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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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씨 탓인 줄 알았는데, 벌써 해가 기운 모양이었다. 열댓 개의 창이 어지럽게 떠 있는 모니터만이 컴컴한 서재를 겨우 밝히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정욱과의 통화가 한참 이어진 후에야 깨달았다.

네가 오케이해서 일단 이름을 올리긴 했는데…… 성근아, 나는 좀 그렇다. 괜찮겠냐?

전화기 너머 정욱이 걱정스레 물었다. 얼마 전 검사로서 그가 부탁했던 검찰의료자문 얘기였다.

막역한 지기의 염려를 뻔히 알면서도 나는 그저 안경을 벗어 모니터 앞에 내려놓았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실은 오래전부터 괜찮은지, 괜찮지 않은지, 혹은 괜찮은 게 무엇인지조차 분명하지가 않다.

제수씨는?

정욱이 재차 물었다.

신 눈에 열기가 느껴졌다. 아내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 본 건 또 언제였더라. 퀭한 눈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아내가 떠올랐다.

인혜가 따듯하고 잘 웃는 여자였던 시절의 기억을 거슬러 오르다 행여 긴 침묵에 약한 모습이 드러날까 조급하게 입을 열었다.

“더 나쁘진 않다. 그건 그렇고, 정욱아. 기왕 의료자문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 제천에 좀 보내 주라.”

딴에 아무렇지 않은 척 무거운 본론을 툭 꺼내놓고, 어쩌면 큰소리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염려가 들었다. 그러나 정욱은 꾸짖거나 나무라는 대신 전화기 이쪽에서도 선명하게 들릴 만큼 깊은 한숨만 쉬었다.

벌써 1년이야. 잊지는 못해도 묻으려고 노력은 해야지. 이제 가서 뭘 어쩌려고?

어차피 의심과 억측, 그 가운데 기생하는 이 어렴풋한 예감을 설명할 길은 없었다. 모니터 화면을 메운 창들, 그 안에 비슷비슷한 내용으로 적힌 기사들만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을 따름이다.

“사흘 전에 딸애 약혼자였던 청년한테서 연락이 왔어. 수현이 그렇게 보내고, 장례식 내내 모질게 굴었던 게 마음에 걸렸는데…… 뜻밖에 제천이라더군. 술을 마셨는지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정확히 듣지 못했지만, 뭘 알아냈다고 했던 것 같아.”

그 청년도 힘들어 그러겠지. 이제껏 잘 버텨 놓고 괜히 흔들리지 마라.

“그래, 무슨 말인지 안다. 그런데 정욱아, 그 청년이 죽었단다.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이 나라고 경찰이 연락을 했어. 우연으로 보기에 너무 이상하고, 내가 가 봐야겠다.”

정욱은 조금 놀란 듯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깊은 한숨만 한 번 더 내쉰 뒤, “기어이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겠다면 다녀와.” 하고 말할 뿐이었다.

통화를 마치고 거실로 나갔다. 인혜가 문소리에 조건 반사를 일으킨 것처럼 들고 있던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방금 전까지 눈이 머물렀던 곳을 따라가 보니, 유리 액자 속에 나와 인혜, 그리고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10대의 수현이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10여 년 전 국내에서 누구도 해낸 적이 없던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의료잡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며 찍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유난히 마음에 들어 했던 인혜는 종종 메마른 어조로 ‘그때가 행복한 최후의 날’이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그 표현에 동의하진 않아도, 지닌 의미만큼은 수긍이 갔다.

경력에 기폭제가 되었던 그 수술의 성공 이후 찾아온 변화는 예상보다 컸다. 몇 차례 유사한 수술을 더 해내고, 신경외과 과장 자리에 오르고, 연구 규모를 키웠다. 한편으론 더 많은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처세에도 신경을 쏟았다.

이름이 알려지는 만큼 높은 사람을 위한 진료, 높은 사람과의 식사와 술자리 횟수가 늘었고, 주변 사람들이 보내는 경외의 눈빛도 싫지 않았다.

