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독고지존

  • 장르: SF, 무협 | 태그: #히어로 #SF #무협 #절대고수 #차원이동 #히어로에이전시
  • 평점×30 | 분량: 121매
  • 소개: 별호 독고지존. 중원의 최강자였던 곽룡. ‘천외천’이라는 단서를 가지고 자신의 호적수를 추적하던 중 ‘플레토니아’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더보기

미스터 독고지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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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살던 곳 중원이고. 여긴 플레토니아야. 그냥 외워.”

어느새 문가에 다가와 있던 소년이 불쑥 끼어들었다. 열댓 살 정도 됐을까. 수척하지만 사랑스런 생김새와는 다르게 꼬장꼬장한 기운을 사방으로 풍기는 소년이었다.

“그니까 네가 살던 세계랑 다른 세계가 엄청 많다고. 예들 들면 지구란 행성도 그래. 거기선 우리 같은 히어로들을 상상해서 소설 속에서나 쓴다더라. 웃기지 않아? 여기선 싸워서 벌어먹는 게 하급 노동인데 말이야. 아, 뭐 이해가 딸리니까 웃을 수도 없겠네.”

건방진 말을 툭툭 내뱉는 이 꼬마의 목소리가 어딘지 곽룡의 귀에 익었다.

“평행우주라고, 중원에선 천외천이라고 말하던 개념인데, 혹시 이해돼?”

월영이 끼어들었지만 그녀의 말은 더 복잡했다. 곽룡은 뭐든 좋다는 듯 애매하게 눈으로 웃었다. 한숨을 한 번 쉰 월영이 말을 이었다.

“나도 처음엔 어리둥절했어.”

곽룡은 기억을 더듬어 정신을 잃기 전까지의 정황에 대해 읊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압도적인 내공을 자랑하던 그 전신견갑인의 목소리가 꼭 저 소년과 같았다.

“잘 들어, 이 세계를 구성하는 힘은 중원하고는 달라. 여긴 과학 기술과 에너지로 만물이 움직이거든.”

곽룡은 얼떨떨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행우주라고? 확실히 이 곳은 자신이 바로 몇 분전까지 있던 중원과는 달랐다.

1.

한 시간 전, 그 연못에 당도했을 때 곽룡은 지쳐있었다. ‘천외천(天外天)’, 다른 하늘이라는 뜻의 이 세 글자만 믿고 중원의 산들을 이 잡듯 뒤진 지 언 삼십 년이었다. 선대고수의 체통이 있으니 무림엔 그저 은거 중이라고만 일러뒀다.

곽룡의 별호, 독고지존(獨孤至尊). 홀로 고독하게 높은 존재. 정말 무공이 그 정도로 고강해지면 실제로 되게 외롭다는 사실을 곽룡은 뒤늦게 실감했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인세의 정을 모두 잊은 자신을 달래줄 것은 오직 무학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생사를 건 호적수와의 한 판 승부가 무엇보다 그리웠다.

“떠그럴. 여기도 꽝이야?”

그는 여전히 청수한 젊은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실상은 그의 차고 넘치는 내력이 그 그릇 마저 젊은 시절의 그 모습으로 돌려놨을 뿐이었다. 그 안에 품은 사고방식이나 말씨는 그 나이를 먹은 다른 중원의 남자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뽀글. 곽룡을 놀리듯 연못 속에서 기포 한 알이 올라왔다. 의뭉스럽게도 티끌 한 점 없이 맑은 연못이었다. 순간 멈칫하던 곽룡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이리 잔잔한 물 위로 기포가 올라온다고? 아래 공기가 통하는 구멍이 있지 않고선…….’

곽룡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조심스레 수면으로 손을 뻗었다. 우선 손만 한 번 담가보려 했던 것인데, 이상하게도 곽룡의 전신이 물 쪽으로 기울었다.

“어랍쇼?”

내뱉은 말은 거기까지였다. 뭘 더 할 새도 없이 그는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니, 정확히 물속은 아니었다. 파문이 가라앉은 수면 아래로는 바닥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연못의 물이 맑았다.

곽룡이 다시 정신을 차려봤을 때 주변의 풍경은 전혀 다른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건 꼭 하늘이랑 땅이 뒤집힌 것 같잖아.’

