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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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로흐브르흐흐로브 르브로였다. 로와 흐, 브와 르가 반복되는 그의 설명을 제대로 발음할 수 있는 지구인이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는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이름 첫 두 글자를 따 자신을 그저 로흐라고 불러달라고 청하곤 했다.

로흐는 르브로 왕국의 후손으로 메리흐 크롬르, 그들의 언어에 따르면 ‘축복받은 바다’라는 뜻의 별에서 태어났다. 태양계를 기준으로 삼자면 메리흐 크롬르는 화성보다는 작고 수성보다는 큰 행성이었다. 중력은 지구의 0.7배 수준. 대기권 밖 적응센터에서 일 년 넘게 지구의 중력에 적응하는 훈련을 받았다지만 로흐에게 이 땅에서의 삶은 언제나 우주복을 입고 뜀박질하는 것처럼 힘겹게 느껴졌을 것이었다.

로흐는 팔다리가 한 쌍씩에 이족보행을 하는 전형적인 지구인형 외계인이었다. 자웅동체인데다 외투막처럼 두툼하고 반투명한 피부를 두르고 있다는 점은 우리와 구분되는 특질이었다. 그에게는 다소 버거운 지구의 중력 때문인지 로흐는 어깨를 움츠린 채로 비틀거리며 걸었다. 2m에 육박하는 키에 비하면 체격은 왜소한 편이었다.

머리카락은 없었다. 다만 속눈썹만큼은 몹시 길고 풍성했다. 눈은 어두운제비꽃색이었다. 속눈썹이 드리운 그림자 아래로 몽롱하게 아름다운 보라색 눈동자로 시선을 맞춰올 때면 눈길을 받은 누구나 최면에 빠지는 것 같은 기분에 젖어들곤 했다.

정신적으로 고양돼 있을 때 로흐의 피부는 성화 속 천사가 퍼뜨리는 휘광처럼 희었다. 좌절해 있을 때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 전체가 거무스름한 빛으로 물들었는데, 나와 같은 공간에 머물렀던 일 년 반 남짓한 기간 동안 그의 살결이 짙푸른 색이 아니었던 시간은 도합 하루가 채 안 됐다.

그의 소속은 기계공학과. 나는 외계문학과 신입생이었다. 이공계 전공자들에 대한 대우가 각별한 이 대학에서 수적으로도 열세인 문과대 학생들은 그야말로 외계인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기숙사에서 로흐와 같은 방을 쓰게 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외계인과 외계인의 조합이군. 잘 어울리는 한 쌍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