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는 관들에게

  • 장르: SF, 일반 | 태그: #냉동캡슐
  • 평점×86 | 분량: 112매
  • 소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대규모 우주 이주 기획, 요람호 프로젝트. 요람호가 환자들을 받기로 결정하면서 환아를 둔 부모인 서진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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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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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非情).
서진은 그달에 그 한 단어로 수십 번도, 어쩌면 수백 번도 넘는 축약을 당했다. 식상하고 지겨울 정도의 축약이었다. 살면서 엇비슷한 말이라면 충분히 많이 들어온 참이라 좀 익숙하기도 했다. 가령 이런 말들이었다.

서진아. 너는 왜 그렇게 정이 없니?

서진을 아는 사람들은 서진을 떠날 때면 그런 말을 남겼으며 서진을 모르는 사람들은 서진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관심이 없었지만, 하나만큼은 알고 있었다.

자기 살자고 병든 아이를 금속관에 담아 차고 먼 우주로 보내려는 매정한 ‘맘충’.

그게 그때 서진을 요약하는 문장이었다.

서진의 신상정보는 공개되지 않은 채 사연만이 여러 채널을 통해 알려진 상태였다. 그날 점심 서진은 자신의 클라이언트 팀과 미팅을 마치고 함께 식사를 했다. 식당 티비에서 그 얘기가 나오자 외주자를 관리하는 최과장은 병든 아이를 우주로 보내려는 아이 엄마의 무책임함을 욕했다. 옆에 앉아있던 윤대리는 그렇게라도 해서 아픈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려는 게 아니겠냐는 변호를 펼쳤다.

서진은 서진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서진을 배제한 채로 벌어지는 언쟁을 배경음악 삼아 공깃밥을 퍼서 입에 욱여넣었다. 날아다니는 말들은 당사자에게 도움은 되지 않고 영양가는 없었다.

돌이 씹히는 계란말이를 먹으며 식사를 마무리하자 입안이 까끌까끌했다.

* * *

요람호 발사는 발표 단계부터 큰 화제였다. 추첨으로 뽑힌 신청자들을 냉동 캡슐에 태워 더 먼 행성으로 보내는 대규모 개척 이주 사업. 이미 몇 차례에 걸쳐 진행된 화성 이주 사업 등과 궤를 같이 하는 프로젝트였다. 우주선은 잠든 사람들의 요람이 될 것이므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도 들었다. 그 포근한 이름에는 오랜 시간 이뤄지는 냉동 수면의 부작용이나 우주 항해의 높은 위험성을 그저 긴 잠 정도로 별거 아니라는 듯 치환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영하 196℃의 환경이며 액체 질소와 보존액이 인체에 미칠 부작용들에 대해서는 엄청난 논의가 오갔지만, 동물을 거쳐 사람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임상 시험이 연달아 큰 부작용 없이 성공하면서 일은 거침없이 진척되었다. 화성 이주 등의 앞선 사업이 성공했던 것도 사업 진행에 박차를 가했다.

반복 시뮬레이션 끝에 목표지로 가는 시간도 절반 이상 단축한 상황이라는 발표가 연이어 쏟아졌다. 여전히 너무 오래 걸리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기술 발전이 생각보다 빠르다는 뉴스 기사도 함께 도배되었다.

표면적으로 이 함선은 인류의 원대한 한 발짝을 위한 숙원 사업이었다. 워낙 큰 사업이니만큼 다국적 대기업이며 기술 분야 기업들의 이권도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공익을 이유로건 사익을 이유로건 사업을 주관하는 처지에서는 최대한 많은 이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 중요했다.

고로 승선 신청 가능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전과를 지닌 자 및 신원 특정이 불가능한 자를 제외하고 요람호 사업 추진 네트워크에 가입된 국가의 국적을 소지하고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었다. 추첨에 붙는 것은 별개였지만 말이다.

