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귀(不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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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5월, 그 마을은 환한 대낮인데도 어둠이 짙게 배어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두껍게 낀 구름이 솔개처럼 빙글빙글 내 머리 위를 도는 것 같다. 가방을 내려놓고 잠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엄마, 왜 그래?”

때가 탄 곰 인형을 가슴에 품은 딸아이가 제 나이답지 않게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나는 딸아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좀 아파서……”

다리가 휘청거렸다. 가까스로 아이의 손을 잡고 몸을 바로 세웠다.

“우리 솔이, 힘세구나.”

솔이가 큭큭 소리 내어 웃었다.

우리가 타고 왔던 버스가 모래바람을 흩날리며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간다. 뿌연 먼지가 커다란 구름이 되어 우리를 감쌌다.

“솔아, 입이랑 코 막아.”

확 불어 닥친 모래바람 때문에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나는 인형을 잡는 아이의 손목을 끌고 버스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빨리 걸었다. 일곱 살 난 아이가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지만 딸아이는 군말 없이 나와 발을 맞추며 달리다시피 걸었다. 걷는 동안 나는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

‘어머니 죽으면 장사 지내 줄 사람도 없어. 부탁해, 솔이 엄마……’

죽기 전, 남편이 내게 한 말이었다. 갑작스런 부탁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7년 전 우리는, 그의 부모님과 철전지원수가 되어 그 집을 떠났고 다시는 연락하지 않을 거라 맹세했다.

그러나 우리가 집을 나온 이듬 해, 시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죽었고 뒤늦게 소식을 접한 남편은 어머니와 줄곧 연락을 하고 지냈던 것이다.

어머니마저 중병에 걸리자 그이는 내게, 어머니를 찾아가 달라고 부탁했다. 혈혈단신으로 병마에 시달릴 어머니가 가엾게 느껴졌는지 늦게나마 자식 된 도리가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은 지 석 달 후, 그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짐을 싸야 했을 땐 고약한 절망감 때문에 죽고만 싶었다.

죽어가는 남편이 남긴 유언이 아니었다면 내겐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그의 어머니가 내게 했던 짓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부득부득 갈린다.

휘이익―

비닐하우스를 지나 마을 어귀에 다다랐다. 걸음을 멈추고 눈을 비벼 모래먼지를 닦아냈다. 흐릿했던 시야는 안개가 걷히듯 또렷해졌다.

세찬 바람이 모래먼지를 쓸고 저 멀리로 달아나고 있었다. 집 안에서 방귀를 뀌어도 밖에서 다 들릴 만큼 마을은 조용했다. 곧 모내기 작업을 준비해야 할 바쁜 시기지만 한낮인데도 일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고개를 돌렸다. 마을을 감싼 둥글고 얕은 산은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는데 전에 보았을 때보다 갑절로 커보였다. 아까부터 그랬다.

이곳에 발을 들이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계속 내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누르느라 애꿎은 딸의 손목을 주물럭거리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무엇이 불안한지 솔이도 인형을 꼭 껴안고 내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밝게 웃었다.

“이제 다 왔어.”

아이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솔이가 고개만 까닥한다. 우리는 인적도 없는 마을의 좁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을 어귀를 조금 지나면 코딱지만 한 구멍가게가 있고 한쪽은 밭과 비닐하우스, 반대편은 인가들이 있다. 인가는 작은 도랑을 중심으로 두 군데로 나뉘어져 있고 어머니의 집은 마을의 끝인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시골 같지 않게 거의 모든 집의 대문이 닫혀 있었다. 내가 이곳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오로지 한 집만이 저 멀리서 바람에 철컹대는 대문소리를 냈다. 희한한 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그것이 어머니의 집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끼이익― 탕― 끼익― 탕― 탕―

어서 오라고 재촉하듯 소리는 더욱 요란해졌다. 다시는 열리지 않도록 단단히 잠가두고 빨리 이곳을 도망치고 싶었다.

“엄마, 배고파……”

“그래. 이제 다 왔어. 할머니 집에서 밥 먹자.”

