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3화 – “대체 뭔 꿍꿍이야?”

— 본 작품은 무료이지만, 로그인해야 읽을 수 있습니다. —
미리보기

여자는 또다시 실종 소식을 전해야 하나 지친 기분이 들었다.

“유감스럽게도……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실종된 거 알고 왔어요.”
 

여자는 껄끄러운 사설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긴 했지만 수진 리가 언급되는 것 자체가 거북했다. 자기 집에서 하숙하던 학생이 실종됐다는 사실은 안타까우면서도 꺼림칙한 일이었다.

 

“무슨 일로……?”

 

“수진이 행적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요. 실종되기 전에 자주 다니던 곳이나,”

 

여자가 퉁명스레 말을 막아섰다.

 

“아는 건 경찰한테 다 말했는데요.”

 

“저한테도 얘기해 주시겠어요?”

 

“글쎄요. 내가 아는 게 별로 없어요. 수진 리가 영어가 서툴러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문 안쪽으로 주춤대고 있는 여자는 당장이라도 문을 확 닫고 들어가 버릴 것 같았다. 승주의 마음 언저리로 낭패감이 스쳐갔다. 이전에도 유력한 증언자를 놓친 적이 있었다.

 

본격적인 탐정 일을 시작하기 전, 친구를 위해 조사하러 다니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상대방을 존중하려는 배려로 순순히 물러섰지만, 과연 배려였을까? 무능력한 탐정의 변명일 뿐이다. 캐낼 게 있는 대상에 대해선 무슨 방법을 써서든 캐내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고, 승주는 반사적으로 되뇌었다.

 

곱슬머리 여자 아이가 호기심어린 얼굴로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놀란 주인여자가 아이를 다그쳤다.

 

“케이티, 얼른 들어가.”

 

“제 동생도 저렇게 호기심이 많았는데.”

 

주인여자가 갸우뚱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저 수진이 오빠예요.”

 

주인여자의 무뚝뚝한 표정이 뜨거운 프라이팬에 올려놓은 버터처럼 폭삭 노그라졌다. 무미건조하던 낯빛이 연민으로 촉촉해져 생기마저 감돌았다. 동정어린 울상에 어정쩡한 미소가 뒤엉킨 얼굴로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입술만 꼼지락 감쳐물었다. 매달리는 딸아이를 핑계 삼아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

 

승주는 더 부드럽게 말했다.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하지만, 사소한 거라도 괜찮으니까 수진이에 대해서 기억나는 게 있으면 알려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그럼 더 귀찮게 안 하고 갈게요.”

 

실종된 피붙이를 찾아다니는 사람의 절박한 말투까지 연기해 내기에는 아직 연륜이 부족했다. 그저 상대방의 동정심이나 환기시킨 후에 간절한 표정으로 기다릴 뿐이다.

 

주인여자는 승주의 마지막 말이 솔깃했다. 예의바른 사람으로 보이니 몇 마디만 해 주면 정말로 조용히 가줄 것 같았다. 지난번에 다녀갔던 수진의 부모도 점잖은 편이었다.

 

딸이 머물렀던 방에 가서 통곡 한바탕 쏟아낸 것 말고는 거슬리는 게 없었다. 수진의 오빠는 영어도 통하고 무엇보다 인상이 차분했다. 게다가 동양인 특유의 갈고리 눈매가 아닌 것도 마음에 들었다.

 

“우선 들어오세요.”

 

승주는 독 소장 쪽을 흘끗 돌아보고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거실 소파에 앉아 홍차까지 얻어마셨다. 호기심 많은 케이티는 수줍은 미소를 함빡 지은 채로 소파에 앉은 승주에게 다가가려다가 물러서며 주변을 맴돌았다.

 

승주는, 소심한 팬에게 노련한 손짓으로 화답하는 팝스타처럼, 속삭이는 말투로 이름을 묻거나 옷이 예쁘다며 간간이 칭찬을 건넸다. 케이티는 더 수줍게 방긋거리며 폴짝폴짝 소파 주위를 까치발로 뛰어다녔다. 뒤뚱대며 걷는 남동생 꼬마는 승주 옆에 붙어 앉아서 뚫어져라 올려다보았다.

 

주인여자는 직접 만든 쿠키도 내왔다. 홍차를 건넬 때 자신을 바라보던 동양 청년의 그윽한 눈빛과 다시 마주치고 싶었다. 쿠키 접시를 내려놓으며 직접 구운 거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잘생긴 청년은 더 일렁이는 눈매로 우러러보면서, 땡큐, 감동에 벅찬 음색으로 나직이 속삭였다.

 

이슬이 글썽이는 것 같은 애틋한 눈매와 마주치자 주인여자는 하마터면 탄성을 내지를 뻔했다. 조심스러운 미소가 머뭇거리는 승주의 발그레한 입매는 더 섬세하게 섹시했다. 늦둥이 남매를 둔 40줄의 주인여자는 기억을 더듬었다. 저런 그윽한 시선을 받아본 적이 있던가?

 

로맨스영화 속 남자주인공이 스크린을 향해 지었던 연기 말고는 실제 현실에서는 겪어보지 못했다. 주인여자는 이 동양 청년이 자기한테 첫눈에 반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나 같은 펑퍼짐한 아줌마를? 잠깐, 동양 남자들이 백인 여자를 동경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오, 저리도 간절한 눈길이라면…… 추파의 눈빛이 아닌 고요하고 조심스러운, 그래서 더 설레게 만드는 매력이 주인여자를 꼼짝없이 주저앉혔다.

 

대화는 제법 길어졌다. 승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이야기까지 시시콜콜 들을 수 있었다. 수진 리가 처음 온 날, 자기소개를 하다가 단어 하나를 까먹어서 한참 머뭇거렸다는 얘기도 늘어놓았다. 심지어 수진 리가 변비가 심해 하나뿐인 화장실을 차지하는 바람에 옆방 하숙생이랑 몇 번 논쟁이 오간 적이 있다는 얘기도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