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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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겪으신 망측한 불행들에 대해 가슴 깊이 유감의 염을 느낍니다. 제가 조사해 본 결과, 체오는 의심하신 것처럼 백작님을 암말로 착각한 것이 맞습니다. 예? 아, 물론입니다. 누구에게도 조사 결과를 말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절대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약간의 정신 조작을 통해 체오에게 사실을 가르쳐주었으니, 이제 안심하고 그 말을 타셔도 무방할 것입니다. 하지만 백작님께서 조금만 방심하면 꼭 걷어차게 된다고 하시던(발가락은 잘 나으셨는지요.) 그 문턱과 백작님을 향해 역류한다는 그 화장실에서는 어떤 마법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으며, 또한 저주의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문턱과 화장실에 대한 조사를 하던 중 불현듯 과거에 제가 겪었던 어떤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백작님의 경험과 제가 겪은 사건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연관성이 있는 듯합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잠시 그 일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황혼의 꿀 빛 베일이 세상을 부드럽게 덮는 시각, 어디서 저녁 식사에 내놓을 빵을 굽는지 구수한 냄새가 풍겨온다. 만인에게 성스러운 하루가 만인의 방식으로 마무리 지어지는 가운데 고요히 밤이 찾아들고 있었다. 밤은 마법의 시간. 추억이 현재의 수면 위로 숭어처럼 힘차게 뛰어오르는 시간. 약간 모자란 이의 약점도 덮어주고 뛰어난 이의 모습은 더욱 황홀하게 치장하는 어둠이 찾아드는 이 우아한 시간.

왜 나는 온몸에 진분홍빛 점액을 뒤집어쓴 대마법사의 자가당착적인 폭언이나 듣고 있어야 하는 걸까?

“파문이다! 이 멍청한 녀석, 손이 두 개라는 것이 변명이 되냐!”

자신의 실수를 제자에게 전가시키는 것을 스승의 특권이라 믿는 것은 핸드레이크의 자유다. 같은 논리로 사부의 충고를 먼 데서 들려오는 닭 울음 정도로 취급하는 것은 그의 제자인 나의 특권일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인간이 서툴고 느리게나마 진보하는 동물이라고 믿고 싶고, 그래서 핸드레이크의 비논리적인 말들이 내 귀 옆을 지나쳐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 채 솥을 들여다보았다.

핸드레이크가 무엇을 만들 계획이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의 시도가 실패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선 핸드레이크가 내게 퍼붓고 있는 원망과 불평에 귀 기울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솥 안에서 뻐끔거리며 식어가고 있는 뭐라 말할 수 없이 역겨운 진분홍빛 물질은 누구의 눈에도 실패작으로 보이리라. 그 물질이 바로 핸드레이크의 몸을 뒤덮고 있는 물질이며 또한 내 몸에 묻어 있는 물질이기도 하다. 저 솥을 씻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입맛이 싹 달아난다.

핸드레이크는 저것이 저렇게 되어버린 이유로 내 손이 두 개라는 것을 들고 있었다. 참 일찍도 알았다고 말해 주고 싶다. 실패의 상황은 이러하다. 오늘 정오 무렵부터 황혼까지 계속된 이 기나긴 실험에서 핸드레이크는 유피넬과 헬카네스도 짐작하지 못할 이유로 시약 다섯 개를 동시에 집어넣어야 했던 모양이다. 그는 두 개의 시약을 집어 들었고 나에게 나머지 세 개를 집어넣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병 두 개를 들어 솥 안에 부은 다음 몸을 돌려 세 번째 시약을 집어 들었다. 다시 솥을 향해 몸을 돌렸을 때 나는 경악으로 하얗게 굳은 핸드레이크의 얼굴을 발견했다. 솥 안의 용액이 폭발하기 직전 나는 사부님에게 화장실의 위치를 알려주려 했던 것 같다.

나는 우울한 기분으로 머리와 얼굴에 묻은 점액들을 문질러 떼 냈다.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 씻고 배불리 먹고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때 핸드레이크가 결심을 내렸다.

“알았다. 손이 두 개인 것이 문제라는 거지? 엉? 그런 소리 안 나오게 해주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잠자코 봐.”

대단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쇠솥을 집어 들어 머리에 쓰는 나를 보고 핸드레이크는 으르렁거렸다. 경멸 어린 몸짓으로 나를 무시한 핸드레이크는 선반과 상자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분홍색 점액 덩어리가 이리저리 정신없이 달리는 모습은 별로 어여쁜 것이 아니었다. 온갖 잡동사니들을 찾아낸 핸드레이크는 그것들을 탁자 위에 늘어놓고는 곧장 주문을 외웠다.

방향성이 없는 바람이 불었다고 생각한 순간, 핸드레이크가 탁자 위에 집어 던진 물건들이 중력을 무시하며 떠올랐다.