나는 그렇게 말해버렸다. 안전지대 안에서 적에게 덜미를 잡힌 느낌이었다.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딸아이의 작은 손을 꽉 잡았다.

*

예전 그대로였다. 마당 귀퉁이엔 닭장이 있고 그 옆엔 고추를 가꾸던 텃밭이 있다. 흙으로 쌓은 낮은 담장과 키가 큰 나무 한 그루. 마당을 가로지르는 붉은 나일론 빨랫줄엔 파리 떼가 꼬인 굴비 한 묶음이 걸려 있었다. 달라진 거라곤 닭장이 텅 비어 있고 고추밭에 고추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저 앙상한 골조에 똬리를 튼 누런 줄기뿐이었다.

“누구냐?”

어머니였다. 여전히 독기가 잔뜩 묻어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다. 늙고 병든 노인이 작은 소리에도 저렇게 귀가 밝다니. 세월에 대한 묘한 배신감이 느껴졌다. 나는 대청마루로 올라서서 아이를 위로 끌어 앉혔다. 그리고 솔이가 방 안을 볼 수 없도록 대청마루 가장자리로 갔다. 가방에서 밀크캐러멜 하나를 꺼내 아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엉.”

*

문을 열었다. 지독한 악취가 풍긴다. 지린내와 음식 썩은 내가 범벅이 되어 달려드는 통에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문을 반쯤 열어두고 어머니와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다.

“문 닫아! 추워!”

“냄새가 나요. 좀 있다 닫을게요.”

7년 전에 그랬다간 머리채를 잡혔을 것이다. 어머니는 정자세로 누워 빛바랜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왜 왔냐?”

“아범이…….”

눈물이 왈칵 치솟았지만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다시 말을 이었다.

“아범이…… 아프시다고 해서요…….”

“아비는 잘 있냐?”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비명횡사한 사실을 모르고 계셨다. 내가 말을 하지 않았으니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고 나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을 작정이다. 어차피 죽게 되면 저승에서 만나게 될 것을.

“네. 많이 바빠요.”

“이 어미가 죽어도 안 나타날 거야. 그놈은.”

“어디가 편찮으세요?”

“보면 몰라, 이년아!”

봐도 모르겠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7년 전과 전혀 다를 바 없어보였다. 오히려 몸은 더 불어나 홑이불을 덮고 있는데도 그 크기가 웬만한 무덤 같았다.

그러나 발밑에 놔 둔 요강과 설탕봉지, 플라스틱 세숫대야에 담긴 구정물을 보고서야 거동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싸고, 먹고, 씻는 것을 이 방 안에서 모두 해결했을 그 광경이 눈앞에 그려져 무심코 웃음이 났다. 나는 재빨리 웃음을 거두고 어머니께 물었다.

“병원에는 갔다 오셨어요?”

“일 없어. 가서 밥이나 차려와.”

“엄…… 마.”

그때 솔이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나를 불렀다. 어머니가 솔이의 목소리를 듣고 흠칫 놀랐다. 방문을 닫으려고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솔이는 이미 문 밖에 떡하니 서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었다. 검버섯이 낀 뚱뚱한 얼굴이 천천히 문간을 향하더니 쭉 찢어진 두 눈이 딸아이의 얼굴에 가시처럼 와 박혔다. 못 볼 걸 본 것 마냥 어머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런데 솔이는 의외로 덤덤했다.

“엄마, 할머니야?”

“으응……”

“할머니 아파?”

“응.”

“엄마, 나 배고파.”

나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어머니는 내게 공포의 대상이자 적이었다. 그러나 솔이는 어머니를 보고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내가 가진 두려움 때문에 딸아이까지 저 늙은이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딸아이는 순진하게도 그때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땐 솔이가 내 뱃속에 있을 때니까.