시나브로 그런 생활에 중독이 되었다. 집에 다녀가는 시간이 현격히 줄어들고, 다정한 남편과 자상한 아버지 역할까지 해내기가 버거웠다. 당연스럽게 가정과 하나밖에 없는 딸의 교육을 아내에게 전적으로 미뤘다. 이 정도 사회적 지위를 이루기 위해선 미안하지만 가족의 희생이 따르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뻔뻔하게 굴기도 했다.

그래도 마냥 막무가내는 아니었다고 여겼다. 조금만 더 그럴듯한 지위에 오르면, 조금만 더 중요한 사람이 되면, 모든 영광을 가족과 함께 나누고 보상할 계획이었으니까.

오만한 착각이었다. 아름다운 꽃이라도 돌보지 않으면 말라 죽는 게 이치다. 자연의 섭리가 그럴진대, 하물며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멀쩡할 리 없었다.

보듬지 않는 가족과의 관계는 자연히 틀어지고, 유대가 희미해졌다. 인혜와 수현에게 나는 어느새 이방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저…… 친구랑 바람 쐬러가기로 했는데요…….’

사고 전날 수현이 늘 그랬듯 어려워하며 말을 꺼냈다.

‘같이 가는 친구는 누구니?’, ‘어디로 가니?’, ‘용돈은 부족하지 않니?’ 그때 할 수 있었던 얘기는 무궁무진했다. 그러나 고개만 두어 번 끄덕이고 곧장 서재로 향했었다.

성인이 된 지 한참이나 지난 딸이 어련히 알아서 하지 않을까, 사생활에 간섭하는 아버지로 보이기 싫어서였다고 치부했는데, 정말 그런 이유였나 돌이켜보면, 나는 딸에게 말 붙이는 방법조차 제대로 모르는 한심한 아버지였다.

이틀이 지났다. 그 저녁, 나는 국내외 인사들이 모인 포럼의 기조 연설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인혜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으나 받기를 미루었더니, 아랫사람이 대신 받아 수현이 실종되었다고 했다.

위급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태만한 경찰처럼, 나는 ‘험한 일이 아무에게나 일어나지 않으니 제발 호들갑 부리지 말라’라는 말만 전하라고 지시했다. 기껏해야 휴대전화 배터리가 문제이겠거니 짐작했었다.

하루가 더 지나고 사고 소식을 접했다. 그제야 황망한 정신으로 제천성모병원까지 차를 몰고 내려갔다. 도착해 보니 사흘 전까지 건강하기 이를 데 없던 딸은 영안실로 옮겨진 뒤였다.

이성을 잃었던 것 같다. 강물에 젖은 옷도 갈아입지 못한 청년에게 달려들어 마구 주먹을 휘두르는데, 말리던 인혜가 저만치 나동그라지며 비명을 질렀다. 다가가 부축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감히 아버지한테 거짓말을 하고 남자랑 여행을 가?! 저 자식 뭐야! 당신은 뭘 했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고 분노를 쏟아 냈다. 그러자 인혜가 독기를 품은 어조로 말했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지 마. 당신은 비난할 자격 없으니까. 한 달이면 사흘 보기도 힘든 당신이 왜 수현이 아빠야? 딸이 제 또래한테 따돌림을 당하는지, 우울증 약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사는지도 모르는 당신이 어째서 수현이 아빠야? 당신은 아빠 아니야, 개새끼지.”

말문이 콱 막혔다.

단지 딸이 지나치게 소심해졌다고만 여겼다. 어떤 땐 늘 겁에 질린 듯한 모습이 지겨워 언제 철들어 사람 구실을 하려나 답답해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내가 예전에 알던 딸의 모습은 없다고 했다. 책들과 서류 더미 사이에 뜨거운 커피 잔을 내려놓고 수줍게 웃던 모습, 교복 바람으로 떡볶이를 사 먹던 모습, 아장아장 걸어와 내 품에 안기던 모습이 생생한데, 벌써 오래전에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대화 좀 하자며 붙잡는 인혜를 몇 번이고 ‘다음에’라는 말로 떼어 냈던 기억이, 뜬금없이 병원으로 찾아와 머뭇거리는 수현을 집으로 돌려보냈던 기억이 선명해졌다. 수현은 내가 그렇게 방치한 새 점점 웃음을 잃었다.

