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티스의 여행자

  • 장르: SF, 일반 | 태그: #SF #시간여행 #환경운동
  • 평점×58 | 분량: 160매
  • 소개: “솔직히 나는 어떤 상징이 되고 싶지 않았다. 싸움의 선두에 서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화가 났을 뿐이었다.” 분노 하나로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잠겨가는 고향...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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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티스의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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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나 신화는 사람을 설레게 하는 구석이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진실인지 거짓인지도 판가름을 할 수 없는 이야기. 바로 그 부분에서 이런저런 상상이 자극되며 낭만이 생기니까. 아가멤논의 미케네를 발굴해낸 하인리히 슐리만이 줄곧 신화로만 여겨졌던 트로이에 자신만의 낭만을 갖지 않았다면, 그 유명한 서사시는 여전히 전설 속 노래로만 남아있었겠지.

나 또한 그런 종류의 낭만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생 땐 바빌론의 공중정원이니 버뮤다 삼각지대, 해저 도시 아틀란티스 같은 세계의 불가사의를 줄줄 외우고 다녔고,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음모론을 구경하고 다녔다. 학급 서고에 있던 세상의 미스터리 시리즈는 페이지가 닳도록 잃은 애독서였다. 당시 어린 나의 인터넷 사용 기록 역시 SNS나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오곤 하는 철지난 음모론들로 꽉 차 있었다.

물론 그 음모들을 죄다 믿은 건 아니었다. 몇 가지는 어린 내가 봐도 너무 허풍이 심했다.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그렇잖은가. 얼마 없는 또래 친구들을 만나려면 집들이 해안선을 따라 굽이굽이 뿌려져 있는 마을을 한참 걸어야 하고 가장 가까운 읍내는 차를 타고 40분을 나가야 있는 시골 동네에서 그런 낙이라도 없으면 어찌 지내겠냐는 거다.

동네 어른들은 내가 퍽 같잖은 데에 재미를 붙였다며 얼른 쓸모 있는 걸 배우게 하라 할아버지에게 충고하곤 했지만, 나도 가족들도 그런 말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엄마를 닮아 지독한 나의 고집을 알아차린 어른들은 일찌감치 계도를 포기했고 나는 그대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부풀려진 이야기 속의 온갖 낭만들에 흠뻑 빠져 살았다. 자연스레 흥미가 식어 그 낭만을 다 잊을 때까지.

그러나 이제 와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낭만을 갖는 것은 그게 어느 정도 남의 일일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내 일이 아니고 남의 일일 때. 나와는 상관없는, 어딘가 아득하게 느껴지는 곳의 일일 때. 한걸음 떨어져서 관조할 수 있으며 내 일상과는 관련 없이 흘려보낼 수 있는 일.

아. 세상엔 그런 일도 있구나 싶어질 때 말이다.

가령 내가 줄곧 살아온 나의 고향이 몇 년 후면 가파른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것이며 사람들이 벌써 거기에 한반도에 일어난 아틀란티스의 비극이라는 이름을 붙여 수식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낭만보다는 아득한 분노와 무력감에 가까웠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