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2화 – “실종된 거 알고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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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사건현장이 영국이라는 말에 흠칫했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며 간절히 매달리는 부성 앞에서 못하겠다고 말하는 건 비수를 꽂는 것과 같았다. 독 소장은 잠결에서도 사명감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2

 

“승객 여러분, 곧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편안한 여행되시기 바랍니다.”

 

영국 땅으로 내려서자 긴장감은 더 집요하게 두 사람을 파고들었다. 다행히 언어는 별 걱정 없었다. 독 소장은 말하는 건 어눌해도 청취 쪽으로는 슬랭이나 관용어가 아니라면 대부분 알아들었다. 어차피 인터뷰는 승주가 맡기로 했다. 학위과정은 한국에서 했지만 학업적으로 영어와 동고동락해 온 터라 발음이 훌륭하진 않아도 의사소통은 자유로웠다.

 

독 소장과 승주는 평범한 표정으로 위장했으나 마음속에선 긴장감이 울렁거리는 바람에 출국장 밖까지 두근두근 걸어갔다. 새벽 시간임에도 여러 인종들이 북적거려 시야가 어수선했다.

 

“독변, 여기야!”

 

여러 사람들이 부대끼는 마중 행렬 속에서 한국어가 쩌렁 울렸다. 독 소장과 승주를 향해 아랍인같이 생긴 동양인이 손을 흔들었다. 아랍 혼혈은 아니었다. 동북아시아 인종임이 분명해 보이지만 얼굴 틈틈이 입체적인 조형감이 느껴졌다. 평면적인 이목구비에 기름진 명암이 드리워진 외모로, 동양인이 서양에서 오래 살면 생기는 현상이었다.

 

중년사내는 독 소장과 끌어안고 악수를 나눴다. 승주와도 몇 마디 인사를 주고받았다. 사내의 이름은 해리슨 박이었다. 영국 교포인 그는 독 소장과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투가 막역했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내내 해리슨 박과 독 소장은 각자 가족의 안부에 대해 친밀하게 얘기 나눴지만, 독 소장이 영국에 온 이유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해리슨 박은 독 소장의 목적지인 본머스 코치스테이션까지 태워다준 후 런던으로 돌아갔다. 두 친구 사이에 마지막으로 오간 대화는 세미나 끝나는 대로 런던에서 보자는 말이 전부였다.

 

일부러 잠자코 있던 승주는 해리슨 박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독 소장에게 물었다.

 

“세미나라고 하시던데. 여기 온 이유 얘기 안 하신 거예요?”

 

“응.”

 

“왜요?”

 

“저 친구가 재영한인회에서 위원장으로 있잖아. 교민 사회가 얼마나 좁은데. 안 그래도 이수진 사건이 교민들 사이에서 떠들썩한 사건인데, 한국에서 변호사가 조사하러 왔다고 하면 순식간에 소문 퍼질 거라고. 입단속 시킨다고 해도 저 친구가 워낙 입이 근질거리는 성격이라서. 소문 요란하게 나서 좋을 거 없어. 혹시라도 한국인이 용의자면 힌트만 주는 꼴이고.”

 

“오호, 역시 우리 독 소장님.”

 

“지체할 시간 없어. 서두르자고.”

 

“옛썰!”

 

두 사람은 버스 노선에 익숙지 않아 미니캡을 타기로 했다. 마침 터미널 앞에 손님을 내려놓은 미니캡을 발견하고 뛰어갔다.

 

수진의 홈스테이와 가까운 웨스트힐 로드 큰길가에서 차를 세웠다. 하숙집을 탐문하기 전에 먼저 짐을 풀어야했다. 해변 관광지가 가깝다 보니 B&B 간판을 매단 집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12월 초라 크리스마스 성수기까지 겹쳐서 제법 때깔 좋은 게스트하우스는 예약이 찬 상태였다.

 

간판이 보일 듯 말 듯 달려 있는 후미진 모퉁이 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급조한 듯 마름질이 거친 간판 위에 로즈(rose)라는 상호가 적혀 있었다. 어설피 그린 페인트 장미가 허름한 집 분위기와 썩 잘 어울렸다. 문종을 울리며 현관문 안으로 들어서자 고양이 한 마리가 능글능글 걸어 나와 생뚱맞다는 듯 칩떠보았다. 거동 불편한 백인 노부부가 얼씨구나 다가와 느릿한 영어로 반겨주었다. 독 소장과 승주는 짐만 내려놓고 밖으로 나왔다. 여독을 풀 여유가 없었다.

 

우선 본머스 경찰서부터 가보기로 했다. 수사 진행 상황에 대해 먼저 숙지할 필요도 있고, 또 혹시 모르잖은가. 희망적인 단서가 잡혔는지도. 분명 진전이 있었지만 아직 한국까지 희소식이 미처 전해지지 못한 걸 수도 있다. 어쩌면 유능한 영국 경찰이 이수진을 찾아내기 일보 직전인지도 모른다.

 

미제가 될 뻔한 사건이 기적적으로 반전돼 양국의 우호가 증진되는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아뿔싸,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독 소장은 속으로 비웃음을 뱉었다. 낯선 땅에 떨어지니 얼간이가 된 것인가? 냉정을 잃어버린 희망적 상상은 무능력자의 환각일 뿐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경찰서는 근방에 위치해 있어 금세 찾았다. 유니폼이 멋들어진 순경은 아주 친절했다. 외국인임을 알고는 일부러 느릿느릿 또박또박 발음해 주었다. 사건에 대해 얘기했지만 순경은 수진 리 실종 건에 대해 전혀 기억을 못 하는 눈치였다. 신고 기록을 확인해 보라고 승주가 다그쳤다. 컴퓨터 자판을 깨작거리며 내용을 훑어보던 순경은 미소가 경직되더니 모니터만 응시할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승주가 다시 캐물었다.

 

“등록돼 있죠? 이제 기억나죠?”

 

억눌러놓았던 스코틀랜드 억양이 순경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승주와 독 소장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뭐라고요?”

 

순경은 억양을 가다듬고 천천히 뇌까렸다.

 

“도싯 몬트레이 경찰본부로 가보십시오. 그쪽으로 이관됐습니다. 저희는 논평할 권한이 없습니다.”

 

인근 지리에 어두워 다시 미니캡을 호출해야 했다. 경찰본부가 있는 도체스터는 꽤나 먼 거리였다. 차 안에서 크림빵으로 시장기만 간단히 때웠다. 신경이 곤두서 있다 보니 배고프다는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도시 길목을 굽이굽이 가로지르는 동안 초조함이 더 조여들었다.

 

두 사람은 미니캡에서 내리자마자 몬트레이 경찰본부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입술만 살짝 실룩이면 친절한 미소로 충분하다고 믿는 안내데스크 직원이 독 소장과 승주를 맞이했다. 직원은 승주의 설명을 듣고는 형식적인 말투로 물었다.

 

“영국시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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