여행을 함께 갔던 석영은 딸에게 간신히 싹튼 희망 같은 존재라고 했다. 마침내 만나 서로 마음을 열고 기대기 전까지, 수현은 수년간이나 홀로 상처를 삭이며 지옥을 겪었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그 지경이 되어서야 듣다니 스스로가 무서울 정도였다.

얼마나 원망했을까. 돌아서는 딸의 얼굴을 본 적도 없는데, 선잠에라도 들라치면 흐느끼는 뒷모습이 자꾸만 꿈속에 나타났다.

반쯤 미친 상태로 겨우 장례식을 치르고, 병원에 사표를 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사의 기로에 선 사람들을 돌보면서, 정작 내 딸은 손쓸 도리도 없이 허망하게 보내 버렸다는 사실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인혜는 그런 나를 말없이 비웃었다.

“어디 좀 다녀올게. 며칠 걸릴 거야.”

내 말에 인혜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내리깐 눈에 경멸이 묻어났다. 모르는 척 현관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납덩이를 단 것처럼 무거웠다.

바로 차를 몰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벗어났다. 석영의 사인이 익수 자살이라고 공식적인 결론이 났으므로, 다음 날 아침 가족들에게 인계되기 전에 시신을 살펴보려면 한밤의 몇 시간 정도밖에 시간이 남지 않은 때문이었다.

어두운 하늘에서 기척도 없던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운전대 옆 레버를 조작하자, 와이퍼가 유리창을 훑었다. 비이꺽 비이꺽 규칙적으로 흐르는 소리를 따라 최면에 걸린 듯 운전했다.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몸과 달리, 의식은 자꾸만 하나의 의문으로 향했다.

수현은 어떻게 죽은 걸까.

사고를 당한 제천의 강변은 이전부터 매년 익사자가 많이 나오기로 유명한 곳이라고 그 지역 경찰이 말했었다. 여름날 조용하고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무턱대고 텐트를 친 야영객뿐 아니라 베테랑 낚시꾼이나 근처 주민들조차도 잊어먹을 만하면 사고를 당하는 장소라고, ‘진짜 물귀신이라도 붙었나?’라는 말을 지나치듯 중얼거렸다.

검시관의 소견도 실족으로 인한 익사가 분명하다고 했다. 그래서 수현의 시신은 부검을 거치지 않았다. 소견서 상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을 굳이 하나 들자면 양쪽 고막이 손상되었다는 정도였는데, 익사체에 따라 더러 일어나기도 하는 일이었으므로 민감하게 볼 부분은 아니었다.

그런데 발인하던 날, 석영은 수현의 죽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호소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수현은 무릎 정도 깊이의 강물에 서있었다고 했다. 민박집에서 돗자리와 간단한 요깃거리를 들고 온 그 10분 사이 수현이 감쪽같이 사라졌기에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고도 했다.

목격자는 없었다. 경찰이 파악한 정황대로라면, 수현은 제 발로 잔잔한 강변에서 물살이 거센 강의 중심부로 걸어가 살려달라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12킬로미터나 떠내려간 후에야 발견된 셈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기분이 찜찜했다. 단순히 딸의 죽음이라서가 아니었다.

병원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자, 집안 서재에 틀어박혀 제천 강변의 익사 사고 정보를 최대한 긁어모았다. 의심스런 이야기는 거기에 있었다.

신문사가 디지털화된 기사를 대량으로 발행하기 시작한 시점이 1995년쯤이라고 한다면, 이후 수현이 사고를 당한 근교 지역과 관련해 신문 기사에서 추려낸 익사 사건은 거의 매년 한두 건씩으로, 최근까지 서른 명이 넘는 희생자를 냈다.

그 가운데 몇은 가족 또는 연인의 사고를 비관해 동일한 장소에 찾아왔다가 실족하거나 자살한 사건으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어째서 익사의 위기에서 구조되었다는 사람의 기사는 단 한 줄도 나지 않았을까?

아빠!

불현듯 수현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한 순간 눈앞에 깊은 구덩이가 보였다. 급히 핸들을 꺾었지만 울컹 차가 튀어 올랐다.

빠아아앙!