*

7년 전 겨울이었다. 나는 솔이를 가졌고 남편을 따라 이 집으로 왔다. 백정의 딸이니 집안에 들일 수 없다며 어머니는 나를 방 안에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석 달 뒤 남편은 어머니를 설득해 간신히 그와 이곳으로 왔지만 어머니는 나를 굴러다니는 개똥보다 하찮게 여겼고 사사건건 내쫓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든 어머니의 마음을 돌리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러나 배가 점점 불러 올수록 오히려 어머니의 신경은 더욱 날카로워졌고 급기야 대청마루에서 나를 밀어 떨어뜨리기에 이르렀다.

뱃속에 아이만 없어진다면 이 모든 게 해결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대청마루에서 내동댕이쳐졌을 때 뱃속의 아이도, 나도 죽는구나 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뱃속이 뒤틀리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마당을 뒹굴며 도와달라고 빌었지만 시아버지마저도 그저 잠자코 지켜볼 뿐이었다. 그이가 돌아온 건 한 시간 뒤였다. 부리나케 조산소로 달려갔지만 늙은 조산사는 서둘러 큰 병원으로 옮기라고만 했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그는 나를 들쳐 업고 대학병원으로 달렸다.

‘도대체 왜 이리 조심성이 없어! 항상 조심해야 한다니까.’

나는 빨래를 널다 미끄러졌다고 대충 둘러댔다. 사실대로 말했다간 불 같은 성격의 그가 가만히 있을 리도 없었으며 남편이 집을 비운 동안 혼자서 감당해야 할 시부모님을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술 후 솔이는 세상 밖으로 나왔고 건강이 회복되는 동안 인큐베이터 속에서 지내야 했다. 어쨌든 솔이는 살았지만 어마어마한 병원비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그의 부모님에게 병원비를 융통하기 위해 근, 한 달을 사정했다. 결국 돈을 융통하긴 했으나 그 대가는 실로 뼈를 깎는 또 다른 고통이었다.

‘저런 계집년 하나 살리려고 오백씩이나 쓴 거야! 미친 연놈들아!’

옹알이도 못하는 작은아이를 보고도 안쓰러워하기는커녕 눈에 띌 때 마다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어머니에겐 구박의 대상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었다.

‘기집들은 쓸모가 없어!’

어머니는 이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랬기에 나는 어머니가 솔이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매일 가슴을 졸였고 절대 단 둘이 있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백정의 딸이라서가 아닌 막연히 미워해야 할 대상이라서 나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참을 챙겨 밭으로 나간사이 솔이가 사라져 버렸다. 10분 전까지만 해도 대청마루에 앉아 부채질을 하시던 어머니도 온데간데없었다. 두 시간 뒤에 돌아온 어머니를 붙잡고 묻자 자신은 모른다며 시치미를 뚝 뗐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달려가 이 모든 사실을 이야기했다. 솔이가 없어진 것은 물론, 어머니가 내게 했던 잔인한 모든 일들까지.

그이는 내 이야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머니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게까지 심할 줄 몰랐다며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자기 옆에 세워둔 낫을 집어 들었다. 집안이 온통 발칵 뒤집혔고 일은 그렇게 커져버렸다.

솔이는 불법으로 아이를 입양시키는 50대 남자의 손에 가 있었다. 어머니가 받은 돈은 150만 원. 우리는 통장을 탈탈 털어 브로커에게 돈을 쥐어주고 솔이를 그곳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죽여 버리겠어!’

정말 그럴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내 눈앞에 있었다면 그 여자의 목을 분지르고 손으로 직접 심장을 뜯어냈을 것이다. 분하고 억울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남편은 나를 설득했고 우리는 다음 날 바로 그 집을 나왔다.

*

부엌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먹을 거라곤 하나도 없고 기껏해야 묵은 쌀과 김치 그리고 빨랫줄에 널린 굴비뿐이었다. 솔이에게 먹이려고 가지고 온 소시지를 굽고 누렇게 변한 쌀로 미음을 만들어 어머니에게 갔다.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방문을 열자마자 엉덩이를 좌우로 뭉그적거리며 자리를 잡았다.

죽을 때가 다 되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군. 일단 두고 보기로 하고 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어머니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내 손을 착 뿌리치더니 “먹여줘야지!” 라고 소리를 질렀다.

