다.

 

“짜장면 먹으러 갈까. 하늘반점은 어때? 나는 거기 짜장면이 맛있더라.”

 

렬에게 물었다. 건너편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에 붉은색 티코가 주차돼 있는 것이 보였다.

 

수동으로 조작해야 하는 그 경차의 주인은 렬이었다. 이는 내 쌍둥이 형제가 오래된 기계류에 품은 애정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에 불과했다. 렬은 고장 난 자명종을 수집했고, 책상 서랍에서 찾아낸 아버지의 낡은 손목시계를 고쳐 소중하게 차고 다녔다. 몇 년 전에는 근처 공터에 버려져 있던 잡동사니들, 전축이며 괘종시계 따위를 자기 방으로 몰래 끌고 들어와 엄마에게 한소리를 듣기까지 했다.

 

서쪽으로 창문이 나 있어 지는 해를 구경하기 좋은 렬의 방에는, 언제 어디에서 굴러 떨어졌는지 모를 부품들이 바닥을 굴러다녀 양말을 신지 않고 돌아다니다가는 발바닥에 상처를 입기 십상이었다.

 

지지난해 겨울, 렬은 급기야 천구백구십 몇 년도에 생산됐다는 티코 한 대를 사들이기에 이르렀다. 수년에 걸쳐 모은 용돈이며, 간절한 호소와 설득 끝에 엄마에게 선지급 받은 월급을 쏟아붓는 것만으로도 부족해, 녀석은 내게서 적지 않은 찬조금을 강탈했다.

 

문제는 렬이 지금까지 장내기능시험에서 세 번, 도로주행시험에서 세 번, 그러니까 운전면허 시험에서 도합 다섯 차례나 낙방했다는 데 있었다. 렬의 부탁에 못 이겨 덩달아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한 나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기능시험을 통과했고, 도로주행에까지 성공해 일찌감치 1종 보통 면허를 취득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이 내게는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처럼 쉽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기능시험에서 세 번째로 떨어지던 날, 렬은 나를 자기 방으로 불러 대뜸 손을 내밀었다.

 

“받아.”

 

렬이 건넨 것은 여분의 차 키였다. 나무를 깎아 만든 손잡이에는 전동드라이버 모양의 장식이 달린 키 링이 끼워져 있었다.

 

“그 차, 당분간 네가 몰고 다녀. 이대로 계속 주차장에 세워놓기도 그렇고. 대신 조심해야 해. 기스 나지 않도록 주의하고.”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나는 렬의 눈 밑에 고인 눈물을 모른 체하며 받아 든 키를 트레이닝복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고마워. 조심히 탈게.”

 

이제 와 녀석은 내가 모는 자동차의 조수석에 앉아 드라이브하는 것을 꽤 즐기는 듯 보였다. 운전석 문에 키를 꽂은 채로 나는 렬을 돌아보며 물었다.

 

“하늘반점으로 갈 거지?”

 

“어. 배도 고픈데, 탕수육도 소짜로 하나 시키자.”

 

뒤늦게 허기가 도는지, 렬이 입맛을 다셨다. 다행이었다. 주의를 돌리는 데 음식 얘기만큼 좋은 게 어디 있겠느냐며, 나는 스스로의 현명함을 칭찬했다.

 

렬이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라디오를 켰다. 차창을 내리자, 차 안으로 후덥지근한 바람이 밀려들어왔다. 티코는 2차선 도로를 빠져나와 6차선 도로로 진입했다. 틈 날 때마다 렬을 옆에 태우고 근방을 돌아다닌 덕분에 나는 그 무렵 운전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구식 자동차를 다루는 건 때때로 매우 곤혹스러웠다. 신차들과 다르게 수십 년 전에 생산된 모델들은 핸들이 워낙에 뻑뻑하고 무겁다고 했다.

 

다음 교차로에서 정지 신호를 받아 나는 차를 멈춰 세웠다. 좌석 등받이에 기대 앉아 있던 렬이 별안간 등을 당기며 씩씩거렸다.

 

“저건 너무하지 않냐. 1253, 초록색 차.”