마주오던 빛이 하얗게 유리창을 덮쳤다. 브레이크 파열음과 굵은 경적소리가 귀청을 때리고, 자동차는 한 바퀴를 빙글 돌아 도로 가에 멈춰 섰다.

비이꺽. 비이꺽.

와이퍼가 규칙적으로 빗물을 닦았다. 순탄치 않은 전조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입술을 깨물었다. 아버지라면, 한심해도 내가 아버지라면 이제야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해야만 했다. 한 치의 의심도 없도록. 그래서 수현을 고이 보내 줄 수 있도록.

세차게 뛰던 심장 박동이 잦아들자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자동차가 깜깜한 밤거리로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저기 저분이세요.”

안내를 해주던 인턴이 철제문을 닫고 나오는 남자를 가리켰다. 파란 수술복에 흰 가운을 걸친 그가 서류철 서너 개를 추슬러 옆구리에 끼더니, 시선을 느끼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인턴이 달려가 “서울서 오신 검찰의료자문이라는데요.” 하고 고했다. 남자는 “아, 그래.” 하고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그가 성큼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연락받았습니다. 이석영 씨를 좀 보겠다고 하셨다지요?”

“예,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류성근입니다.”

부드러운 말씨에도 불구하고 악수를 나누는 남자의 눈빛엔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주눅이 들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이, 그가 철제문을 열었다.

냉기에 섞인 미미한 시취(屍臭)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차가운 부검대에 발가벗겨진 청년이 흰 천을 덮고 누워 있었다. 남자는 들고 있던 서류철 중 하나를 빼어 건네며 흰 천을 슬쩍 들었다.

“최근에 자살을 기도했던 흔적이 있고…….”

핏기를 잃은 시신의 손목 위로 여러 줄의 흉터가 나 있다. 자석에 이끌리듯 부검대 곁으로 다가가 석영의 얼굴을 마주했다. 가슴속에 싸한 파도가 일었다.

“다리 피부에 난 열상과 머리에 든 멍은 강물을 따라 떠내려오면서 생긴 듯하고, 그 외 신체는 깨끗합니다. 혈액에서 알코올 수치가 높게 나온 데다가, 죽기 전날 밤에 강가를 서성거렸다는 목격담도 있고, 이전에 약혼자가 그 근처에서 익사했다는 경찰 보고도 있어서, 전형적인 익수 자살의 사례로 판단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천천히 좀 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산란한 마음을 가다듬고 석영의 몸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살았을 때 제법 준수했을 시신의 얼굴은 부패가 진행되어 조금 부풀어 있었다. 코와 입가에 희미하게 하얀 거품 자국이 아직 남아 있는 점으로 미루어, 발견된 지 오래 지나지 않은 데다 보관이 잘 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이마와 오른쪽 눈 위에 든 멍은 옅고 넓게 퍼진 점으로 보아, 타격을 당했다기보다는 남자가 말한 대로 강을 떠내려오면서 생긴 흔적 같았고, 팽만해진 목에는 손으로 조른 듯한 자국이 나 있었으나, 타인이 목을 졸랐다면 당연히 생겼을 울혈이 없었다.

서류철에 끼워진 예비 부검서에 따르면, 발견 당시 입고 있던 셔츠에 옷깃이 있었으므로, 부패가 진행되면서 부풀어 오른 피부에 옷깃이 파고들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기도 안쪽에서는 끈끈한 거품과 진흙 모래가 나왔다고 적혀 있고, 살아 있을 때 물에 들어갔음을 시사하는 긴장성 사후 강직의 소견도 보였다. 전후 사정을 따져 보건대, 남자의 말마따나 전형적인 익수 자살의 소견이 옳았다.

그런데 빤한 결론에 맥이 풀릴 무렵, 예비 부검서의 한 구절이 눈에 탁 띄었다.

“양쪽 고막이 터졌군요.”

내 말에 남자가 “예.” 하고 서류 한 귀퉁이를 가리켰다.

“계속 보시다시피 중이에 물이 차 있고, 출혈도 좀 있었어요. 드물지만 있을 수 있는 경우죠.”