“숟가락도 못 들 정도로 아프세요?”

“그래! 이 년아!”

“자꾸 욕하시면 저 갑니다.”

“가라 이 년아, 누가 무서워할 줄 알고!”

노망이 난 건지 아니면 아직도 내가 그때의 지지리 못난 며느리라고 생각하는지, 기가 차서 웃음이 났다. 미음을 푼 숟가락을 어머니의 입에 들이댔다.

“자, 아 하세요.”

어머니는 아이처럼 입을 벌리다말고 갑가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나 죽으라고 양잿물이라도 탄 겨? 죽이 왜 누래?”

*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가 되어서야 건넌방으로 갔다. 이부자리를 펴고 솔이를 옆에 눕혔다. 나는 아이가 잠들 때까지 작은 가슴 위를 토닥이며 꼬질꼬질 때가 탄 방 안을 둘러보았다. 이 방은 그이와 내가 쓰던 방이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누추한 방이지만 우리가 사랑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던 유일한 안식처였다. 지금도 그의 체취가 느껴진다.

사고가 나기 전날 밤 꿈자리가 뒤숭숭해 남편에게 외출하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사고 소식을 접한 날은 토요일이었고 거친 날씨에 폭우까지 내렸다.

꿈에서도 그랬다. 엄청난 비가 내리는데도 우리는 한껏 들 뜬 기분으로 솔이가 가고 싶어 했던 동물원에 가기로 했다. 대문을 나서니 번호판도 없는 까만 택시 한 대가 집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불길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별 의심 없이 뒷좌석에 올라탔다.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 엄마 곰 아빠 곰 애기 곰…….’

우리는 동물원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솔이의 노래를 들었다. 그이는 아이의 노래를 들으며 박수를 쳤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참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의 박수소리가 점점 귀에 따가울 정도로 크게 들렸고 나는 귀를 막았다. ‘그만 해, 여보!’ 그는 멈추지 않았고 나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택시기사에게 차를 세워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방금까지도 운전을 하고 있던 운전석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소리쳤다. ‘여보, 기사가 사라졌어!’ 그는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박수를 쳤고 솔이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다시 운전석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거기엔 색동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묘령의 여자가 있었다.

핸들에 손도 대지 않은 채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는 솔이와 남편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운전석에 앉은 그 여자에게 앞을 보라며 소리쳤다. 여자는 백미러를 통해 섬뜩한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그와 솔이, 그리고 나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깼다.

다음 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던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병원으로 달려갔을 땐 그는 혼수상태였다.

사흘 후, 그는 깨어났지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어머니를 부탁한다는 말만 남기고 죽어버렸다. 그 후부터는 기억이 없다. 그 동안 잠은 잤는지, 밥은 어떻게 먹었는지 심지어 남편의 죽음을 솔이에게 뭐라 설명했는지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끼익― 끽.

잠귀가 그리 밝은 편은 아니지만 삐걱대는 소리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눈을 뜨자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속으로 잘못 들었겠지 하며 잠을 청하자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였다. 어머니가 볼 일이 생겨 변소로 가는 거라면 몰라도 한밤중에 누가 찾아올 리는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 몸의 두 배가 넘는 어머니의 발소리라기엔 턱없이 가볍게 들렸다. 문을 열어 확인해 보려다 그만두었다. 어머니와 마주치면 괜히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 기관총처럼 요란한 폭언을 쏘아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졸음이 몰려왔다. 내일은 바쁜 하루가 될 것이다. 대학병원으로 가서 어머니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의사를 만나 보아야 한다. 남편 말로는 생명이 위태로울 만큼 심각해 반년을 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

무슨 암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귀담아 듣지 않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따져보면 이제 어머니에게 남은 시간은 두 달이 채 되지 않는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나는 의사로부터 ‘확답’을 듣기 위해 내일 병원으로 간다.