한국이 네트워크에 가입한 것은 요람호 사업이 한창 궤도에 오를 즈음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 있는 사람을 냉동시키는 행위는 본디 불법이었으나, 요람호 사업에 참여하면서 벌어진 대단위의 법정 공방 끝에 안락사며 냉동요법 조항이 어느 정도 유동성을 보장받은 상태였다. 성인이 되지 않았다면 보호자를 통해 대리 신청을 하거나 온 가족이 함께 신청할 수도 있었다.

신청자들이 준비할 것은 단 하나였다. 지구에서 살면서 누려온 모든 것을 버릴 준비.

다만 그 파격적인 조건은 나중에 분쟁의 요소가 되었다. 한창 사업이 홍보에 열을 올리던 시기에 어느 하반신 마비 환자의 이야기가 방송을 탔다. 왜 신청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더는 가족들의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인터뷰를 하면서.

요람호가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의 미래에는 어쩌면 하반신 마비를 고칠만한 기술이 있지 않겠느냐고, 요람호의 AI는 지구와 통신을 주고받으며 지구의 기술마저 실시간 업데이트로 축적하여 목적지에 도달한다고 들었는데 그럼 그렇게 쌓인 기술로 도착 후 치료를 받으면 되지 않겠냐고.

그에 공감한 많은 중증 환자의 신청이 줄을 이었다. 아예 의료 목적의 추첨군이 따로 생길 지경이었다. 온갖 의료 기기며 의학과 약학을 다루는 기업들이 앞다투어 요람호 사업에 뛰어들어 입찰을 해내기 시작했다. 거기까지는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본인의 의사인지 가족의 의사인지 알 수 없는 신청이 점점 늘기 전까지는.

몇몇 사람들은 비하의 의미로 의료 목적 추첨군을 관짝이라고 불렀다. 병원비는 병원비대로 잡아먹고 수발은 수발대로 들어야 하는데 병이 나을지 아닐지도 장담할 수 없는, 이도 저도 못하는 산송장이나 집안에서 부양할 수 없는 불구자들을 담아 처리하는 관이라고. 혐오를 주목적으로 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파생된 단어였다.

인서가 입원해있는 아동 병동에 요람호 대표단이 찾아온 건 한창 그 단어가 사회에 넘실거릴 때였다. 6세 이상의 환아를 둔 모든 보호자가 설명회에 초대되었다.

어떤 보호자는 대표단의 인사를 듣지도 않고 나갔으며 어떤 보호자는 지금으로부터 먼 미래에 아이가 완치될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며 붙박이장처럼 앉아 설명을 들었다. 절박한 부모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설령 아이가 아주 먼 곳으로 떠나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되거나 아이가 광속으로 움직이는 우주선에 누워 새로운 행성으로 떠나는 동안 자기는 지구에서 늙어 죽게 된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확신하지 못하는 이들과 실낱같은 기적을 생각하는 이들이 뒤섞여 몹시도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서진은 대표단 중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인자한 얼굴을 한 단발의 노인이었다.

그는 특별히 어떤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들고 있던 팸플릿 중 하나를 서진에게로 내밀었다. 팸플릿에는 각종 의료기기를 주렁주렁 달고서 눈을 감고 누운 남자의 손을 잡은 단발 노인의 사진이 박혀있었다. 문구가 보였다.

자식에게 기회를 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서진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노인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응어리져 견고해진 슬픔 아래 기묘한 후련함과 해방감이 읽혔다.

서진은 그날 밤늦게까지 병동에 남아 있다가 요람호에 관한 인터넷 기사를 수십 개쯤 뒤적여 보고서 인서를 찾아갔다. 인서는 최근 들어 의식을 잃는 경우가 많았고 한 번 그렇게 되면 며칠간은 되돌아오질 못했다.

의사는 인서의 상태에 대해 속단할 수 없다는 말밖에는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런 일이 더 잦아지기 전에 인서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더는 물어볼 수 없는 날이 되기 전에.

그렇게 인서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 3일 뒤에 서진은 인서의 요람호 지원서에 보호자 자격으로 서명했다.

두어 달이 지난 후에, 인서가 추첨에 통과했다는 안내문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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