병리학을 제대로 공부한 건 꽤 오래전의 일이지만, 익사체의 고막이 터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드문 현상인 데다, 수현과 석영이 같은 손상을 입었다는 사실이 결코 순수한 우연처럼 여겨지지가 않았다.

다시 시신으로 눈길을 돌렸다. 팔과 다리 피부에는 닭살이 돋아 있었다. 손바닥과 발바닥, 손가락 끝과 팔꿈치는 허옇고 쪼글쪼글했다. 차가운 물에 잠겼던 흔적이었다. 무릎도 같은 형태였는데, 그 아래 왼쪽 종아리에는 나뭇가지에 스쳐 난 열상이 있었다.

열상을 입은 부위보다 좀 더 아래쪽엔 주변 피부와 거의 구분하기 힘들 만큼 희미한 적색의 부위가 보였다. 시신의 무릎을 구푸려 들어올렸다. 대퇴부 뒤쪽에서 종아리까지 이어 나타난 무늬는 시반이었다. 발목에 이르러서는 손가락만큼 얇은 줄이 여러 겹 겹친 모양으로, 흡사 띠처럼 보였는데, 오히려 조금 거리를 두고 보니 띠 같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사람의 손자국처럼 생겼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보통 익사체는 물속에서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므로, 시반이 형성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진 않는다. 만약 시반이 생긴다 하더라도 중력의 법칙에 따라 지면과 가까운 부위에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렇다면 종아리와 발목에 집중된 이 밝은 적색의 시반은 어떤 자세에서 생겼겠는가.

아무리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지만, 시신이 죽은 후 꼿꼿이 선 자세였다는 말이 된다. 그것도 유속이 빠른 강물 속에서.

“부검에 가족 동의가 있군요.”

부검 동의서를 내밀었더니 남자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구태여 열어 볼 필요가 있겠습니까. 가족들 마음이나 더 아프지.”

“확실히 해 두고 싶어 그러니 열어 봅시다.”

“쯧, 꼭 하시겠다면야 뭐, 직접 하시겠어요?”

남자가 필요한 장비를 끌어왔다.

그가 시신의 머리 쪽에 받침을 고이자 다물려 있던 입이 잠든 사람의 것처럼 살짝 벌어졌다.

뜨끔.

뜻하지 않게 날카로운 감정이 가슴을 스쳤다. 시신이 되어 누워 있는 저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 더구나 사흘 전까지 살아 있었으며, 어쩌면 사위가 되었을 뻔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의식적으로 석영의 얼굴을 외면했다.

복장과 장비의 준비를 마치고, 메스를 들었다. 시신의 가슴을 V자로 절개하자 고여 있던 검은 피가 어깨 위로 조용히 흘러내리고, 피부 밑으로 노란 지방층과 하얀 진피가 드러났다. 중앙에 일직선을 한 번 더 그어 치골 부근까지 절개했다. 라텍스 장갑 밑으로 차갑고 축축한 느낌이 전해졌다.

목은 내부 기관이 드러나도록 피부를 턱 위로 들어올렸다. 복부의 피부를 바깥쪽으로 갈라 넘기자 체강 안에 장기들이 드러났다. 이어 커다란 집게처럼 생긴 립 커터로 갈비뼈를 우득우득 부러뜨려 드러냈다. 갈비뼈 아래 자리한 좌우 두 개의 폐와 그 사이 더 깊은 안쪽으로 얇은 막에 싸인 심장이 보였다.

폐를 절제해 내기 전에 모양부터 자세히 살폈다. 익사라면 들이마신 물로 팽창이 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두운 갈색을 띤 폐는 신체에 알맞은 크기보다 약간 부풀어 있을 뿐 익사를 단정 짓기 애매할 정도로 커 보이지도 무거워 보이지도 않았다.

“좀 늘어났죠?”

등 뒤에서 사진을 찍던 남자가 물었다. 별로 그렇지 않다고 답하려다, 눈이 기분에 속았나 싶어 말을 아꼈다.

다음으로 변연부를 살폈다. 적긴 했지만 폐 안의 공기가 밀려나와 수종이 생긴 데다, 폐 표면에 폐포벽이 터지면서 생긴 출혈로 알록달록한 반점이 찍혀 있었다. 말할 나위 없이 익사의 증거였다.