한 시간가량 떨어진 지방 대학 병원 주치의는 남편과 함께 왔던 괄괄한 시어머니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거동이 불편한 것 외엔 여전히 정정하며 모르긴 해도 10년은 더 버틸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주치의는 놀라워하면서도 죽음에 임박할 때엔 오히려 병세가 호전되는 듯 정정해 보이는 환자들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중국집에 들러 자장면을 먹고 반찬거리를 산 후 버스에 올랐다. 피로가 밀려와 자리에 앉자마자 깜빡 잠이 들었고 깨어났을 땐 버스가 익숙한 장소로 들어서고 있었다.

버스엔 나와 딸아이 그리고 40대 아주머니가 한 명 있었다. 나보다 먼저 버스에서 내린 아주머니가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애써 웃는 낯으로 목례를 했지만 눈이 마주치자 내 시선을 얼른 피했다. 그러고는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회색 통바지가 펄럭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뛰기 시작했다. 기분이 언짢긴 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마을 어귀로 들어서자 방금 전 버스를 함께 탔던 아주머니가 구멍가게 앞에서 서너 명의 부녀자들에게 정신이 팔린 채 뭐라고 속닥대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며 슬금슬금 눈동자를 굴리는 모습이 어찌 우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최고로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와 스치듯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금세 시선을 피했지만 나는 덤덤하게 그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나와 눈이 마주친 여자가 옆 사람의 허리를 쿡쿡 찔렀고 그들의 눈빛이 나에게로 한데 모아졌다. 그들의 표정은 모두 심각할 정도로 경직되어 있었는데 내가 점점 더 그쪽으로 다가가자 내게 쏠린 시선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

“오늘은 계란부침까지 했으니 일어나요.”

어머니는 들은 체도 않고 고개를 홱 돌렸다. 어찌된 영문인지 이 늙은이는 날이 갈수록 힘이 솟는 것 같다.

“요번 주까지 제가 여기 있을 거고 다음 주엔 작은 어머니 보고 와 있으라고 하세요.”

대답이 없다. 다시 큰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왜!”

성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아직도 동생분하고 사이 안 좋으세요?”

괴팍한 성격 때문에 어머니는 달랑 하나 있는 여동생과도 사이가 나빴다.

“어머니, 그게 더 낫죠? 나보다 작은 어머니……”

“그년 죽었어.”

지금 나를 놀리는 건가. 어떻게 남아난 사람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죽사발만 바라보다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저는 여기 계속 있을 수 없어요. 어머니도 몸이 그리 나쁜 것 같지 않으니 이웃 중에서 친하게 지내시는 분이……”

“시끄러! 이 동네 있는 것들은 죄다 미친 연놈들이여!”

어머니는 하던 말을 멈추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마을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기엔 말로는 부족한 듯 보였다.

“그 연놈들이 씨를 말리려고 작정을 한 겨.”

완고한 노인이라는 평판이 자자했던 어머니는 마을사람들과도 어울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사이가 나빴다는 건 아니다.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어머니는 마을사람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적어도 내 앞에선 그랬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평생을 지낸 어머니가 갑자기 그런 말을 할 땐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도대체 마을사람들과 무슨 일이 있었기에 어머니는 저토록 광분을 하는 걸까.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마. 절대. 다 거짓말인게. 호로잡놈들!”

어머니는 알 수 없는 말만 계속 지껄여댔지만 이유 따위는 묻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땐 솔이가 옆에 없었다. 오래간만에 깊이 잠을 잘 수 있어 몸은 한결 개운했지만 솔이가 자리에 없으니 더럭 겁이 났다. 나를 깨우지 않고 화장실에 갈 리도 없을 텐데.

서둘러 방을 나와 화장실부터 갔다. 집 뒤편에 마련된 재래식 변소는 일곱 살 아이가 혼자 해결하기엔 위험했다. 행여나 똥통에 빠지지는 않았을까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솔이는 없었다. 가슴을 졸이며 마당으로, 부엌으로, 다시 방으로 솔이를 찾아 헤맸다.

집을 나와 비닐하우스며 밭에도 가보았다. 밭에서 호미질을 하는 부녀자 둘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하고 몸이 뜨거워졌다.

