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 작품을 엑세스 중입니다.

후기

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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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toll입니다!

이 글은 <작가들>본편을 읽으신 분, 혹은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에게 보내는
스타트렉 TOS 작가들에 대한 영업 혹은 일종의 병 속에 든 편지가 되겠습니다.

먼저 <작가들>에 대한 변명 아닌 변명을 남깁니다.
이 글은 2014년 3월에 처음 완성했고, 거의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으니
상당히 민망하네요! 그래도 여전히 이 글에 대한 애정은 깊습니다.
제가 정말 사랑했던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2

기억을 더듬어 보면, 처음으로 “작가들”을 의식하게 된 건
<스타트렉>이 아닌 다른 TV쇼, <트와일라잇 존>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커크 함장 역을 맡은 윌리엄 샤트너가 <2만 피트 상공의 악몽>에서는
비행공포증이 있는 남자로 나온다고? 이건 너무 재미있잖아?
같은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덕질을 하던 중이었어요.

그렇게 80년대에 나온 뉴 트와일라잇 존까지 보게 되었는데,
여기서 저는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건 바로 2시즌 첫번째 에피소드에 수록된
<외로움의 비행접시A Saucer of Loneliness>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상공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비행접시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것은 오직 한 여자에게만 말을 걸어 옵니다.
영상을 끝까지 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엔딩 크레딧을 읽고 있는데,
검은 화면 위에 ‘시어도어 스터전을 기리며’ 라는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어쩐지 익숙한 이름을 검색창에 뒤져 본 결과,
시어도어 스터전은 위대한 SF 작가인 동시에 스타트렉 TOS의 대본 작가이기도 했고,
원래 단편 소설이었던 <외로움의 비행접시>를 대본으로 각색한 것은
다름 아닌 TOS의 대본 작가 데이비드 제롤드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런 식으로 개미지옥같은 작가 덕질이 시작되었습니다.

3

가장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준 분은 단연 TOS 작가진의 루키, 데이비드 제롤드입니다.
대학을 다니던 중 스타트렉을 본 제롤드는 자신이 쓴 대본을 스튜디오에 보내는데,
놀랍게도 이 대본이 채택되어 그는 스타트렉 TOS의 작가로 데뷔하게 됩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스타트렉 팬이 실제로 스타트렉 세계에 들어가게” 된 거죠!

(당연하게도) <작가들>은 데이비드 제롤드의 저서인
<The Trouble With Tribbles: The Birth, Sale and Final Production of One Episode>
에 의존해서 쓴 글입니다. 너무 재미있는 책이고 꼭 번역되었으면 좋겠어요!
국내에 번역되어 있는 <화성 아이, 지구 입양기>역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매체에 소개된 할란 엘리슨의 모습을 무척 좋아하는데요,
본인이 직접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Dreams with Sharp Teeth>와
역시 본인 역할로 나오는(…) 스쿠비 두 에피소드 <The Shreiking Madness>도 정말 재밌어요.
(무려 러브크래프트가 ‘헤이트크래프트’라는 이름으로 함께 등장합니다ㅋㅋㅋ)

스타트렉 TOS 방영 당시 만연한 남녀 차별 때문에 로든베리의 권유로
D.C 폰타나가 이니셜로 활동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유능한 스크립트 편집자이자 본인이 직접 에피소드를 집필하기도 했지요.

본편에 등장한 제롬 빅스비의 묘사에는 아쉬움이 많아요.
(사실 모든 캐릭터들이 실제 인물과 다르겠지만)실제 인물에 대한 정보보다는
본인의 작품에 드러난 성격을 기반으로 캐릭터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일러스트 역시 젊은 시절을 기반으로 그렸기 때문에 TOS 집필 당시의 모습과는 다를 거예요)

4

그런데 저는 대체 왜 60년대 TV쇼 작가들에게 집착했던 걸까요?
<퓨쳐라마>의 필립 제이 프라이가 스타트렉에 관해 말한 대사가 답변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친구가 없었을 때
그 프로그램들은 마치 내가
친구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 줬어.”

저에게는 저 ‘프로그램들’ 부분이 스타트렉의 작가들이었습니다.

실은 미국 TV쇼 스크립트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꽤 오랫동안 진지하게 꿔 왔습니다.(노력 대비 영어 실력이 너무 늘지 않아서
일단 한국어로 열심히 써 보는 것으로 방향을 틀긴 했지만요ㅋㅋㅋ)
미국의 TV 스크립트 작법이나 TV 작가들의 성장 과정을 묘사한 글을 읽으며
언젠가는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바람을 키워 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알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게 제가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5

<외로움의 비행접시>의 결말은 이렇습니다.
비행접시가 한 여자에게만 말을 걸어 온 건 대단한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실은 그녀가 가장 외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상심하여 바다에 걸어들어가려고 했던 여자는
똑같이 자신처럼 외로운 사람을 만나 살아가기를 결심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작가들의 흔적을 더듬으며 혼자 지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쓴 글을 올릴 수 있고 독자님들의 반응을 접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외롭고 힘든 누군가에게 가 닿기 위해, 마치 작가들이 저에게 와 줬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생각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스타트렉 작가들의 세계에 빠져 보세요!

2017.03.06
toll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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