묵묵히 폐를 절제해 저울 위에 올려놓았다.

“물을 그다지 안 먹었나 보네요. 익사폐로는 평범한 수준이긴 한데.”

눈금을 읽은 남자가 사족을 붙였다.

평범이라.

새삼 거부감이 몰려왔다. 살아 있는 사람의 장기와는 색도, 냄새도, 온도도 다르다. 곧 죽은 신체는 썩고 문드러져 자연의 일부가 되고, 영원히 사라져 남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질 것이다.

수현도 이렇게 죽은 것일까. 조금 슬퍼지려는 기분을 지우고, 부검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다른 쪽 폐를 처리한 후 위를 절제할 차례였다. 내용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전자저울 위에 내려놓는 찰나였다.

딸깍.

스테인리스 접시에 딱딱한 물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잠깐 얼어 동작을 멈췄다. 남자 역시 의심 어린 눈빛이 되었다.

얼른 저울에서 접시를 분리해 내용물을 휘저었다. 위에서 흘러나온 내용물 중에 반짝이는 물체가 있었다. 손가락으로 집어 체액을 닦아 내자, 은색 구슬이 밝은 조명에 빛을 반사했다.

“뭡니까?”

남자가 물었다.

구슬을 들어 가만히 살폈다. 크기가 아직 여물지 않은 콩알만 했다. 양쪽으로 뚫린 작은 구멍을 보니, 목걸이나 팔찌 같은 장신구에서 빠져나온 모양이었다.

“자살할 사람이 일부러 먹었을 가능성은 희박한 것 같고, 익사 시점에 들이켰나? 물속에 별 게 다 떠다니니까요.”

남자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금속 구슬의 중앙을 가리켰다.

“별이네.”

질척이는 체액을 다시 한 번 닦아 내자, 금속 표면에 삼각형 두 개를 반대 방향으로 포개놓은 별 모양이 선명해졌다. 수현이 유난히 질문을 해 대던 일곱 살 무렵, 이스라엘 국기 중앙에 있는 그 별 모양의 이름을 물은 적이 있었다.

‘헥사그램.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의 별이라고 부른대.’

수현은 그렇게 대답했었다.

“알 크기가…… 열쇠고리? 팔찌 같은 데서 나왔나? 이리 주세요. 보고는 해야 하니까.”

남자는 금속 구슬을 받아 수술포 위에 올렸다. 이상하지 않느냐는 말을 꺼내려다 그만두었다. 어쨌거나 현재로선 자살을 뒤집을 만한 증거는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아무리 작더라도 비중이 큰 금속이 가라앉지 않고 물속을 떠다닌다는 남자의 말은 옳지 않았다. 이 금속 구슬은 하필이면 왜 위 속에, 그것도 하필이면 왜 석영의 위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일까.

하필이면 왜.
다음 날은 몇 가지 서류를 작성하러 들른 지방 검찰청에서 오전과 오후를 모두 보내야 했다. 정욱이 시키는 대로 사람을 만나고 행정적인 절차를 마무리하니, 건물을 나섰을 때는 이미 저녁에 가까운 시각이었다.

늦었지만 애초에 마음먹었던 바와 같이 중전리 방향으로 차를 달렸다. 수현과 석영이 실종되었으리라 추정되는 지점이 그 근방을 지나는 두 하천의 상류, 무자천이라 부르는 곳에 있었다.

거리에 내리던 빗줄기는 멎었지만, 더운 습기로 공기가 여전히 무거웠다. 한 시간쯤 마주 오는 차도 없이 외진 길을 굽이굽이 따라가려니 피로가 몰려왔다. 산세가 누그러질 즈음, 찾던 마을의 어귀를 알리는 작은 표지와 을씨년스런 장승이 나타났다. 계곡에 걸친 다리 아래 경사가 상당했다.

검은색 유화 물감처럼 눅진한 어둠 사이로 불빛이 드러났다. 버려져 잡풀이 우거진 집이 몇 채, 그리고 인적이 드문 버스 정류장이 나타나더니,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누추한 구멍가게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음식점 따위를 기대하기가 힘든 판국이라 간단한 먹을거리를 살 요량으로 공터에 차를 세웠다. 운전석 문을 열기 무섭게 빽 지르는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여까지 기끈 채려 왔더만, 이런 미시리를 보았나. 아, 내중에 후회 말고 싸게 받으라!”