솔아! 솔아! 하며 소리를 질렀다. 호미질을 하던 두 여자가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낮게 뭐라고 중얼대더니 하던 일을 계속했다.

“요만한 아이 못 보셨어요?”

나는 밭에 있는 부녀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그들은 쪼그리고 앉은 채 뒤로 돌더니 내 말을 못 들은 척했다. 두 다리가 후들거려 뛸 수조차 없었다.

한 시간을 넘게 동네를 헤집고 다니다가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솔이는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사색이 된 내 얼굴을 보며 히죽댔다. 마치 술래를 따돌리고 교묘하게 숨은데 성공한 양 우쭐대는 것 같았다. 나는 소리를 꽥 지르며 솔이에게로 달려들었다.

“어디 있었어!”

“집에 있었는데.”

“어디? 집 안 구석구석 다 찾았는데.”

“엄마, 바보.”

“뭐?”

“헤헤.”

*

어머니는 내가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사탕을 쥐 죽은 듯이 빨고 계셨다. 죽 그릇도 간장종지도 깨끗이 비어 있었다.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지 내가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쪽쪽 소리를 내가며 기계적으로 사탕을 빨았다.

오후 2시가 되어 딸아이의 점심을 챙기고 방으로 들어와 몸을 뉘었다. 어머니의 점심은 챙기지 않았다. 귀찮았다. 아니 귀찮은 게 아니라 어쩌면 어머니가 빨리 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들어 그랬는지 모른다.

나는 이불을 홱 뒤집어썼다. 어머니만 생각하면 끓는 죽처럼 속이 부글거렸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 있었다. 그런데 식사 때가 두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어머니 방은 조용하기만 했다. 오기 때문일까? 아니면 죽은 여동생이 떠올라 심란해서일까? 낯선 고요함에 내가 초조해질 정도였다.

하릴없이 부엌으로 가서 식사를 챙겨 나왔다. 이렇게 조용한 걸 보면 얼마나 골이 난 걸까.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문에 귀를 바짝 갖다 댔다. 코 고는 소리도, 쑥쑥 대는 거친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 영 심상치 않았다.

나는 슬그머니 방문을 열었다. 방문이 열리는 순간 깜짝 놀랐다. 딸아이 솔이가 우두커니 서서 어머니를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딸아이에게까지 몹쓸 말을 할까 싶어 절대 할머니 방에 들어가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었다. 그런데 솔이는 방문이 열린 것도 모른 채 겁도 없이 그렇게 서 있었다.

“솔……”

나는 솔이를 부르기 전에 머리가 쭈뼛 서는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그건 다름 아닌 솔이를 올려다보는 어머니의 얼굴이 극도로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죽어버렸는지 입을 헤 벌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엇을 보았기에 저러는 걸까. 나마저 등을 보이고 서 있는 솔이에게 겁이 날 정도였다.

“솔아!”

삐딱하게 고개를 돌린 솔이가 나를 보자 배시시 웃었다.

“너, 여기서…… 뭐하니?”

“할머니한테 재미있는 이야기 해주고 있었어.”

“무슨 이야기?”

“비밀이야.”

솔이는 설설 뒷걸음질치며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쫄래쫄래 건넌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나는 그날 밤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어머니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안방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는 등을 보인 채 누워계셨다. 내가 몇 번이나 불러 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불을 끄고 나오긴 했지만 자꾸만 불길한 생각이 든다.

아침까지도 말짱하던 어머니가 솔이가 그 방으로 들어가고 난 후부터 이상해진 것 같아 더욱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솔이를 품안으로 바짝 끌어안았다.

그때였다. 이틀 전에 들었던 발소리가 또 들려왔다. 어머니가 일어나셨나. 나는 솔이가 깨지 않도록 바로 뉘이고 자리에 앉았다. 끼익― 끼―

발소리는 대청마루를 위를 계속 맴돌고 있었다. 어머니의 발소리라기엔 너무 얕고 조심스러웠다. 그렇다고 발소리를 들키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걷는 소리도 아니었다. 몸이 가벼운 사람이 보통의 걸음으로 걸을 때 나는 소리였다.

