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장 보러 다녀올게요. 뭐 필요한 거 없어요?”
“한 가지만 있어도 먹으니까, 무리하지 말고. 조심해요.”
“조심하고 말고 할 것도 없어요. 요즈음은 갈수록 그것들이 힘이 빠지는 것 같아요.
지난번에는 팔뚝, 이 안쪽, 여기랑 여기. 놈들을 꽉 붙잡는데 힘이 솟아오르는 게 근육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 같았다니까?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는 선수들의 기분이 이럴까? 싶은 게…….”
“아니, 여기서 말을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하나.
저 놈 꼴 보기 싫어서 내가 채널을 돌려야지”
“뼈 부러지는 소리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어머 저 사람 살쪘네? 한 동안 안나오더니.”
“치료약도 다 저것들이 북한부터 갖다 줘서 없는 거 아냐?”
“또 그러다 혈압 오를 라. 드라마나 봐요.MBC에서 <대장금>해주던데. 다녀올게요.”
보배는 현관에 서서 러닝화 끈을 조여 맸다.
이보배는 일주일에 두 번 장을 보고 하루 세 끼 밥을 차린다. 그러기를 올해로 딱 52년째. 세대가 두 번 바뀌고 정부는 네 차례의 개헌을 겪었지만 보배가 세 끼 밥을 차리는 일에는 터럭 만큼의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고 살아야 할 사람은 삼시세끼를 먹어야 한다. 전쟁도 나지 않았고 보릿고개도 아닌데 왜 끼니를 거른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