가게 입구에 놓인 평상에선 세 사람의 실랑이가 한창이었다. 까랑까랑한 목소리의 노인이 목에 핏대가 서도록 고함을 질렀다. 알전구에서 쏟아지는 빛이 아니었더라면, 새까맣고 주름진 얼굴에 서글서글 맺힌 미소를 보지 못하고 오해를 했을지 몰랐다.

“아유! 제가 마실 수만 있다면야 형님 잔을 마다하겠습니까. 오래 살고 싶어 이럽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맞은편 남자가 손사래를 쳤다. 그에 불구하고 노인은 연신 사발을 들이밀며 “지럴헌다. 저다 내꼰지기 전에 얼렁!” 하고 재촉했다.

곁에 앉은 덩치 큰 촌부는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처럼 보였는데, 어딘지 모르게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다. 순진한 얼굴에 벙긋벙긋 함박웃음을 웃는 그는 푸지게 부쳐 온 전을 손으로 찢어 맞은편 남자의 코앞에 숫제 들이밀고 있었다.

정겨운 광경에 나도 슬쩍 웃어 버렸다. 아무리 시골 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고는 해도, 이 정도로 후한 마을에 무턱대고 선입견을 가졌던 마음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런데 돌연 술잔을 만류하던 남자가 “형님, 잠깐만, 잠깐만요!”라더니 뒤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음료수 한 병과 비닐 포장된 빵을 집어들 겨를에 그는 “아주머니, 담배 한 갑이요.” 하고 말했다. 계산을 기다리며 자연히 남자의 모습을 살피게 되었다.

부스스한 머리 모양에 드문드문 흰 가닥이 섞인 그에게선 독한 담배 냄새가 났다. 사투리가 섞이지 않은 말씨며 옷차림으로 보아서 한눈에도 외지인이 분명한데, “잔돈이 없네. 돈 내일 줘도 되지요?” 하는 폼이 뻔뻔스러운 건지, 넉살이 좋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남자가 바지 뒷주머니에 지갑을 도로 넣으며, 손에 돌돌 말아 들고 있던 종이 뭉치를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부지불식간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펼쳐진 종이 뭉치 안에 그려진 문양은 헥사그램이었다.

마치 마음을 읽은 듯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짧은 시간, 그의 불쾌한 눈빛이 뱀의 혀처럼 내 구석구석을 훑어 갔다. 경계심이 바짝 들어 그를 노려보자, 남자는 약간 불량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창밖의 차를 향해 고개를 까딱 기울였다.

“서울서 제천성모병원에 검찰의료자문이 내려왔다더니, 어제 오전에 난 익사 사고에 특이 소견이라도 있나 보지요?”

허를 찔리고 보니, 병원에 끄나풀이라도 심어 놓았나 의심이 들었다.

“이런 동네에 중년 남자 혼자 저런 고급 승용차를 몰고 들어오는 일은 흔하지 않으니까. 더구나 차창에 거대 대학병원 주차 스티커가 붙어 있는 차라면 말입니다. 평범한 익수 자살이 아니라고 판단하셨으니 여기까지 오셨겠지요?

뭐, 제가 일부 도와 드릴 수 있겠네요. 무자천 특집 기사를 맡고 있는 월간 《미스터리월드》의 박용혁입니다.”

왠지 남자가 일부러 그림이 보이도록 종이를 올려놓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십거리나 싣는 싸구려 잡지의 이름이나 니코틴이 누렇게 착색된 남자의 손가락에 전혀 신뢰가 가지 않은 탓도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저 사람은 익사 사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경계심을 압도했다.

“류성근입니다.”

이름을 말하자마자 별안간에 박용혁이 밖을 향해 소리쳤다.

“형님! 아, 우연찮게 여기서 아는 형님을 다 만났네. 술 못 먹는 저 대신 술 한 잔 돌려유우!”

술 권하던 노인의 얼굴이 대번에 난처해졌다.