곽룡의 말마따나 곽룡의 발아래로는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꺾어 살펴보니 저 위로는 지면이 마치 천장처럼 덮여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선 사람들도 박쥐들처럼 지면에 거꾸로 붙어 있었다. 웅성거리는 그들의 목소리는 누군가가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곽룡은 그제야 거꾸로 된 것은 세상이 아니라 자신임을 깨달았다. 다리에는 흰색 밧줄 같은 것이 엉켜 있었는데, 아마 그 줄이 정신을 잃었던 자신을 지금까지 지탱해준 것 같았다. 희한한 건 그 밧줄이 걸린 절벽의 형세였다. 높이가 상당한 기암절벽이었는데 그 표면이 온통 유기가 발린 듯 매끄러웠다.

여기가 어딘진 몰라도 이 지방은 똑바로 봐도 기이한 것투성이리라. 곽룡이 막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누군가의 형상이 보였다. 워낙 반질반질한 절벽 표면에는 그 모습까지 그대로 비쳤다.

“아저씨 최대한 건물 쪽에 붙어요!”

앳된 목소리와는 달리 상당한 거구를 자랑하는 남자였다. 곽룡은 하늘을 땅처럼 딛고 달리는 허공답보(虛空踏步)를 익힌 것으로 보아 그가 상당한 고수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특이한 것은 그의 외양이었다. 그는 초짜 무사들이나 입을 법한 견갑을 얼굴을 포함한 전신에 꼼꼼하게 두르고 있었다. 저기 ‘슈퍼보이’가 나타났다, 아래에서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혹 정체를 감춰야만 하는 사파의 무리인가?’

생각과 동시에 곽룡은 반동을 이용해 몸을 피했다. 아이구, 구경하던 사람들의 입에서 긴장 섞인 탄성이 튀어나왔다. 전신견갑인도 적지 않게 당황한 듯 보였다.

“얼렐레? 그러다 현수막 줄 풀리면 아저씨 죽어!”

현수막이 뭘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놈은 이제 죽는다며 곽룡을 대놓고 협박하고 있었다. 곽룡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자신의 명성을 모르고 덤벼드는 고수를 상대한 것이 실로 몇 년 만의 일이던가. 곽룡은 다리에 꼬인 줄을 풀지도 않고, 놈이 손을 뻗을 때마다 몸을 이리저리 피했다. 자신 역시 허공답보를 펼친다면 훨씬 수월해지겠지만, 그런 식으로 쉽게 끝내고 싶지가 않았다.

상대가 어쩔 수 없다며 손날을 쳐들었을 땐 저런 공격 쯤 일부로 한 번 맞아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자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몸을 단단하게 보호하는 호신강기(護身罡氣)라는 무공도 익힌 바로 그 독고지존이었기 때문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요 놈, 으억!”

어쩐지 내려치는 손날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싶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 무지막지한 완력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곽룡의 의아함은 끝내 그 자리에서 해소될 수 없었다. 천하의 독고지존인 그는 그날 부로 벌써 두 번째로 의식을 잃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곽룡은 잠시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간의 일이 다 꿈인가 싶었지만 당장 누워 있는 방의 정경이 너무 낯설었다.

바깥은 어둑어둑한데 여전히 밝은 천장하며, 벽과 바닥은 모두 바위를 깎아 만든 듯 매끄러운 것이……. 곽룡은 순간 자신이 또 다른 기암절벽의 내부에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스스 몸을 떨었다. 대관절 중원의 어떤 곳이 절벽에 방을 내어 생활한단 말인가?

“썩을!”

예고도 없이 등 뒤의 문이 열리자 욕부터 튀어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중년의 여인이었는데 어딘가 낯이 익은 인상이었다. 바투 자른 손톱 조각을 닮은 눈썹하며 정면에서도 살짝 콧구멍이 보여 더 귀염성 있는 코끝, 눈가에 주름이 졌다 뿐 중원에 둘은 없을 저 반짝이는 눈빛까지.

‘내 짐작이 맞다면 수부처럼 몸에 딱 붙는 옷을 온통 노랑으로 물들여 입은 저 여자는…….’

곽룡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갑자의 내공을 가진 내가 미혹에 빠지는 일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미혹이 아니라면? 그래 지금쯤 월영이의 나이가 꼭 저쯤 되었겠구나. 에이, 다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상상이냐. 곽룡의 혼란이 점점 가중되는 그때였다.

“곽 사형(師兄).”

여인이 먼저 곽룡을 불렀다. 함빡 웃고 있는 얼굴에선 자제할 수 없는 감정이 새어나왔다. 저 여인이 어찌 내 성을, 의아해하던 곽룡의 얼굴에도 곧 놀라움이 번졌다. 좀처럼 믿기지 않았지만 월영이 맞았다.

그러나 곽룡은 알지 못했다. 곧 그녀가 재회 자체보다도 훨씬 충격적인 사실들을 이야기해줄 것이라는 미래를.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