 

렬이 가리킨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길가에 벤츠 한 대가 주차돼 있었다. 그것도 버스정류장을 가로막다시피 한 채로. 번호판의 마지막 숫자 네 개는 1253.

 

“무슨 차 색깔이 저렇게 요란하대.”

 

내가 다른 색도 아니고 빨간 티코를 몰고 있다는 것도 잊고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신고하자. 생활불편신고 앱 열고 사진 좀 찍게 잠깐만 기다려봐.”

 

렬이 휴대전화를 손에 쥐었다. 렬은 탈색한 머리를 헝클어뜨린 채로 건들거리며 걸어 다니는 주제에, 사소한 범법 행위도 흘려 넘기지 못하는 올곧은 심성의 소유자였다. 선입견이 얼마나 무용한지를 증명하는 살아 있는 본보기라고나 할까.

 

“미안하지만 안 되겠는데. 곧 출발해야 해서.”

 

그때 초록 등에 불이 들어왔다. 나는 재빨리 티코의 시동을 걸었다. 인간에 비유하자면 상당한 고령일 붉은색 경차는 털털거리며 좌측으로 돌아 들어갔다. 창턱에 팔꿈치를 댄 채로 렬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저런 놈들을 그냥 놔두면 안 되는 건데. 버스 승객들이 얼마나 불편하겠냐고.”

 

라디오에서는 80년대 포크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일반통행로를 빠져나가 나는 상가건물 옆 주차장에 차를 대어놓았다. 핸드브레이크를 걸어놓고 키를 뽑아 쥔 후에 문을 열었다. 우리는 건물의 입구를 지나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그때까지도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있는 대로 인상을 구기고서 렬이 유리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렬이 물티슈며 수저 따위를 챙겨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목요일 낮의 음식점은 한산했다. 머리를 짧게 자른 여자 직원이 주문 사항을 받아 적어갔다. 우리는 선풍기 바람을 쐬면서 공원 쪽으로 나 있는 창문을 내려다보았다.

 

느슨한 자세로 냅킨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렬이 불쑥 입을 열었다.

 

“나, 오늘 저녁에 나미랑 만나기로 했다.”

 

알아, 라고 대답할 수 없어 나는 놀란 척 눈썹을 치켜 들며 물었다.

 

“나미는…… 왜?”

 

렬이 나를 떠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태연한 시늉을 하기 위해 나는 무진장 노력해야 했다. 렬이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나는 뭐, 나미랑 단둘이 보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냐.”

 

그렇지만 걔한테는 남자친구가 있잖아? 희범이는 네 친구고. 나는 너희 셋의 관계가 어색해지는 걸 원하지 않는걸. 물 한 모금과 함께 나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반문을 삼켰다.

 

중학생 시절 나는 희범을 얼마간 좋아한 전력이 있었다. 내가 희범에게 쓴 편지를 훔쳐 읽은 렬이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를 어떤 눈빛으로 쳐다보았는지, 그때의 치욕을 나는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수학능력시험을 친 이후로 재수를 고민하던 나미는 떠밀리다시피 인근의 전문대에 입학했다. 내가 서울 내 대학에 진학하며 나미와 서먹해진 일 년 반 동안, 렬은 그와 부쩍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밤하늘과 별과 바다, 가로등 불빛을 똑바로 주시할 때의 경미한 어지럼증, 어색한 미소와 반짝이는 머리카락, 거절과 상심과 어색한 작별 인사.

 

수십 분 전 예시를 받아들이며 더불어 끌어안아야 했던 감정들이 메아리 끝의 잔음으로 되돌아와 감각기관을 울렸다. 온몸이 관통당하는 느낌. 앞니로 입술을 짓누르며 나는 내 것이 아닌 감각들을 밀어내고자 노력했다.

 

동시에,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번쯤 장렬하게 차여보는 것도 렬에게 유의미한 경험이 아닐까.

 

“나미, 희범이랑 헤어진 것 같던데…….”

 

렬이 혼잣말 비슷하게 중얼거렸다.

 

“뭐라고?”