“몇 가구 남지 않은 이 동네 터줏대감들인데, 배타심이 아주 강해요. 열과 성을 다해 구워삶아 놓았더니 술을 다 마시자네. 우선 저 좀 구해 주셔야겠습니다.”

용혁은 재빨리 소곤거리듯 말하고, 밖으로 뛰쳐나가 술잔을 집어 들었다. 돌발적으로 휩쓸린 상황이 못마땅했지만, 어떤 단서를 얻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에 우선 합류하기로 결심했다.

“이 형님네 주조장서 직접 담근 귀한 술이랍니다. 아는 사람들끼리만 찾지, 팔지도 않아요.”

용혁이 어거지로 건네는 탁주를 마지못해 입안에 털어 넣자, 식도를 타고 뜨거운 기운이 퍼졌다. 황당한 기색의 노인과 덩치 큰 남자를 보고 멋쩍게 웃는데, 용혁이 “형님, 마신 건 마신 거니까, 봐주십쇼. 먼저 갑니다!” 하고 자리를 털었다. 나도 그를 따라 일어섰다.

“본래 필요하면 방금 만난 사람도 이렇게 이용합니까?”

노인과 덩치 큰 촌부가 보이지 않을 즈음, 따라 길을 걸으며 성을 냈다. 용혁은 아랑곳없이 담뱃불을 붙였다.

“의사가 더 마시면 죽는다고 하기에 부득불 실례했습니다. 간이 엉망이거든요. 선생님도 의사니까 사람 살리는 일 한 번 하셨다 치십쇼.”

그는 드문드문 집들이 모인 골목 안쪽으로 길을 잡았다. 담도 없이 야트막한 벽에 청색 기와를 올린 살림집을 끼고 왼편으로 돌자 누군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인기척을 기대하고 뒤를 돌아보았으나 칠이 벗겨진 개집에서 백구 한 마리만 머리를 내밀고 으르렁댔다.

몇 걸음 더 가지 않아 자갈과 굵은 모래 섞인 흙길이 도드라져 나타났다. 멀고 어두운 저편에선 많은 물이 흐르는 소리도 들렸다.

“무자천에서 익사 사고가 꾸준히 일어나기 시작한 때가 1994년 이후입니다.”

풀냄새가 진한 길을 지나며 용혁이 입을 열었다. 산비탈에 술독을 쌓아 놓은 마당과 집이 보였다. 아는 사람들끼리만 찾고 팔지도 않는다는 노인의 술이 저곳에서 만들어지는 듯했다.

“최초 경찰 기록에는 그해 9월에 야영을 하던 대학생들이 하류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는데, 그 이래로 1년이면 한두 건씩 꼭 익사 사고가 났거든요. 낮에 보면 평화롭기 그지없는 강변인데, 아무리 안전 불감증이니 뭐니 해도 귀신이 붙지 않고선 어떻게 한 해를 거르지 않나 싶더란 말입니다. 그래, 내가 특집으로 기사를 하나 써 보자 내려왔는데, 아까 그 노인네랑 얘기를 나누어 보니까 알려진 게 다가 아니었어요.”

흙길 끝에 다다라 작은 언덕이 나왔다. 오르막이 계속 이어지는 통에 숨이 차는데, 용혁의 발걸음은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다.

“실은 그 이전에도 종종 익사 사고가 터졌답니다. 여기 무자천에 얽힌 민담이 있어서 흥밋거리가 됐는지 방송국에서 무속인들을 데리고 촬영을 왔었다는데, 그게 86년도이더군요. 촬영 중에 일어난 사고 때문에 실제로 방영이 되지는 않았지만, 3부작짜리 다큐멘터리로 찍는다고 무속인들이 접신하는 장면이며 살풀이하는 장면을 아주 자세히 찍어 두었다고 하더라고요.

막판엔 사흘에 걸쳐 크게 굿을 벌였답니다. 그러고는 몸주들이 급살을 맞았다나 봐요. 무속인 넷 중에 둘은 마지막 날 강에서 익사체로 발견이 되었고, 나머지 둘도 굿판을 벌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죽었어요. 교통사고와 강도였죠.”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