핸드레이크의 손짓과 몸의 움직임, 그리고 주문을 외는 목소리의 고저에 따라 물건들이 제멋대로 춤을 췄다. 막자가 뒤뚱거리고 주걱이 까불거렸다. 삼발이가 다리 세 개 달린 해파리인 양 꿈틀꿈틀 날아다니고 각종 마법 보석들이 소용돌이쳤다. 크고 작은 약병들이 동심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모습은 천구의를 떠오르게 했다. 당장이라도 복잡한 연쇄 충돌이 일어날 것처럼 보였지만 어디에서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매개체를 저런 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니 상당히 강력한 마법을 준비하는 것 같다. 그런 판단을 내리자마자 연구실 밖으로 도망치지 않은 까닭은, 사부에 대한 신뢰감 때문이 아니라 문까지 다가가는 동안 어떤 물건에 뒤통수를 맞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주문이 끝났다. 쾅 하는 소리와 과도한 연기와 함께.

귀를 막았던 손을 떼고 매캐한 연기를 헤치고 바라보자 허공을 떠다니던 물건들이 모두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탁자 위에는 조금 전엔 보지 못했던 물건이 있었다.

그것은 푸르스름한 빛깔이 감도는 반지였다. 쿨럭거리며 연기를 토해 내던 핸드레이크는 그 반지를 집어 들더니 내게 내밀었다.

“사부님의 진심은 잘 알았지만 저는 그런 취향이……”

“닥치시고 어서 끼세요. 제자님.”

“실험도 안 해보고요?”

“무슨 소린가? 지금 하고 있잖나.”

실험동물이 되었다. 상대가 우리 사부님이기에 격하된 것인지 격상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투덜거리며 반지를 받아들었다. 아무래도 약지에 끼는 건 내키지 않았기에 오른손 중지에 끼웠다. 주먹을 얼굴 가까이 가져와 보니 참으로 멋대가리 없게 생긴 반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재질은 무엇인지 알기 힘들었고 기묘하게 따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방금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핸드레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손으로 반지를 문지르며 이렇게 말해. 하나와 같은 하나.”

시동어인 모양이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내 유언일 테고. 나는 꾸물거리다가 사부님의 호통을 들은 후에야 주저하며 말했다.

“하나와 같은…… 사부님?”

“외워!”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시동어를 말했다.

“하나와 같은 하나.”

온갖 끔찍한 일을 상상했지만, 어떤 치명적인 느낌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실눈을 뜨고 주먹을 바라보았다. 반지는 조금 전 내가 끼워둔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고맙게도 그 반지를 끼고 있는 내 손 또한 그대로였다. 그때 왼쪽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요?”

저건 핸드레이크의 목소리가 아닌데? 그런데 굉장히 낯설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곳이 있는 목소리다. 나는 소리가 들려온 왼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분홍색으로 젖어 있는 볼품없는 모습의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나와 같은 체격에 키도 비슷하다. 그리고 손에는 나와 똑같은 푸른 반지를 끼고 있었다. 목 위에는 솔로처의 얼굴이 있었다.

그러니까, 저건 나다.

“너 누구야!”

“너 누구야!”

내가 비명을 지른 순간 저편 솔로처도 나를 발견하고는 비명을 질렀다. 맙소사. 또 다른 나라니? 그런데 저 녀석 목소리가 이상하군.

“아하. 알았다. 가짜였군. 내 목소리가 아냐.”

“뭐라고? 누가 할 소리를 하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그때 핸드레이크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만들 해. 이 멍청한 것……들. 자네……들 둘 다 똑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똑같다니요? 전혀 다른데요?”

“전혀 다르다고 느끼는 그게 자네 목소리야. 솔로처. 사람은 자기 목소리를 잘 모르지. 다른 사람들은 목에서 입 바깥으로 나온 소리만 듣지만, 자신은 목에서 입으로 나가는 소리와 목에서 귀로 곧장 가는 소리를 한꺼번에 듣기 때문이야.”

아, 참. 그렇다. 마법을 배우던 초기에 내 목소리를 허공에서 울려 퍼지게 해본 적이 있다.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와서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사부님은 지금 들려줬던 설명을 들려줬었다. 알고 있는 사실도 떠올리지 못한 걸 보니 꽤 당황했던 모양이다. 그때 다른 내가 말했다.

“그러면 저 친구도 나도 다 솔로처란 말입니까?”

내가 묻고 싶은 걸 물어주는군. 아니, 당연한 건가? 핸드레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이번엔 이렇게 말해. 진짜는 하나다. 역시 반지를 문지르며.”

나와 나는 동시에 외쳤다.

“진짜는 하나다!”

그리고 나는 하나가 되었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