 

허둥지둥하다 물을 엎지르고 말았다. 그게 그렇게까지 놀랄 일이냐는 듯 렬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미는 나와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단짝 중의 단짝이었다. 나미의 연애가 끝났다는 사실을 나보다 렬이 먼저 알아차리다니. 배신감에 사로잡혀 나는 비꼬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그래서, 오늘 고백하려고?”

 

“고백은 무슨. 그럴 생각은 전혀 없는데.”

 

렬이 멋쩍게 웃었다. 이런 표정을 지을 때 렬은 조금 귀여웠다.

 

식초를 끼얹은 단무지를 씹으며 나는 붙잡을 새도 없이 흘러가버린 예지의 형상들을 더듬었다. 그렇다면 예정에 없던 고백인가 보네. 맥주 몇 잔을 마시고 공원을 산책하다 나미를 붙잡고 호소하게 되는 각본인 건가? 하긴, 렬은 나미를 2년 넘게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어디선가 신경에 거슬리는 소음이 들린다 했는데, 렬의 앞에 놓인 젓가락이 달그락거리고 있었다. 그건 렬이 동요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나는 젓가락 두 짝을 붙잡으며 넌지시 덧붙였다.

 

“어쨌든, 좋은 시간 보내.”

 

렬이 미심쩍은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턱을 괸 채로 나는 벽걸이 티브이로 눈길을 돌렸다. 광고 영상 서너 개가 나오는 데 이어 지역뉴스가 방송됐다. 직원이 음식을 쟁반에 받치고 나오기 무섭게, 렬과 나는 경쟁이라도 하듯 허겁지겁 탕수육부터 집어먹기 시작했다.

 

식사는 만족스러웠다. 배가 불러 다소간 너그러워진 우리는 굼뜬 걸음으로 건물을 빠져 나왔다. 껌 하나를 반토막내 나눠 씹으며 근처 커피숍으로 걸어갈 때, 렬의 시선이 한 곳에 멎었다.

 

“햐, 이제 보니 상습범이구만.”

 

착각하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영롱한 초록색 벤츠. 번호판을 확인했다. 그럼 그렇지, 예지력이라곤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그 번호판의 숫자 네 개가 무엇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1253. 그 차는 이번에는 뻔뻔스럽게도 횡단보도를 떡하니 막아서고 있었다.

 

그 사이에 자리를 옮겨놓고 또 불법 주차야? 내가 속으로 욕을 퍼붓는 동안, 렬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렬을 쫓아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야, 무턱대고 화부터 내지 말고.”

 

내 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렬이 대답했다.

 

“5분, 딱 5분이면 돼. 하고 많은 장소들 중에 하필이면 저 자리에 주차한 이유가 뭔지 물어나 보게.”

 

나는 끙, 소리를 내며 손바닥으로 낯을 훑었다. 렬이 벤츠 앞으로 가 섰다. 1/3 가량 열린 조수석의 차창 너머로 운전자의 모습이 들여다보였다. 그는 운전석에 앉아 휴대전화를 만지고 있었다. 옅은 색 데님셔츠에 청바지를 받쳐 입은 그는 젊고 부유해 보였다. 살결이 눈에 띄게 희고 깨끗한 남자였다.

 

셔츠 소매 아래로 드러나 있던 메탈 재질의 시계 밴드. 나는 남자가 찬 손목시계가 고가의 명품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모르긴 몰라도 중고 티코 서너 대는 거뜬히 사들일 거금을 지불해야 구입 가능한 물건이겠지.

 

무심결에 턱을 당겨 하나뿐인 쌍둥이 형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그을린 피부, 기름때가 묻은 티셔츠와 낡아빠진 카시오 시계. 저 녀석, 수염은 왜 안 깎은 거지? 머리는 빗은 건가? 집에 돌아가자마자 렬을 욕실에 감금시켜놓고 면도부터 하게 만들어야겠다고 나는 굳게 다짐했다.

 

“저기요,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전화기에서 눈을 떼고 남자가 렬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턱께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걸 보니, 이 만남을 그렇게 긍정적으로 여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목덜미에 잔털이 곤두서면서 전신에 서늘한 기운이 끼쳤다.

