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글을 쓰는가 _르귄
아래 어느 작가 분의 고민과, 응원하는 댓글들을 읽고 한마디 보탤까 하다가, 따로 페이지로 씁니다. 좀 길어질 것 같고, 댓글은 문단 나누기가 잘 안 돼서요.
저는 제 경험이나 조언 따위를 드릴 깜은 안 되고… 제가 마음에 품고 글을 쓸 때마다 되새기는 글쓰기 방식입니다. 르귄 여사의.
어슐러 르 귄. 너무나 유명한 작가라 설명이 필요 없는 분이지만, 제게 특별히 와 닿은 이유는, 제가 르귄 할머니의 책을 읽으면서 장르문학을 동경하기 시작했고… 기어이 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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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작가이자 좋은 번역자이신 이수현 님이 르귄의 작품을(서부해안 시리즈던가?) 번역하면서 메일인터뷰를 진행했고, 거기서 르귄 할머니가 하신 답변입니다. 정확한 문장을 옮길 순 없지만, 제가 기억하고 품은 대로만 옮기자면
“제가 어떻게 작품을 구상하느냐고요. 글쎄요… 마지막에 노트북 앞에 앉는 방식이라고 할까요.
(중략)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저만의 시간을 가지려 해요. 이를테면 차 한 잔과 메모장을 들고 집 밖 벤치에 앉는 거죠. 그리곤 기다려요. 아이디어가 말을 걸어오길 기다리지요. 가끔 떠오르는 문장이 있으면 메모장에 끄적이기도 하고요… 그 기간이 짧기도 하고, 몇 년이 걸리기도 해요.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제게 말을 걸어와요. 저는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요. 그리고 질문을 해요. 너는 누구니, 네 앞에 놓인 역경은 뭐니, 네가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니… 하는 것들.
그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아이디어는 하나의 세상으로 커져 있지요. 인물과 사건과 방향성이 온전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는 거예요.
그때쯤 되면 저는 깨닫지요. 이 정도면 ‘써도’ 되겠다… 그리고는 비로소 노트북에 앉아서, 인물들이 알려준 것을 받아 적기 시작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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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답게 은유적 답변이지만, 르귄의 작품을 읽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할머니는 정말 그렇게 창작을 할 것 같기도 합니다. 얼마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일지… (전 정말 그녀를 사랑해요^^!)
제가 르귄의 말을 품은 이유는, 답변 안에 하나의 서사를 구축해 가는 과정이 담겨있기도 하거니와… 글쓰기에 대한 태도와 자세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조바심 따위 없이, 불안이나 과욕 같은 것도 없이, 그저 차분하고 진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여다 봅니다.
그것이 글쓰기의 전부이고, 즐거움인 듯합니다.
한글 파일을 열고, 써내려가는 과정은, 그저 ‘뒷정리’일 뿐이고요… 저는 조급증에 답답해질 때마다, 르귄 할머니를 흉내내 보려고 합니다.
음… 딴엔 댓글로 써보자 했는데, 쓰다보니 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되어버렸네요. 뭐, 아무튼… 글쓰기 고민은 작가들의 직업병이자 업보이니, 그것도 즐겨보시라고요. 즐기지 못하면 필시 패배하고 말 터이니.
패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들.