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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이 강력한 글 vs 단점 없는 글

분류: 수다, 글쓴이: stelo, 10월 5일, 댓글20, 읽음206

안녕하세요. 리뷰 쓰는 스텔로입니다.

 

리뷰를 쓰다보면 이렇다 저렇다 기준이나 잣대를 가지고 평가하곤 합니다. 글의 장점이나, 단점을 논하게 되죠. 예를 들어 저는 문장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보는데요. 가독성이 떨어지거나, 수준이 떨어지는 문장은 읽기가 힘들더군요.

그러다 이번에 단행본으로 나온 [피어클리벤의 금화]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전부터 읽어야지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종이책으로 보자 했던 작품이었는데요. 1권 전자책 무료 대여를 하고 있길래, E북 리더로 애매하게 읽기 시작했어요. 종이책과 웹소설 사이 그 어딘가?

어쨌든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먼저 복잡하게 배배 꼬아 쓴 문장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리뷰를 쓰면서 매번 “이렇게 쓰면 읽기 어렵다”고 했던 예시들이 다 그대로 나와 있었어요. 간단한 예를 들어 “식용으로 적합한지” 같은 표현이요. 둘 다 한자어에다가 일상적인 어투도 아니고, 확실히 읽기 어려워져요. 특히 저는 웹소설에서는 이런 어투를 쓰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봤거든요. 브릿지를 벗어나면 잘 나가는 웹소설은 수준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쉽게 문장을 쓰곤 하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피어클리벤의 금화]가 정말 재미를 넘어 좋은 이야기라는 거에요. 저는 채식주의자라서 두 사람, 아니 용과 사람의 대화를 흥미롭게 보았어요. 울리케의 논증은 모순이 많을 수 밖에 없죠. 사람도 자기보다 지능이 낮은 생명체들을 먹으면서, 용은 그러면 안 된다는 건 모순처럼 보여요. 하물며 채식주의자도 식물은 먹는 걸요! 하지만 결국 그 답은 용이 “인간을 먹으면 안 된다”는 윤리 원칙이 아니라, “너를 먹지 않겠다”라는 결단으로 이어져요. 이게 철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저는 리뷰를 쓰는 게 아니니까요.

 

저 피어클리벤 문체는 계속 이어져요. 용은 고풍스럽게 말해도 그러려니 해요. 그런데 고블린이 똑똑하게 말하다니요. 이건 이상하지 않나요.

저는 티알피지를 해왔는데요. 고블린은 대부분 멍청하게 그려왔어요. 뭔가 재기발랄하고 영특한 면이 있더라도 고차원적인 대화가 가능한 존재였던 적은 없었어요. 그런 존재들이 가독성이 떨어지는 말투를 쓰고, 복잡한 주제에 대해 말하는 건 정말 신기한 일이죠.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피어클리벤의 금화의 단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개성이나 장점처럼 보이더라고요. 단점 없는 글이 무조건 좋은 것인가 싶게 되었어요. 장점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품고 가야할 리스크 같은 거랄까요.

물론 큰 장점 하나를 품고 있는 멋진 작가가 되기도 쉽지 않죠. 하지만 그렇게 좋은 글을 단지 문장이 어떻니, 현실성이 어떻니 하고 재단해버릴 수는 없을 거에요.

오히려 저는 신기해요. 이런 소설이 브릿지 1위를 하고 단행본으로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끌 수 있다니요. 어찌보면 정말 마이너해질 수도 있고 주류 웹소설에서 벗어난 소재나 방식이잖아요. 브릿지는 참 특이한 곳이네요.

이야기가 길었지만 이건 아직 막 읽기 시작한 감상이고요. 리뷰는 아닙니다. 자세한 리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써보겠습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늘 갈등을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풀어나가는 판타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게 티알피지일 수도 있고, 소설일 수도 있겠죠. [피어클리벤의 금화] 같은 철학적 대화보다는 갈등 중재물에 가까웠지만요. 대화는 감정적이기 쉽고, 인간인 우리조차 비합리적으로 서로에게 손해가 되는 결정을 내리곤 하니까요. 하지만 늘 쓰지 못했었는데, [피어클리벤의 금화]를 보고 놀랐어요. 강력한… 그것도 브릿지 1위인 경쟁자를 보는 느낌이었죠. 저도 제 이야기를 선보일 날까지 노력해야겠어요.

st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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