 

그건 예지의 영역에 속한 앎은 분명 아니었다. 그저 천적을 알아보는 생명체로서 당연한 본능이라고 할까.

 

“렬아, 우리 이만 가자.”

 

내 손을 밀어내며 렬이 내게 속삭였다.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고는 다시금 운전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주차할 수 있는 장소가 여기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굳이 횡단보도 앞에 차를 세워놓은 이유가 뭐예요? 이렇게 길목을 막고 있으면 유아차나 휠체어가 길을 건너기 곤란해지거든요. 행인들이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요.”

 

흥분해 뒷목이 뻘겋게 달아올라 있는 사람치고 렬은 제법 조리 있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렇게 나오는데 상대방도 무턱대고 화를 내지는 못하겠지. 남자가 내 쪽을 흘끔거리는가 싶더니 별안간 머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생각만큼 글러먹은 놈은 아닌가 보네. 안도한 나는 얼결에 따라 웃고 말았다.

 

그때 지잉, 소리와 함께 조수석 차창이 올라갔다. 집게손가락을 뽑아 들고서 렬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끔뻑였다.

 

“쟤, 창문 닫은 거니?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응?”

 

“렬아, 진정 좀 하고 말이지.”

 

천만다행으로 렬은 무의식중에 염력을 발휘해 그에게 위해를 가하는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다만 어금니를 바득거리며 전화기를 꺼내 쥐고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갔을 뿐이었다. 생활불편신고 앱으로 사진을 촬영해 불법주차 차량으로 신고하려는 작정인 것 같았다.

 

“두고봐, 저 놈에게 반드시 벌금을 물게 하고 말 테니.”

 

그때 벤츠에 시동이 걸렸다. 짙게 선팅된 앞유리 이편에서도 나는 남자가 웃고 있다는 걸 알았다.

 

렬이 어어, 소리를 내며 주춤거리는 사이, 나는 그를 끌어 뒤로 물러나게끔 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 작자는 렬을 치고 달아났을지 몰랐다.

 

“저 새끼, 일부러 저런 거지? 맞지? 그런 거지?”

 

나는 말없이 렬을 인도로 끌고 올라갔다.

 

“아프다고. 이거 놔, 놓고 얘기해.”

 

렬이 내 팔을 뿌리쳤다. 나는 팔짱을 끼고서 녀석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시선으로 감행하는 이 같은 공격은 렬을 진정시키는 데 언제나 효과가 있었다. 내게 괜한 화풀이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렬이 입술을 씰룩이며 눈을 내리깔았다.

 

“내가 너무 흥분했나봐. 미안.”

 

“좋아. 대신 오늘 저녁 설거지는 네가 하는 거다?”

 

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집안일 하나를 성공적으로 떠넘긴 나는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덧붙였다.

 

“네가 잘못했다는 뜻이 아냐. 저런 놈한테는 벌금을 세게 물려야지. 마음 같아서는 다시는 운전을 못하게 만들어주고 싶어. 그렇지만 너를 다치게 하면서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아. 나는 엄마, 너, 나, 우리 가족 모두에게 더는 나쁜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렬이 운동화 밑창으로 하염없이 보도블록을 문질렀다. 렬의 숨소리가 차분해졌다.

 

“가자.”

 

나는 손짓하며 앞장서 걸었다. 렬의 눈썹머리에서 일말의 오기가 사라졌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평소의 활력을 되찾은 우리는 재미 없는 농담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사장님이라고 불리던 남자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카운터 쪽으로 다가왔다. 오늘은 웬일인지 그 혼자 점포를 지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가 우리 남매를 반기며 인사했다.

 

“레모네이드랑 아이스 카페모카 맞죠? 오늘도 같은 메뉴를 주문하시게요?”

 

“……네.”

 

나는 뺨에 보조개가 패는 걸 느꼈다. 렬이 나와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의혹에 찬 그 눈길을 무시하며 나는 신용카드며 쿠폰을 찾아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남자는 쿠폰에 도장을 네 개나 찍어주었다.

