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전망, 공모

17년 4월

[잡담]

총 30회 분량의 이야기를 읽어주신, 또는 장차 읽어주실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야기가 일단락되고 비축 분량을 전부 소진한 김에 감사 인사와 더불어 잡담을 조금 해볼까 합니다.

세상 모든 것들이 으레 그렇듯 이 소설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너무도 구구절절해 구질구질해져버린 사연이지요. 혼자만 간직해도 좋을 것을 꼭 이렇게 방정을 떨고야 마는 게 저란 사람입니다. 하지만 독서를 사랑하는 여러분에게라면 왠지 털어놓아도 좋을 것 같군요.

이 이야기는 원래 생일선물로 기획되었습니다.

저는 아내가 결혼하기 전부터 기념일마다 종종 짤막한 콩트를 써서 바치곤 했습니다. 소재는 아주 한정되어, 예컨대 3주년이면 3에 관한, 5주년이면 5에 관한 이야기를 썼지요. 꽤 공들여 썼지만 차마 공개하지 못할 낯간지러운 것들입니다. 그러다 7주년이 되기 전에 우리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2012년도에 아내는 자기 생일에 소설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소설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그걸 손으로 옮겨 적는 것도 좋아하며 물론 아내도 아주 좋아합니다만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소설이라는 것이 자판기처럼 뚝딱 나오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대충 분위기를 보니 그녀는 이제 기념일 대신 생일마다 소설을 요구할 기세였어요. 기념일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소재 고갈로 허덕였으므로 저 역시 반색했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문제가 많은 기획이었습니다. 앞으로 생일에 관한 글을 몇 개나 써야 할지 헤아리니 숨이 턱 막혔지요. 저는 돌파구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연재였습니다.

생일이라는 소재를 두고 매년 골머리를 썩이느니 아예 느긋하게 연재를 해버리면 여러모로 수월하겠다는 편의주의적 발상이었지요. 이러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게 생일 전야였으므로 저는 새벽 동안 부랴부랴 편지지 두 장 분량의 소설을 휘갈겨 아침에 무사히 전달을 완료했습니다. 그렇게 첫선을 보인 것이 [1회 – 여우의 고민]입니다. 아내의 반응은 미적지근했지만(1회만 놓고 보면 그런 반응도 이해가 됩니다) 저 스스로는 꽤 만족했습니다. 아마도 소설의 내용보다는 1년 주기의 연재라는 아이디어 자체에 대한 만족이었겠지만요.

음, 얘기가 조금 길어지겠는데 괜찮을까요?

아내의 생일은 2월인데, 그 직전까지 우리는 영드 ‘셜록’을 열렬히 시청했습니다. 시즌 2가 막 끝났을 때였어요. 그러니까… 전 시즌을 통틀어 제일 큰 난리가 났을 때지요. 더구나 그 무렵에는 영화 ‘셜록홈즈: 그림자 게임’까지 개봉했으니 그 무렵 우리가 셜록 이야기를 한 건 거의 필연이었다고 봐요.

우리는 동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카페에는 아직 크리스마스 장식이 달려 있었고요. 오래 전 일인데 이상하리만치 생생하네요.

문득 제가 중얼거렸습니다.

“순록 홈즈….”

동물탐정 순록 홈즈! 그 이름을 떠올리자마자 머릿속 전구에 불이 켜졌습니다. 희붐한 숲에서 하얀 콧김을 내뿜으며 안광을 발하는 순록의 고고한 자태…. 응당 산타가 왓슨 역할을 맡아 잔소리를 해댈 테지만 당장은 순록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서 인간 캐릭터는 차마 끼워 넣을 엄두를 못 냈었지요. 그렇다고 순록 홈즈를 진지하게 생각했던 건 아니에요. 그냥 티타임 동안 나눌 한담의 소재가 되었을 뿐이지요.

다시 생일소설로 돌아와서, [여우의 고민]을 쓰면서 저는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불현듯 순록 홈즈를 떠올렸고, 그 생각은 자연스레 언젠가 이 난장판을 동물탐정이 해결하리라는 구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얼추 몇 회분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혹은 천만다행으로) 이것을 따로 메모하지는 않았고, 1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순록에 관해서는 새하얗게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제가 순록 홈즈를 다시 떠올린 것은 2016년 9월 22일입니다. 이때는 메모를 했네요.

그리하여 2013년 2월에 저는 백지 상태로 2회를 썼습니다. 2회는 [호랑이의 실존주의적 고민]이네요. 이때까지도 저는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원래는 1년을 두고 철저히 준비하자는 마음가짐이었지만 게으른 성정을 고려하지 못한바 결국 벼락치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변이 일어난 건 2014년이었습니다.

[3회 – 갈림길의 불곰]을 쓰고서 뒷이야기가 궁금해 도저히 내년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 거예요. 마침 이번에는 시간적으로 여유도 있었고요. 그래서 내친 김에 [4회 – 나무꾼의 실존적 고민]을 써버렸습니다. 올해는 특별히 두 편을 주겠다며 아내 앞에서 으스대기까지 했어요.

그런 뒤에 저는 스스로 합리화를 시도했습니다.

‘이럴 게 아니라 아내 모르게 미리 써놓고 생일 때마다 한 편씩 주면 되잖아?’

아하, 그러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신이 나서 9편까지 연달아 써버렸어요. 저는 그제야 비로소 후련해졌고 이야기는 그렇게 매듭이 지어진… 줄 알았는데…. 본능에 충실하다 보니 2부도 쓰고 3부도 쓰고 번외편까지 쓰게 되었네요. 30년치 선물을 미리 준비한 기분은, 대단히 뿌듯합니다.

 

[전망]

지금까지의 이야기로도 부족해서 앞으로 여섯 챕터와 번외편 여섯 편을 더 추가할 계획이에요. 구체적인 준비는 하나도 안 되어 있지만 이야기 흐름상 그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냥 이런 식으로 방향만 정해놨어요.

사실 지금 분량은 2015년 7월 22일까지 쓴 것입니다. 30년치를 미리 벌어놓았으니 조금 해이해질 만도 하지요. 하지만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보다 앞서 2013년에 저는 ‘도그마 2013’이라는 거창한 문서를 작성해 친구들을 불러다가 낭독한 바 있습니다. 다른 기회에 정식으로 도그마를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무튼 그에 따르면 제 자신이 가장 쓰고 싶은 글을 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완성해야 합니다. 저는 도그마를 대체로 지켰습니다. 덕분에 2013년 이후로는 제가 쓴 글을 조금 떳떳하게 여기게 되었어요. 아무튼 할 만큼 했으니까요.

저는 곧바로 ‘전신보’의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기보다 다른 소설을 먼저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쓴 게 ‘다수파’이고, ‘사랑손님과 나’입니다. 지금도 절반 정도 쓴 중편이 있고, 그게 막혀서 시작한 단편이 있고, 새로 연재를 하려는 무모한 계획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신보’의 다음 이야기는 언제 쓰냐고요?

2012년부터 5년이 지났으니 25년치 남았네요. 25년 안에는 꼭 쓸게요… 가 아니고, 실은 저도 이곳 브릿G에 올리며 모처럼 ‘전신보’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어요. 그러니 아마 가까운 시일 내에 4부의 실마리를 찾아내지 않을까요?

 

[공모]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어 리뷰 공모를 하려고 합니다. 이런저런 채택 기준을 설정해 봤는데 결국 꼼수 부리지 말고 제가 직접 고르라는 조언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책임있는 자세로 리뷰를 대하겠습니다 흑흑…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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