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일., 66일., 6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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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일.

 

 

 

침대에 누워 아침을 맞이한다.

 

오늘은 어떻게 죽을까. 죽으면 그녀들을 만날 수 있지만 이제 죽는 일도 어렵다. 이런 저런 고통을 알아버린 몸뚱이가 도망부터 간다. 몸에는 상처하나 없지만 내 정신은 그 상처를 고통을 다 기억한다. 칼만 보면 손이 떨린다. 계단이 무섭다. 운전도 무섭다. 목에 옷이 닿아도 놀란다. 그때마다 더 창의적인 제안을 해야 한다.

 

제9회 자살 위원회 정기 회의를 시작합니다. 오늘의 의제는 창의적인 자살입니다. 의견 있는 분 발표해 주세요.

 

3층은 시시합니다. 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어떨까요.

 

네 좋은 의견입니다만 더 올라가봐야 무섭다고 아래를 내려보지도 못하겠군요. 다른 의견 있으신가요.

 

지난 번에 만들었던 전기 의자를 써보면 어떨까요.

 

괜찮은 의견이군요. 하지만 지난 번에도 못 앉았는데 이번에는 가능할까요.

 

머저리 같은 위원들은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 난 죽을 수도 없다. 하지만 이 넓은 세상에서 죽기라도 해야 외롭지 않다. 너무나 외롭다. 사무치도록 외롭다. 잊으려면 잠이라도 자야 한다.

 

에 제9회 자살 위원회 정기 회의는 일단 잠시 휴식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빌어먹을. 눈을 감고 눈물을 삼킨다. 나는 약하다. 세상 누구보다 약하다. 그리고 외로운 마음에 그 사람이 또 침략한다. 그 사람은 세상 누구보다 강하니까.

 

 

 

미연언니는 당당했다. 언제나 길에서는 손을 잡고 걸었다. 주변사람 시선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마트에서는 언제나 팔짱을 꼈다. 클럽에서는 허리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극장에서는 언제나 내 허벅지에 손이 올라와 있었다. 집에서는 단 일분 일초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미연언니는 실행력만 좋았지 평소에는 나보다도 게을렀다. 가끔 집에서 데이트를 하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있었다. 침대에 누워있고 소파에 누워있고 바닥을 굴러다녔다. 나랑 떨어지지 않으려 해서 결국 귀찮아진 나도 누워 있게 되었다.

 

미연언니는 옷을 안 입고 자는 내 습관을 아주 좋아했다. 가끔 미연언니 집에서 자고 오는 날이면 미연언니는 깔깔대면서 날 간질였다. 치사하게도 미연언니는 간지럼을 타지 않았다. 미연언니 품에 푹 안겨 있으면 참 따뜻했다. 미연언니는 손도 입술도 목도 가슴도 배도 다리도 엉덩이도 따뜻했다. 겨울에 난방을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미연언니 품에 푹 안겨 잠들면 아침까지 따뜻했다. 성능이 참 좋은 난로였다.

 

언제나 누워있다 보니 주로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히어로들의 이야기. 가족의 복수를 하려 완전 무장을 하는 아빠의 이야기. 살인자를 잡으려 온 마을을 다 뒤지는 경찰의 이야기. 진지한 영화는 보지 않았다.

 

 

 

웃고 떠들고 살면 그만이지.

 

고민해서 뭐해.

 

어차피 한 번 죽으면 끝 아닌가?

 

그리고 죽은 다음 세상이 있다고 해도 분명히 좋은 곳이겠지.

 

돌아온 사람 없잖아.

 

얼마나 좋은 곳이면 아무도 안 돌아오겠어?

 

그러니까 고민하지 말고 그냥 놀다 죽자.

 

다 때려부수고 날려버리면 세상만사 다 평화로워진다니까.

 

 

 

그래서 미연언니는 언제나 비명과 폭음에 둘러싸여 살았다. 미연언니는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큰 욕망은 소유욕이고 그 소유욕을 겉으로 드러내는 행위가 폭력이라 믿었다. 결국 사랑은 사람을 죽음으로 안내하는 저승사자 같은 것이라 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 때는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꿈을 꾼다. 분명히 꿈을 꾼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멍한 정신으로 깨어나 침대에 쪼그려 앉아 숨만 조용히 쉰다. 날은 어느새 어둑어둑하다. 종일 손님 하나 안 다녀간 위장이 심통이 났는지 민원을 꾸준히 넣는다. 매일 먹는 빵을 꺼낸다. 데우지도 않은 식빵을 대충대충 입에 구겨 넣는다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