 

주인 남자가 커피를 내리고 레모네이드를 만드는 동안, 우리는 입구 옆 이인용 테이블에 앉아 다리를 쉬었다. 아까부터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던 렬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물었다.

 

“그건 그렇고, 률아, 너는 그날 아빠가 왜 그랬다고 생각해?”

 

“……이제 와서 왜 또 그 얘길 꺼내는 거야.”

 

윗니로 지그시 아랫입술을 눌렀다. 렬은 끈질긴 녀석이었다. 무수한 실패 끝에 죽어버린 아빠의 시계를 되살려내 손목에 차고 다닐 만큼. 렬은 하물며 닳아 너덜거리는 시곗줄을 갈아 끼우지도 않았다.

 

나는 렬이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낡은 기계들의 뱃속에서, 기름이 말라붙은 톱니바퀴와 피복이 벗겨진 전선들 사이에서 어떤 진실을 알아내고 싶은 걸까.

 

“너나 엄마를 괴롭히려는 의도가 아니야.”

 

렬이 냅킨을 쥐어뜯었다.

 

“나는 그냥, 내가 세운 가설 하나를 알려주고 싶어서…….”

 

“음료 두 잔 나왔습니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 순간 주인 남자의 외침이 우리 둘 사이의 긴장을 깨뜨렸다. 그 부름이 나는 오히려 반가웠다.

 

“조금 이따 얘기하자.”

 

카운터로 걸어가 음료 두 잔이 끼워진 캐리어를 받아들었다. 남자가 속삭이다시피 말했다.

 

“다음에는 매장에서 드시고 가세요.”

 

나는 그에 못지않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렬을 의식한 듯 헛기침을 하면서 남자가 두서없이 몇 마디를 보탰다.

 

“참, 그 얘기 들으셨어요? 어제 요 앞 사거리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날 뻔했대요. 트럭이 자전거를 타고 있던 꼬마를 덮치기 직전 어떤 남자가 달려들어서 사고를 막았다나 봐요. 그 와중에 트럭이 일 미터 뒤로 밀려났다나 뭐라나. 그런데 워낙에 잽싸게 사라져버려서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대요. 머리색이 조금 특이하다고 들었는데.”

 

“에이, 트럭은 무슨.”

 

렬이 뜬금없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순간 남자와 내 시선이 동시에 렬의 정수리에 떨어졌다. 수차례 탈색과 염색을 반복한 탓에 윤기를 잃고 가늘어진 렬의 머리카락이 카페의 조명 아래 말로는 형용하기 힘든 빛을 띠고 있었다.

 

마른침을 꼴깍 삼키는가 싶던 렬이 나를 억지로 잡아끌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남자가 아쉬워하며 우리를 향해 목례를 건넸다.

 

“네, 조만간 다시 뵐게요.”

 

어정쩡한 자세로 렬에게 붙들려 카페의 문턱을 넘었다. 그때 문득 떠오르는 바가 있어 나는 렬의 손길을 털어내며 질문을 던졌다.

 

“너 말야, 어제 미로 만나러 간다고 하지 않았냐?”

 

미로는 렬의 중학교 동창이었다. 나는 미로와 고등학교 시절 잠깐 사귄 전력이 있었다.

 

“뭘 확인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약속 장소는 신도시였는데.”

 

렬의 말투가 몹시 어색했다. 내가 못 믿겠다는 듯 이마를 찡그리자, 렬이 어울리지 않게 실실거리며 항변했다.

 

“트럭을 밀어냈다잖아. 잊은 거야? 그래봤자 큰일은 못할 능력이라며. 정확하게 네가 한 말이라고.”

 

후, 나는 이마에 손등을 올린 채로 한숨을 쉬었다.