이곳으로 온 후 단 한 번도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어머니가 아니라면 누구지? 문을 열어보고 싶어도 오싹한 느낌이 들어 자리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이윽고 마루 위를 서성이던 발소리가 멈췄다. 드륵― 방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가 용변을 보고 방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나는 그제야 길게 숨을 토해냈다.

그런데 이상한 건 한참이 지나도 방문 닫히는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다. 문을 그냥 열어놓고 주무시는 건가. 나는 어머니의 방에 문이 열렸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부스스 하게 눈을 뜬 솔이가 갑자기 내 팔을 붙잡았다.

“엄마…… 가지 마……”

“할머니 방에 좀 가보려고.”

“가지 마.”

비몽사몽간에 내 손을 잡고 가지마라고 말하는 딸아이의 얼굴을 쳐다보자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괴한 느낌이 들었다. 막연히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다만 어정쩡한 자세로 싸늘한 정적이 도는 방 안을 휘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왜 그러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솔이는 다시 잠들었다. 나는 아이가 잠 든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슬그머니 방문을 열어보았다. 어머니의 방문은 닫혀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죽을 끓여 어머니에게로 갔다. 어머니는 어제 저녁 그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쟁반을 바닥에 두고 숟가락으로 죽을 한 번 휘저은 후 어머니를 불렀다. 대답이 없자 그릇 안에 숟가락을 꽂고 다시 어머니를 불렀을 때야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 죽은 것은 아닐까.

바닥에 무릎을 대고 엉금엉금 기어 등을 보이고 누운 어머니에게로 다가갔다. 몸뚱이를 돌리려고 손을 뻗었지만 선뜻 만지기가 두려웠다. 떠나보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막상 죽었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두 손으로 어깨를 잡고 커다란 몸뚱이를 돌려 눕혔다. 어렵잖게 몸을 움직일 수 있었지만 반쯤 열린 눈꺼풀 속 검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쿵거렸다. 그냥 봐서는 꼭 죽은 사람 같았다. 푸르뎅뎅한 피부색과 탄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빳빳한 몸뚱이, 멈춰진 호흡.

고개를 숙여 어머니의 입과 코에 귀를 갖다 대고 집중해서 숨을 느껴보려 했다.

호흡이 없다. 어머니는 죽었다. 비로소 어머니는 죽은 것이다.

나는 건넌방으로 가서 가방 안에 든 수첩을 꺼내 미리 알아온 장의사의 연락처를 쭉 찢어 안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죽은 어머니의 머리맡에 있는 까만 전화기 앞으로 가서 수화기를 들었다. 오랫동안 쓰지 않아 먼지가 쌓인 수화기를 치맛자락에 슥슥 닦았다.

수화기를 귀에 바짝 갖다 대고 다이얼을 돌렸다. 두 번째 다이얼을 돌릴 때서야 전화기가 먹통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전화기를 방구석으로 밀었다. 내 행동은 놀랄 만큼 차분하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실례합니다!”

낮은 담장으로 고개를 쭉 내밀고 소리쳤다. 하늘색 철문으로 된, 어머니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인가였다. 강풍이라도 몰아치면 집채가 날아가 버릴 것처럼 보잘 것 없었고 마당은 야트막한 키로 자란 잡초가 무성했다. 언뜻 보면 오랫동안 비워진 폐가처럼 보였으나 빨랫줄에 걸린 갓 세탁된 작업복을 보면 누군가 사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도 안 계세요?”

세 번이 넘게 소리쳤지만 대답은 없었다. 이른 아침이라 모두 일을 나가고 집은 비어 있는 듯했다. 막 그곳을 빠져나오는데 수건을 목에 두른 40대 남자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한걸음에 달려가 그 남자 앞에 섰다. 그는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자 흠칫 놀랐다.

“저…… 부탁이 있어 그러는데.”

남자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낯선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어깨를 뒤로 빼고 나를 경계하는 모습은 전에 본 부녀자들과 같지만 내 시선을 피하진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장의사에게 연락을 해야 할 거 같은데…… 전화가……”

남자는 금세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말해놓고 내가 누구이며 죽은 사람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을 것을 깨달았다.

