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이름

  • 장르: 호러
  • 평점×15 | 분량: 37매 | 성향:
  • 소개: “진정하세요. 저는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내가 잠든 틈에 우리 집 문을 따고 들어온 괴한이 말했다. 이 세상의 모든 신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더보기

신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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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이름

 

 

 

“진정하세요. 저는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내가 잠든 틈에 우리 집 문을 따고 들어온 괴한이 말했다.

 

 

 

괴한의 말을 듣는 순간 ‘죽기 싫으면 가진 돈 다 내놓아라!’부터 ‘그래, 반항하지 마. 어차피 서로서로 기분 좋은 거잖아?’ 까지 다양한 가설이 떠올랐지만, 침대에 걸터앉은 괴한은 이상할 정도로 적대감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뭐지?

 

 

 

잠에서 막 깨어난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앞을 봤지만, 얼굴도 가리지 않은 괴한은 변함없는 태도로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아, 젠장. 눈뜨자마자 비명을 질렀어야 했어. 터무니없는 광경이라 눈을 의심하느라 비명 지를 타이밍을 놓쳤잖아?

 

 

 

나는 괴한이 눈치 채지 못하게 주변을 곁눈질했다. 부엌에 식칼. 부엌은 괴한 뒤에 있다.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면? 화장실은 부엌 옆에 붙어있다. 이불을 던져 얼굴을 덮은 뒤에 밀어서 자빠뜨리고 그 틈에 식칼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가면…… 대체 그건 어느 동네 액션 영화야?

 

괴한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많이 놀랐나보군요.”

 

“어…… 네. 그럼 무슨 일로 오셨죠?”

 

 

 

마치 은행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문장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내가 얼마나 겁에 질렸는지 알 것 같다. 나는 내 자취집에 혼자, 아니 정체불명의 괴한과 둘이 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뭔지도 알 수 없고, 상대의 단어 선택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상에, ‘죽이지 않겠다.’고? 보통 해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나? 저 사람의 단어 선택이 이색적인 건가, 아니면 ‘죽이지는 않겠다.’는 뜻인 걸까?

 

요즘 뉴스에서 흉흉한 연쇄살인사건이 떠올랐다. 저항한 흔적이 없고, 유서까지 쓰여 있었지만, 연쇄살인이라 불린 이유는 흉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나?

 

 

 

내 질문에 괴한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푹 눌러쓴 후드 사이로 괴한의 얼굴이 살짝 비쳤다.

 

저 얼굴. 어딘가 낯이 익은데……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잠깐 생각이 끊어졌다.

 

 

 

“겨우 그런…… 아니, 듣고 나면 바로 가 줄 건가요?”

 

“원한다면 경찰에 자수도 할게요. 저한테는 겨우 그런 게 아닙니다.”

 

“아니, 굳이 그럴 것까진……”

 

 

 

물론 괴한이 떠나고 나면 곧바로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지만, 일단은 지금 내가 안전한 게 우선이다. 자기 인생이 망가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언제 마음을 바꿔 해코지를 할지 모르니깐.

 

괴한은 불안감에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바닥을 긁어댔다. 왜 이렇게 흔들리는 거지?

 

나는 일단 창밖을 내다보고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류하기로 했다. 당장은 내게 무슨 짓을 할 것 같아 보이지 않기도 했고, 오히려 소리를 질렀다가 상대를 자극하는 것이 더 무섭다.

 

그래, 뭘 말하든 그냥 맞장구만 잘 쳐주면 되는 거 아니야? 대충 들어주고 보내자.

 

 

 

“알겠어요. 뭐든 말해봐요.”

 

“고마워요. 당신은 종교가 있나요?”

 

“……네? 에? 어? 어라?”

 

 

 

터무니없는 내용에 한 번 놀랐고, 그 뒤에 번개처럼 스치는 상대 얼굴에 한 번 더 놀랐다. 기억이 났다. 지난주였나? 근처 시내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나오는데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이 있었다.

 

복불복에 환장한 친구 하나가 전단지를 받아 식당이면 2차는 그 집으로 가고, 카페면 그곳에서 해장하고 돌아가고, 커플링 같은 악세사리점이면 그냥 여기서 집에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술에 취해 정신도 알딸딸했겠다, 재밌을 것 같아서 동의했는데 받고 보니까 무슨 포교문 같은 거라 그 자리에서 던져 버리고 다른 전단지를 받아서 놀았던 것이 기억에 떠올랐다.

 

 

 

설마 그걸로 해코지라도 하려는 건가? 아니, 겨우 그걸로 집까지 쳐들어왔다고?