 

그날은 찬비가 내리는 수요일이었다. 이른 아침 서쪽 하늘에 주먹만한 먹구름이 일어 있기는 했으나, 날씨는 비교적 청명해 나는 우산을 챙기라는 엄마의 당부를 흘려들었다. 애석하게도 정오를 넘기며 내리기 시작한 비는 하교 무렵 걷잡을 수 없이 굵어져 우산 없이는 멀쩡한 몰골로 귀가하기가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가림막 아래 운동화 신은 발을 모은 채로 나는 흙탕물이 군데군데 고여 있던 운동장을 쏘아보았다. 운동화 앞코에 빗물이 튀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누구에게 같이 우산을 나눠 쓰자고 부탁하기에도 민망한 상황이었다. 그때 내게는 친구라고 여길만한 사람이 없었으므로. 이 소도시로 이사 온 지 한 달이 안 지난 즈음, 아빠가 돌아가신 때로부터는 근 다섯 달 만이었다.

 

아빠의 장례를 치르고 엄마는 살던 아파트의 처분을 서둘렀다. 그 전까지 억지로 쥐어진 광고 전단지만큼의 흥미도 끌지 못했던 이 도시가 우리 세 식구의 거주지로 낙점된 건 다소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다른 후보지 몇 군데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가정집과 직장을 겸할 수 있는 2층 건물을 우연히 발견했고, 대번에 마음이 동했다고 했다. 엄마는 물론이고 아빠와도 전혀 연고가 없는 곳이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그 아파트를 떠나야 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아빠와 함께 머무른 보금자리라는 것. 엄마는 그 사실을 못 견뎌했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간 형광등이며 경첩을 바꿔 단 붙박이장, 모서리 쿠션을 덧댄 찬장 손잡이 따위에서 먼저 간 배우자의 자취를 발견하고 밤새 오열하며 고통스러워했다.

 

살아남기 위해, 그리하여 나와 렬을 보다 온전히 건사하기 위해, 엄마는 신혼 때부터 줄곧 머물렀던 옛 거주지와 작별했다. 산 아래에 들어가 앉은 한적한 동네, 나아가 이전 생 전체와 아무렇지 않은 척 악수를 나누었다. 과거에 절취선을 긋고 가위질하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고집스럽게 굴었다.

 

같은 반 학생 두엇이 내 어깨를 치며 우산을 펼치고 걸어 나갔다. 운동화를 갈아 신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떠밀리던 나는 신발주머니를 정수리에 얹은 채로 운동장으로 박차고 나아갔다. 빗줄기가 목덜미를 타고 흘러 교복 블라우스를 적셨다. 비바람 속에서 이깟 신발주머니 따위 무기처럼 들고 있어본들 별 소용이 없음을 깨달은 나는 팔을 내리고 굼뜨게 발을 놀렸다.

 

물기를 머금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찰싹 달라붙었다. 콧물을 훌쩍이며 나는 집에 도착하면 따뜻한 코코아부터 한 잔 타 마셔야지, 혼잣말을 했다. 어쩌면 비가 쏟아져 다행인지 몰랐다. 느닷없이 터져 나온 울음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감쪽같이 숨길 수 있었으니까.

 

그러다 어떤 영상이 눈앞에서 피어오르듯 펼쳐져 나는 기겁하며 딸꾹질을 했다. 빨간 우산. 누군가의 손에 들려 빗방울을 튕기며 빙글빙글 돌아가던 우산의 형상은 내가 눈을 비비고 다시 뜨는 즉시, 단박에 사라졌다. 이건 뭐지? 대낮부터 헛것을 다 보다니. 허기가 져서 그런가.

 

비 범벅인 뺨을 훔치며 걸음을 재촉했다. 으슬으슬 몸이 떨렸다.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면 이쯤에서 귀가를 재촉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였다. 그때 누군가 내 등을 툭 건드렸다. 그 바람에 기겁하다 못해 딸꾹질이 멎은 건 그나마 긍정적인 일이었다.

 

“놀랐냐?”

 

렬이었다. 내게 우산을 씌워주며 녀석이 실없이 킬킬거렸다. 렬이 들고 있던 건 다름 아닌 빨간 우산이었다. 방금 전 내 시야를 교란하고 자취를 감춘 것과 똑같은 색과 디자인.

 

“진짜, 사람 놀래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