“저는 저기 사는 분의 며느립니다. 장의……”

나는 깨진 기왓장이 보이는 지붕을 가리켰다. 남자는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지붕을, 찬바람에 오들오들 떠는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성난 사람처럼 나를 밀치고 지나갔다. 사람이 죽어 도움을 청하는데 어찌 이리도 매정할 수 있는지 슬그머니 울화통이 일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큰 소리로 그를 불러 세웠다.

“이봐요!”

그가 건성으로 뒤를 힐끗 돌아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좀 도와줄 수 없나요?”

“그 작자들 장사 지내 줄 사람 여긴 없으니 딴 데 가서 알아보라고!”

“뭐요?”

“그 노인네 초상 치르는 대로 이 마을을 떠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에이 퉤!”

그는 말을 하다말고 바닥에다 가래침을 퉤 하고 뱉었다. 화를 내고 따지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났다. 구멍가게에서 본 부녀자들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 모두 우리를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의문들이 나를 화나게 했다.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마치 내가 이곳으로 와야 했던 것처럼 이 일도 내가 알아야만 할 것 같은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뛰었다. 이집 저집을 돌며 도움을 청해봤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전화 한 통 쓰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간신히 구멍가게 김 노인이 전화를 쓸 수 있게 해주었지만 이웃동네 장의사에 부탁을 해야 할 거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나는 김 노인에게 왜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외면하는지 말해달라고 보챘다. 김 노인은 비바람에 들썩이는 유리창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셔츠에서 구겨진 담뱃갑을 꺼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아득하게 먼 기억을 떠올리듯 허공을 응시했다.

“아주 오래 전이지. 우리 기복이가 열 살 때니까. 지금 자네 집 큰 어르신은 이 동네 유지였어. 죽은 자네 시어머니의 시어른들 말이야. 부부내외가 아주 꼬장꼬장했지.

지금 자네 어머니는 원래 그 집 며느리가 아니었어. 알고 있었나? 원래 그 집 며느리는 양가집 규수였는데, 글쎄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거야. 3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자 지금의 자네 시어머니를 데려온 거지.”

그는 거기서 말을 끊고 담배를 깊게 빨았다.

“자네 시어머니는 원래 그 집에서 일하는 머슴 딸이었는데 데려오자마자 떡 하니 아들을 낳아 준 거야. 처음엔 그저 씨받이로 데려온 건데. 첫째아들이 아장아장 걷기도 전에 또 둘째를 가졌는데 아, 글쎄 또 아들인 거야. 그게 자네 남편 아닌가? 첫째는 죽었으니까.”

남편에게서 한 살 많은 형이 있었다는 소릴 들은 적이 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갑작스런 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씨받이로 온 여자가 며느리자리를 꿰찬 거지. 말도 마. 원래 있던 며느리 고함소리가 예까지 들렸으니까. 매질당하는 소리 말이야. 언젠가 한 번은 거지몰골로 나를 찾아와서는 갓난쟁이 아들 하나를 훔쳐달라고 말하는데, 제 정신이 아니었어.

그러던 어느 날부터 그 며느리가 소리 없이 사라졌지. 자네 집에선 원래 며느리가 미쳐서 집을 나갔다고 했지만 마을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어. 모두들 맞아 죽었다고 생각하지.

그런데 희한한 건 그 여자가 사라지고 난 후부터 마을에 흉흉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거야. 아이들이 살 수가 없어. 이 마을엔. 핵교 들어가기 전에 병이나 사고로 죽어버리지 뭐야. 쯧쯧, 그러니 이 마을에 저주가 씌었다고들 생각하지.”

나는 김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터무니없는 소문 따위에 마을사람들이 우리를 외면한다는 사실은 어이가 없었다. 나는 김 노인의 이야기를 골몰한 눈빛으로 끝까지 경청하는 척했지만 내 머릿속은 내내 어머니의 초상을 치러 줄 장의사를 찾아 빨리 이 마을을 뜨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