 

미친놈이다. 진짜 겨우 그것 때문에 악감정을 품고 찾아왔다면, 일단 미친놈이고, 거기에 악감정까지 섞여 있으니 진짜 위험하다.

 

 

 

“저기…… 제가 어렴풋이 기억이 나기는 하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술에 취해서 그랬어요. 아, 맨정신이라면 한 번 읽어는 봤을 텐데.”

 

 

 

맨정신이라면 아마 구겨서 주머니에 넣어뒀다가 좀 멀어진 뒤에 버렸겠지.

 

괴한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 아! 아뇨, 아뇨. 그것 때문에 여기에 온 건 맞지만, 화가 나서 온 건 아니에요. 진짜 아예 안 읽고 버리는구나? 그래도 읽어는 보고 버릴 줄 알고 나름 고심해서 문장을 썼는데 말이죠.”

 

 

 

괴한은 조금이나마 섭섭한 느낌이 들었는지 어깨가 살짝 쳐진 채 이해한다는 식의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어리숙한 모습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된다. 범죄자지만, 악의는 없는 사람 같다고 해야 할까?

 

아니지, 정신 차려. 오히려 더 위험한 거 아닌가? 악의 없이 다른 사람 집을 따고 들어올 정도로 미친 인간이라면, 악의 없이 날 죽이려 들 수도 있잖아. 가령……

 

 

 

“네?”

 

“제가 그 연속 자살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요.”

 

 

 

아 시발.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괴한은 ‘저는 무교라서요.’ 같은 소리를 할 때와 비슷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그 사람들, 제가 죽였어요.”

 

 

 

나는 눈을 감았다.

 

 

 

“당신 얼굴 못 봤어요. 돈은 달라는 대로 주고 싶은데, 진짜 한 푼도 없어요. 그래도 집 뒤지다가 마음에 드는 물건 있으면 다 가져가요.”

 

 

 

분명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는데 문장이 끝날 무렵에는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소리 지를까? 아니, 그 전에 내가 죽겠지? 목이 잘려 숨이 막힌다. 배가 쑤셔져 뒤틀린다. 독을 먹어 몸이 뻣뻣하게 굳는다……

 

괴한이 말했다.

 

 

 

“다들 똑같이 말하더라고요. 물론 이해는 하는데요, 그래도 열 번 스무 번 같은 소리를 듣다보면 질린단 말이죠. 더군다나 듣고 싶은 말이 그게 아니라면 더욱이요. 그게 질문이 아니잖아요. 당신, 종교가 있어요?”

 

“없어요! 근데 오늘부터 믿을게요! 뭘 믿으라고 하는 거죠? 아니, 혹시 믿으면 죽어서 천국 가는 종교인가요? 그럼 아직 잘 모르겠어요! 지금 죽어도 천국 못 갈 것 같은데?”

 

“글쎄요. 저는 무교라서요.”

 

“네?”

 

 

 

분명 첫 만남이 무슨 종교 전단지 나눠주는 것 아니었나?

 

 

 

“하지만 신은 믿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정확히 말하면 신을 믿는 게 아니라, 신은 있다고 말해야겠네요. 친구가 돈을 떼먹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건 믿음이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말하는 건 지식이니까요.”

 

“그럼 신을 본 적이 있나요?”

 

“아니요.”

 

“신을 봤다고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아니요.”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나요?”

 

“신의 이름을 알아요.”

 

 

 

나도 잘 알지. 제우스라고. 너무 당연하다는 듯 나오는 ‘아니요’에 힘이 쭉 빠지는 것 같다. 미친 사람이라면 신을 봤다고 할 줄 알았는데. 물론, 미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딴 소리를 하려고 무단침입을 하지도 않았겠지.

 

 

 

“좋……아요. 신은 믿는데…… 아니, 아는데 종교는 없다고요? 그렇죠, 그럴 수 있죠. 맞아요. 그럼! 믿는다고 꼭 섬겨야 하나? 와, 진짜 부러워요!”

 

 

 

괴한은 내 태도가 너무 오버스럽다고 생각했는지 눈을 찌푸렸다.

 

 

 

“부럽다고요? 이 세상을 만든 창조주가 허락하지 않으면 고작 내일 아침에 뭘 먹을지도 정할 수 없는 그런 거지같은 삶이 부럽다고요? 평생을 죽어라 노력해도 그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고, 이뤄낸다 한들 그의 변덕으로 노력은 물론이고 내 존재까지 ‘없던 것’이 될 수 있는 삶이 부럽다고? 그 허락 없이는 이 모든 것에 의심하고 불만조차 가질 수 없는 삶이 부럽다고?”

 

 

 

괴한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