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와 장미가 헤어지는 계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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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루. 또 하루. 닦았을 도(道)가 아까워 죽이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신경줄이 땡기고. 계집이 호소하고, 호소하고, 또 호소했다. 멀찍이에서도 잘 보이는 무덤가 도깨비불처럼 형형한 눈으로 그저 바라보고, 먹지도 자지도 않은 몰골로.
사내는 온갖 세상일에 무심하고 그런 사소한 것들엔 관심을 갖지 않아 왔다. 하지만 그렇게 자꾸 나타나곤 우는 게 분명한 등만 보이며 사라지는 계집을 볼 때마다 뭔가 울걱 치솟아 오르는 걸 느꼈다. 그것은 화병 같기도, 토기 같기도 하여 사내는 불쾌했다. 그저 불쾌했다. 콱! 물어뜯어버렸어야 했는데. 콱! 목을 떨어뜨려야 했는데. 신선의 시신은 사람의 시신처럼 남지 않는다. 본(本)이 인간이었든 동물이었든, 신선의 시신은 살아생전 본인이 닦은 선력(仙力)만큼 오래 남아있다가, 썩지 않고 어느 순간 원래부터 없었던 듯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 시체 썩는 냄새 안 맡아도 어딘가 던져두면 깔끔하게 처리될 것을- 나는 왜 또 널 보며 성이 나고.

“문을 열어 주십시오.”
“허, 세상사 무자비하기로 이름난 육오(陸吾)의 이름이 땅에 떨어졌도다. 같은 말을 세 번 이상 들은 일이 없었거늘-”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딱지가 앉도록 들었어. 꼬리를 탁탁 치며 사내가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었는지 듣지 못했는지, 멀찌감치 떨어진 회색의 계집이 제 오른팔을 베고 길게 드러누운 사내의 큼지막한 등판을 보다 눈을 내리깔고 안개처럼 말했다.

“소문은 그리합니다만, 그와 달리 성정이 모질지 못하고 본디 다정한 분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정? 모질지 못해? 태어나 처음 듣는 평가고, 맹수에게 어울릴 평가도 아니다. 사내는 기가 찼지만, 기묘함이 찾아왔다. 멀리서 형체만 봐도 늘 찾아오는 짜증이 눈 녹듯 스르르 내려앉은 것이다. 어이가 없었지만, 더 어이없게도 웃음이 났다. 기분이 좋으면 심술궂어지는 사내의 얼굴이 웃으면 어찌 될지? 흉악한 얼굴을 머리를 받치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숨기며, 사내가 손가락 사이로 말했다.

“씨알도 안 먹힐 것인즉 꺼져라.”
“쫓겠다 말은 하셨으나 적극적으로 몰아내진 않으셨소이다. 죽이겠다 수번을 겁박하셨으나 정작 매서운 공격은 하지 않으셨소이다. 그것으로 알았지요, 가여운 이를 그 맹렬한 소문보다 어엿비 여기는 분임을.”

본성이 악한 이를 천제께서 귀애하여 하늘인간 꼴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코웃음 쳤으나 입술이 들썽거리는 걸 제대로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내의 입술은 금방 다시 굳어졌다. 이어진 계집의 말 때문이었다.

“그러니 들여보내 주소서. 저는 보아야 합니다.”

입에 발린 소리로 살살 꼬드기려는 짓거리를 보니 과연 여우는 여우였다. 천호(天狐)가 아니고 매구인 게지- 사악한 계집, 간악한 계집, 방만하기가 이를 데가 없도다.

“불허한다. 썩 꺼져라.”

아홉 개의 꼬리로 땅을 탁탁 치며 사내는 여전히 등만을 보인 채, 잇새로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곧 움찔했다. 옆으로 누운 허리로 등으로 두 손이 원망하듯 떨어졌기 때문이다. 본능대로 고개를 홱 돌려 물어뜯지 않은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다, 도대체 뭐가 대견하단 것인지 그렇게 여긴 자신을 의아해하다가, 문득 짜증이 치솟은 사내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사내는 고개를 홱 돌리며 소리쳤다.

“도대체 뉘를 보려 이리 귀찮게 구는가!”

이런, 무릎을 꿇은 계집의 얼굴을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보았다. 노란 눈, 그 노오란 눈에 망예(望霓) 같은 갈망을 담고 계집이 사내를 쳐다보고 있었다. 계집의 입술이 봄날 복숭아 꽃잎 같았다. 웃기는 일이다, 그 입술이란 게 파리하고 봄가물 땅처럼 쩌적쩌적 갈라져 있는데도. 복숭아 꽃잎은 무슨 얼어 죽을 복숭아 꽃잎! 사내는 자신의 눈을 치고 싶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내의 손 대신 계집의 말이 사내의 눈을 때렸다. 질끈 감기도록 눈을 때렸다.

“제 지아비입니다. 저보다 먼저, 아니 누구보다도 먼저 천호(天狐)가 되신 분입니다. 이웃의 아픔을 자기 아픔처럼 여기다 천제의 약초밭에 들고, 발각되어 그 죄로 끌려가신 분입니다. 선처될 것이외다. 그리 길게 처벌 받지 않으리니, 소(訴)의 진행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소이다.”

필요하다면 나오실 때까지 기다렸다 같이 갈 것입니다. 질끈 감긴 눈을 언어로 느끼며, 사내는 계집이 지근거리에 있지 못하도록 뿌리친 후 이마를 짚었다. 제기랄 놈의 여우, 일처일부로 천년만년 해로하는 여우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